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시진핑(習近平)은 당권(黨權)을 양보하고 군권(軍權)을 지킬까?

중은우시 2022. 5. 21. 23:56

글: 학평(郝平)

 

얼마전 중국의 <인민일보> <신화망> <CCTV네트워크>등 당매체의 제1면에 중국지도자들이 '등장'하거나 '결장'하는 횟수가 사람들이 주목하는 초점이 된 바 있다.

 

중국의 당매체는 가대공(假大空)으로 날짜만 진짜이고, 나머지는 모두 거짓인 문화선전물이다. 최근 들어 국내외에서 이렇게 '중시'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가지고 외부의 "시하리상(習下李上, 시진핑이 물러나고 리커창이 올라간다)"을 검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이미 당권을 넘겨주었는지에 대한 소문이 맞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은 중국의 이런 당매체를 통해 중공에 큰일이 일어나고 무너졌다는 소식을 보기를 원하는 것일 것이다.

 

시진핑의 이름은 5월 17일, 18일 연속 이틀간 <인민일보>의 제1면에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나, 19일, 20일은 이틀 연속 <인민일보>의 제1면의 기사는 거의 시진핑의 이름으로 도배되었다. 주요한 4개의 기사를 모조리 점거했고, 리커창의 이름은 아주 간단한 보도 하나에 나왔다. 이틀 연속 그러했다.

 

이전인 5월 14일 리커창의 근 만자에 이르는 강연내용이 <인민일보>당일 제2면을 가득채웠다. 후시진도 웨이보에서 대담하게 리커창이 잘나갈 것이라고 암시하고 나섰다. 더더구나 5월 5일의 중공 정치국상위회에서 시진핑이 이미 권력을 내려놓았고, 주변으로 밀려났다는 소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 당매체의 제1면의 변화와 소문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5월 19일 홍콩대학 중국미디어연구프로그램 주임인 David Bandurski는 <제1면정치(Politics on Page One)>라는 글을 발표하여 이에 대해 설명했다.

 

시진핑이 <인민일보> 제1면에 나오지 않는 것은 분명한 변화가 아니다.

 

글에 따르면, 중국의 관찰가들이 <인민일보> 제1면에 나오는 시각적 신호에 대하여는 신중하게 관찰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신호는 아주 많고, 사람들을 혼란하게 한다.

 

글에서는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 및 거기에 인용된 애플데일리의 중국당매체 제1면정치에 대한 오독을 열거하고 있다

 

"2018년 7월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는 보도를 통해, 중국의 관방 <인민일보>에서 시진핑에 대한 언급이 '이상하게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아마도 총서기의 정치운명에 변화가 발생했다는 단서일 수 있다고 하였다. 지난주 월요일, 그의 이름은 제1면의 그 어느 기사제목에도 나오지 않았다. 홍콩의 독립신문 애플데일리의 통계에 따르면, 이는 5년만에 처음 으로 그의 이름이 제1면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애플데일리의 통계수치는 아주 부정확하다. 사실상 2012년 11월이래, <인민일보> 제1면에 거의 500번은 시진핑, 시주석 혹은 총서기를 언급하지 않았다. 2013년에 이런 제1면은 111번이 있었고, 2014년에는 74번 있었고, 2019년에는 97번 있었다."

 

"시진핑의 개인숭배가 점차 형성되면서, 이 숫자는 확실히 줄어들고 있다. 2016년, 즉 그가 '핵심'으로 정해진 그 해에는 인민일보의 제1면에 그가 나타나지 않는 횟수가 88번이었다. 2017년에는 이 숫자가 73번으로 줄어든다. 비록 보도에서는 '이상하게 감소했다'고 했지만, 중공19대이후의 2018년에도 20번에 걸쳐 시진핑의 이름이 제1면에 나오지 않은 바 있다. 그래도 시진핑은 여전히 당중심을 유지하고 있다. 시진핑의 권력은 그리고 그를 둘러싼 개인숭배는 계속 증가했다."

 

David Bandurski의 글에서는 2016년과 2017년, 매월 평균 6,7번은 제1면에 시진핑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8년에는 매월 평균 1.6번 시진핑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20대가 가까워지는데, 만일 시진핑이 1달내에 <인민일보> 제1면에 5번이상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약간 이상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등장하지 않았다'이라고 하는가? 글에서는 통상적으로 우리는 제1면에서 주기사제목, 부기사제목과 칼럼난제목에 시진핑의 이름, 총서기 혹은 시주석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고 본다.

