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종원(鍾原)
중국당국은 많은 국가의 수뇌들이 20대이후에 방중하도록 초청하는 노력을 했으나, 결국 4명이 방중을 했다. 진정한 의미있는 것은 독일총리 숄츠의 방중인데, 그는 동맹국들의 강력한 압박으로 중국당국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인권, 중국시장장벽과 지적재산권문제들을 거론했다. 중국이 기대하던 '만방내조(萬邦來朝, 만국이 조공을 바치러 오다)'는 참담하게 끝났고,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신임 중공의 고위층들은 모두 국제적고립의 한의(寒意)를 느꼈을 것이다.
당매체가 선전을 크게 하기 어려웠다.
11월 5일, 신화사에는 글이 올라온다. <제일관찰: 1주일내에 시진핑 총서기는 집중적으로 4개국 외국지도자들을 만나다>
이처럼 평범한 제목을 보면 중국의 선전기구가 극도로 실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어용문인들은 아마도 적지 않은 큼직한 제목들을 준비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를 이끈다", "세계의 발전방향을 가리켰다"등등. 그러나 그런 말은 쓰지를 못했다. 심지어 "대국외교" "원수외교"라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글에서는 20대후 4개국 지도자들이 집중적으로 방중한 것에 대하여 "지동도합(志同道合, 뜻이 같고 가는 길이 맞는다)"도 있고, "구동존이(求同存異, 의견이 맞는 부분을 추구하고, 의견이 다른 부분은 놔둔다)"도 있다고 했다.
중국당국이 엄청난 노력을 들였음에도 겨우 4개국의 국가수뇌만을 초청했고, 그것도 모두 '지동도합'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겨우 '구동존이'라는 것이다. 이는 분명 '조하(朝賀)'하러 온 것이 아니다. 이런 외교실력은 확실히 추켜세우기 민망할 정도이다.
중국의 신임 정치국상위중에서 시진핑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정식으로 등장하지도 못했다. 단지 베트남공산당총서기를 환영하는 만찬에 참석했을 뿐이다. 나머지 3개국 수뇌와의 회견에는 다른 정치국상위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직 공개된 정부의 직위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소개하기도 난감하다. 다행히 베트남총서기가 방중하여 당대당의 공통점이 있으므로, 신임 정치국상위들이 반공개적으로 활동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진핑은 각각 4개국 수뇌를 만났다. 그러나 당매체는 통상적인 '대국외교' '원수외교'등의 말은 붙이지 않았다. 아마도 베트남, 파키스탄, 탄자니아는 무게감이 떨어져 '대국'이라 말하기 어렵고, '원수외교'라고 말하게 되면 스스로의 신분만 끌어내리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독일은 어느 정도 무게감이 있지만, 축하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중국지도자들은 부득이 스스로의 자세를 낮추어 받아들여야 했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역사상의 '만방래조'는 주로 주변의 크고 작은 국가들을 가리킨다. 지금 중국은 스스로 '신시대'라고 하는데, 주변국가들은 모두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동아시아의 일본, 한국도 오지 않았고, 타이완과는 국면이 긴장되어 있다; 동남아시아국가중에서는 베트남만 왔다; 남아시아의 파키스탄은 인도를 견제하기 위하여 올 수밖에 없었다; 시진핑은 얼마전에 중앙아시아를 갔었고, 중앙아시아의 5개국과 몽골의 수뇌와는 이미 만났다. 그러나 그들은 그후 모두 뉴욕으로 가서 유엔회의에 참석했다. 그리고 미국의 국무장관 블링컨과 회담했다. 그들이 단기간내에 중국을 방문할 필요는 없었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분명 오고싶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지금 그를 초청할만한 입장이 아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중국이 초청한 정치요인들의 무게감은 부족헸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숫자는 맞출 수 있었다; 20대이후, 중국은 이제 숫자조차 맞추기 어렵게 된 것이다. 왕이는 비록 승진했지만, 능력은 키워지지 못했다. 그러니, 당매체도 "쌀이 없으면 밥을 지을 수 없는 것"이었다.
4개국 수뇌의 방중은 목적이 서로 달랐다. 중국도 이 4개국 수뇌가 중국을 따라 반미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고, 온갖 방법으로 이들을 회유하려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도 방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발전과정에서의 균형술
1차로 방중한 것은 베트남공산당총서기 응우엔푸쫑(阮富仲)이었다. 중국매체가 가장 크게 선전했으며, "동지 + 형제"라고 치켜세웠고, 중베간의 '전통적 우의'를 찬양했다.
중국은 마치 1979년의 중국-베트남전쟁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같다. 당시 등소평은 자신의 군권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그리고 미국에 우호적인 자세를 보이기 위하여 베트남에 교훈을 내리겠다면서 공격했다. 중국군대가 철수할 때는 "삼광정책(三光政策, 다 죽이고, 다 빼앗고, 다 불태운다)"을 실시하여, 베트남이 가장 통한(痛恨)하는 것이 바로 중국이다. 1984년부터 1987년까지, 쌍방은 라오샨(老山), 저인산(者陰山)을 빼앗기 위하여 3년간의 전쟁을 벌인다. 72세의 장여우샤(張又俠)이 중앙군사위부주석에 유임되었느넫, 그는 중국-베트남전쟁에 참가했었다. 베트남공산당이 내심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잇는지 알지 못하겠다.
