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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무엇이 "경외세력(境外勢力)"인가?

by 중은우시 2022. 7. 29.

글: 노전(老錢)

 

공삼마규수(孔三媽叫獸, 규수는 敎授를 비하하는 말이며, 북경대학의 孔慶東을 가리킴)의 6.4천안문사태에 관한 TV인터뷰를 보았는데, 나는 정말 동의하기 어려웠다. 나는 그를 '공삼마'라고 비하해서 부르는 수밖에 없다.

 

며칠전에 그에 관한 뉴스가 올라왔다. 6.4를 지지하여 공경동(콩칭둥)의 웨이보가 폐쇄당했다는 것이다. 그가 강의때 학생들에게 6.4에 대하여 얘기하면서, "아예 폭란(暴亂)은 없었다. 너희(중공)가 총을 쏘아서 인민민중을 유혈진압한 후에 죄를 거꾸로 뒤집어 씌운 것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 대하여 약간의 호감을 가졌다. 양심이 아직 남아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계속 그의 TV인터뷰를 보았다. 6월 5일, 내 기억에 한 글에서 본 것같은데, 다음 날은 그 글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Google에서 검색한 후 둬웨이(多維)의 보도를 통해 검색해냈다. 비록 유투브에서 본 TV대담과 같았지만, 글의 내용은 전날 찾아보았던 것과 같은 내용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전날의 글에서는 대담자의 말투, 용어와 신분, 전문수준을 모두 분석하고, 인터뷰의 배경, 내력과 의도까지도 추측했었다.

 

공삼마는 인터뷰에서 마치 중용을 지키는 듯했다. 6.4운동의 초기에 대하여는 아주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다만 나중에 내용이 완전히 바뀌어, '경외세력'을 언급하기 시작한다. 그의 유일한 기준은 '경외세력'이 있느냐 없느냐인 것처럼 보였다. 만일 있다면 그것은 '변질'된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이익요구, 하나의 민중운동이다. 그렇지 않은가? 먼저, 그들의 주장 자체를 보아야 한다. 요구가 합리적인지 아닌지. 그렇지 않은가? 단지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의 배후에 누가 있을 수 있은지만을 보아야 한단 말인가? 만일 자신이 논리적으로 밀리고, 상대방이 논리적으로 우위에 있다면, 상대방의 말을 인정하면 된다. 무슨 세력이든 이치에 맞는 말을 한다면 말이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라면 무슨 세력이든 받아줄 수가 없는 것이고.

 

무엇이 "경외세력"인가? 뒤에서 다시 얘기하기로 하자. 경외세력이 없다면 학생들의 요구하는 것은 괜찮단 말인가? 기실, 경외세력이 없더라도, 그건 안될 것이다. 절대로 안될 것이다. 공삼마의 '이성'은 쓸모가 없다. 유치하지 않은가?

 

이 점에서 모측동(茅厠洞, 모택동을 가리킴. 띠로 만든 화장실 구멍이라는 뜻), 등소평은 노련한 정치가이고, 그들의 안목은 깊이가 있고, 정확하다. 그들의 판단도 정확했다. 다만, 그들은 민중의 편에 서지 않았고, 민족대의의 편에 서지 않았고, 반역사의 편에서 흐름을 거스르는데 섰을 뿐이다. 사실은 "4.26"사론(社論)이 먼저 나왔고, '경외세력'은 나중에 찾아낸 것이다.

 

"신발이 맞는지 아닌지는 발이 가장 잘 안다"는 말이 있다. 발은 알고 있다. 자기사 신발을 당초에 잘못 신었다는 것을 그래서 후회막급이다. 그리고 이 "마법신발"은 한번 신으면 벗을 수가 없다. 그리고 벗으려하면 할수록 더욱 조인다. 벗으려고 하면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 백성들은 피를 흘리는 것은 원치 않는다. 단지 이 '마법신발'이 약간 양보하고, 개선하고, 좋은 방향으로 바뀌길 바랄 뿐이다.

