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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태평천국)

천경(天京)함락후 태평천국의 가장 중요한 6명의 왕은 어떤 최후를 맞이했을까?

by 중은우시 2023. 5. 10.

글: 종횡오천년(縱橫五千年)

 

1864년 7월 19일, 2년여간의 포위공격끝에, 상군(湘軍)은 마침내 천경성(天京城)을 함락시키고,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도성(都城)을 점령한다. 비록 상군이 엄밀하게 막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러 태평천국의 주요인물은 겹겹의 포위망을 뚫고 도망쳤다. 예를 들어, 유천왕(幼天王) 홍천귀복(洪天貴福), 충왕(忠王) 이수성(李秀成), 유서왕(幼西王) 소유화(蕭有和)등이 있다. 그외에 간왕(干王) 홍인간(洪仁玕), 시왕(侍王) 이시현(李侍賢), 보왕(輔王) 양보청(楊輔淸)은 천경성내에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들 6명의 태평천국에서 가장 중요한 왕들은 어떤 최후를 맞이했을까?

 

1. 천경의 포위망을 돌파하다

 

청군은 가장 먼저 태평문(太平門)을 부수고 진입하는데, 거대한 폭발음이 전체 천경을 뒤흔들었다. 유천왕 홍천귀복은 급히 천왕부의 높은 건물에 올라가 내려다 보았다. 그랬더니, 청군이 성안으로 물밀듯이 밀려들어오고 태평군은 계속하여 물러나고 있었다. 홍천귀복은 급히 건물을 내려와, 그의 두 동생과 궁을 빠져나가고자 한다. 그러나, 문을 지키고 있던 여관(女官)이 나가지 못하게 막는다. 바로 이때 충왕 이수성이 달려왔고, 그는 홍천귀복 한명만 데리고 떠난다. 그리고 자신이 타고 있던 뛰어난 전마(戰馬)를 유천왕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더 못한 말로 갈아탄다.

 

이수성은 잔여인원을 이끌고 한서문(旱西門)으로 돌진한다. 이곳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청군에 막히자, 어쩔 수 없이 잠시 청량산(淸凉山)으로 피신한다. 그날 밤에 이수성은 유천왕 홍천귀복, 유서왕 소유화와 천여명의 인원을 이끌고 다시 한번 포위망돌파를 시도한다. 그러나, 북문, 수서문, 소남문에서 모두 성공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태평문으로 발걸음을 돌렸으며, 상군(湘軍)으로 위장한 후, 상군이 천경성을 부술 떄 무너뜨린 곳을 통해서 돌진한다. 상군과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빠져나오는데 성공한다.

 

2. 체포되어 살륙상하다.

 

일부 태평군이 포위망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증국전(曾國荃)은 즉시 병력을 보내 추격한다. 동시에 부근의 청군들도 추격에 참여하도록 명한다. 이수성은 비록 포위망을 뚫는데는 성공했지만, 그는 자신이 좋은 말을 유천왕에게 양보했고, 자신이 탄 말을 좋지 않은 말이었다. 그래서 주력부대와 떨어지게 된다.

 

그외에 유서왕 소유화(蕭朝貴의 아들, 태평천국후기에 상당한 권력이 있었다)도 주력과 흩어지게 된다. 그는 장왕(章王) 임소장(林紹璋)과 호숙진(湖熟鎭)으로 들어갔다가 21일 상군에 붙잡혀 피살당한다. 

 

주력과 흩어진 이수성은 낡은 사당(廟)에 들어간다. 몸에 부상을 입었으므로, 지니고 있던 금은악세사리를 묶어서 나무에 걸어두고,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그는 현지의 백성들에게 발각되고, 그들은 이수성을 붙잡아 청군에 바친다. 이수성은 자신이 진술서를 작성한 후, 청군에 의해 능지처참당한다. 

 

유천왕은 일부 왕들의 보호하에 광덕(廣德)까지 간다. 거기서 홍인간등과 회합하여, 강서(江西)로 가서, 시왕 이시현의 부대와 회합하고자 했다.

 

3. 선종(善終)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유천왕 홍천귀복, 간왕 홍인간등은 수만명의 부하를 이끌고 남하하여, 강서 경내로 들어선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들은 계속 청군의 추격을 당해 싸워야 했고, 인원수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나중에는 1만2천여명 정도가 남는다. 강서 석성(石城)의 양가패(楊家牌)에서, 이 태평군의 잔여부대는 청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철저히 섬멸당한다. 홍인간등은 포로로 잡혀서, 남창(南昌)에서 능지처참형을 당한다. 홍수전(洪秀全)의 후계자인 홍천귀복도 화를 면하지 못했다. 그도 11월 18일 능지처참을 당한다.

 

이시현은 이수성의 당제(堂弟)이다. 그는 천경이 함락된 후, 군대를 이끌고 복건성으로 들어가 투쟁을 계속한다. 다음 해, 좌종당(左宗棠)이 병력을 보내어 포위공격한다. 이시현은 전투에서 패배한 후, 부하 왕해양(汪海洋)의 부대로 도망쳤다가, 왕해양에게 죽임을 당한다. 

 

양보청은 양수청(楊秀淸)의 족제(族弟)이다. 그는 천경이 함락된 후 머리카락을 자르고 옷을 갈아입은 후, 성과 이름을 바꾸어, 광서, 귀주, 광동, 호남으로 도망치며 재기를 노린다. 1874년, 양보성도 복건에서 체포되어 처형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