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진숙함(陳淑涵)
당대 중국제일남아, 즉 중공건정이래 단독으로 백성들을 위해 목숨을 내건 펑자이저우(彭載舟) 선생은 중공20대 전날, 베이징 쓰통차오(四通橋)에 플랭카드를 내걸어 국적 시진핑을 토벌하자는 표어를 내걸었다. 그는 혼자의 힘으로 이런 영웅적인 장거를 해냈으니, 천지가 놀라고 귀신이 눈물을 흘릴 일이다. 펑용사의 영웅적인 기개에 감동받아, 필자는 그의 토적격문인 <고전민동포서(告全民同胞書)>를 자세히 읽어보았으며, 탄복을 금할 수 없었다. 어쨌든 이 글은 중공건정이래 전체 백성들의 마음을 표현한 웅장한 글이다. 한마디 한마디가 사실이며, 진실함과 절실함이 들어 있어, 읽는 사람의 피를 끓게 만든다!
펑자이저우 용사는 당금의 국적 시진핑을 1백여년전의 원세개(袁世凱)에 비유했다. 이것은 필자가 유일하게 동의할 수 없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황제를 칭했지만, 경풍제(慶豊帝, 시진핑을 가리킴)와 홍헌제(洪憲帝, 원세개를 가리킴)와 천지차이가 있다. 둘 다 나라를 훔쳤지만, 경풍제와 홍헌제는 명분과 실제에서 차이가 있다. 경풍제의 화국(禍國)의 깊이, 앙민(殃民)의 무게는 홍헌제가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이다.
원세개가 황제를 칭한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러나, 이해는 된다. 필자가 원세개를 변호할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사실을 기준으로 얘기하는 것이다. 대청황제가 1911년에 퇴위하고, 원세개는 1916년에 칭제한다. 그 사이에 겨우 5년의 간격이 있었다. 그때의 중국은 2천여년의 상황과 거대한 차이가 없었고, 마찬가지로 농경사회였다. 백성도 기본적으로 대청왕조의 유민(遺民)이다. 많은 저명한 인사들도 모두 청왕조의 수재, 거인 혹은 일찌기 청왕조에서 관직에 있던 사람들이다. 백성들은 근본적으로 민주, 공화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들의 마음 속에, 황제가 아주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쨌든 당시의 중국인들은 교육수준이 낮고, 문맹과 반문맹이 인구의 95%를 점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원세개 자체가 대청왕조의 중신이었다는 것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만주인의 노재(奴才)로 지냈으며, 대청말기에 이르러서는 위극인신(位極人臣, 신하로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앉는다. 한족 대신으로서 원세개는 만주족의 왕조를 끝장냈고, 자신이 황제에 오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가 살던 시대에서는 그다지 출격(出格)한 일이라고 할 수도 없다.
시진핑의 칭죄는 마땅히 주살되어야할 일이다. 시진핑은 취임한지 10년동안 권력을 잡아 다른 사람들을 숙청했지만, 아무런 업적도 이루지 못한다. 반대로, 시진핑은 대내적으로는 중국의 경제를 망쳐버렸고, 대외적으로는 돈을 마구잡이로 뿌려서 중국이 개혁개방이래 모아두었던 재산을 바닥내 버렸다. 전랑외교는 또한 중국을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도록 만들었다. 특히 시진핑의 동태청령(제로코로나)정책은 중국인민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다...시진핑의 죄는 경죽난서(罄竹難書)이다. 그런데도, 지금 시진핑은 종신집권의 제왕몽을 꾸고 있다. 이는 중국을 절망의 심연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진핑칭제의 악영향은 원세개칭지의 약영향보다 백배는 나쁘다. 어쨌든 시진핑은 옛날의 원세개보다 백배는 사악하다.
먼저, 원세개는 사람됨이 창량(敞亮)했지만, 시진핑은 내심이 음암(陰暗)하다. 원세개는 황제에 오를 때 정정당당하게 등기대전(登基大典)을 거행했다. 시진핑처럼, 제왕과 같은 종신집권을 꾀하지만 그렇다고 제왕의 악명은 뒤집어쓰고 싶지 않으려하는 속된 말로 하자면 기녀이면서 열녀문은 받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원세개는 당시의 백성들을 속이지 않았다. 백성들과 원세개의 관계는 바로 신민과 군왕의 관계였다. 시진핑은 다르다. 그는 분명히 높은 자리에 앉은 제왕이고, 14억명의 생사여탈권을 한 손에 쥐고 있으면서 그는 굳이 중국의 모든 권력은 인민에 속한다고 말한다. 사실상, 인민들에게는 선거권은 물론이고, 언론의 자유조차도 없다. 그런데 무슨 권력이 있단 말인가. 이것은 시진핑이 기세도명(欺世盜名)의 무리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원세개는 백성들에게 솔직했다. 최소한 황제를 칭하는 층면에서는 그러했다.
