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남북조)

남조(南朝) 송(宋): 10명의 황제중 7명이 피살당한 왕조

중은우시 2022. 11. 21. 15:07

글: 정회역사(情懷歷史)

 

남조송(420-479)는 중국남북조시기 남조의 왕조로 정통왕조이며, 남조에서 존속기간이 가장 길고, 강역이 가장 넓었던 왕조이다. 모두 사세(四世)에 걸쳐 10명의 황제가 있었으며, 59년간 존속했다. 국군의 성이 유(劉)이므로, 조광윤(趙匡胤)이 건립한 조송(趙宋)과 구분하기 위하여, 유송(劉宋)이라고 부른다. 유송의 10명 황제중에서 7명이 피살당하고 겨우 3명만 선종(善終)했다. 이는 고대 중국의 왕조 중에서 비교적 보기드문 경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 유유(劉裕)

유유는 남조송의 개국군주이다. 유유는 어려서 집안이 빈한했고, 나중에 북부군(北府軍)에 투신하여 장군이 된다. 그는 엄청난 전공으로 동진(東晋)의 대권을 장악하여 관직이 상국(相國), 양주목(揚州牧)에 이르고, 송왕(宋王)에 봉해진다. 영초원년(420년), 유유는 진나라를 대신하여 나라를 세우고, 수도를 건강(建康)에 두며, 국호를 "송(宋)"이라 한다.

 

유유는 강남의 경제발전과 한문화의 보존에 중대한 공헌을 했다. 그리고, 강좌육조(江左六朝)중 강역이 가장 넓었던 시기이기도 했으며, "원가지치(元嘉之治)"의 견실한 기초를 쌓는다. 명나라때의 이지(李贄)는 그를 가리켜, "정란대흥지군(定亂代興之君)"으로 평했다. 영초3년(422년), 유유는 북위(北魏)를 토벌할 계획을 세우고 미처 군대를 출동시키기도 전에 병사하고 만다. 향년 60세였다. 묘호는 고조(高祖)이고, 시호는 무황제(武皇帝)이며, 초녕릉(初寧陵)에 묻힌다.

 

2. 유의부(劉義符)

 

유의부는 남조송의 두번째 황제이고, 송무제 유유의 장남이다. 모친은 장부인(張夫人)이다. 송무제가 즉위한 후, 그를 황태자에 앉힌다. 영초3년(422년), 즉위하고, 연호를 경평(景平)이라 한다. 경평2년(424년), 유의부는 권신 서선지(徐羨之), 사회(謝晦)등에 의해 폐위되고, 영양왕(營陽王)으로 강등된다. 얼마후 피살되니 나이 겨우 19살이었다.

 

3. 유의륭(劉義隆)

 

유의륭은 남조송의 세번째 황제이다. 송무제 유유의 둘째아들이며, 송소제(宋少帝) 유의부의 동생이다. 모친은 문장태후(文章太后) 호도안(胡道安)이다. 유의부가 폐위된 후, 유의륭이 즉위한다. 유의륭은 권신 서선지, 부량(傅亮), 사회등을 제거한 후, 송무제 유유의 치국방략을 계속해나가 "원가지치"를 개창한다. 그러나, 유의륭이 세번에 걸쳐 북위를 공격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난다. 이로 인하여 유송의 국력은 크게 소모된다.

 

원가30년(453년), 유의륭은 황태자 유소(劉劭)에게 피살당한다. 당시 나이 47살이었다. 시호는 문(文)이며, 묘호는 태조(太祖)이고 장녕릉(長寧陵)에 안장된다.

 

4. 유소(劉劭)

 

유소는 남조송의 네번째 황제이고, 송문제 유의륭의 적장자(嫡長子)이다. 모친은 황후 원제규(袁齊嬀)이다. 원가30년(453년), 유소는 시흥왕(始興王) 유준(劉濬)와 연합하여 궁중정변을 일으켜, 궁으로 쳐들어가 부친 유의륭을 죽이고, 스스로 황제에 오른다. 연호를 태초(太初)로 고친다. 그러나, 유소의 재위기간은 길지 못했다. 그는 금방 무릉왕(武陵王) 유준(劉駿)의 토벌을 당하고, 전패하여 피살된다. 당시 나이 30살이었고, 재위 겨우 3개월만이었다. 사서에서는 그를 "원흉소(元兇劭)"라 칭한다. 

