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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공청단파(共靑團派)가 재집결하는가?

by 중은우시 2022. 8. 23.

글: 종원(鍾原)

 

베이다이허회의 이후, 후춘화(胡春華)가 당매체에 등장하는 빈도가 현저히 증가했다. 8월 22일, 후춘화는 다시 중공정협상무회의에 출석하여 보고함으로써, 다시 한번 그가 20대에 중책을 맡을 것이라는 신호를 내보냈다. 리커창(李克强)과 왕양(汪洋)은 아마도 막후의 인물들일 것이다. 공청단파가 다시 집결하고 있는 것같다. 리커창은 아마도 중국 국무원 비서장 샤오제(肖捷)의 승진을 지지하는 것같다.

 

후춘화는 정협에서 보고를 하다.

 

8월 22일 신화사는 정협이 상무회의를 개최하여, "취업우선정책실시를 견지할 것"을 둘러싼 의정을 논의했다. 중공정치국상위, 정협주석 왕양이 출석했으며, 국무원 부총리 후춘화가 초청을 받아 회의에 출석한 후 보고하며, 현장에서 정협상위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국무원총리 혹은 부총리가 때때로 당외인사좌담회에 참가할 수 있다. 정식으로 정협상무회의에 참가하는 것은 자주 보는 일은 아니다. 이번은 리커창과 왕양이 손을 잡고 후춘화를 밀어주는 동작으로 보인다. 왕양은 국무원에 초청장을 보냈고, 후춘화는 후춘화에게 국무원을 대표하여 정협상무회의에 출석하도록 했다. 후춘화는 간단하게 의견과 건의를 들은 것만이 아니라, 보고도 했다. 비교적 공식적인 활동이며, 마치 국무원 준총리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정협상무회의가 개회되면, 당매체는 보통 주로 왕양의 강화내용을 보도한다: 이번에는 왕양의 말은 한 마디도 없고, 중점적으로 후춘화에 촛점을 맞추었다. 아마도 왕양이 스스로 자신에 대한 보도를 자제할 것을 요청하여 후춘화를 더욱 돋보이게 하면서, 외부에 신호를 보내려는 것일 것이다.

 

신화사가 후춘화를 보도하면서 다시 한번 "후춘화가 지적했다(胡春華指出)"는 말을 사용했다. 시진핑을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의 굳건한 영도와 시진핑의 중요지시정신을 언급하면서도 또한 "국무원의 조치에 따라 추가적으로 취업업무를 잘 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춘화는 또한 "반드시 당의 취업업무에 대한 영도를 견지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마치 시진핑을 모방한 것같다: 그는 또한 "시장의 인력자원배분에서의 결정적인 역할을 견지하고, 정부의 역할을 더욱 잘 발휘하도록 견지한다"고 말했다. 이는 리커창을 모방한 것같다.

 

8월 22일, 후춘화는 영상을 통해 "지속가능시장창의" 중국이사회성립대회에 참가한다. 신화사는 보도를 통해, "부총리 후춘화, 영국왕세자 찰스가 각각 영상치사를 했다."고 보도했다.

 

치사내용은 아마도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후춘화와 영국 '왕세자'가 나란히 치사를 했다는 것이 더욱 주목된다. 당매체가 의식적이든 아니든 후춘화를 '후계자'로 알리려는 효과를 달성한 것이다.

 

보기에 베이다이허회의에서, 공청단파는 정식으로 시진핑의 연임을 지지하기로 한 것같다. 후춘화도 국무원총리직을 물려받을 준비를 하는 듯하다. 원래 느슨했던 공청단파가 시진핑진영과 잠정적으로 결맹을 맺었는데, 리커창과 왕양이 아마도 중요한 역할력을 행사한 것같다.

 

일찌기 개혁파인물이었던 왕양

 

왕양은 일찌기 중공당내의 개혁파인물중 하나로 일컬어졌다. 공청단파도 적극적으로 그가 중공고위층에 들어가는 것을 지지했다. 다만 중공18대에서 장쩌민, 쩡칭홍파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쳐 그저 3번째로 정치국위원을 연임해야 했고, 정치국상위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중공19대에서 비로소 왕양은 정치국상위로 승진한다.

 

왕양은 일찌기 국무원 부비서장, 충칭시위서기, 광둥성위서기, 국무원 부총리를 지냈다. 왕양은 일찌기 보시라이의 충칭모델과 반대되는 모습을 취했다. 왕양은 경제성장이 부의 재분배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 소위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쪽이다. 왕양이 광둥성위서기를 맡았을 때, 광둥은 더욱 사상해방, 개혁개방심화된 관건적 시기로 본다.

