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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대륙과 대만

대륙 vs 대만: 역사와 현황

by 중은우시 2022. 9. 21.

글: 이유담(李酉潭)

 

1. 역사의 경위

 

(1) 1949년 양안(대륙과 대만)이 분리되었고,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만을 해방시켜, 조국통일대업을 완수하고자 했다. 중화민국은 대륙으로 반격하여, 고난에 시달리는 동포들을 구해주고자 했다. 쌍방은 모두 하나의 중국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2) 1971년 유엔2758호결의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을 대체하여 유엔의 회원국 및 상임이사국지위를 차지한다. 장개석의 대만은 유엔에서 쫓겨난다. 다만 아직까지 대만인민의 유엔 및 국제조직에 대한 참여등 권익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3) 1972, 1979, 1982년 미중간의 3개의 공보에서 중국은 하나의 중국"원칙"을 견지한다. 미국은 하나의 중국"정책"을 집행한다. 다만, 1979년 미국은 대만관계법을 제정하고 거기에는 미국정부가 대만정부를 다른 주권국가와 동등하게 대우한다고 규정하며, 비평화적인 방식으로 대만의 앞날을 결정하려는 여하한 시도는 서태평양지구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미국의 엄중한 관심사로 본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1982년 미중817공보 서명기간에 미국은 동시에 대만에 6개항보증을 제공하며 대만에 대한 약속은 바뀌지 않았다고 표시한다.

 

(4) 1991년 대만은 동원감란시기(動員戡亂時期)가 끝났다고 선언하며,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대륙을 통치한다는 사실을 승인했다.

 

(5) 1992년 구왕회담(辜汪會談,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 동사장 구전푸(辜振甫)와 대륙의 해협양안관계협회 회장 왕다오한(汪道涵)이 만나서 회담한 것을 가리킴)에서 양안은 각자 하나의 중국입장을 표시했다.

 

(6) 대만은 민주화를 통하여 1991, 1992년 국회전면개선을 실시하고, 1996년 최초로 총통직선제를 실시하여, 자유민주의 주권재민국가로 확립된다.

 

(7) 1999년 리덩후이(李登輝)는 양안을 특수한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라고 주장한다.

 

(8) 2005년 중국은 반분열국가법을 제정하여 만일 양안간의 평화통일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면 대만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음을 규정한다.

 

(9) 2016년 미국 상하양원은 공동결의안을 통과시켜 <6개항보증>과 <대만관계법>은 모두 미국-대만관계의 가이드라인이라고 긍정한다. <2018년 아시아재보증창의법>에서는 다시 한번 대만관계법, 미중3개연합공보 및 6개항보증으로 미국의 대만에 대한 약속을 실현하겠다고 언급한다.

 

(10) 2019년 시진핑은 양안의 일국양제 방식의 통일모델을 제안한다.

 

2. 현재의 다툼

 

(11) 2022년 9월 중국의 전국정협의 <인민정협보>는 한페이지를 할애하여 "92공식(92共識, 92 Consensus)"에는 오직 '하나의 중국'만 있고, '각자 표시'는 없다고 강조한다. 대륙은 "92공식" 30주년 좌담회를 공식적으로 개최하는 외에 동시에 <대만관계와 신시대중국통일사업>백서를 발행하고, 국대판(國臺辦) 대변인 주펑롄(朱鳳蓮)은 92공식은 시종 양안관계의 정해신침(定海神針)이라고 강조한다. 동시에 '일국양제'로 양안의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것이 동포들에게 유리하며, 민진당의 일국양제에 대한 비난은 순수한 정치적 사리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중화민국 대륙위원회는 그러나 중화민국은 주권국가이고, 대만은 지금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의 통치나 관할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며, 중공은 양안이 서로 예속되지 않은 현상과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려 하고 있는데 그것이 현재 쌍방관계의 진전을 저해하는 근본문제라고 말한다. 더더구나 당금세계국면이 급변하는 중에 지역안전의 극히 불안정한 요소가 되었다고 말한다. 대륙위원회는 다시 한번 양안소통의 필요성을 말하지만, 다만 북경당국은 대만을 왜소화시키는 '하나의 중국원칙'을 정치전제로 설정하고, 또한 일방적으로 '일국양제' 통일방식을 설계하여 계속하여 대만에 대한 문공무하(文攻武嚇, 글로 공격하고 무력으로 협박하다)하고 있는데, 이는 법리상으로나 현실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어 대만인민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12) 국대판 대변인 주펑롄은 이렇게 말한다. 대만문제는 "순수히 중국내정에 속하며, 여하한 외래세력의 간섭도 용납할 수 없다" 미국하원 외교위원회가 제정한 "대만정책법안"은 엄중하게 국제관계의 기본준칙을 위반했고, "하나의 중국원칙"과 3개의 미중연합공보규정을 엄중히 위반하였으므로 중국은 견결히 반대한다. 정법대학의 왕신셴(王信賢) 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 "대만정책법안"은 1979년 대만관계법후 미국의 대만에 대한 종합적 성격의 법안이다.내용은 경제, 외교, 국방등을 포함한다. 법안은 거의 중국의 모든 핵심이익을 건드리고 있다. 주권, 안전 및 발전의 문제를 포함해서. 

 

천보즈(陳博志)는 글을 써서 이렇게 지적한다. 역사상 유일하게 무력을 쓰지 않고 인민의 동의를 받아 대만을 점유하고 통치하는 것은 바로 대만 현재의 민선정부이다. 제1차세계대전이후 미국의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이 제출한 주민자결원칙은 비교적 합리적이고 민주인권에 부합하며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원칙이다.

 

3. 분석

 

윈난 리장(麗江)의 나시족(納西族)의 노래가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

 

흥(興), 백성고(百姓苦); 망(亡), 야백성고(也百姓苦)

나라가 흥하면 백성은 괴롭고, 나라가 망해도 역시 백성은 괴롭다.

 

연전(聯電)의 전 동사장 차오싱청(曹興誠)은 이런 말을 한다: "통일은 제왕의 대업이지만, 인민의 재난이다!"

 

민주는 일종의 생활방식의 신념이다: 국가는 단지 하나의 도구이고, 인민이야말로 목적이다.

 

주권을 보호하는 것은 대만인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함이지, 대륙의 패권굴기에 도전하거나 도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미국의 위마오춘(余茂春) 교수가 최근 말한 것처럼, 북경은 "일중일대(一中一臺)"에 반대하지만 북경은 1992년 외교적으로 한국의 "하나의 평양, 하나의 서울"정책을 승인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외교적으로 서독을 승인하는 동시에, 공산당통치하의 동독과도 관방교류를 유지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중하게 지적하고자 한다. 오직 중국대륙이 먼저 대만해협양안이 현재 분열에 처한 상황을 인정하고, 대만인민이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고아심정을 직시하면서, 여하한 상황하에서도 평화적인 방색으로 대만해협양안의 문제를 해결하여야만, 진정으로 대다수 대만인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대만해협양안이 분열상태에 처해 있지 않다면, 왜 미래의 통일을 쟁취하려 하겠는가. 하물며 통일의 모델은 여러가지 선택이 있다. EU모델, 연방모델, 국가연합모델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