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두제의 형성
모택동은 자신을 우두머리로 하는 절대 금자탑의 독재체제를 건립했다. 다만 이 체제하에서는 모든 사람이 위험하다. 모택동 자신을 포함해서. 그는 계속하여 권력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생활했다. 그래서 여하한 부하도 세력을 모으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가 사망할 때, 원래 명성이 비교적 높았던 정치인물 유소기, 임표, 주은래, 주덕등은 모두 사라졌다. 남은 정치파벌은 모두 약소했다. 모택동이 지정한 후계자인 화국봉은 정치적 난장이였다. 누구도 모택동의 의발을 이어받을 실력이 없었다. 그리하여 모택동이 설계한 체제가 위기에 빠진다. 다른 공산당국가도 유사했다. 강자가 떠난 후에는 항상 정치불안정이 나타났다.
궁중정변을 통하여, 거기에 암실정치를 통하여 결국 등소평이 섭검영과 손을 잡고, 먼저 모택동의 부인 강청을 타도하고, 다시 화국봉을 타도한다. 그러나 등소평, 섭검영 두 사람의 정치적 자본은 유한했다. 권력을 탈취하는 과정에서의 정당성도 부족했다. 전당, 정국의 갈등이 대폭발하는 것과 정적의 대반격을 막기위해서, 그들은 모두 명목상의 최고지도자에 오르는 것을 거절한다. 섭검영은 가족을 위하여 거액의 이익을 쟁취하면서, 2선으로 물러난다. 등소평은 군권을 장악하여 단지 태상황에 올라 무명소졸인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을 '아황제(兒皇帝)'에 앉힌다.
이런 안배는 권력금자탑의 최정점을 약화시켰고, 체제는 자연스럽게 여러 파가 권력을 나누어가지고 상호의존하면서 견제균형을 이루게 된다. 중국정치는 그리하여 모택동시대의 금자탑국면에서 등소평시대의 과두체제로 바뀐다. 당시 최대의 과두는 등소평가족, 섭검영가족, 진운가족, 양상곤가족등이다. 나중에 변화를 거쳐, 지금은 시진핑가문, 장쩌민가문, 후진타오가문, 등소평가문, 섭검영가문등이다. 몇십년동안 과두간의 다툼은 있었지만 깨지는 않았고, 객관적으로 상호감독과 제약이 이루어졌다. 기본적으로 모택동시대의 미친듯한 정치운동을 회피하면서, 경제발전의 여건이 마련되었다.
과두정치는 미국세력이 중국에 진입할 기회를 제공했다. 각파벌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모두 미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미국으로 하여금 사실상 파벌간의 의견전달자, 각측의 행위증인, 실패자의 피난소등의 역할을 한다. 정치인물은 미국을 자신과 가족의 피난소로 여겨서 그다지 실패를 겁내지 않았다. 정치투쟁에서도 레드라인은 지켜질 수 있었다. 교환으로,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여 경제상업자유, 노동보호등의 관념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미국회사도 중국에서 돈을 벌 수 있었다. 결국,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하에, 백성들은 여전히 정치권력이 없었다. 다만 국내외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이익을 취했다. 그들은 모두에게 좋았고, 중국은 40년의 평화로운 대발전이 이루게 된다.
과두제의 쇠락
기득이익권자들은 당연히 현재의 정치국면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원하나, 아쉽게도 그럴 수 없었다. 등소평시대에 파벌이 공존했던 최대의 기초는 등소평 본인이었다. 그는 군권을 장악했지만, 직접 집정하기는 불편했다. 그래서 여러 파벌이 평화공존하게 된다. 그가 사망한 후, 그가 남긴 인사와 매커니즘은 계속 작용을 했다. 예를 들어, 그가 격대지정한 후진타오가 후계자가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작용은 갈수록 힘을 잃어갔다. 파벌간의 관계도 점점 자연상태로 돌아간다. 즉 초한상쟁의 상태가 된 것이다. 모든 파벌은 상대방이 자신을 소멸시킬거라고 우려했고, 유일하게 효과적인 방법은 먼저 상대방을 소멸시키는 것이 된다. 이는 피드백을 낳고, 의심은 다시 의심을 낳았다. 투쟁은 더욱 투쟁을 불러온다. 금방 각파벌간에 상호 소모전이 벌어진다. 모두 실력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기게 된다. 초한생쟁의 마지막결과는 한나라가 진나라의 제도를 따른다는 것이다. 즉 독재체제이다. 강대한 보증인이 없는 과두제는 자연스럽게 독재제로 옮겨가게 된다.