 

글에서는 5월 19일까지, 5월 3일, 8일, 17일과 18일에 시진핑은 <인민일보>의 제1면에 등장하지 않았다. 또 다른 기준은 아마도 5월에 정치국상위지도자의 글을 언급한 총횟수일 것이다. 시진핑은 여러해동안 확연하게 앞서갔고, 리커창 총리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만일 이러한 차이가 분명하게 축소되었다면 그것은 중요한 변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David Bandurski에 따르면, 5월 19일까지, 시진핑이 <인민일보> 제1면에 등장하는 빈도는 정상범위내이다. 그후 10여일동안 시진핑이 두번이나 등장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인민일보>에서 발표하는 지도자의 글의 종합횟수를 보면, 시진핑은 여전히 독보적이다.

 

시진핑이 총서기직을 내놓으면서 군권은 보유하겠다고 요구할 것인가?

 

이런 소문도 있다. 시진핑이 5월 5일의 중공 정치국상위회에서 이미 총서기의 직위를 리커창에게 넘겨주었다고. 현재 시진핑은 20대이후의 국가주석 지위와 군사위주석 지위를 내놓고 싶어하지 않고, 중공원로와 리커창에게 이 두 지위를 유지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소문에 따르면, 시진핑은 예전 장쩌민을 본받아, 물러난 후에도 군권을 장악하고자 한다. 현재 원로들과 리커창일파는 시진핑의 요구를 검토하는 중이다.

 

이 소문은 기본적으로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중공 고위층의 내부투쟁에서 군권을 장악하는 것은 한번도 상호협상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쪽에 요구하고 다른 한쪽이 동의하는 식이 아니었다. 군권은 바로 정권을 의미하고, 목숨줄을 의미한다. 만일 시진핑이 이미 군권에 대한 통제를 잃어버렸다면 아무리 요구해도 소용이 없다. 리커창이 총서기에 오른다면 시진핑은 이미 군권을 잃은 것이다. 설마 군권을 시진핑에게 공손히 넘겨줄 것인가. 만일 시진핑이 아직 군권을 잃지 않았다면, 군권을 유지하도록 요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당시 장쩌민이 후안무치하게 중앙군사위주석의 지위를 보유한 것은 근본적으로 후진타오와 협상해서 얻어낸 것이 아니라, 후진타오를 압박하여 얻어낸 것이다.

 

2002년 홍콩의 <쟁명>잡지에서 이렇게 폭로한 바 있다. 중공16대 주석단 제4차회의때 11월 14일 대회에서 중앙위원, 후보중앙위원, 중앙기율검사위위원과 3개의안의 표결형식문제를 통과시키기로 결정한다. 군사위부주석 장완녠(張萬年)이 돌연 기습적으로 20명 주석단 구성원(모두 군인)이 서명한 '특별동의'를 제출하여 장쩌민이 중앙군사위주석에 유임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후진타오와 그 자리에 참석한 주석단구성원들의 입장표명을 요구한다.

 

2002년 홍콩의 <개방>잡지에도 베이징의 내막소식을 발표했다. 더 나아가, 장쩌민이 군사위주석에 유임하는 방안은 그가 미국을 방문하기 전에 이미 준비해놓았다는 것이다. 심복인 쩡칭홍이 북경교외 펑파이공군훈련센터에서 군사위부주석 장완녠과 여러번 모의한 후에 집행한 것이라는 것이다. 10월 29일, 장쩌민은 멕시코에서 개최된 APEC회의에 참석한 후 베이징으로 귀국하여 중앙군사위에서 소집한 각 대군구 및 각 대병종의 책임자들이 참석한 확대회의에 출석한다. 회의에서 장완녠등 군대의 우두머리들이 장쩌민을 핵심으로 하는 중앙영도를 옹호하고, 13년동안 치군의 공적을 높이 찬양한다. 어떤 살마은 심지어 "장주석을 견결히 보위하자"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장쩌민은 '총부리가 당을 지휘한다'는 원칙으로 궁중정변을 일으켜 후진타오로부터 군권을 빼앗는다. 그리하여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의 지시는 중남해를 벗어나지 못했다. 시진핑이 설마 장쩌민을 본받아 다시 한번 궁중정변을 일으키려 한단 말인가? 시진핑은 이미 삼연임을 위한 제도적 ,법제적 준비를 마쳤다. 당정군의 삼권을 모두 장악하고 있다. 권력양보설은 아무런 실질적 근거가 없다.