 

중화민족은 송나라이래로, 계속 이민족에 유린당했다(기실 전인류의 역사가 이러하다). 근대에도 고통을 겪은 후, 국민당이 항전에서 승리한 후 급격히 부패하였기 때문에, 방향을 바꾸어 희망을 공산당, 모택동에게 걸었던 것이다. (기실 항일전쟁이 끝났을 때, 장개석의 명망은 이미 중천에 뜬 해와 같았으나, 국민당은 부패로 스스로를 망쳤다). 그러나, 공산당은 정권을 탈취한 후, 몇년이 지나지 않아 모택동이 미국을 숭배한다. 민주를 찬양하는 화려한 말들과 맹세는 지금도 귀에 맴돈다. 그러나, 모두 거짓말이었고,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공전절후의 군사봉건독재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하여 신속히 부패하고, 헛짓거리를 하여 전국의 인민들을 극히 실망시키고, 속았고 배신상했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프라이버시를 잃었고, 사상의 자유도 없었다. 농민의 토지도 얻었다가 다시 빼앗겨 농노보다 못하게 된다. 공농업은 엉터리정책으로 망가진다. 저명한 우파 저안평(儲安平)은 1947년에 이렇게 예언한 바 있다: "우리가 장개석과 자유를 다투는 것은 다소(多少)의 문제이다. 나중에 모택동과 자유를 다투는 것은 유무(有無)의 문제일 것이다" 그의 말은 충분히 증명되었다. 저안평은 지금 사불견시(死不見屍), 활불견인(活不見人)이다. <양검(亮劍)>에 나오는 '공화국'의 공신 이운룡(李雲龍), 조강(趙剛)은 현실사회에서 한쌍의 부부이다. 6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러나 모두 원한을 품고 자결한다. 수천수만의 지식인, 민족의 엘리트들은 협피구(夾皮溝), 북대황(北大荒)으로 보내 굶어죽고, 얼어죽고, 온갖 고난을 겪으며 죽어가게 만들었다. 

 

문화대혁명이후 국가주석, 개국공훈들도 참혹하게 박해받는다. 임표가 묘사한 것처럼 이건 "교육기(絞肉機, 고기분쇄기)"였다. 중국인민은 통열하게 반성해야 한다. 문제가 어디에 있었는가? 개혁개방후의 전면적인 부패, 신속한 부패로 실제 전면적으로 궤멸하여, 중국인민들 광대한 하층간부와 당원까지 포함하여 모두 인식해버리게 되었다. 이 제도는 문제가 있다. 이건 제도적인 문제이다. 중국인들은 이 독대제도가 부패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호요방(胡耀邦), 조자양(趙紫陽), 육정일(陸定一), 여기에 습중훈(習仲勛, 시중쉰, 시진핑의 부친)을 포함하여. 그리고 연명에 이름을 올린 노장군들, 항명한 서근선(徐勤先)...이들은 모두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청년시대의 혁명의 초충(初衷)을 잃지 않았다. 당내의 고위 인사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더더구나 이예(李銳), 호적위(胡績偉)등등, <염황춘추>의 원로혁명가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습중훈의 미망인 제심(齊心) 여사는 조자양이 서거했을 때, 아무 것도 따지지 않고, "자녀를 데리고" 조자양의 영전에 조문하러 간 것이다.

 

그래서, 등소평 및 크고 작은 좌파의 완고파들은 그들에게 '자산계급자유화'라는 모자를 씌웠다.

 

'발'은 일찌감치 신발을 잘못 고른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이건 제도문제라는 것을. 기실 등소평도 알고 있었다.

 

당연히 모택동, 등소평은 더욱 잘 알고 있었다. 인민의 분노는 이 당에 대한 것이고, 이 제도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다만, 그들은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인민들앞에서 고개를 숙이거나, 인민들이 고개를 숙이게 만들어야 했다. 만일 그들에게 양심이라는 것이 남아 있고, 젊은 시절의 혁명에 대한 초충이 남아 있었다면, 그들은 절대 인민들이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선택했다. 인민들이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것으로. 피가 강물을 이룬다고 하더라도. 모택동은 정권을 잡은 후부터 한 일들중에 좋은 일히 하나도 없다. 매번 일으키는 운동은 사람을 숙청하는 것이었다. 목적은 바로 인민들 그가 개조환대에 성공하도록 도와준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택동은 "반우"를 일으킨다. 등소평도 "반우운동"에 대하여 철저히 명예회복시켜주지 않았다. 기실 그들은 '정확'했다. 독부국적(獨夫國賊)의 입장에서 확실히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래서, 경외세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인민을 진압하기 위하여, 인민을 기망하기 위하여, 반드시 핑계가 있어야 했다. 사실, 그건 '막수유(莫須有, 송나라때 악비를 처벌할 때 쓴 말. 그런게 있을지도 모른다)'이다. 다만 핑계는 반드시 있어야 했다. 없으면, 찾아내야 했고, 만들어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병사들을 동원할 수 있단 말인가?