현재까지, 장쩌민파와 공청단파의 원로들 예를 들어 장쩌민, 후진타오, 주룽지, 원자바오등은 아직 타도되지 않았다. 이는 등소평의 유산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로들은 아마도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이 있을 것이다. 다만 시진핑이 성공적으로 헌법을 수정하고, 공개적으로 무기한연임을 요구했다. 이는 그의 권력이 이미 아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등소평시대의 제도안배는 그에 대한 구속력이 이미 아주 약해졌다. 현재 시진핑이 독재할만한 실력이 있는지여부를 외부에서는 알 수가 없다. 장기적으로 보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등소평의 영향력은 갈수록 옅어질 것이고, 독재제로의 회귀가능성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과두들은 민주를 원치 않는다.
이치대로라면, 극권제도하에서 고위층투쟁에서 열세인 측은 자유민주의 기치를 내걸고 민주파를 끌어들여 민의와 같은 편에 서서 자신의 실력을 키울 수 있다. 만일 승리한다면, 민주파는 파이를 나눠가질 수 있고, 자유민주사업은 한단계 나아갈 것이다. 옛날 조자양은 그렇게 했지만, 아쉽게도 실패했다. 다만 오늘의 중국에서 고위층중 그 어느 파벌도 명확하게 민주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 배후의 원인은 간단하면서도 근본적이다. 6.4이후, 중공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악독한 전략을 하나 채택한다. 그것은 고의로 모든 관리들을 부패하게 만드는 것이다. 부패하지 않으면 현실에서 관리로 남아 있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통치집단이 '공범'인 구조가 형성된다. 모든 사람은 죄가 있다. '청백한' 사람은 그저 아직 조사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관리들은 알고 있다. 만일 정부가 바뀌면, 자신은 신패명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중공이 계속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지지하고 민주화는 배척하는 것이다.
설사 중공이 탐관오리 한명을 조사해 내더라도, 그의 모든 범죄소득을 몰수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체제내의 사람들이 모두 알게 만드는 것이다. 설사 자신이 최후에 낙마하더라도 당이 집권하고 있는 한, 그는 가족들에게 상당한 재산을 남겨줄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중공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민주화보다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예를 들어, 보시라이가 부정부패와 뇌물수수죄로 낙마했는데, 정부에서 공표한 사건금액은 약2,500만위안이다. 이건 베이징에서 집한채를 사기에도 부족하다. 그가 낙마한 후, 그의 아들 보과과는 계속하여 미국에서 귀족같은 생활을 보내고 있다. 미국, 캐나다, 베이징, 상하이, 홍콩등지에 모두 중국탐관의 가족이 많이 살고 있다. 그들은 호화생활을 즐기고 있다. 설사 그들을 받쳐주는 탐관이 체포되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보시라이가문의 상황이 특별한 것이 아니다. 과거 몇십년간, 고위층의 모든 가족은 대량의 재산을 긁어모았다. 중공의 이런 방식은 그들의 충성심을 유지하도록 하는데 아주 효과적이다.
만일 정치투쟁이 격렬하게 바뀌면, 고위층에서 아마도 민주화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목소리는 1980년대보다 훨씬 약해질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미봉책일 것이다. 진심으로 중국의 민주화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1980년대와 비교하면, 현재의 고관들은 돈이 너무 많다. 그들은 민주정권에 청산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중공20대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시진핑이 20대에 당의 총서기와 국가주석직을 연임할 것이냐이다. 내 생각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군위주석을 연임하느냐일 것이다. 만일 그가 군대에서 지고무상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의 지지자들은 미리에 청산될 것을 겁낼 필요가 없다. 그들이 사람들을 숙청하고, 극권조치를 취했던 것에 대하여도 아무런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시진핑이 더욱 빨리 독재자가 되도록 도와줄 수 있고, 다른 파벌의 사람들을 숙청할 수 있다. 만일 시진핑이 군대에서의 최고지위를 잃게 되면, 모든 사람들은 그가 중대한 실패를 겪었다고 여길 것이고, 정치적으로 패군지장이라 여길 것이다. 그의 반대자들은 고무될 것이고, 그의 잘못을 추궁하게 될 것이다. 중국의 미래는 불확정적이 될 것이고, 아마도 과두제로 회귀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또 다른 독재자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중국권력의 대원칙은 누구든 군권을 장악하면 그가 이긴다는 것이다. 다른 요소는 부수적이다. 3년대기근때 수천만이 아사했는데, 유소기가 맞대놓고 모택동을 비판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굶어죽었는데, 역사는 너와 나의 이름을 적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택동에게 행정권을 내놓도록 압박했다. 다만 모택동은 군권을 지켰다. 1964년 유소기의 권력이 최대로 커졌을 때, 모택동은 다른 중앙지도자들 앞에서 유소기를 질책한 바 있다: "네가 뭐 대단한게 있느냐. 내가 손가락 하나만 까닥해도 너를 무너뜨릴 수 있다!" 모택동이 이렇게 자신만만했던 근본원인은 그가 군대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2년후 그는 성공적으로 유소기를 타도한다.