베트남에게 가장 큰 안전위협은 중국이다. 쌍방간의 남해분쟁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베트남은 공개적으로 미국의 개입을 요청하고 있다. 지금 미군과 베트남군은 예전의 원한을 씻고 서로 빈번하게 교류하여, 중국을 상당히 분노하게 하고 있다. 베트남공산당총서기는 베이징에서 이렇게 말한다. 외국이 베트남에 군사기지를 건립하는 것에 반대하겠다고. 그것은 아마도 외부에서 계속 논의되고 있는 Vannon Bay(빈캄란, 金蘭灣)군사기지를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소문에 따르면 미군이 군사기지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베트남공산당은 스스로 약소하다는 것을 알고 중국과 맞싸우는 것을 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배후에서는 미국을 끌어들여 중국과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서 시소게임을 하는 것이다.
미국의 공급체인은 타이완상인들의 공급체인을 포함하여, 중국대륙에서 계속 베트남으로 이전하고 있다. 베트남으로서는 하늘에서 공떡이 떨어진 셈이다. 그래서 더더욱 미국과 중국 사이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베트남은 중국이 타이완을 공격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베트남경제의 발전기회가 날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표면적으로 중국에 우호적인 자세이지만, 뒤로는 타이완상인들을 귀빈으로 모시고 있다.
중국은 아마도 이를 갈 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할 수 없이 베트남은 '동지 + 형제'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베트남이 완전히 미국편으로 돌아서는 것이 겁나기 때문이다. 미군이 만일 Vannon Bay에 군사기지를 건설한다면, 중국으로서는 가시가 목에 걸린 것같을 것이다.
파키스탄은 중국을 이용하여 인도를 견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당매체는 중국과 파키스탄간에는 "철간(鐵杆)"이라고 말한다. 중국은 파키스탄을 이용해서 인도를 견제할 필요가 있고, 파키스탄도 중국을 이용해 인도에 대항할 필요가 있다. 신중국 건립73년동안 이웃국가인 인도와는 시종 불화를 겪었고, 이는 중국의 큰 은환(隱患)이었다. 신화사는 이렇게 말한다. 시진핑은 2달내에 파키스탄 총리와 제2차 회담을 가질 것이다. 지난번은 9월에 중앙아시아에서 거행된 상하이합작조직 정상회담기간이었다.
파키스탄은 당연히 중국이 이러한 때 자신들을 찾아와서 떠받들어줄 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귀찮아 하지 않고 찾아가서 치켜세워준다. 당연히 중국은 더 많은 돈을 뿌려 주어야 한다.
파키스탄과 미국은 일찌기 긴밀한 관계였다. 트럼프이전의 미국 민주당정부는 파키스탄이 330억달러의 원조를 제공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취임한 후, 공개적으로 파키스탄이 테러리스트를 비호한다고 비난했다.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후, 바이든정부와 파키스탄의 관계도 소원해진다. 다만 파키스탄은 그렇다고 미국에 밉보일 수는 없다. 여전히 미국이 다시 경제원조를 해주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중국은 당연히 파키스탄이 미국와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치 않는다.
중국은 아프간의 탈레반정권을 지원하려고 하지만, 파키스탄은 기타 주변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도 탈레반정권의 합법성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소위 '철간'은 그저 서로 필요로 하는 관계일 뿐인 것이다.
탄자니아는 더더욱 중국의 돈이 필요하다. 신화사는 이렇게 말한다. 2013년 시진핑이 국가주석에 오른 후, 중국을 최초로 방문해준 아프리카국가는 탄자니아이다. 그리고 탄자니아 대통령 하산이 중공20대후 방중하는 것은 중국-아프리카관계가 외교적으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도 탄자이나의 주요원조국이다.
중국은 아프리카의 유엔에서의 표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고립되었을 때, 더더욱 아프리카의 표는 유엔에서 중요성을 가진다. 신화사는 중국이 빈곤국이었을 때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아프리카형제들을 위해서 탄자니아-잠비아철도노선을 건설해주었다고 말한다.
당매체의 이 말은 한가지 진상을 드러낸다. 3년대기근때, 중국당국은 백성들이 굶어죽고 있는데도, 제3세계국가를 원조했고, 스스로 제3세계국가의 우두머리라고 칭했다.
중국지도자는 독일총리에 대해 그저 "구동존이"할 수밖에 없었다.