 

개혁개방을 하기 전에, 중국민중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때의 핑계, 그때의 '죄명'은 모두 '반당(反黨)', 반사회주의, 반혁명이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개혁개방이 되고나서, 중국은 세계와 연결되었다. 중국인민도 외부세계를 보게 되었다. 외부세계도 들어와서 보게 되었다. 비록 여러가지 속박이 있지만, 그래도 경외세력의 자금은 필요했고, 경외세력의 기술도 필요했다. 그게 없어믄 '지구적(地球籍)'에서 제명되는 것이다. '지구적'이 없으면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공산당은 '피지부존(皮之不存), 모장언부(毛將焉附)'할 것인가(가죽이 없으면 터럭은 어디에 붙을 것인가).

 

당초 등소평도 경외세력을 방문한 뉴스가 신문의 1면에 올라오고, 경외세력의 국회에 가서 연설을 하고, 경외세력의 지원을 받았다. 장쩌민등도 취임하자마자 급히 경외세력의 지지를 호소했고, 경외세력이 깔아주는 레드카펫을 즐겼고, 불고기를 먹었다. 그때 공삼마는 왜 '변질되었다'고 소리치지 않았는가?

 

시대가 달라졌다. 반당, 반사회주의의 죄명은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중국도 더이상 공개적으로 언론을 가지고 처벌하기는 쑥스러을 정도로 진보한 것이다. 그래서, '여시구진(與時俱進, 시대의 흐름을 따라 나아가다)"해야 했다. 그래서 새로운 핑계를 발명하고, 새로운 죄명을 발명했다. 그것은 "경외세력"이다. "경외적대세력은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생각을 거두지 않았다."

 

삼십여만명의 야전군을 동원하여, 탱크로 깔아뭉개고, 실탄을 밀집된 군중들에게 발사할 때로부터 25년이 지났다. 그럼 그럴 듯한 증거가 있는가? 외부세력이 선동 조직했다는 증거가? 없다. 그럴 듯한 증거는 단 하나도 없다.

 

6.4이전의 4.5에 주은래를 추도하는 민중운동이 있었다. 나중에 소위 말하는 자산계급자유화운동이다. '경외적대세력'이 했다는 그럴듯한 증거라도 내놓았는가?

 

6.4이후, 매년 갈수록 많은 수천수만의 민중이 길거리로 나와 항의했고, 수만 십수만의 민중이 길거리로 나와서 정부의 폭력철거, 폭력이주를 항의하고, 정부의 각종 잘못을 항의했다. 이것도 '경외세력'이 참여한 것인가? 그랬다는 증거라도 있는가?

 

이런 충돌의 발생, 발전은 모두 정부 자신의 폭정과 악정때문에 일어난 것이고, 조성된 것이다. "경외세력"은 단지 민중을 진압하고, 민중에 독수를 쓰고, 악랄한 수법을 쓰기 위한 "막수유"의 이유일 뿐이다. 그러나, 등소평이건 보시라이건, 시진핑이건 모두 그렇게 말한다.

 

거의 모든 베이징의 대학생, 전국의 대학생들은 보지도 않고, 그들 배후에 '검은 손'이 있고, '경외적대세력'이 있는 것만 보인다. 그들은 민족의 엘리트들이다. 그들은 민족의 미래이다. 그들은 전중국의 곳곳, 각종가정에서 온 중화민죽의 엘리크인데, 모두 그렇게 멍청하단 말인가? 수십만, 심지어 백만의 베이징시민은 베이징에서 왔다. 각계각층에서 왔고, 많은 공산당간부, 공산당원이 포함된다. 그것도 보지 않고, 그들 배후에 '검은 손'이 있고, '경외적대세력'이 있단 말인가? 전국인민의 분노에 대해, 이게 무슨 논리이고, 무슨 엉터리 역사학교수인가? 경외세력이 그들의 편이든 아니든간에 이렇게 수천수만의 민중이 모두 바보멍청이란 말인가?