 

2012년 중공양회기자회견때, 왕양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며 이렇게 말한다: "각급 당위와 정부의 관련부서가 진정으로 가장 광대한 인민군중의 근본이익을 대표할 수 있다면, 일부분 사람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면 우리의 개혁은 가장 관건적인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익국면이 개혁에 영향을 주는 문제에서 먼저 집정당과 정부의 머리에 칼을 대야 한다."

 

2012년 5월 9일, 광둥성대표대회에서, 왕양은 보고를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반드시 인민의 행복은 당과 정부가 은혜적으로 주는 것(恩賜)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타파해야 한다." 그후, 신화사는 평론을 싣고, "행복은 은사(恩賜)가 아니다"는 중요한 현실적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은사'관념을 가진 관리는 왕왕 성적을 개인의 공로로 주장한다. 인민은 반드시 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관리는 인민의 공복이라는 포지셔닝이 무너지게 된다.

 

10년전, 왕양은 국무원 부총리에 오른다. 미중전략및경제대화에 출석하여, 미중간에 '선택적이혼'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를 보면 당시 중공내부에서도 미중관계의 위기를 알아차린 것같다. 다만 미중관계완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확실히 우위를 점하지 못했던 것같다. 왕양도 갈수록 조용해지고, 그저 간단히 시진핑의 말을 부화(附和)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2021년 베이다이허회의를 전후하여, 왕양이 20대에 시진핑의 자리를 물려받아 중공총서기에 오를 것이라는 소문이 돈 적이 있다. 나중에는 다시 왕양이 리커창의 자리를 물려받아 국무원총리에 오를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금년 베이다이허회의후에, 왕양은 바로 두번이나 얼굴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다시 후춘화를 도왔다. 왕양은 아마도 국무원총리를 맡지 않을 것이지만, 정치국상위를 계속 맡을 가능성은 더욱 커진 것같다. 그러나 이전보다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리커창이 샤오제의 승진을 돕는다?

 

리커창은 8월 16일 광둥 선전을 시찰한 후, 8월 19일 다시 국무원 상무회의를 주재한다. 다시 한번 "경제는 연속하여 발전을 회복하는 태세이나, 여전히 소폭의 파동이 있다"고 하면서, "소비확대"등을 연구하라고 했다. 당매체는 정상적으로 리커창을 보도했고, 별다른 이상조짐은 없었다.

 

8월 22일, 신화사는 주요뉴스로 "샤오제가 국무원제9차대독차동원배치대회에서 강조했다. 감독과 조사를 심도있고 자세히 하는 것을 강조하여, 중대의사결정을 실제로 집행되도록 추진한다." 국무원 비서장에 관한 보도가 신화사의 주요뉴스로 올라오는 것은 드물다. 샤오제는 강화에서 시진핑의 지시를 학습관철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코로나는 막아야 하고, 경제는 안정시켜야 하고, 발전은 안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리커창의 요구도 집행해야 한다고 했다. "거시경제의 틀을 안정시키는데 힘을 써야 한다" 그리고 "정치인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경제의 평온한 운용과 사회대국의 안정을 유지하면서" 20대를 맞이해야 한다.

 

샤오제는 현재 국무위원을 겸임하고 있고, 금년 65세이다. 아마도 20대때 정치국에 들어갈 것이다. 샤오제는 일찌기 재정부 부부장, 중공후난성위상위 및 부성장, 세무총국 국장을 지냈다. 2013년 3월, 샤오제는 국무원상무부비서장으로 리커창의 일상업무를 책임졌다; 2016년에는 재정부부장이 된다; 2017년 10월에 다시 국무원으로 돌아와 상무부비서장이 되고, 중앙국가기관공위서기, 국무원기관당조서기를 겸임한다; 2018년에는 국무위원, 국무원비서장이 된다.

 

샤오제는 리커창의 신변에 있는 인물이다. 당연히 리커창의 신임을 받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샤오제가 시진핑의 사람이라고 말한다. 리커창은 아마도 샤오제가 정치국에 진입하는 것을 지지할 것이고, 시진핑진영의 동의도 받았을 것이다. 이것도 아마 베이다이허회의의 결과중 하나일 것이다.

 

시진핑은 연임을 위하여, 부득이하게 잠시 공청단파와의 동맹을 선택했다. 공청단파도 이 기회를 빌어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한다. 다만 각파의 투쟁과 타협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