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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스포츠

카타르월드컵: 중국인들의 반응은...?

by 중은우시 2022. 11. 24.

글: 안단(顔丹)

 

카타르월드컵이 이미 개막했다. 8만명의 관중으로 꽉찬 개막식현장의 분위기는 뜨거웠고, 관중들로 붐볐다. 이 광경은 각 나라에서 시청하는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감격하게 만들었다. TV앞에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경기장을 가득채운 관중들은 거의 아무도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그들의 열광하는 모습은 전세계에 말해주고 있다. 3년간 지속되었던 신종코로나는 이미 종결되고 있다.

 

그러나, 이때 많은 시간을 TV앞에서 보내야 하는 중국인들은 전혀 열광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심정은 심지어 월드컵을 보지 않았을 때보다도 분개하고 실의에 빠져 있다. 웨이보에는 "카타르월드컵개막식현장은 얼마나 열광적인가"라는 글이 올라왔지만, 그 아래 댓글란은 즉시 냉소, 조롱과 원망하는 말로 넘쳐났다.

 

어떤 사람은 자조한다: "뜨거운 눈물이 철철 흐른다" "(중국인)은 모두 자택에서 월드컵을 보고 있다. 얼마나 행복한가!" 또 어떤 사람은 방역인원의 패도적인 말투로 월드컵현장의 외국관중들에게 소리친다: "자택에 있어야 하지 않는가?" "PCR, 녹색코드, 여행코드는?" "24시간PCR음성증명을 제시하고, 코드를 보여주세요. 녹색코드만 통행할 수 있습니다" "마스크를 써주세요."

 

이는 충분히 증명한다. 이때의 중국인들은 크게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들은 깊이 느끼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이것이야말로 사는 것이다." "즐기는 것은 그들의 것이다" "우리 중국만 방역하고 있다" "66억은 노래부르고 춤추면서 즐기는데, 14억은 조용히 PCR검사나 하고 코드나 찍고 있다" "카타르월드컵도 시작했는데, 우리는 아직 집안에 머물고 있고, 단지는 봉쇄되었다." "우리는 세계와 전혀 다르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PCR해야 한다." "우리가 바보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창끝을 '청령(제로코로나)'를 밀어부치는 중국당국으로 향한다. 그들은 분노하여 이렇게 조롱한다: "전세계에 오직 1명만 아주 똑똑하다" "중국의 바이러스와 세계각구의 바이러스는 다른가? 중국특색을 가졌는가?" "우리왕조의 방역애호가, PCR애호가들도 월드컵을 보고 있는가?" "외국인들이 모두 너보다 멍청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설득시키는게 정말 힘들군" "이번 월드컵은 절반 정도 중계하다가 그만두는 거 아냐?" "월드컵이 신종코로나를 이겼다" "위대광명정확(위광정은 중국공산당을 가리킴)이 없어도, 그들은 여전히 아주 잘 사는군"  이런 말들은 "욕화(辱華, 중국을 모욕하는 말)"가 아닌가?

 

현재의 중국대륙에서, 민중들의 원망과 분노는 방역과 봉쇄가 지속되면서 계속 커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당국은 본체만체하고 있다. 심지어 오히려 대거 선전하고 있다. "카타르로 간 중국관광객이 전기대비 28배가 늘었다." 그러나, "성을 벗어날 수 없고" "집을 벗어날 수 없는" 중국인들은 출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데, 카타르로 여행을 간다고?

