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인멸지성(湮滅之城)
제도의 다툼은 유래가 오래 되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승패가 결정난 것이 아니란 말인가?
군자간의 싸움은 문(文)으로 싸우는 것이건, 무(武)로 싸우는 것이건 "무덕(武德)"을 중시하고, '규칙'을 지킨다. 이긴 사람도 광명정대하게 이기고, 지는 사람도 기꺼이 승복한다. 주변에서 방관하는 사람들도 모두 좋다고 외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전해지게 된다.
그러나, 깡패 무뢰배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자신의 패배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아Q와 같이, 그들은 싸우는 과정에서 하한선이 없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不擇手段), 일체의 댓가도 마다하지 않는다(不惜代價)". 음험한 수법, 자신이 손해보는 수법도 기꺼이 쓴다.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리고 입으로는 계속하여 소리친다. 모두 상대방을 겁주거나 상대방을 기망하는 큰소리들이다. 쓰는 수법이라는 것이 모조리 악독한 것으로 음험하며 치명적이다. 일단 그들이 지면, 즉시 깡패의 모습과 말투를 보이게 된다. 소위 "목을 조르면 바로 흰자위를 드러내며 개거품을 물고, 조금 풀어주면 바로 허풍을 떤다."
기실 제도의 다툼은 이미 결정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다 목격했다: 동독과 서독, 남한과 북한, 대륙과 대만....대비해보면 승부는 명확하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건 일시적인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마지막에 누가 이길지는 아직 말하기 이른 것이 아니냐고.
그 말도 이치에 맞는다. 왜냐하면 하한선이 있는 사람이 하한선이 없는 사람을 상대하려면, 군자가 깡패를 상대하려면, 문명이 야만을 상대하려면, 먼저 득을 보는 자는 항상 후자이기 때문이다.
왜 선량한 사람들은 모두 '군자'를 위해 식은 땀을 흘려야 할까, 왜 이런 싸움은 항상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이 뛰고, 초조하게 만드는 것일까?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문명이 결국은 야만을 이긴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전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문명의 실력이 반드시 야만보다 한단계이상 높아야 한다는 것이고, 지구적인 신앙과 고상한 정신으로 형성된 충만한 내력이 있어야 하며, 끊임없는 혁신과 발명 그리고 날로 새로워지는 기술수단으로 만든 외부적인 날카로운 무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문명의 깃발아래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야 한다.등등.
이게 어찌 쉬운 일이기만 할 것인가.
비록 고하는 분명하지만, 압도적인 우세를 누가 구비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의 생각에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감을 얘기하자면, 중국에서 계속 선전하는 "사개자신(四個自信)"이 떠오른다. 정상인이 보기에, 이 몇 가지 자신은 너무 의심스럽다. 전혀 승복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밤길을 나서면서 스스로의 담량을 키우기 위해' 하는 말에 불과하다.
최근 들어, 중국의 경제에 대하여, 국내외의 모든 관찰가나 통계수치는 가장 비극적인 결론을 얘기하고 있다. 사람들은 경제의 '붕괴'를 예측하고 있다. 이건 당연히 '경외세력'의 '나를 죽이려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중국은 망했다고 소리친 것이 이미 한 두번이 아니다. 항상 위기일발이고, 곧 끝날 것이라고 말해왔지만, 결과는 모두 멀쩡했다. '경주이과만중산(輕舟已過萬重山)'한 것이다.
여기에서 레닌이 100년전에 이미 제국주의는 망했다고 한 말을 인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제국주의는 기생적이고, 부패하고, 죽기직전의 자본주의이다." 그들은 금방 더욱 선진적인 사회주의로 대체될 것이다.
듣기에 이미 병이 고맹에 들었고, 구할 약이 없는 것같다.
단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그것은 썩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너무 잘 살고 있다.
마찬가지로 망했다고 얘기하던 과거의 경험이 중국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양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제외하고서라도, 단순히 망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근거가 없다.
물어보겠다. 고금중외에 하나의 국가, 하나의 제도가 외부세력에 의해서 망한 적이 있는가?
없다. 모택동은 일찌감치 말한 바 있다: 보루는 내부에서 무너지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일체의 댓가를 치르고서라도' 안정유지를 하는 것이다.
홍콩의 위안(袁)선생은 경제쇠퇴에 대하여 독보적인 통찰력을 보인 바 있다.
그들 서방경제학자들이 경제가 망했다고 주장하는 기준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그들은 단지 습관적으로 서방국가의 경제쇠퇴가 가져오는 민중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는 것을 기준으로 중국을 설명한다. 그러나 중국의 민중, 특히 하층백성들은 잘 참고, 고통도 받아들인다. "호사불여뢰활착(好死不如賴活着)"의 극한의 견디는 힘이 있다. 이걸 서방의 경제학자들이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바로 중국최대의 특색이다. 이것이야말로 중국이 자신하는 진정한 이유이다.
그는 일찌기 하층의 농촌에서 생활해본 적이 있다. 200근을 메고 20리 산길을 가면서도 어깨를 바꾸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백성들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중국의 백성들은 무한한 고난을 견디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그는 바로 이런 조류에 역행하는 그의 경험을 국가통치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근본적으로 신경쓰지 않는다. 그에게서는 인성에서 가장 기본적인 연민의 마음을 엿볼 수 없다. 그리고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해내야 한다는 의식이나 책임감이 없다.
그에게 당연히 없을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당성"이야말로 그가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산당원은 특수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이 말을 거짓이 아니다. 앞으로는 "사람"과 "공산당원"은 구분해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직면한 모든 경제쇠퇴신호를 보면서도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 속으로 자신감은 가지고 있다.
그가 가진 모든 승산은 중국하층백성들의 감내능력에 대한 자신감이다.
이 점에서 그는 모택동과 비슷하다.
기실, 서방의 '경외세력'은 놔두고서라도, 중국인 자신도 백성의 인내심이 불가사의하게 크다고 여긴다. 역사의 화면에서 우리는 모두 엿볼 수 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을 때, 수천명이 몇명의 일본병에게 끌려가서 파놓은 구덩이 속으로 끌려들어가 죽음을 기다렸는데, 아무런 항쟁도 하지 않았다.
1945년, 소련군이 동북에서 살인, 간음, 방화등 온갖 나쁜 짓을 저질렀는데, 모든 고통의 기억은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고, 마치 발생하지도 않은 것같이 되어 버렸다.
항전이후 3년내전에서 창춘포위공성전만 하더라도, 사망자가 30만에 이르렀다. 시신이 온 들판에 가득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고, 형제가 서로를 죽이며, 피가 흘러 내가 되었지만, 그것을 영광으로 여겨 찬가를 부른다.
1949년이후의 '대약진'에서 수천만의 농사를 업으로 삼는 농민들이 식량을 지키다가 굶어죽었다. 그러나, '천재(天災)'라는 한 마디로 넘어갔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
서방인들이 만일 '중국특색'이 진정으로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면, 모든 중국에 대한 예측은 어긋나게 될 것이다.
저 편에 차가운 웃음을 띄고 자신감을 드러내는 얼굴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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