 

이것은 민심이다. 이것이 민의이다. 공삼마나 그의 배후의 세력은 정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만일 경외세력이 있다면, 이런 거의 전체 중국인민의 배후에 선다는 것이 바로 그들이 제대로 입장을 정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중국인민의 편에 선 것이다.

 

무엇이 경외세력인가? 몇년전, 나는 류샤오보(劉曉波)가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때, 글을 하나 쓴 바 있다. 이렇게 적었다:

 

세계는 이미 지구촌이 되었다. 신주대지상의 일은 세계와 일찌기 하나로 연결되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향공화(走向共和)>를 보았는지 모르겠다. 당시의 '서양인'은 일치하여 서태후에게 광서제의 '석방'을 요구했다. '서양인'은 서태후 청나라조정의 어의의 보고서를 믿지 않았고, '양의'로 하여금 광서제의 신체를 검사하도록 요구했고, 광서제와 직접 얘기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건 내가 <주향공화>를 본 후에 비로소 알게 된 역사의 장면이다.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비록 완전히 대비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어느 정도 유사한 일이 벌어지는 것같다.

 

1,2백년의 일은 나중에 시간이 나면 다시 이야기하자. 먼저 최근의 일을 얘기해보기로 하자. 한 대학생을 때려죽인 암흑의 노동개조제도를 없애고, 인신매매당하는 부녀를 구해주고, 노예노동하는 아이를 구해주고, 세계에서 가장 대단한 알박기, 한건이 두건으로 두 건이 세건으로, 지금까지 계속되는 철거민의 분신자살, 지구유(地溝油)....그 어느 것하나 인터넷을 들썩이게 만들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일이 되고난 후에 비로소 진지하게 처리하게 된 것이 아닌가. 만일 인터넷이 없고, 만일 많은 세계각국의 기자가 중국에서 쳐다보고 있지 않으면, 만일 죽의 장막안에 갇혀서 있었다면, '쥐잡듯이 안에서 몰아부쳤다면' 외부에서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매체에서 공개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여론도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여하한 일도 시정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관료들끼리 서로를 보호하고, 관료와 상인들이 결탁하고, 흑백황의 3도가 결탁하여, 기득권자들이 절대로 백성들에 대해 연민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전세계에서 두눈 부릅뜨고 보면서 여론의 압력이 없었다면, 서태후부터 지금의 조정까지 누구도 스스로 나서서 백성들의 말에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꿈도 꿀 수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민선이 아니고, 중국인의 약간의 가련한 존엄마저도 외부의 압력하에 부득이 양보하고, 어쩔 수 없이 했던 것이다. 한다고 하더라도 관청에서 불을 지르는 것은 가능하지만, 백성들이 등을 켜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말은 위광정(偉光正, 위대, 광영, 정확)이고, 백성의 말은 '하해(河蟹, 강의 게,和諧와 발음이 같음)'를 파괴하는 것이다. 외국인의 말은 '경외세력'이고 '나를 멸망시키려는 마음이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 친구들은 한번 생각해보라. 만일 장언용(蔣彦勇) 의사가 SARS에 대하여 뉴욕의 Times에 폭로하지 않았다면, SARS는 이 세계에 얼마나 거대하고 얼마나 공포스러운 재난을 가져왔을까? 당시의 위생부장은 자신의 가슴을 치면서 전세계에 보증했다. "나는 책임있게 말할 수 있다. 베이징에는 없다...." 감히 천하의 금기를 어기면서 두눈 멀거니 뜨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반세기동안 '가대공(假大空, 거짓말, 큰소리, 헛소리)'을 해왔기 때문에, 이미 습관이 되어 버린 것이다. 현재, 생각해보면 정말 겁난다. 가장 먼처 화를 당할 것은 전세계의 중국계이다. 그후에 전체 세계이다. 1918년처럼 전세계의 거의 절반이 감염되고, 2,200만명이 사망한 스페인독감처럼, SARS도 한 정부의 거짓말로 인하여 반인위적으로 더욱 큰 세계적 재난이 조성될 것이다. 중화민족은 이에 대하여 영구히 역사적인 책임과 욕을 얻어먹게 될 것이다. 현재, 대륙에도 이미 CDC가 있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통보할 수밖에 없다. 비록 아직은 어중간하고, 통제가 있고, 선택적이긴 하지만. 이런 진보를 장언용 선생과 Times의 공로라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설마, 경외세력이 끼어들었기 때문에 변질되었다고 할 것인가? 설마 SARS에도 경외와 경내가 서로 다르단 말인가?)