 

이 거짓뉴스는 심지어 카타르의 주중대사관조차도 참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바로 중국관영매체에 알려준다. 2018년 중국에서 러시아에 월드컵을 보러간 축구팬은 6만명이었고, 러시아여행을 간 사람은 10만명으로 전세계에서 1위를 차지했었는데, 금년 카타르월드컵에서 판매된 289장의 입장권중에서 겨우 5천 내지 7천장만 중국인에게 팔렸다. 축구를 보러간 사람과 관광객의 비율을 6:10으로 계산하면, 이번 달에 카타르로 온 중국인은 최대 12,000명이 넘지 않는다. 14억중에서 극소수만이 간 것이다. 중국관영매체가 구체적인 숫자에 침묵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축구팬들에게 월드컵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가장 창피한 일은 아니다. 공금을 쓰면서 백성들의 피땀어린 돈을 마구잡이로 쏟아부었는데도 본선참가자격조차 얻지 못한 축구팀이야말로 가장 경멸해야할 대상이다. 최근 친중매체인 "연합조보"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중국축구팀은 20년동안 시종일관 불참했다"  그후 "그저 국가에서 돈을 쏟아부어 개최한 대회에만 참가할 수 있다" 다만 "설사 중국의 경제력은 월드컵을 개최할만하지만, 축구팀이 이렇게 엉망진창인데, 아무리 멋진 스포츠대회를 개최하더라도 유감을 가릴 수는 없다." 보라. 이 말은 중국당국의 퇴로마저도 차단해버린다.

 

기실, 중국당국은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에도 얼굴두껍게 다시 한번 "러시아월드컵에 중국은 축구대표팀만 가지 못했고, 기본적으로 나머지는 모두 갔다"는 황당한 말들을 다시 늘어놓겠는가. 중국당국은 완다(萬達)등 4개의 국유기업으로 하여금 2.07억달러를 들여 '월드컵최대스폰서"가 되게 하였다. 관영매체도 전혀 감추지 않고 말한다. "가장 많은 찬조금을 낸 것은 가장 많은 상품을 팔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가져다 준 것은 수억의 민중들이 아끼고 아낀 돈이다. 그러나 거기서 큰 이득을 얻어가는 것은 권력을 잡은 '조가인(趙家人)'이다. 누구든지 알고 있다. 중국당국을 위해 돈을 버는 "취지어민(取之於民, 백성들에게서 돈을 벌다)"하는 국유기업은 어떠한 경우라 하더라도 단 한푼의 수입도 "용지어민(用之於民, 백성들에게 돈을 쓰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월드컵시장에 출현한 'Made in China"들은 몇몇 염가의 노동자들을 먹여살리는 외에 수입중 가장 큰 부분은 '조가인'들이 가져가는 것이다.

 

중국당국이 "카타르월드컵에 어떤 중국요소가 있는가"라고 선전할 때마가, 네티즌들이 야유를 시작하는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국가대표팀이 못간 것을 빼면, 다른 건 다 갔다." 중국당국이 월드컵의 주경기장을 중국기업이 참여하여 건설했다고 자랑할 때 네티즌들은 즉시 조롱하여 말한다: "그들은 공을 차는데, 우리는 건물을 짓고 있다. 원래 중국은 건축팀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개최하는 축구시합에 너는 실력이 부족하여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면 당연히 겸허하게 배우고, 열심히 훈련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당국은 축구팀을 훈련시지키는 않으면서 남의 축구장 밖에 물건이나 팔면서 그걸로 체면을 세우면서 다른 사람들을 올려다보게 하려고 한다. 그렇게 해봤자,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은 "돈은 있다. 그러나 축구는 못한다"는  무능한 이미지뿐이다.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축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라가 만든 제품이 뭐 좋을게 있겠는가.

 

제품에 창조력이 없다. 그건 결국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중국에는 진정한 과학기술혁신의 인재가 없다. 우수한 전문축구팀도 길러내지 못했다. 남자축구는 중국의 관료사회에서 부패, 이익추구의 수단일 뿐이다. 이렇게 딴데 마음이 팔려 있는데, 자신의 본업을 제대로 해서, 축구기술측면에서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을 것인가? 기실 기꺼이 돈을 버는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이는 대륙의 모든 스포츠가 돈에 눈이 멀어서 더 이상 스포츠정신이라는 것을 내세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심지어 적지 않은 선수들의 인품도 문제이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데 무슨 기개가 있고 풍골이 있겠는가.

