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사왕왕(文史旺旺)
"사생계활(死生契闊), 여자성열(與子成說), 집자지수(執子之手), 여자해로(與子偕老)"
이는 <시경>중 가장 마음에 와닿는 사랑의 시이다. '여자해로'라는 문구는 얼마나 많은 사랑하는 남녀들이 바라는 바인가? "이득무가보(易得無價寶), 난득유정랑(難得有情郞)"(무가지보를 얻기는 쉽지만, 사랑하는 남자를 얻기는 어렵다). 자신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얻기는 쉽다. 그러나 서로 도우면서 인생의 고난을 함께 겪고, 인생의 길에서의 비바람을 함께 막으며 손에 손을 잡고 흰머리가 될때까지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쉽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바라는 바가 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마패장(馬佩璋)이다. 현지에서 명망있는 마씨집안의 장상명주이다. 부친 마건경(馬建卿)은 현지의 명망있는 선비였고, 회족의 대표자였다. 마건경은 딸 마패장을 정성껏 키웠다. 자신이 딸의 짝이 될만한 자격을 갖추어야만 마건경의 상빈이 될 수 있었다.
마건경은 시종 마음에 드는 사윗감을 찾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은 마건경이 너무 까다롭게 고른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마건경만이 어떤 남자야말로 자신의 딸의 짝이 될만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여러 후보들 중에서 마건경은 백숭희(白崇禧)를 고른다. 백숭희는 마건경의 기준에 부합했다. 인물도 뛰어난데다가 회족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마씨집안과 종교신앙이 서로 맞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백숭희는 마건경의 사위가 된다. 마패장과 백숭희의 혼인은 1925년 2월 27일 거행된다. 혼례는 아주 융중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참가한다. 이 혼인에 마건장은 아주 만족한다. 자신의 귀한 딸이 마침내 행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된 것이다.
결혼후 이 젊은 부부는 서로 사랑했다. 백숭희는 성격이 불같았고, 한번 말했으면 다시는 바꾸지 않았고, 많은 경우 상대방의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았다. 그러나 마패장은 맑은 물처럼 백숭희의 눈가의 우수를 걷어내 주었다. 백숭희는 전쟁터에서 풍운을 질타하는 인물이고, 집안의 자잘한 일에는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은 현모양처인 마패장이 처리했다. 마패장은 전심전력을 다하여 백숭희가 걱정하지 않도록 해주었다. 그리하여 백숭희는 집안일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전력을 다하여 군대일에 신경을 쏟을 수 있었다.
두 딸이 태어나면서 백숭희는 더욱 마패장을 아끼고, 마패장이 양육으로 고생하는 것을 위로한다. 더더욱 마패장이 집안일로 고생하는 것에 감사했다. 다만 기실 백숭희는 마음 속으로 아들을 갈구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때는 봉건사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백숭희는 처에게 그런 부담을 가중시키지는 않았다. 백숭희는 많은 경우 한번 떠나면 한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이렇게 떨어져 사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긴장되기 시작한다.
백숭희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마패장에게 전해진다. 전쟁터에서의 적막함을 견디다 못한 백숭희가 마음에 맞는 여자를 만났고, 두 사람은 불같은 사랑을 하면서 마패장에게 미안할 일을 저지른다. 마패장은 남편에게 혼외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마음 속으로 비분을 느낀다.
대가집출신의 여자로서 그녀는 삼종사덕을 알았고, 단순히 질투만 하는 여인은 아니었고, 백숭희가 첩을 두는 것까지 막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백숭희는 전혀 그녀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그 사생아를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이런 상황하에서 마패장으로서는 백숭희에게 자신의 울분을 터트릴 생각도 여러번 하고, 자신의 마음 속의 불만을 호소할 생각도 여러번 했다. 그러나 총명한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녀는 이 가정을 깨트릴 생각은 없었다. 더더구나 백숭희의 마음 속에 자신에 대한 나쁜 인상을 남길 생각은 없었다. 가정은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로 분노로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패장은 단수가 높았다. 한걸음 물러섬으로써 앞으로 나가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스스로 이 사생아를 받아들이고, 이 사생아에게 모친으로서의 사랑을 쏟는다. 자신의 불만과 울분을 절대로 그 아이에게 풀지 않았다. 백숭희도 그런 모습을 보고 크게 부끄러워 한다. 이처럼 가슴이 넓은 부인에게 미안한 짓을 했으며, 더더구나 그 잘못으로 인한 결과를 부인이 모두 떠안게 만든 것이다.
그는 남자로서 여자만큼도 속이 넓지 못했으며, 더더구나 혼인전에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백숭희의 미안함은 그로 하여금 다시 가정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하게 만든다. 마패장은 자신의 목적이 달성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원한 것은 남편이 집으로 돌아와서, 일가족이 다시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다. 집안이 떠나가도록 울분을 발설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는 아무런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백숭희는 자신의 처를 더욱 아꼈다. 더더구나 처에게 잘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처의 희생을 보답하려 한 것이다. 아마도 마패장의 은인자중에 하늘이 보살폈는데, 얼마 후 마패장은 계속하여 임신을 하고 계속 아들을 낳는다. 연이어 6명의 아들을 낳아, 백숭희의 아들을 바라는 마음을 채워주게 된다. 마패장은 이제 큰소리칠 수 있게 되었다. 이건 그녀의 전략의 성공이며, 역시 하늘의 보살핌이다.
아름다운 생활은 이렇게 계속된다. 부부 둘은 이전의 고난을 겪으면서 마침내 서로 이해하고, 서로 존중하며, 함께 인생길의 험난함을 헤쳐나가게 된 것이다. "내여유수서여풍(來如流水逝如風), 하처래혜하처종(何處來兮何處終)"(흐르는 물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간다.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1962년 마패장은 세상을 떠난다. 임종전에 백숭희는 그녀의 곁을 지키지 못했고, 그가 급히 병실로 달려왔을 때는 의사가 그녀가 죽었다고 선언하는 것을 들어야 했다. 백숭희는 그 자리에서 혈압이 올라가서 하마터면 마패장과 함께 저 세상으로 갈 뻔했다.
백숭희는 처가 떠난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여러 해동안 함께 하면서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마패장이 떠나니 누구와 함께 살아간단 말인가. 백숭희는 그녀가 이미 떠난 것을 알았고, 할 수 있는 일은 잘 살아서, 구천의 처가 걱정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는 일찌기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었고, 처와 오랜 기간 함께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몸이 늙었지만, 매일 마패장의 묘소로 가서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자신의 마음 속에 담겨 있는 가장 진실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거나, 말할 시간이 없었던 진실한 말을 황토아래 묻혀 있는 처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마패장의 묘 앞에서 죽은 처와 함께 지내면서 백숭희는 일찌기 자신이 했던 미안한 일을 후회하였을까?
하나의 가정에서 많은 것은 애정과 원한, 그리고 이별, 그리고 단조롭고 재미없는 생활이다. 마패장은 인생의 교차로에서 다른 길을 선택한다. 그녀는 기꺼이 마음 속의 분노를 억누르고, 가정을 지키는 길을 선택했다. 일시적으로 강함을 드러내지 않았고, 결국 남편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었다. 마패장의 태도는 존경받을만하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도량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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