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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대륙과 대만

중국은 "대만카드"를 언제까지 쓸 수 있을까?

by 중은우시 2023. 3. 8.

글: 진숙함(陳叔涵)

2022년 11월 7일

 

해협양안의 분치(分治)라는 정권국면은 2차대전이래 국제정치질서의 불가분의 구성요소가 되었다. 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만카드"라는 말은 바로 이 사실이 기인한다. 미국은 수시로 "대만카드"를 꺼내든다. 중국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진정 "대만카드"를 즐겨 쓰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중국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대만카드"를 써왔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쓸 수 있을지는 중공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지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8.23포격전은 중국이 "대만카드"를 쓰는 서막을 열었다. 전면적인 국공내전은 1945년부터 시작하여, 1958년까지 지속된다. 중국은 대만본섬으로 진격하는 것은 고사하고, 대륙과 지척지간에 있는 금문도(金門島)조차 점령하지 못했다. 대만본섬으로 진격하는 것은 그저 망양흥탄(望洋興嘆)이었다. 전쟁광인 모택동은 백만대군을 보내 한반도에서 미군과 격전을 벌였고, 백만의 중국젊은이들이 대포밥이 되는 것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 자신의 아들도 바로 그 대포밥중의 하나였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한반도의 정치국면은 전쟁개시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전쟁개시전에 한반도는 38도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으로 나뉘었었는데, 3년여를 싸웠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개략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뉘어 있다. 즉, 한 멍청한 자가 창고에서 100킬로그램짜리 쌀자루를 짊어지고, 10리 산길을 걸어넘은 후에 다시 원래 창고로 가져다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힘은 적지 않게 들였지만, 해낸 것은 아무런 성과도 없다. 이것이 바로 모택동이 마구잡이로 벌인 일의 결과인 것이다. 모택동은 미국인과 전쟁을 했지만, 자그마한 금문도조차도 점령하지 못한다. 그래도 모택동은 계속 싸울 것같은 태도를 취하기는 한다. 그리하여, 1958년 8월 23일, 모택동은 금문도를 포격하라는 명령을 내려 분함을 푼다. 이는 미국인들에게 보라고 한 것이다. 주로 미국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함이었다. 금문도포격은 중국이 대만을 점령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 후에 어쩔 수 없이 벌인 일이고, 내키지 않는 일이었던 것이다. 모택동은 대만을 그저 카드로 보았고, 죽을 때까지도 쓰면서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이를 보면 대만이라는 카드는 가치가 아주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등소평은 "대만카드"를 또 어떻게 써먹었는가? 모택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등소평은 "대만카드"를 아주 잘 써먹었다. 먼저, 그는 금문도포격이라는 멍청한 짓은 그만둔다. 왜냐하면 그런 짓은 그저 유치하고 가소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포탄낭비일 뿐아니라, 사람들의 비웃음만 사기 때문이다. 마음이 좁고, 사람이 자잘하다는 말을 듣게 될 뿐이다. 다음으로, 등소평은 더 이상 대만해방을 외치지 않고, 평화통일을 주장했다. 왜냐하면 대만인의 자유도는 대륙인들보다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높은 담장 속에 갇혀 지내는 사람이 담장 바깥의 자유인을 해방시키겠다고 소리치는 것은 너무나 황당하고 가소로운 일이 아닌가? 등소평이 "대만카드"를 쓰는 방식은 등소평의 정치상의 온건함과 외교상의 성숙함을 보여준다. 그저 실질을 중시하는 정치가만이 이렇게 행동할 수 있다. 등소평은 평화통일, 일국양제로 양안관계의 기조를 잡았고, 그후 장쩌민, 후진타오도 기본적으로 등소평의 노선을 따른다. 그리하여 양안관계도 기본적으로 평온하고, 그다지 큰 풍파는 일지 않았다.