 

카타르월드컵에서 이란남자축구대표팀이 국가제창을 거부한 거동은 중국인들을 다시 한번 침묵하게 만들었다. "이란팀이 경기시작때 국가를 부르지 않았다"는 웨이보의 글은 클릭수가 7천여만에 달했다. 그러나 거기에 댓글을 달고 의견을 공개적으로 발표한 사람은 1만여건에 불과했다. 아마도, "국가제창을 거부하고, 이란여성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는 이란국가대표팀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는" 방식을 통해 인종차별에 항의한 영국국가대표팀 앞에서 반대, 항쟁등 자유권리를 모조리 박탈당한 중국인들은 스스로의 형편없는 모습을 가련하게 생각하는 외에 더 할 일이 없을 것이다.

 

이란국가대표팀의 한 주전선수는 인터뷰때 공개적으로 말했다. "(우리의) 팀의 선수들은 다른 나라의 축구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위해 항의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은 자신의 권리를 표현할 수 있다." 국가제창을 거부한 행위는 "너희(이란정부)가 그렇게 사람을 쉽게 죽여버리다니 정말 창피한 일이다" "나를 제명하더라도 나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란인들은 정부가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하여, 스포츠선수인 축구선수들도 공개적으로 동포를 위하여 목소리를 내고 있고, 폭정에 대하여 "NO"라고 외친다. 이런 용기와 정기에 대하여 무수한 여성동포들이 봉쇄도중 투신하고, 자살하고, 병사하고, 아사하는 것을 보면서도 여전히 시키는대로 마스크를 쓰고 고분고분 PCR검사를 하고, 황공해하면서 집안에 머무는 중국남자들은 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전국가대표팀감독 리톄(李鐵)가 끌려가서 조사를 받는데, 지금까지도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나머지 축구선수들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자신과 여러해동안 같이했던 '전우'에 대하여도 관심과 우려를 표시할 수 없는데, 어찌 그런 축구대표팀이 수억의 동포들을 위해 말해줄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가장 건장하고 양강의 기운이 넘치는 남자축구에서조차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면, 나머지 중국남자들에게 영웅의 기개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중국당국은 수십년을 하루같이, 환탕불환약(換湯不換藥)의 비열한 수단으로 중국인들에게 공포를 심어놓았다. 백성들은 일찌감치 "겁이 없다"든지 "용감하다"든지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어 버렸다. 그렇지 않으면 베이징 "쓰통챠오용사(四通橋勇士)"가 자신의 생명을 걸고 양심과 정의를 외칠 때, 그렇게 많은 중국인들이 여전히 침묵하는 양처럼 두 입을 꽉닫고,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을리가 없지 않은가. 차라리 '청령'으로 고통을 겪으며 죽을지언정 반항은 하지 않는다. 차라리 무릎꿇고 죽을지언정 일어서서 삶을 구하지 않는다. 계속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런 것이 이미 중국사람들의 바뀌지 않는 유일한 선택이 되어버린 듯하다.

 

자유는 다른 사람의 것이고, 다른 나라의 것이다. 중국인은 자신의 생존권조차 당국에 양도했다. 그런데 무슨 자유가 있겠는가. 일단 자유를 잃으면, 아무리 즐거운 파티라 하더라도 자신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다. 지금 월드컵을 보면서도 중국인들은 즐거워할 수가 없다. 만일 계속 '연금'된다면, 중국인들은 아마도 다시는 '기쁨'이 무엇인지 모르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의 마음에는 오직 "사적(死寂, 죽음의 고요)"와 "유금(幽禁, 어두움에 갇히는 것)"만이 남을 것이다. "침묵 속에서 폭발하지 않으면, 침묵 속에서 멸망할 것이다"라는 비극이 현실에서 계속 일어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