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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영화

상니(桑妮): 가장 아름다운 비구니

by 중은우시 2023. 2. 1.

글: 환구여행(環球旅行)

2001년 3월, 한 사원 앞에는 사람들이 가득 모여들었다.

이 사람들은 무슨 부처에게 절하고 향을 사르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고, 한가지를 확인하려고 온 것이었다: 그 유명한 여배우가 정말 출가했단 말인가?

오후 2시반이 되어, 사람들이 기다리던 아름다운 비구니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스크린에서 광채를 빛내던 것과 달리 눈앞의 그녀는 이미 머리카락을 잘랐고, 카메라 앞에서는 담담한 모습이었다. 

그녀가 바로 상니(桑妮)이다.

이 이름이 아마 낯설지 모른다. 그러나 너는 분명히 드라마에서 그녀의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대만과 대륙에서 모두 인기를 끈 바 있다.

그리고 "소매염방(小梅艶芳)"으로 불렸다.

그리고 수많은 홍콩과 대만의 스타들과 함께 영화드라마를 찍은 바 있고, 

상도 받았었다.

그녀는 원래 앞날이 밝았는데, 그녀는 전성기에 출가하여 불문에 들어간 것이다.

사람들은 호기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녀는 도대체 어떤 일을 겪었단 말인가?

1

 

'상니'는 그녀의 예명이다.

영어의 "Sunny"에서 음을 빌렸다.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이 이름을 좋아한다. 이름따라간다고 그녀가 웃으면 마치 태양화가 한송이 핀 것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도 자신이 태양처럼 작렬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찬란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 이름의 배후에는 유감스러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

1966년, 상니는 대만의 보통집안에서 태어난다.

딸이 태어나자 부모는 아주 기뻐하면서 그녀에게 "소취옥(蘇翠玉)"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상니는 어려서부터 똑똑하고 귀여웠다. 부모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여서 사람들의 눈에 '엄친아'였다.

그러나 그녀의 얌전한 모습 뒤에는 활발하고 활동하기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한 놀이는 '소꿉장난'이었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역할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상니가 어떤 역할을 하던지 제대로 해내는 것을 보게 된다.

심지어 드라마속의 역할까지도 그럴 듯하게 해내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

매번 사람들이 놀라는 표정을 보면서 상니는 더욱 기뻐했다.

나이가 들면서 상니는 점점 예뻐졌다.

그때는 임청하(林靑霞), 매염방이 대강남북에서 인기를 가장 많이 얻고 있을 때였고, 이웃들은 그녀의 미간에서 매염방의 모습을 보았다. 기질은 또한 임청하와 아주 비슷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재미로 그녀에게 "소임청하" "소매염방"이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별명을 자주 듣게 되자, 상니는 정말 그녀들을 자신의 우상으로 삼게 된다.

그녀들의 작품을 한편한편 보면서, 상니는 자신이 '연기'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즉시 타이페이희극학원에 시험을 친다.

비록 상니가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였지만, 예술계열학교의 학비는 아주 비싸서, 상니의 집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철이 들었던 상니는 포기하려고 하는데, 부모가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딸이 돈때문에 이렇게 쉽게 꿈을 버리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딸의 학비를 위하여, 상니의 부모는 먹고 입는 것도 아껴가면서 아르바이트까지 했다.

상니의 회고에 따르면, 그녀가 대학을 다니는 4년동안 부모는 새옷 한벌을 사줄 수 없었다고 했다.

이는 상니의 마음 속에 계속 미안함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대학때 그녀는 다른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한다.

한편으로는 연기를 좋아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신이 하루빨리 두각을 나타내어 부모를 편하게 살게 해드리고 싶었다.

 

2

 

모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말한다.

이 마른 상니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졸업하자마자 그녀는 대만보도중영공사(臺灣寶島中影公司)의 눈에 들어, 회사의 배우훈련반에 들어간다.

이 회사는 홍콩무선의 배우훈련반과 마찬가지로, 유명한 연기자를 많이 배출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초은준(焦恩俊, 자오언쥔)도 있다.

훈련반에는 인재들이 많았지만, 상니는 그들에 의해 광망이 가려지지 않았다.

