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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사회/우한폐렴

한 신종코로나 감염사망자 가족의 분노와 질의

by 중은우시 2023. 1. 5.

글: 천백도(千百度)

 

"겨울은 노인들이 쉽게 병을 얻을 수 있는 시기라는 걸 알고 있나요? 이런 때 완화하다니, 이건 순수하게 노인들은 모두 죽으란 말이 아닌가요?" 텐진에 살고 있는 신종코로나 감염사망자의 가족인 후펑(胡鵬)은 분노하여 자유아시아방송의 기자에게 말했다.

 

새해는 후펑 일가에 있어서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다. 왜냐하면 그의 아흔에 가깝고 기저질환이 있는 부친이 신종코로나에 감염된 후 호흡곤란을 겪어 120핫라인에 응급구조를 요청했지만, 신종코로나환자를 치료해주는 병원을 찾지 못하여 결국 심폐기능이 고갈되어 응급조치에도 불구하고 새해전날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자유아시아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이번 방역완화조치로 적지 않은 가정은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가족을 잃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텐진의 후펑은 그저 그 중 한명일 뿐이다. 그의 아흔에 가까운 부친이 신종코로나감염으로 사망했는데, 응급실에 환자들이 가득차 있고, 의사의 진료를 받기도 어려우며, 화장하기도 힘들었던 참혹한 상황을 목격하고나서, 정부당국이 왜 노인들에게 불리한 시기에 방역을 완화했는지를 묻고 있다.

 

후펑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당시에 120응급센터에 전화를 걸었더니, 내 앞에 90명이 줄을 서 있으니 나에게 좀 기다리라고 하면서 나에게 어느 병원으로 갈 것인지 물었다. 나는 텐진의과대학제2부속병원으로 갈 생각이라고 말했더니, 그는 거기로 갈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 병원에 줄을 길게 늘어서 있어 대문을 들어가기도 어려울 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어디로 가란 말이냐고 했더니, 나중에 그럼 텐진의원으로 가라고 했다.  텐진의원은 정형외과(骨科)병원이어서 최소한 응급실에 들어갈 수는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그 병원으로 어레인지해주었다. 병원의 응급실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복도에도 모두 사람이었으며, 누워있는 사람들이 줄줄이 있었다. ICU같은 곳은 특별히 붐벼서 아예 줄을 설 자리조차 없었다. 당시 응급실에 4명의 노인이 들어왔는데, 모두 80살이상이었다. 의사 스스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정형외과치료전문이고 이건 전문분야가 아니다. 지금 각종 병원에서 모든 의사를 동원하고 있으니, 얼마나 힘든 상황인가."

 

후펑에 따르면, 정형외과전문병원의 응급실도 사람으로 꽉 차 있었고, 어떤 환자의 가족은 앉아있을 곳조차 없었다. 정말 견디기 힘든 환경이었다. 그리고 다른 환자의 가족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텐진의 폐렴전문병원의 상황은 이곳보다 더욱 심각하다고 했다.

 

"부친의 옆에 있던 환자도 89세였는데, 그의 딸에 따르면 그녀의 학교친구가 텐진제1중의원의 과장인데, 자신의 모친이 신종코로나에 걸렸는데, 일반병실도 구할 수 없어서, 응급실에서 계속 치료받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결국 방법이 없어서 부친을 정형외과의 일방병실에 입원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그럼 무슨 방법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방법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도 양성판정받았다가 막 회복되었고 쉬고 싶은데, 일반병실로 가면 최소한 부친의 침대에 엎드려 잠시 잘 수 있다고 했다. 그냥 편하게 쉬는 것조차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후펑의 부친은 병원에 입원한지 4일후에 결국 바이러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가족들과 영원히 이별했다. 부친을 병원에서 장례식장으로 옮기는 것도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말했다. 꽌시를 동원할 수 없는 보통인민들은 아예 단기간내에 어떻게 처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후펑의 말이다: "화장장으로 가는 것도 솔직히 말해서 꽌시가 없으면 병원에서 시신을 가져오는 차를 어레인지할 수도 없다. 내 학교친구가 이전에 장례식장의 책임자로 있었다. 그래서 그가 바로 차를 보내주어서 시신을 가져갈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장례식장의 직원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전에는 하루에 40구를 처리했는데, 지금은 하루에 240구를 처리한다고. 그의 말에 따르면 큰 장례식장에서는 하루에 500 내지 600구까지 처리한다고 했다."

 

사망자의 가족으로서 후펑은 가슴이 아픈 외에 여러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당국에서 사망자의 가족들에게 뭐라고 설명이라도 해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했다.

 

그는 화가 나서 말한다: "3년방역, 3년청령(제로코로나), 도대체 뭘 했는가? 검사시약을 사려고 해도, 살 수가 없고, 감기약을 사려고 해도 감기약을 살 수가 없다. 베이징을 가도 베이징에 아무 것도 없다. 말해봐라 3년간 도대체 뭘 한 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저 대백(大白, 흰옷을 입은 방역요원)을 가득 모집하고, 방창(方艙, 임시치료소)을 가득 짓고, 전원 PCR검사를 하느라고, 의료자원을 모조리 낭비해서 없애버렸다. 그렇지 않은가? 모두 백성들이 스스로 집에 갇혀 지내면서, 스스로 버텨냈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했다. 반년 더 있다가 완화해도 좋았고, 반년 일찍 완화해도 좋았을 것이다. 지금 완화한 것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