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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문혁후)

"8291사건": SLBM(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도면절취사건

by 중은우시 2023. 4. 17.

글: 지식도학잡료(知識都學雜了)

 

기밀문건절도

 

1982년 7월 6일, 중국북방의 해안도시 D시의 해군 모부대초대소에는 비밀리에 극히 중요한 손님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8291"프로젝트지휘부의 간부, 전문가 및 일부 엔지니어들이었다. 소위 "8291"프로젝트라는 것은 중국군사과학부문에서 장기간 연구게발하여 1982년 9월 1일 잠수함으로 수중에서 남태평양해역으로 미사일을 발사하기로 예정된 프로젝트의 명칭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이제 9월 1일 중앙군사위원회에서 명령만 떨어지면, 중국최초의 SLBM이 물 속에서 솟아올라 하늘을 날아 남태평양의 깊은 곳까지 날아갈 터였다. 그것이 알려지면 아마도 세상이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7월 6일 밤, 국방과학공업위원회의 유명한 미사일전문가인 딩(丁) 수석엔지니어가 해군초대소로 들어간다. 저녁을 마치고, 그는 객실의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10여분후, 그가 목욕탕에서 나왓을 때, 원래 침대옆 탁자위에 놓아두었던 공문서가방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공문서가방안에는 7건의 극히 중요한 "8291"프로젝트의 기밀문서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이번 발사를 기한내에 진행할 수 있는지를 결정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프로젝트의 보안업무를 책임지고 있던 지휘관은 즉각 명령을 하달하여, "즉시 초대소를 봉쇄하고, 신속히 수사활동을 전개하라"고 지시한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이건 국가의 중대기밀에 관련된 특대사건이므로 마땅히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장기간동안 준비한 사건이라고 보았다. 사건발생시간과 사건수법으로 볼 때, 해외에서 잠입한 스파이 혹은 내부프로젝트상황을 잘 알고 있는 인원이 저질렀을 가능성이 커보였다. 또 어떤 사람은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8291"프로젝트의 기밀유지업무가 잘 진행되었는지에 대하여. 여러 방면의 감시통제상황을 통해서 분석한 결과, 미국, 소련등 국가는 중국이 진행하고 있는 "8291"프로젝트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건내용에 대한 의문이 날로 커져가는 가운데 D시의 서구 공안분국 국장 왕지장(王吉章)이 아주 대담한 의견을 제시한다: "8291"사건은 보통의 절도행위이고, 아무런 정치적 배경이 없을 수 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은 그에 대하의 의문을 표시했지만, 왕지장의 견해는 수수께끼인 사건을 해결하는데 새로운 시각을 주게 된다.

 

연환절도사건

 

1982년 7월 31일 D시 서구 푸자장(付家莊)공안파출소는 사건신고를 받는다. 어느 탄광노동자요양원 제3요양구의 6개 방에 도둑이 침입하였고, 도둑은 현금 700여위안, 전국양표(糧票, 식량으로 교환할 수 있는 증빙문건)200여근, 요녕성양표100여근, 그리고 요양인원이 가지고 있던 일상용품들을 훔쳐갔다는 것이다. 1980년대초에 국가는 양표제도를 아직 시행하고 있었다. 일반노동자의 급여는 겨우 30-50위안이었다. 이 사건의 관련금액은 적지 않아서, 파출소는 즉시 입건한다.

 

현장조사결과에 따르면, 사건범인은 문위의 지면으로부터 2미터정도 떨어진 횡격창(橫格窓)을 뗴어내고 실내로 잠입했다. 이 상황은 "8291"사건의 수법과 아주 비슷했다. 왕지장은 직접 이 보통의 주거침입절도사건을 맡아서 해결하기로 결정한다.

 

반달여후, 석탄노동자요양원 제3요양구에 다시 한번 주거침입절도사건이 발생한다. 왕지장은 다시 한번 "7.31"석탄노동자요양원 주거침입절도사건의 사건기록과 금방 발생한 절도사건을 비교해 보았다. 그랬더니 양자는 사건수법에서 비슷한 점이 많았다. 특히 사건발생지점이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다. 그리하여, 두 사건은 서로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두 개의 사건에서 8291사건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범인을 의외로 잡다.

 

1982년 8월 15일, 형경 궈더원(郭德文)과 푸자좡파출소의 외근근무자 소두(小杜)는 해수욕장을 순찰할 때, 여자화장실에서 몰래 훔쳐보고 있던 별명이 "건두부(乾豆腐)"인 건달을 체포한다. 체포과정에서, 그는 총격의 위험을 무릅쓰고 도망치려는 이상한 행동을 보였고, 그의 몸에는 D시에서는 보기 힘든 베이징에서 생산된 인삼(人蔘)표 담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어 서구공안분국에서는 그를 특별히 주목하게 된다.