능력도 뛰어나고, 기질도 좋고, 용모도 예쁘다. 상니는 여러 감독들이 출연시키고자 하는 대상이 된다.

1984년 그녀는 첫번째 영화를 찍는다: <자전거와 나(單車與我)>

그리고, 같은 해 임복지(林福地)가 감독한 드라마 <고심련(苦心蓮)>에도 출연한다.

이 극에서 그녀는 성년이 된 후의 고심련 역할을 맡았다.

비록 가장 많이 나오는 역할은 아니었지만, 상니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하여 많은 감독과 작가들이 그녀를 주목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녀는 다음 해에 <소오강호>에서 단순하고 선량한 항산파(恒山派) 제자 의림소사매(依琳小師妹) 역을 맡는다.

다만 아쉽게도,당시 사람들이 드라마의 유설화(劉雪華)에 눈길을 집중하느라고 그녀에게는 그다지 많은 관심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상니의 고전복장은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받는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녀를 "천선고인(天選古人)"이라고 불렀다. 

이때부터 갈수록 많은 고전드라마에 그녀는 출연하게 된다.

<신절대쌍교>에서 그녀는 모용구(慕容九) 역을 맡았고, 이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새로운 고도로 끌어올렸다.

원래 이 드라마오 큰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감독의 특이한 연출(극중의 거의 모든 남자역을 여자배우들이 역할하게 했음)을 대중들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상니는 다시 한번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렇지만 상니는 상심하지 않았다.

출연하는 작품이 많아지면서 그녀는 더욱 거기에 빠져들고 심지어 촬영과정을 즐기기까지 한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저 시운이 맞지 않았다고 여기고 지나갔을 테지만, 그녀는 항상 자신이 뭐 잘못한 것이 있는지 되돌아보곤 했다.

바로 그녀의 이런 겸손으로 그녀는 1990년 그녀의 봄날을 맞이하게 된다.

 

3

 

당시 가장 인기있는 남자배우라면 분명 많은 사람들이 정소추(鄭少秋)를 얘기할 것이다.

그가 주연한 <초류향전기>는 당시 시청률이 77%에 달했다.

나중의 작품도 속속 시청률기록을 세웠고, 사람들은 그가 출연하면 시청률보장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당시 모두가 그와 함께 찍고 싶어했다.

그런데 그 좋은 일이 돌연 상니에게 떨어졌다.

1990년 상니는 정소추와 함께 고전역사드라마 <자객열전>에 출연하게 된다.

극에서 그녀는 총명하고 기민한 번역남(樊亦男) 역을 맡았고, 정소추는 자객 형가(荊軻)로 출연한다.

과연, 드라마는 시작하자마자 인기를 끌었고, 마침내 상니도 인기에 불이 붙는다.

그후 그녀의 출연은 끊이지 않았고, 함께 찍는 배우들도 모두 일류배우들이었다.

1991년, 주혜민(周慧敏), 여명(黎明)등과 영화 <YES일족>을 찍는다.

이 극에서 상니는 순수한 모습으로 당시 '옥녀장문(玉女掌門)'으로 칭해지던 주혜민에 전혀 못지 않았다.

아묘(阿猫)가 물 위에서 배를 젓는 장면은 사람들에게 '경전'으로 꼽힌다.

그녀는 이 영화로 금상장(金像奬) 최우수신인상을 수상한다. 

미래가 기대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상니를 이렇게 평가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제2의 "임청하"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매번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상니는 항상 겸허하게 말했다:

"임청하는 나의 우상이다. 그녀는 너무 예쁘다. 내가 따라갈 수가 없다."

나중에 그녀는 <홍매각(紅梅閣)>에 출연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당시 극중 그녀의 시녀역할로 나온 배우가 바로 가정문(賈靜雯)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영화황제 양조위(梁朝偉)와 <척도보(踢到寶)>를 찍고, 조문탁(趙文卓)과는 서극(徐克) 감독의 <단도객(斷刀客)>에 출연한다.

1999년은 그녀의 연예생애에서 전환점이다.

그해 그녀는 임지영(林志潁),소유붕(蘇有朋)과 <절대쌍교>를 찍고 극에서 철평고(鐵萍姑) 역을 맡는다.