 

시리투(習李鬪)의 배후는 시장투(習江鬪)이다.

 

해외학자 위안홍빙(袁紅氷)의 토로에 따르면, 시진핑은 과거 19기 6중전회에서 원래 제3차 역사결의를 통과시켜 장쩌민의 부패정치노선을 부정하고자 시도했다고 한다.

 

위안홍빙은 이렇게 말한다. 중공내부의 양식있는 인사에 따르면, 시진핑은 제3차 역사결의에서 공개적으로 장쩌민의 이름을 거명하며 비판하고자 했다. 당시 시진핑은 리잔슈로 하여금 상위회에서 그런 내용을 제안하게 했다. 그러나 장가오리가 앞장서서 반대했다. 그리하여, 시진핑이 장쩌민을 부정하려는 계획은 물건너갔다. 위안홍빙은 이렇게 말한다. 19기 6중전회가 끝난 것은 중공당내의 권력투쟁이 끝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격렬한 투쟁단계로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후, 외부에서는 장쩌민, 쩡칭홍진영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반시진핑움직임을 보였다. 예를 들어, 금년2월, '방주여중국'이라는 필명으로 4만자에 이르는 '객관평가시진핑'이라는 글이 해외에서 널리 퍼진다. 제목은 객관적으로 시진핑을 평가한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객관적으로 보시라이를 평가하는 글이며, 보시라이의 정치능력과 집정수준을 추켜세우는 것이다. <만년주은래>의 작자인 고문겸(高文謙)은 한마디로 정리했다: "장쩌민, 보시라이를 추켜세우는 것을 보면 작자는 중공체제파로 반시진핑, 비반공의 바탕을 드러내고 있다."

 

다시 3월 10잂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공원로 주룽지(朱鎔基)등이 시진핑의 연임에 반대한다는 보도를 했다. 곧이어 인터넷에는 돌연 주용기가 당중앙에 보냈다는 "주구조(朱九條)"가 떠돌았다. 시진핑의 현행정책을 하나하나 부정했고, 글은 우파의 각도에서 시진핑에 대한 일련의 좌경정책을 질책하는 내용이다.

 

주구조중 제8조에서는 "후진타오, 쩡칭홍, 왕양 3명이 20대를 준비하도록 건의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 중공원로의 조합명단은 최근의 소문인 5월 5일 정치국상위회 확대회의에서 시진핑으로 하여금 권력이양을 하도록 성공했다는 원로조합인 '후진타오, 쩡칭홍'와 모종의 유사한 느낌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장쩌민파의 제2인자인 쩡칭홍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후진타오와 쩡칭홍의 조합은 그 자체로 우스개이다. 장쩌민은 저우용캉을 통하여 319정변을 일으켜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를 제거하려 했고, 후진타오가 38군을 급히 동원하여 정변을 좌절시켰는데, 어찌 쩡칭홍과 다시 손을 잡을 수 있단 말인가?

 

4월, 장쩌민파 배경의 둬웨이망은 <싱가포르 제4대총리후계자확정이 중국에 주는 계시>라는 글을 싣는다. 여기에서 200명의 중공중앙위원중에서 차세대 중공최고지도자를 뽑자고 건의했다. 이는 명백히 시진핑의 연임에 찬물을 끼얻는 것이다. 

 

왜 장쩌민, 쩡칭홍 일파는 시진핑을 끌어내리려고 할까? 왜냐하면 시진핑이 일단 연임에 성공하면, 장쩌민파에 대한 타격이 치명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푸정화와 쑨리쥔은 이미 낙마했다. 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멍젠주, 쩡칭홍에 이른다. 공청단파에 있어서 시진핑의 연임은 단지 권력의 득실이지만, 장쩌민파에 있어서는 목숨과 부정부패로 얻은 모든 재산이 제로가 되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