시진핑의 연임은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의 현재권력은 문혁개시때의 모택동보다 크다. 시진핑은 군대를 장악했을 뿐아니라, 정보와 행정계통도 장악하고 있다. 군대외에 정보계통도 아주 중요하다. 연안정풍이후, 중공최고지도자는 부하들에 대한 통제를 아주 엄밀하게 행했다. 최고지도자를 제외하고, 모든 고위간부의 경호원, 운전기사, 보모등은 모두 상급이 심어놓은 스파이이다. 그의 언행은 계속 보고된다. 여하한 사적인 정치움직임도 곤란해지는 것이다. 현재 다시 새로운 인터넷과 디지탈기술이 나타나서 정보계통의 기능은 더욱 업그레이드되었다. 정보계통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시진핑에게 아주 유리하다.
중공의 궁중정치는 아주 궤이하다. 설사 시진핑이 20대에서 실패하더라도, 예를 들어 일부 직함과 직권을 잃게 되더라도, 그가 계속 군대와 정보계통만 장악하고 있으면, 그는 권력으로 복귀해서 모택동식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단지 약간의 우회가 있고, 시간이 더 걸릴 뿐인 것이다. 이를 보면 중국이 미래에 독재제로 회귀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 기실 많은 사람들은 일찌감치 이런 추세를 보았다. 예를 들어, 보시라이는 여러 해전에 '창홍가'를 지지했고, 시진핑보다 더욱 소리높여 모택동노선을 외쳤다. 예상가능한 미래에 누가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되건, 독재로 회귀하는 것은 대추세이고, 역전시키기는 어렵다.
20대는 당연히 권력투쟁의 종점이 아니다. 다만 하나의 관건적인 전환점은 될 것이다. 등소평이 설계한 과두정치느 20대후에 아마도 쇠락할 것이다. 설사 여전히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아마도 잠시일 것이고, 최종적으로 독재제로 대체될 것이다. 기실 많은 사람들은 일찌감치 본능적으로 개혁개방국면이 오래가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과거 몇십년간, 당내최고위층부터 중산계층까지, 모두 속속 자신의 후손과 재산을 해외로 이전시켰다. 거기에는 등소평가족, 시진핑가족, 보시라이가족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으로 개혁개방에 불신임표를 던진 셈이다. 일반 백성에 대하여, 비록 등소평이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경제자유를 주었지만, 등소평시대에도 많은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 있었다. 예를 들어, 부정부패이다. 모든 체제내의 부패방지조치는 소용이 없기는 하다. 이것만 가지고 등소평식의 제도는 대중들로 하여금 극력 나서서 보호하도록 만들 수는 없다. 개혁개방의 쇠망은 피하기 어렵다. 기실 개혁개방은 멀리 가기가 어렵다. 그리고 일찌감치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급속히 원점으로 돌아가는 단계이다. 아마도 원점을 넘어설지도 모른다. 서방자본주의국가에 대한 개방은 확실히 중국에 돈을 가져다 주었다. 등소평은 현실정치에 능했지만 중국의 미래 대방향을 분명하게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는 한편으로 대륙은 미리 홍콩과 같아야한다고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일당독재를 견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조화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지 못했던 것같다.
최근 들어, "시진핑이 내러가고, 리커창이 올라간다"는 소문이 폭넓게 퍼지고 있다. 사람들은 다른 괴이한 현상에도 주목했다. 예를 들어 <인민일보> 제1면에 시진핑에 관한 보도가 줄어들고, 광시 윈난등지에서 시진핑저작을 회수하고, 왕치산이 한국방문때 시진핑을 "그"라고 칭하고 존칭을 쓰지 않은 것등. 이런 현상은 아마도 시진핑이 고위층투쟁에서 패배했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에 설사 소문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가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한, 이런 류의 좌절은 소소한 일이다. 그가 결국은 대권을 독차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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