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중국이 하고있는 것은 무슨 "주의"인가?

중은우시 2023. 1. 17. 10:29

글: 진숙함(陳叔涵)

 

중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알고 있다. 중국이 하고 있는 것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라고. 다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사회주의인지에 대하여 그들은 모두 교과서에 나오는 정의를 얘기한다: 생산자료공유제를 기초로 한다.... 기실, 사회주의는 아주 넓은 개념이어서 분명하게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다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즉, 사회주의는 중국본토의 산물이 아니고, 분명히 수입품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원전221년부터 20세기초까지, 2천여년의 중국문명에서 그 어떤 주의도 나타난 적이 없다. 예를 들면, 마르크스주의라든지, 사회주의라든지, 공산주의라든지, 자본주의라든지....

 

중공은 거짓말과 폭력으로 나라를 세웠다. 그리고 서방에서 각종 주의를 수입했는데, 목적은 단 한가지이다. 백성들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것. 의문의 여지없이, 중국당국이 공식적으로 중국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추진한다고 하지만, 이는 절대적으로 양두구육(羊頭狗肉)이고, 전혀 믿을 수 없다. 중국에서 중공이 아니면 이런 거짓말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식량생산이 1무당 30만근에 이르렀다; 사망자가 칼에 13번이나 찔렸지만 그것은 자살이다, 시험성 자살이다; 신종코로나는 사람간전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철련녀(鐵鏈女, 쇠사슬녀)은 스스로 원해서 그녀를 성폭행한 남자와 혼인증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하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슨 "주의"인가? 여기서 간단하게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3가지 방면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정치적으로 중국이 하고 있는 것은 "전제극권주의(專制極權主義)"이다. 중국정권의 본질은 제왕제이고, 역사상 여하한 왕조(진왕조부터 청왕조까지)와도 전혀 차이가 없다. 서로 다른 점이라면, 중공통치하에서, 전제극권의 정도가 역사상 모든 왕조를 초월한다는 것이다. 정치의 핵심은 권력분배이고, 권력분배를 떠나 정치를 얘기하는 것은 마치 한 사람이 공기를 마시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지금 중국의 정치권력은 시진핑이 독점하고 있다. 시진핑의 부하관리들의 권력은 완전히 시진핑이 분배한다. 진시황때부터, 중국은 중앙집권국가였다. 황제는 관리의 권력의 유일안 원천이다. 단지, 2,200여년의 전제왕조의 권력에 대한 장악과 탐욕은 중공정권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차이이다. 중국 2천여년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어느 제왕도 권력에 대한 집착이 중공지도자와 같은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었다. 모택동, 등소평, 장쩌민은 모두 권력에 심취했고,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다. 당연히, 권력을 목숨처럼 탐하는 것이 거의 미치광이 수준애 이른 것은 시진핑이다. 시진핑은 취임한 후 10년동안 계속 한 가지에 골몰했다: 권력장악. 그 혼자서 십여개의 공작영도소조의 조장을 맡았고, 국무원총리의 권한까지 자신의 수중에 장악해 버렸다. 중국역사상, 그 어느 왕조도 권력집중정도가 오늘날의 중국같은 수준에 이르지 못했었다. 그러므로, 중국이 정치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철두철미한 전제극권주의이다.

 

둘째, 경제적으로 중국이 하고 있는 것은 "관본주의(官本主義)"이다. 중국의 생산자료와 각종사회자원은 모두 시진핑을 핵심으로 하는 관료집단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다. 백성은 생산자료를 장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중국에서 토지는 국가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누구인가? 당연히 관료집단의 것이다. 관료는 권력이 있고, 권력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백성들의 모든 것은 국가에서 빌린 것이다. 임차료를 관료집단에 납부해야 한다. 경제의 핵심은 거래활동이다. 거래이 없으면 경제도 없다. 중국에서, 여하한 거래활동도 모두 원가가 든다. 그것이 구입이든 판매이든, 모두 관료집단에 비용을 납부해야 한다. 여하한 백성이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을 구매하려고 해도, 모두 관료집단에 세금을 내야 한다. 분명 어떤 사람은 말할 것이다. 모든 국가가 그렇지 않으냐고. 소비를 하면 세금을 내야 한다고. 다만, 서방민주국구는 세수중 상당한 부분을 국민의 복지를 위해 제공한다. 예를 들어, 교육, 의료, 주택, 양로등등. 그러나, 중국에서, 관료집단만 복지가 있다. 이번 팬데믹이 중국에서 쓰나미식으로 폭발했고, 수억명이 감염되었다. 많은 대도시의 화장장은 길게 줄을 늘어섰지만, 중국이 백성들을 위해 수입특효약을 수입해주었던가? 절대로 안한다. 관료집단은 백성들에게 무슨 사회복지를 제공할 생각은 없다. 복지를 제공하지 않을 뿐아니라, 오히려 백성들에게 정부에 감사하라고 요구한다. 정부가 백성을 기르고 있다고. 사실은 그러나 백성들이 새벽일찍 일어나서 죽어라 일을 해서 관료들을 위해 이익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중국은 자고이래로 이관위본(以官爲本)이지 이민위본(以民爲本)이 아니었다. 중국관료의 권력은 황제가 부여한 것이지, 인민이 부여한 것이 아니다. 관료는 인민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인민은 항상 관료들의 이익추구의 도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중국의 인민은 모두 관료집단을 위하여 열심히 힘들게 일하는 가축과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중국이 하고 있는 것은 '이관위본'의 관본주의이다. 백성들은 반드시 관료집단을 먹여살리기 위해 무조건적으로 피를 빨린다. 이것이 바로 중국경제의 본질이다.