 

시진핑도 "대만카드"를 쓴다. 단지 그는 너무 엉터리였다. 모택동보다 엉망이었다. 최소한 모택동은 미국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그저 금문도에 포격을 가하는 것으로 화풀이를 했다. 펠로시가 대만을 방문하기 전에, 세상 사람들은 모두 착각을 하고 있었다. 시진핑이 대만을 공격하여 점령할 야심이 있는데, 단지 적합한 기회를 잡지 못한 것일 뿐이라고 여겼다. 2022년 8월 2일 펠로시의 전용기가 대만에 착륙할 때, 시진핑은 가만히 있는다. 우마오(五毛) 샤오펀홍(小粉紅)들은 그제서야 자신이 시진핑에게 참담하게 놀아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우마오, 샤오펀홍들은 중공의 오랜 세뇌하에 계속 미국은 그저 종이호랑이이고, 중국은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펠로시의 대만방문으로 일거에 중국의 수십년에 걸친 거짓말이 들통나버린 것이다. 중국당국이 난감해졌을 뿐아니라, 우마오, 샤오펀홍들은 더욱 난감했다.

 

시진핑이 "대만카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얼굴두껍게 밀고 나간다. 첫째, "대만카드"는 시진핑이 연임을 획득하는데 중요한 카드이다. 시진핑은 연임을 위해서라면 어떤 공수표도 남발할 수 있었다: 대만문제헤결, 국가통일실현같은 것을. 시진핑이 보기에, 그 어느 것도 그의 황위보다 중요하지 않다. 무슨 신용, 무슨 명예같은 것은 권력의 앞에서 한푼의 가치도 없다. 다음으로, 시진핑은 계속 대만을 가지고 우마오, 샤오펀홍을 우롱하는 도구로 삼고자 한다. 비록 이번 펠로시의 대만방문때 시진핑이 움츠러들었지만, 다만 시진핑은 여전히 당당하게 핑계를 댈 수 있었다: 대만독립이 레드라인이다. 대만이 아직 독립을 선포하지 않았다. 그러니 무력을 동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만부득이한 상황이 되었을 때 비로소 대만으로 진격할 걳이다. 어쨌든 양안 모두 중국인이 아닌가. 동실조과(同室操戈), 상전하급(相煎何急)! 우마오 샤오펀홍들은 이런 말을 듣자, 즉시 받아들이고 다시 경풍제(慶豊帝, 시진핑을 가리킴) 만세를 외친다: 황상영명(皇上英明)! 그 다음으로, 시진핑은 대만문제를 이용하여 미국과 협상을 계속하고 싶었다. 대만해협의 양안문제에 대하여, 미국의 태도는 시종 일방적으로 대만해협현황을 변경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즉, 대륙이 무력으로 대만을 공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만도 독립을 선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대륙 혹은 대만이 일방적으로 이런 평형을 깨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즉, 미국은 시종 2차대전이래 미국주도하에 형성된 국제정치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진핑이 사용하는 것은 바로 대만문제를 이용하여 미국과 협상하는 것이고, 대만문제를 미국과의 담판에서 카드로 써서 자신의 종신집권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중국의 몇대의 지도자들은 모택동이건 등소평이건, 장쩌민, 후진타오이건, 모두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잘 알고 있었다. 대만을 공격하여 점령하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혹은 실현불가능하다. 대만카드는 완전히 그들이 백성들을 우롱하는 도구이다. 시진핑은 일대의 혼군(昏君)으로 꿈은 크나 재주가 부족하다. 그러나 그는 권력을 가지고 놀고, 우민들을 다루는데는 능통하다. 그도 대만을 대만을 우마오, 샤오펀홍들이 기꺼이 대포밥의 도구가 되고자 하는지를 시탐하는 것일 뿐이다. 진정으로 대만을 무력으로 공격할 생각은 없다. 첫째는 자신의 군사적 자질에 대하여 자신감이 부족하고, 둘째는 부패한 중국군대에 대한 자신감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또한 반드시 대만을 공격할 것같은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건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국내의 우마오, 샤오펀홍들을 기만하기 위한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중국인들에게 통일조국의 큰 떡을 그려주는 것일 뿐이다. 진정 대만무력통일을 시행하려는 것은 그저 시진핑의 일장춘몽일 뿐이다. 꿈에서 깨어나기 전에, 시진핑은 여전히 대만카드를 손에 쥐고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를 만나러갈 때까지(죽을 때까지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