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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한국/한중관계

중국은 전랑외교로 한국을 다시 잃었다.

by 중은우시 2023. 6. 19.

글: 황포강봉(黃浦江封)

 

국제사회가 블링컨의 방중을 주목하고 있을 때, 한중관계는 사상유례없이 긴장되며, 외교전이 양국간에 전개되고 있어서, 마치 1895년이전의 한반도의 국면의 재연되는 것같다. 중국은 한국을 잃는 외교적 실패에 직면했을 뿐아니라, 이 실패는 아마도 청일전쟁과 같은 시스템적인 실패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중국의 옛날 대조선외교의 실패는 1882년 조선의 임오군란때부터 시작한다. 이홍장(李鴻章)의 심복인 마건충(馬建忠)은 임오군란후에 조선에 사신으로 간다. 주요목적은 조선과 일본의 결맹을 막는 것이었다. 다만, 설사 그가 친일적인 대원군을 성공적으로 납치하고, 친중의 민비를 내세웠으며, 원세개(袁世凱)가 1885년 한성에 주둔하며, 이홍장이 영국, 러시아, 미국등의 세력을 빌어 일본을 막아내려 하였지만, 대청과 조선의 전통적인 종주국-속국관계는 근대국제질서의 도전을 극복할 수 없었다. 거기에는 조선민족주의독립의식이 성장한 것이 포함된다. 결국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청나라는 조선을 잃었을 뿐아니라, 최종적으로 청나라조정까지 멸망하게 된다.

 

중국의 전랑외교가 한미일동맹을 가속화시켰다.

 

그러나, 오늘날의 중국인에게 있어서, 외교관을 포함하여 개략적으로 청일전쟁의 결과는 알고 있지만, 청일전쟁의 원인은 잊어버렸다. 중국이 근대사회에 융합해 들어가는 것을 거절하고, 전통왕조식의 비대등외교방식을 견지하였기 때문이다. 즉 두 제도의 충돌이며, 전통중국과 현대화된 세계간의 충돌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주한대사 싱하이밍(邢海明)에게서 세계는 다시 청나라때 만대인(滿大人)의 부활을 보았다. 싱하이밍은 과거 몇년간의 전랑외교방식을 계속했고, 동아시아 지연정치의 거대한 변화를 보지 못했다. 그리하여 공연히 한중간의 분쟁을 도발하여, 한미일동맹 내지 더욱 큰 범위에서의 정치동맹의 심화를 가속화시킨다. 한국을 잃는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이건 당연히 겁주는 말이 아니다. 우크라이나전쟁이 진전되면서, 연초에 타이완문제가 발효되기 시작했고, 중국주한대사 싱하이밍은 한국내정에 깊이 간여한다. 그리고 각종 놀라운 발언으로 한국정책에 영향을 끼치고자 했다. 특히 최근 들어 "중국의 패배에 건다"는 말은 국내최고지도자의 '동승서강론' 예언을 외교패권으로 바꾸어 한국에게 자신에게 줄을 서라고 핍박한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의 조야에 큰 파란을 불러왔다. 반사대주의전통을 가진 한국내부에서 이런 쇼비니즘적인 논조는 그저 사람들에게 백여년전의 불평등했던 속국역사를 떠올릴 뿐이고, 이미 선진국대열에 들어서고 민주주의로 전환한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한국국민들에게는 모욕이라고 볼 수 있다. 더더구나 중국이 전통적인 천조대국의 패권적인 자태를 보이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고, 심지어 한국인들에게 일본식민역사보다도 악감정을 갖게 만든다.

 

블링컨은 한중간에 성숙된 관계를 건립하도록 말했고, 중국은 기분이 좋지 않다.

 

최근 한국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국에 대한 호감이 사상유례없이 낮다는 것도 이런 국민정서를 반영한다. 다만 더욱 중요한 것은 윤석열정부는 한일관계에서의 역사적 갈등을 해소하고, 한국전쟁동맹의 기초하에 신시대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동시에 한국정부는 최초로 '실력외교'방식으로 중국을 대하면서, 평등한 나라와 나라간의 관계를 쟁취하고자 하고 있다. 이처럼 정상적인 자태가 중국이 보기에는 '하늘의 위엄에 감히 대드는 것(冒犯天威)'이다. 그런데 블링컨이 방중전날 중국과 한국은 '성숙한 관계'를 건립해야한다고 말했다. 거기에는 중한회교와 지연정치를 변경시키겠다는 의미가 상당히 포함되어 있다. 