다음으로, 원세개는 시진핑보다 흉금이 넓었다. 원세개가 다스릴 때, 민간의 신문만 수백 곳에 이르렀다. 민중은 기본적으로 자유롭게 발언했고, 원세개를 욕하는 목소리도 수시로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진핑 치하에서 전국에는 오직 하나의 목소리만 있다. 만마제암(萬馬齊暗)의 상태이다. 이를 보면, 시진핑은 백성의 입을 막기 위해서 온갖 조치를 다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원세개는 비록 기본적으로 대청시대의 인물이지만, 100여년전의 원세개는 100여년후의 시진핑보다 훨씬 용인지량(容人之量, 다른 사람을 용납하는 도량)이 있었다. 원세개는 중화민국의 종신대총통에 오른 후, 국내에 욕하는 목소리가 넘쳐났다. 특히, 일부 지식인들은 그를 심하게 욕했다. 장태염(章太炎)이 그 중의 한명이다. 장태염은 북경으로 간 후 원세개에 의해 연금당한다. 원세개는 매월 장태염에게 500대양의 급여를 주었고, 하인, 주방장, 이발사를 배치해 주었다. 장태염이 물건을 때려부숴도 책임을 추궁하지 않았고, 그가 욕하고 싶은대로 욕하게 놔두었다. 당시 경찰의 한달 월급이 4대양이었다. 일류교수의 월급도 400대양에 불과했다. 이를 보면 원세개가 명사를 얼마나 후대했는지 알 수 있다. 가장 재미있는 일은 장태염이 단식을 하자, 원세개가 놀라자빠진다. "내가 사대부를 죽였다는 악명을 들을 수는 없다!" 그리하여 장태염은 근 3년간 연금되어 있다가 풀려나게 된다. 시진핑은 어떠한가? 런즈창(任志强)은 단지 시진핑에 대하여 황제가 되려는 삐에로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 때문에 18년유기징역형을 받는다. 시진핑의 도량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일이다.
다시 그 다음으로, 원세개는 부끄러움을 알았는데, 시진핑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원세개는 등극하여 황제에 오른 것은 실제로 하나의 해프닝이었다. 이 해프닝은 83일만에 끝난다. 결국 원세개는 황제제도를 폐지한다. 원세개는 전국 각지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자 화가나서 피를 쏟고 죽었다. 이것이 설명하는 것은, 원세개의 내심에 수치심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여론이 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원세개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아무리 커지더라도, 그것때문에 화가나서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려서 시진핑을 보자. 관료이건 백성이건 절대다수는 시진핑의 연임에 반대한다. 다만, 시진핑의 마음 속에는 일찌감치 수치심이라는 것이 없었다. 수치심이 없을 뿐아니라, 얼굴도 성벽처럼 두껍다. 혹은 아예 얼굴(체면을 가리킴)이 없다. 시진핑은 잘 알고 있다. 수치심이 없으면 무적이라는 것을. 체면을 생각하면 절대로 황제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을. 체면을 따지지 말아야, 비로소 잘 살 수 있다. 체면을 생각하던 중공지도자들 예를 들어, 화국봉, 호요방, 조자양은 결국 쫓겨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시진핑은 연임후,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반대하더라도 그는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일찌감치 체면은 버렸기 때문이다. 체면을 버리면 사람이 못할 일은 없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시진핑은 원세개보다 죄악이 백배는 깊고, 무겁다. 원세개는 단지 나라를 훔쳤다고 욕먹었지만, 그는 나라를 실제로 훔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사실이 이미 증명하기 때문이다. 원세개 가족이 보유한 자산은 당시 그다지 많지 않았다. 원세개가 나라를 훔쳤다는 것은 사실 지나친 말이었다. 당금의 시진핑가족이 보유한 재산은 끝자리수만 하더라도 원세개의 백배는 될 것이다. 사실상, 전체 중국이 시진핑의 개인재산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중국에서 그가 갖고 싶은 것은 모두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시진핑은 연임에 성공하여 종신집권의 제왕몽을 실현했다. 그것이야말로 절국대도(竊國大盜)라 할 수 있다. 모든 양심이 남아 있는 중국인들은 마땅히 분기하여 공격해야 한다. 독부민적과 끝까지 싸워야 한다.
2020년 10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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