 

1,2백년간의 일은 우리에게 설명한다. 중화민족의 약간의 민권진보는 모두 세계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중국사회는 진보하고 있고, 그것도 크게 진보하고 있다. 다만, 이것은 조정의 공로가 아니라, 인민의 공로이고, 국내외 모든 정의역량이 압박한 결과이다. 중화민족이 어렵게 전진할 때, 등에 지고 있는 것은 3개의 큰 산(의료, 교육, 주택)뿐아니다. 이 큰 산들은 모두 이 제도에서 나왔다. 무엇이 국제화하는 것인가? 바로 보편적으로 공인된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중국을 사랑하고, 중국이 진보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모두 역사의 진보쪽에 서야 한다. 정부가 앞으로 나가도록 밀어주어야 한다. 정부의 편에 서서, 정부를 이해하고, 진보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견책해서는 안된다. 민주사회라는 것은 인민이 영원히 의심의 눈으로 정부를 지켜보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사회의 진보는 전족을 한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원촨대지진대, 원자바오는 확실하게 보증한 바 있다. 두부찌꺼기공사는 반드시 조사하여 처벌하겠다고. 반드시 사망학생명단을 공개하겠다고. 2년이 지났다. 그가 약속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볼 수 있는 것은 두부찌꺼기공사를 추적조사하고, 사망학생의 명단을 확인하는 부모들과 기자들이 돈으로 매수되던지, 강제로 입막음을 당하던지, 아니면 류샤오보처럼 형을 받아 감옥안에 들어가든지 했다. 원자바오의 자그마한 약속을 지켜달라는 것이 그렇게 조급해하는 것이고 서두르는 것인가? 이건 분명히 백성과 간사한 업자 그리고 간사한 업자를 비호하는 관료들 사이의 대립이다. 설마 백성들이 마땅히 정부의 이런 '곤경'까지 이해하고 '조급해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아야' 한단 말인가? 이것을 가지고 '중국민주는 지나치게 빨라서는 안된다'고 해야한단 말인가?

 

도대체 경외세력이라는 것이 있는가? 있든 없든간에, 먼저 이 모자부터 씌우게 되면, 그렇다. 바로 성공한 것이다. 중국의 일반 민중은 독재의 강경한 언어환경시스템 속에서, 너무 오랫동안 세뇌되었고,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하게 된다. 일단 경외세력이라는 말만 들으면 겁을 낸다. 

 

예전에 외무장관, 국무위원이었던 전기침(錢其琛)이 기자회견을 할 때 한 외국기자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들은 반부패해야 한다고 하는데, 웨이진셩(魏金生)이 바로 반부패를 요구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그를 감옥에 넣었는가?" 그러자, 전기침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죄를 뒤집어 씌우려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때는 아직 발달되지 않았고, '경외세력'이라는 것도 발명되지 않았을 때이다. 확실히 웨이진셩 배후의 경외세력을 찾아내지 못했다.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나도 운이 좋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이 '고기분쇄기'에서 '분쇄된 고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자신이 스스로 경외세력에 의해 세워지고 성장했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리고, 공산당은 외국으로 침투할 능력만 있다면 아무 맹렬하게 외국으로 확장하려 하지 않는가? 다른 국가의 '경외세력'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가?

 

문혁때, '흑오류(黑五類)', '취노구(臭老九)'라는 것이 있었다. 일단 모자를 씌우면 쉽게 죽을 때까지 칠 수 있다. 상대방은 끝장나는 것이다.

 

소위 '경외세력'은 모택동의 '계급분석', '계급투쟁'의 거짓말계통이자, 통치기량의 연속이다. 바로 '고기분쇄기'의 한 치륜(齒輪)인 것이다.

 

이번에 나는 카마의 <64천안문사건>의 유투브를 보았다. 최근에 다이칭(戴晴)은 <64사건전정실록>을 발표했다. 다이칭의 말에 따르면, "아무 이유없이 보통사람에게 정치적 레테르를 붙이고, 박해했다. 이건 공산당의 관용수법이다."