 

셋째, 정치상의 전제극권주의와 경제상의 관본주의는 문화적으로 중국에서 하고 있는 것이 궤첨주의(跪舔主義, 무릎꿇고 핥음)로 결정지었다. 원래 자중균(資中均)선생이 말한 송성주의(頌聖主義)라는 용어를 쓰고 싶었지만 느끼기로 송성주의는 너무나 우아하다. 어쨌든 칭송하는 것은 서서 할 수도 있고, 앉아서 할 수도 있어서, 현대 문화인이 권력귀족의 발아래 허리를 숙이는 추태를 제대로 드러낼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삼 생각한 끝에 역시 '궤첨주의'가 더욱 적절하다고 여겼다. 이것이 바로 당대 문인들이 권력귀족들을 떠받드는 진실한 묘사라 할 수 있다. 문화의 핵심은 창조이다. 그러므로, 문인들은 머리를 짜내서 황제가 편안하게 느끼고 기분좋게 만드는 방식으로 창조한다. 핵심은 공덕을 칭송하는 것이고, 목적은 전체 인민들이 황제를 숭배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문화인들은 극력 아부하고, 과장하고,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재주를 갈고닦는다. 모든 것을 무시하고 황제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정확한 사람이라고 칭송한다. 중국의 모든 문화류의 작품은 모두 황제를 신격화 미화한다는 핵심을 위한 것이다.

 

기실, 자본주의를 제외하고 여하한 주의도 중국에서 아무런 실질적인 의미가 없다. 그것은 단지 황제가 인민을 부리기 위한 장식일 뿐이다. 왜냐하면 주의는 왕왕 어떤 신앙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슬픈 일이라면, 중공의 장기적인 세뇌하에 중국대륙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아무런 신앙도 없게 되었다. 승진(昇進), 치부(致富), 양명(揚名), 그 뿐이다. 승진, 치부, 양명에는 모두 자본이 필요하다.

 

중국은 정권을 장악한 이래로 자본주의를 '홍수맹수(洪水猛獸)'로 취급했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그저 자본주의야말로 진정한 인성(人性)과 생활의 본질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회는 어느 한 순간도 자본을 벗어날 수 없다. 자본이 없으면 인류는 존재의 의의가 없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야말로 천경지의(天經地義)이다. 만두집에서 만두를 파는 것은 사람들이 만두를 먹지 못할까봐 걱정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만두가게를 내려면 자본이 필요하다. 이렇게 유추해보면, 의류점에서 의류를 파는 것도 사람들이 입을 옷이 없을까봐 걱정해서가 아니고, 자본이 없으면 의류점도 낼 수가 없다. 부동산업체는 주택을 탄다. 그것은 사람들이 살 집이 없을까봐 걱정해서가 아니다. 부동산개발을 하려면 소액의 자본으로는 어림도 없다. 머스크가 전기자동차를 판매하는 것은 절대로 사람들이 탈 도구가 없을까봐 걱정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전기자동차생산공장을 만들려면 자본이 필요하다. 물어보자, 우리의 생활에서 무엇을 하는데 자본이 필요없을까? 길거리에서 성매매를 하려고 해도 자본이 필요하다. 이것은 충분히 증명한다. 인류는 문명이 탄생한 이래, 계속하여 자본주의를 해왔다. 단지 방식이 여러가지였을 뿐이다. 중국은 절대로 그것을 벗어날 수 없다.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는 가지각색인데, 중국은 어떤 것을 하고 있는가? 사실은 증명한다. 중국이 지금까지 해온 자본주의는 중국특색의 자본주의가 아니었다. 그저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자본주의이다: 상진천량(喪盡天良), 단자절손(斷子絶孫)의 자본주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