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우사(雨絲)
전체조챔피언 우빙(吳氷)은 각고의 노력끝에 성공을 거두었는데, 결국 44억위안을 챙겨서 해외로 도피했다. 시가총액 400억위안에 이르던 빈껍데기회사만 남겨놓아서, 무수한 사람들의 정당한 이익은 크게 해를 입게 되었다.
우빙은 베이징사람이고, 집안형편은 많은 사람들보다는 나은 편이었지만, 베이징이라는 와호장룡의 곳에서는 그저 평범하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우빙은 어려서부터 신체능력이 아주 좋아서, 5살때부터 체조를 연습했다. 체조는 신체적 자질이 아주 중요한 운동이다. 그리고 체조선수의 수준에 도달하려면 더더욱 견인불발의 의지로 각종 훈련을 버텨내야만 한다. 다만 어린 우빙은 그 힘든 세월을 견뎌내고, 13살때 전국무대에 오른다. 그리고 일거에 전국여자체조 종합1위를 차지한다. 그후 다시 싱크로나이즈드수영에 뛰어들어 마찬가지로 전국1위를 차지한다. 그후 크고 작은 상을 여러 개 받았고, 앞날은 창창했다.
그러나, 우빙의 운동선수로서의 생애는 아주 짧았다. 어른이 된 후에 우빙은 자신의 신체적 자질이 급속히 하강한다고 느낀다. 그리고 젊은 선수들의 발전이 아주 빨라서, 우빙은 결국 은퇴를 선언하고, 체육계를 떠난다. 다행히 체조훈련으로 그녀는 단단한 몸을 가질 수 있었고, 그때는 홍콩의 쿵푸영화가 성행하던 1980년대였다. 그리하여, 우빙은 쿵푸영화에 출연하여 여성무술스타가 된다. 3년동안 15편의 영화를 찍었는데, <화봉황>등 비교적 유명한 영화에 모두 우빙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993년이 되어, 이미 영화드라마계에서 여러 해동안 일했던 우빙은 자신의 인맥을 가지게 되고, 심지어 미국영화드라마업계에서 여러 해동안 일해온 영화감독 댄 민츠(Dan Mintz)를 알게 된다. 여기에 경영전공의 남편 샤오원거(肖文閣)도 있어 실력자간에 힘을 합쳐서 공동으로 DMG오락미디어그룹을 만들어, 제작자로서의 생애를 시작한다. 영화드라마업계에서 무대에 나서는 배우부터 막후의 제작자까지 그녀가 직면해야 하는 곤란은 아주 컸다.
제작자의 책임범위는 감독을 도와서 창작이외의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제작자는 인사, 도구, 자금, 정책 심지어 내용까지도 알아야 했다. 그리하여, 샤오원거와 댄 민츠가 도와주기는 했지만, 처음에 많은 문제에 부닥친다. 예를 들어, 광고편을 하나 찍는데, 고객이 돌연 중지시키고 그들에게 스포츠카를 내세워서 제품의 품질을 두드러지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때는 한밤중이어서 길에 다니는 차도 없었고, 사람도 거의 없었다. 우빙은 베이징의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다. 다행히 마음씨좋은 사람을 만나서 스포츠카를 빌려와 광고편을 찍을 수 있었고, 회사를 계속 운영해나갈 수 있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우빙은 그 일을 얘기할 때,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강조하지 않고 그녀는 당시 마음 속으로 이런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나는 월급을 지급해야 했고, 나는 살아야 했다. 나는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지 않아야 했다." 바로 이런 책임감과 각고분투의 정신으로 우빙은 사업을 성공시키게 된다.
2009년 DMG오락은 <건국대업(建國大業)>을 출시하고, 2010년에는 <두라라승진기>를 내놓는다. 나중에 댄 민츠의 역할로 DMG는 최초로 헐리우더와 직접 합작한 중국영화회사가 되어 <Knowing>, <Resident Evil>등 대작을 도입한다. 2012년에는 더더욱 직접 헐리우드와 합작으로 판타지대작 <Looper>를 제작한다. 이 영화는 국내의 매표수입만 1.5억위안을 넘어서 크게 돈을 벌었다. 그후 DMG오락은 다시 마블 코믹스와 합작하여 유명한 수퍼히어로영화 <아이언맨3>를 제작한다. 그리하여 우빙은 한때 "여자아이언맨"으로 불렸고, DMG는 이로 인하여 최초로 헐리우드에 자리잡은 중국회사가 된다. 2014년에 이르러, 우빙의 DMG회사는 성공적으로 상장한다. 몇년간의 자금조달과 발전을 거쳐, DMG의 시가총액은 400억위안을 넘어섰고, DMG에 투자한 소액주주도 3만명에 이른다. 모든 사람들이 DMG의 전망이 좋다고 말하고, 주가는 더욱 오를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처럼 주가가 높았던 것은 우빙의 재무조작, 사기수법에 의존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2018년에 DMG회사의 자금줄이 끊어지고, 그룹창업자중 하나인 샤오원거는 10여억위안의 부채를 지고 '신용불량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다만 우빙은 회사를 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몰래 주식을 매각하여 44억위안을 현금화한다. 그후 미국으로 도망친다. 빈껍데기회사에 400여억위안의 채무만 남겨놓고, 3만의 소액주주들의 투자는 휴지조각으로 화하게 만들었다.
법원이 우빙에게 소환장을 보냈지만, 우빙은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아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귀국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44억위안을 가지고 미국에서 빌라, 고급자동차 심지어 자가용비행기까지 구매했다. 그리고 매일 저택에서 잘먹고 잘살고 있다. 일찌감치 옛날에 스스로 말했던, "나는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지 않아야 했다."는 것은 완전히 잊어버렸다.
옛날에 이런 말이 있다: "득도다조(得道多助), 실도과조(失道寡助)"(도를 지키면 도와주는 사람이 많고, 도를 잃으면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예전에 우빙은 도의를 중시하였기 때문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지금은 양심을 버리고, '체육계의 치욕'이 되어버렸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정당한 이익을 해쳤고, 무수한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있다. 그녀는 조만간 법률의 제재를 받게 될 것이고, 역사의 치욕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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