 

64는 정부에서 모든 인민을 자신의 반대편에 서게 만든 것이다. 외국인이 무슨 말을 했건 말건, 외국인이 무엇을 말했던 간에, 모두 정부의 잘못이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중국백성들은 온순하기가 순한 양과 같다. 막다른 골목에 몰리지 않으면 어찌 반란을 일으키겠는가? 분명 정부가 모든 자원을 장악하고 있다. 결혼, 자녀출산, 주택공급, 급여, 토지공급, 시미유염(柴米油鹽), 의식주행, 세세한 것까지 모조리 장악하고 있다. 마치 공기와 같이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경외세력에 바로 당할 수 있단 말인가?   손톰발톱부터 머리카락 하나까지 모조리 무장한 독재정권이 어찌 '경외세력'을 물리치지 못한단 말인가? 그건 스스로를 폄하하는 것이 아닌가. 기실 그건 민심을 다 잃었다는 뜻이다.

 

공삼마는 말끝마다 "나는 역사를 공부했다", "나는 역사를 안다", "나는 이성적이다"라고 말하는데, 완전히 모택동의 깡패사상체계, 변론기량과 언어계통을 계승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공삼마같은 교수는 하나의 문제를 보고 하나의 토론에 참가하면서, 평정된 마음으로 주제에 대하여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하자마자 문혁초기의 변론과 마찬가지로 '너의 성분은 어떻게 되는가? 어디에서 태어났느냐?"라고 묻기 시작한다. 먼저 상대바으이 성분을 분석하고, 배경을 분석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차이링(柴玲)등의 언어는 모두 문혁적이라고. 그렇다. 늑대젖을 먹고 자란 아이가 어떤 말을 할까? 사실상 공삼마의 사상방법이야말로 문혁적인 것이다.

 

아마도, 공삼마는 바로 이런 성격과 수준일 것이다. 볼테르의 신도로서 나는 너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나는 네가 말할 권리는 죽어라 보장할 것이다. 그러나, 북경대학의 역사교수로서, 이런 말의 역사적 작용과 사회효과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민중의 발언권문제가 아닌가. 그리고 너는 발언권리도 없는 약한 민중이 아니다. 너에게는 발언권이 있을 뿐아니라, 아주 크다. 아주 클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배후에 '세력'이 있는 것이다.

 

무슨 경외세력? 기실 이건 보편적 가치를 거부하는 졸렬한 핑계일 뿐이다.

 

공삼마가 배운 역사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공삼마는 역사학교수의 신분으로 역사적인 큰 거짓말을 했다. 이것이야말로 "조금 욕해서 크게 도우는" 것이다. 아마도 공삼마는 <귀래(歸來)>에서 '경외세력'의 냄새를 맡은 건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당초이건 현재이건 나는 64운동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상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공산당이 양보한다는 것을. 특히 강시같은 노인들이 아직 살아있는 한, 조정에 간여할 수 있는 상황하에서, 설사 호요방, 조자양과 같이 개명한 지도자라 하더라도 그들의 최후는 비극일 것이다. 왜냐하면 전체 이익집단이 양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TV인터뷰를 내보내는 것은 아마도 화해의 뜻을 보이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다만, 반드시 인민에게 평등한 지위를 주어야 한다. 인민을 하인 대하듯이 다루어서는 안되고, 인민에게 양민(良民)이 될 것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먼저 큰 모자를 씌워서 민중을 겁주어서도 안된다. 만일 공산당이 중화민족의 장기적인 이익을 고려한다면, 반드시 당금(黨禁)을 풀어야 하고, 언론자유를 개방해야 하고, 중국의 백성들이 참여하도록 하고, 참여하는것을 배우게 해야 한다. 가장 좋은 길은 공산당의 당내민주부터 시작하여 먼저, 호요방, 조자양같은 개명파들이 일을 주도하게 해야 한다. 다음으로 보시라이같은 당내에 야심있는 자들, 공경동같이 당내의 '이견을 가진 자들'(만일 사실이라면)에게 공평의 원칙하에 충분히 자신의 의견을 밝힐 기회를 주어야 한다. 당연히 전제는 있다. 형사범일 수는 없다.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 폭발한다. 더욱 조일수록 더욱 크게 폭발한다. 결국 재난을 당하는 것은 중국의 백성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