신화사는 독일총리 숄츠가 코로나사태후 처음 중국을 방문한 유럽의 국가지도자라고 하였다. 그러나 단지 시진핑의 말을 인용하여 "최대의 공약수를 추구"하기를 희망하며, "스스로에게 한계를 설정하지 않으면 멀리 날 수 없다" "구동존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유럽을 분열시키는 것이 일관된 중국의 정책이다. 그러나 과거 3년간 이런 시도는 신속히 힘을 잃었다. 이번 독일총리의 방중은 중국에게는 구명도초(救命稻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라 할 것이다. 신화사는 시진핑의 말을 인용하여, "하나는 세계최대의 개발도상국" "하나는 EU의 중요국가"라고 하면서 중국독일관계는 "중국과 유럽의 양대역량을 추진하는데 도움이 되고, 변혁과정에 있는 세계에 대응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11월 3일, 숄츠가 방중하기 위히 출발한 당일, 독일정부의 웹사이트 첫페이지에는 큰 표제의 성명이 올라온다. <우리는 중국과 탈중국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지나치게 의존할 수는 없다> 성명에 따르면, 독일은 공동이익에 부합하는 협력을 추구하지만, 분쟁을 무시할 수는 없다. 3년동안, 세계는 근본적으로 변화했고, '모든 것을 예전에 하던대로'하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다. 그래서 내가 중국으로 가는 것이다. 막 끝난 공산당대표대회는 명확하다.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이전보다 훨신 넓을 공간을 차지했다. 우리와 중국의 교류방식도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그들의 '쌍순환'경제전략은 국내시장을 강화하고 다른 국가에 대한 의존을 감소시키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방적인 의존을 제거해야 한다. 최근 몇달동안, 우리는 국제적으로 일본, 한국, 인도와 인도네시아등과 밀접한 합작파트너관계의 심도있는 협조업무를 전개하고 있다.
성명에서는 또한 타이완의 긴장된 국면도 주목했다. 여하한 현상변경은 반드시 평화적인 방식을 통해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정부가 미리 성명을 내는 것에 대하여 중국의 지도자는 분명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힘들게 얻은 기회를 놓칠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구동존이'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의 성명에서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숄츠는 독일연방총리의 신분으로 베이징에 간다. 전체 EU를 대표하여 발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반드시 경쟁을 받아들이고, 이런 시스템적인 경쟁을 진지하게 직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여전히 중국-유럽관계를 선전하고자 한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같지 않다는 것도 안다. 11월 4일, 숄츠의 방중당일, 그는 개인트위터에 연이어 3가지 글을 올린다. 시진핑에게 푸틴에게 압박을 가하여 인권을 보호할 것, 그리고 중국시장진입과 지적재산권문제로 자유무역을 실현할 것이 포함된다. 중국의 당매체는 이런 내용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숄츠가 말한 것은 중국이 자유무역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을 중국의 글로벌화를 지지한다는 것으로 개념을 바꾸어 말했다.
글로벌화는 원래 중국경제가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러나 중공치하에서 다시 망쳐버렸다. 선진국이 공급체인을 이전하는데, 중국은 스스로 '내순환'과 '자력갱생'을 내놓았고, 계속하여 '청령(제로코로나)'로 자신의 장성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극력 사영기업을 탄압한다.
독일총리의 이번 방중은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독일은 분명하게 중국이 '내순환'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중국시장에서의 자유무역을 희망했고, 중국이 지적재산권을 보호해주기를 희망했다. 중국은 본국의 사영기업에게조차 자유를 주지 않는데, 외국기업에 주겠는가? 미국의 중국에 대한 기술봉쇄에 즈음하여, 독일기업은 스스로 중국을 찾아가다니, 독일은 아마도 다시 한번 교훈을 바아야 할 것같다.
결론
중국은 20대이후 '만방래조'의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애썼다. 그러나 코로나문제, 전랑외교등으로 너무 많은 나라의 불만을 샀다. 겨우겨우 4개국가의 지도자들이 방중하였지만, 이를 외교적 승리라고 포장하기도 어렵게 되었고, 오히려 국제고립만 두드러졌다.
리커창과 숄츠의 회담이 가장 중요했다. 그러나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 4달만 지나면 리커창은 정식으로 은퇴한다. 곁에서 배석했던 허리펑(何立峰)에게 지금 얼마나 큰 발언권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11월 4일, 중국의 화려하나 실속은 없는 수출박람회가 상하이에서 개막되었다. 후춘화는 여전히 중국부총리의 자격으로 주재했고, 리창도 급히 상하이로 돌아왔다. 그러나 정치국상위의 신분으로 박람회의 개막을 선언해야 했다. 중국 고위층 교체의 난감한 모습은 계속되고 있다. 대외적으로 구체적인 약속 혹은 입장이 바뀔지 아닐지도 아직 미지수이다.
20대이후, 중국이 준비했던 정치외교쇼는 흐지부지 끝났다. '민족부흥'의 구호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중국지도자는 아마도 이미 대권을 장악했다고 느낄 것이지만, 국제적인 반응은 더욱 부정적이다. 대다수의 국가들은 차가운 눈으로 방관하고 있고, 중국이 고립된 상황은 바꾸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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