출연장면은 적었지만, 아주 두드러졌다.

그리고 대륙의 관중들에게 겉은 차갑지만 안은 뜨거운 '미인'이라는 이미지로 기억되게 된다.

기실 당시 상니의 위치를 생각하면 그런 역을 맡은 것은 '대재소용(大材小用)'의 점이 있었다.

그러나 상니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그녀는 역할에는 크고 작은게 없고, 그저 잘 연기하면 그게 좋은 역할이라고 여겼다.

이제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하는 새로운 스타에게 원래는 빛나는 앞날이 펼쳐져야 했지만, 의외의 일이 발생한다.

 

4

 

혼잡한 연예계에서 미모는 양날의 검이다.

그것은 사람들 가운데 두각을 나타내게 해주기도 하지만, 만장심연으로 빠트리기도 한다.

상니는 성격이 조용한 여자이다. 그녀는 평소에 책을 읽고 차를 마시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당시 약간 유명해지자, 많은 일들을 그녀 스스로 어찌할 수 없게 된다.

회사는 그녀를 여러 술자리에 나가게 했다. 그녀가 원치 않더라고 따라 웃어주면서 술도 마셔야 했다.

상니는 그런 생활이 싫었다. 그러나 그녀는 계약상의 엄청난 배상금을 물게 될 수도 있어, 부모님에게 고생을 시킬 것같아, 묵묵히 참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연예계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예를 들어, 마음에 드는 역할을 얻으려면 돈을 내거나 심지어 '미모'를 바쳐야 했다.

그건 상니가 멸시하는 것이다.

"차라리 찍지 않으면 몰라도, 절대로 자신의 기본은 버릴 수 없다."

그리하여 그녀는 진흙속의 연꽃처럼 독특한 배우가 되어 버린다.

그렇게 하여 그녀를 찾는 경우가 줄어들게 된다.

실망한 그녀는 대만을 떠나 일본에서 일하기로 선택한다.

그녀는 일본의 오락산업은 비교적 일찍 발전하였으므로 더욱 성숙되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녀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성숙된 것이 업계규범이 아니라 '잠규칙'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떠나고 싶었지만, 계약기간이 2년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다시 암흑의 2년을 보내야 했다.

그후, 그녀는 연예계에서 마음이 철저히 떠나게 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회의를 하게 된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 세계에 내가 아직 발붙일 곳이 남아 있을까"

"내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런 질문들은 상니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녀는 더 이상 등홍주록(燈紅酒綠)을 보고 싶지 않았고, 더 이상 고층빌딩을 보고 싶지 않았다. 더더구나 예전의 자신은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계약기간이 끝난 후, 그녀는 아무런 망설임없이 출가를 선택한다.

2001년 그녀는 많은 조명이 비추었지만,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때 그녀는 마음이 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법호는 "견유(見悠)"이다.

도연명의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이 생각나는 이름이다.

아마도 그것이 그녀가 추구하는 생활인지도 모르겠다.

사원에서의 생활은 아주 간단하다. 매일 청소하고, 꽃에 물을 주고, 좌선하고...

비록 화려한 옷을 입지도 못하고, 산해진미도 없지만, 그녀는 충실하고, 자유롭다고 여긴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이곳에서 매일이 자유롭다!"

그러나, 한번은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찾아뵈었을 때, 원래 은퇴했어야할 부모가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상니는 깊이 자책했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은 해탈했지만, 부모는 그 나이에도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다시 세속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세속에 돌아온 그녀는 아무런 활동에도 참가하지 않고, 절대로 키스신이나 더 이상의 장면이 나오는 신은 찍지 않는다.

이런 조건은 그녀가 예전처럼 큰 인기를 끌 수는 없도록 만든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부모가 말년을 편하게 보낼수 있다면 자신은 초심을 잃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어떤 사람든 그녀를 안타까워하고, 그녀가 제 가치를 못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상니는 이미 담담하다.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스타이건 아니면 청등고불을 벗삼아 일생을 보내든 그것은 그저 일종의 형식에 불과하다.

인생은 원래 정확한 답안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스스로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다만 초심만 잃지 않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