 

5. 유준(劉駿)

 

유준은 유송의 다섯째 황제이다. 송문제 유의륭의 셋째아들이며, 송명제(宋明帝) 유욱(劉彧)의 이모형(異母兄)이다. 모친은 노숙원(路淑媛)이다. 원가30년(453년), 태자 유소가 부황을 살해하고, 유준이 거병하여 유소를 토벌한 후, 황제위에 오른다. 대명8년(464년), 유준은 건강 옥촉전(玉燭殿)에서 병사한다. 재위 12년, 나이 겨우 35살이었다. 묘호는 세조(世祖)이며 시호는 효무황제(孝武皇帝)이며, 경녕릉(景寧陵)에 안장된다. 그러므로, 그는 송무제 유유와 마찬가지로 선종의 최후를 맞이한 황제이다.

 

6. 유자업(劉子業)

 

유자업은 남조송의 여섯째 황제이다. 송효무제 유준의 장남이다. 모친은 문목황후(文穆皇后) 왕헌원(王憲嫄)이다. 대명8년(464년), 유자업이 정식으로 등극하고 영호를 '영광(永光)'이라 한다. 유자업은 어린 나이로 즉위하여 기반이 탄탄하지 못했다 .강력한 대신, 종실과 번진들 앞에서 내심 불안했다. 황제의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햐 대신을 처벌하고 죽이며, 여러 왕을 구금했다. 그리하여 조정이 흔들리게 된다.

 

경화원년 겨울(466년 1월), 유자업은 상동왕(湘東王) 유욱(劉彧)등에 의해 피살된다. 당시 나이 겨우 17살이다. 단양군(丹陽郡), 말릉현(秣陵縣), 남교단(南郊壇) 서쪽에 묻힌다.

 

7. 유자훈(劉子勛)

 

유자훈은 남조송의 일곱째 황제이다. 송명제 유욱이 유자업을 살해한 후 잠시 황위에 있었다. 태시2년(466년) 팔월 기묘일(466년 9월 19일), 유자훈은 유욱 수하의 대장 심유지(沈攸之)에게 주살당하니, 당시 나이 겨우 11살이었다. 심양(尋陽) 여산(廬山)에 묻힌다.

 

8. 유욱(劉彧)

 

유욱은 남조송의 여덟째 황제이다. 송무제 유유의 손자이며, 송문제 유의륭의 11째 아들이고, 송효무제 유준의 이모동생이며, 모친은 심용희(沈容姬)이다. 경화원년(465년), 유욱은 유자업을 죽인 후 즉위한다. 태예원년(472년) 유욱은 병사한다. 당시 나이 34살이었다. 시호는 명황제(明皇帝)이고, 묘호는 태종(太宗)이다.

 

9. 유욱(劉昱)

 

유욱은 남조송의 아홉째 황제이고, 송명제 유욱(劉彧)의 장남이며, 송순제(宋順帝) 유준(劉準)의 큰형이다. 귀비(貴妃) 진묘등(陳妙登) 소생이다. 태예원년(472년) 사월, 유욱이 황위에 오른다. 원휘2년(474년) 오월 소도성(蕭道成)을 재상에 임명한다. 유욱은 사람됨이 흉포하고 잔혹하여 조정이 혼란에 빠진다. 이때부터 조정은 소도성이 차례차례 장악하게 된다. 원휘5년(477년), 유욱이 피살되는데, 나이 겨우 15살이고, 창오왕(蒼梧王)으로 추폐(追廢)된다. 역사에서는 송후폐제(宋後廢帝)라 부른다.

 

10. 유준(劉準)

 

유준은 유송의 마지막 황제이다. 송명제 유욱(劉彧)의 셋째아들(일설에는 계양왕 유휴범의 아들이라고 한다)이다. 원휘5년(477년) 칠월 팔일, 유준은 소도성의 옹립으로 황위에 등극한다. 명목상으로는 황제였지만, 권력은 모두 소도성이 쥐고 있었다. 승명3년(479년) 소도성에게 황위를 선위한다. 같은 해 오월 육일, 단양궁에서 피살된다. 나이 겨우 13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