 

한편으로 6월 16일 미국 미시건호핵잠수함이 부산항에 들어온 것을 표지로 하여 미국은 한국에 자신감을 주고 있다. 이전에 유약했던 국가가 수십년간 대북햇볕정책이 실패한 후, 현재 새로운 동맹정치에서 역량을 얻어 외교적으로 더욱 대담해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베이징은 오랫동안 한반도정책에서 위장중립태도를 보이면서, 북한의 핵능력 및 장거리미사일발사능력을 방관한 것에 대한 쓴맛을 보고 있는 것이다. 북한핵문제가 미국과 협력할 카드가 되지 못할뿐아니라, 사실상 한국과 일본으로 하여금 재무장과 정치대국으로 변신하도록 만들었다. 이는 중국의 대한외교에서의 실패중 하나이다.

 

다른 한편으로, 싱하이밍이 과거 반년간 한중외교전을 지속한 것은 시의에 부적절했다. 먼저, 중국은 팬데믹이후 그리고 우크라이나전쟁기간에 사상유례없는 외교고립에 처했고, 미국,서방과 관계완화가 필요했다. 중국은 그다지 원치 않지만, 미국과 각급대화를 진행하고, 호주와의 관계도 복원시키고, 유럽과의 교류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하에서, 계속 사람들이 싫어하는 전랑과 종주국의 자태로 한국을 대한 것은 원래 미중 심지어 중일간에 특수한 역할을 할 수도 있었던 한국을 완전히 상대편으로 돌아서게 만들어 한미일동맹이 공고하게 촉진시켰다.

 

중국은 경제가 부진하여, 한국에 경제보복을 실시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중국경제가 전면적으로 부진한 곤란한 상황하에서, 베이징은 더 이상 사드위기때처럼 경제보복수단을 사용하기 어렵게 되었다. 싱하이밍과 중국외교부는 대한외교전에서 국무원과 경제부처의 지지를 얻기 힘들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제자본의 중국정치에 대한 불신을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다. 역시 중국전랑외교와 국무원의 외자유치정책간의 모순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싱하이밍도 개인적인 곤경에 처해버렸다. 중국전랑외교의 시작용자(始作俑者)인 친강(秦剛)은 이미 외교부장으로 승진했다. 미중관계를 회복시키는 임무여부에도 불구하고, 그는 절대로 부하관리들이 게속하여 전랑노선으로 시진핑의 총애를 얻으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비록 루사야(盧沙野), 싱하이밍같은 류의 관리들이 승진을 노리고 "감히 투쟁하고  잘 투쟁해라"는 최고지시에 영합하여 계속 전랑외교를 진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류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국가이익을 희생시키는 외교관리들에 대하여, 루사야는 이미 귀국조치당한 후 한직으로 밀려났다. 아마도 싱하밍의 미래에서 가장 좋은 결과도 그런 것이 될 것이다. 이건 중국외교의 또 한번의 실패이다.

 

외교실패는 아마도 중국에 대한 군사포위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련의 외교실패는 아마도 겨우 시작인지도 모른다. 100여년전 청나라가 한반도에서 실패한 후, 중국외교실페는 한국에만 그치지 않았다. 원세개가 1894년 조선의 '동학운동'이후 조선정부가 청나라제 원조를 요청한 상황과 마찬가지로, 원세개는 외교적인 완충공간을 없애버리면서, 결국 청일간의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지금 동아시아의 국면은 거의 같은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이라는 중국외교의 완충이 어쩔 수 없이 사라지면서 현재 대만해협을 포함한 전체서태평양에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 6월 16일에는 일본, 필리핀, 미국의 삼국이 안전합의를 달성했다. 냉전이후 서태평양지구에서 중국에 대한 군사포위망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그렇기는 해도 중국주변의 지연정치악화는 100년전 청나라가 직면한 것만큰 흉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홍장은 그 시대에 그래도 한편으로 격렬한 언사를 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책략에서 신중하게 힘조절을 했었다. 최대한 외교에서 연전연패하지는 않도록 했다. 그가 막아내지 못했던 것은 조정의 보수파와 의화단의 결합이었다. 지금, 싱하이밍, 루사야등 외교관들의 전랑외교로 대표되는 미친 행동은 그들이 동승서강의 미신으로 반미, 반서방의 천조모델을 수립하여, 전체외부세계를 적으로 돌린다. 그리고 이를 '극한사고'라는 말로 포장한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들이 잃을 것이 한국만도 아니고, 대만만도 아니고, 극한이상의 전체세계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