 

그리하여, 국장 왕지장은 '건두부'를 목표로 삼는다. 형경대에서 보내욘 여러 현장조사자료를 보고, 왕지장은 D시의 7.31, 8.14석탄노동자요양원에서 발생한 두 건의 주거침입절도사건, 그리고 옆 구의 두 호텔에서 1달내에 전후로 9번 발생한 물품절도사건이 사건수법이나 현잔에서 수집한 혈액형, 장인(掌印)등 증거로 볼 때 모두 "건두부"의 소행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확실한 증거를 내밀자, "건두부"는 자신이 절도범이라고 자백한다. 겉으로 보면, 사건이 원만하게 끝난 것같았다. 그러나 왕지장은 여러 해동안의 형사로서의 경험에 따라 "건두부"사건은 여기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8291"프로젝트사건에까지 생각하게 된다. 8월 19일, D시공안국 당조직은 검토를 거쳐 관련부서에서 "건두부"의 주거침입절도사건과 "8291"프로젝트사건에 대하여 연관성여부를 수사하기로 결정한다. 

 

수사를 통해 "건두부"의 이름은 류잉푸(劉迎福)이며 나이는 25살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그는 D시 제2전기공장의 노동자였다. 류잉푸는 공장에서 소방대원으로 있었고, 전문적으로 높은 곳에 올라가는 훈련도 받았다. 그는 키가 컸고, 기민했으며 높은 곳을 타고 올라가 사건을 저지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그리고 그의 집은 "8291"프로젝트사건현장과 멀지 않았다. 7월 6일은 마침 제2전기공장의 휴무일이었다. 그래서 류잉푸는 충분히 사건을 저지를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그날 밤, 왕지장은 직접 류잉푸에 대하여 심문을 진행한다. 변명하기 힘든 사실앞에서 결국 류잉푸는 모든 것을 자백하게 된다. 7월 6일 오후 할일이 없던 "건두부"는 집에서 멀지 않은 해군의 모부대초대소로 갔다. 그는 드나드는 해군장교들을 보면서 나쁜 생각을 품게 된다. "모두 말하기를, 해군장교는 급여도 높고, 대우도 좋다고 한다. 그들은 분명 돈이 많을 것이다. 오늘 저녁에 할 일이 없으니, 그들의 물건을 훔치자." 밤이 깊어진 후, "건두부"는 담장을 넘어 초대소로 들어간다. 그는 한 건물의 창앞에 숨어 있었는데, 커튼 사이로 한 '지휘관'이 두터운 가죽으로 된 문서가방을 침대맡의 탁자에 놓고, 옷을 벗고서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그 가방안의 '재물'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류잉푸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소방대원으로서 배운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방식으로 가볍게 실내로 들어가고, 그 문서가방을 집어서 원래 왔던 길로 도망친다.

 

문서의 조각들이 발견되다.

 

류잉푸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문서가방을 절취한 후, 직접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궤도전차를 타고 바닷가의 싱하이공원(星海公園)으로 갔다. 류잉푸는 한 공중화장실에 숨어서 문서가방을 열어보았다. 실망스럽게도, 커다란 문서가방안에는 두터운 문건자료외에 별다른 물건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가로등빛에 의지하여 살펴보니, 종이위에 "중화인민공화국국방부" "절밀(絶密)"등의 글자가 보였다. 그는 등뒤에 식은 땀을 흘렸다. 자신이 큰 화를 입을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그는 불안한 마음으로 화장실에 앉아서 한참을 생각했다. 어떻게 하더라도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이라 생각하여, 그는 아예 문서가장은 화장실의 똥통속으로 집어던지고, 모든 문건도 잘게 찢은 다음에 버렸다.

 

서구공안국의 형사들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건발생후 이미 한달여가 지났으므로, 7월 중순에서 8월 중순사이에 이 화장실은 3번이나 퍼냈고, 퍼낸 분뇨는 교외지역인 신채자향(辛寨子鄕)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8월, 수사요원들은 신채자향으로 간다. 향정부의 공무원들에 따르면, 야채농사에 뿌렸다는 것이다. 도시에서 7,8월에 운반해온 분뇨는 일찌감치 야채밭에 뿌렸다고 했다. 거기에는 당연히 싱하이공원에서 퍼낸 분뇨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밭에 뿌렸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다음 날 오전, 200여명의 무경 병사들이 신채자향의 채소밭에 모였다. 한사람 한사람이 쇠스랑을 들었다. 규정에 따라 병사들에게 구역을 나누어 정해주고, 최대한 채소를 망치지 않으면서 1치의 흙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당부한다. 그리고 찾아낸 종이조각은 모조리 모아서 상부에 올리도록 했다. 정오에 이르러, 한 무우밭에서 한 전사가 글자가 적힌 종이를 발견했다. 종이위의 글자는 모호했지만, 은연중에 "중앙연(中央硏)"이라는 세 글자는 확실히 보였다. 이와 동시에 다른 병사도 종이조각을 발견하는데 거기에는 "군위(軍委)"라는 글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이어서 몇몇 병사들이 연이어 글자가 적힌 종이조각을 발견하고, 조각들을 모아서 합쳐보니, 그 위에 잔존한 글자 흔적으로 이것이 바로 절취당한 "8291"프로젝트기밀문서의 잔존조각들임을 확인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1개월여동안 중국고위층들을 놀라게 했던 특대사건인 "8291"프로젝트사건이 마침내 해결된 것이다. 1982년 10월 7일부터 16일까지, 중국은 예정된 해역에 SLBM을 발사하는데 성공한다. 이 성공은 중국의 SLBM기술에서 새로운 진전을 이룬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