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연월일(年月日)
시진핑의 가장 위험한 적은 국외적대세력도 아니고, 반대파인사도 아니다. 시진핑은 최근 여러번에 걸쳐 특별히 당내집단을 언급했다. 그것이야말로 심복지환(心腹之患)이다. 보통집안 출신의 관리들은 일반적으로 비교적 조심스럽고 몰래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집단을 만들만큼 담량은 없다. 황친국척(皇親國戚)인 홍얼다이는 특수한 집단이다. 기층조직도 어떻게 하지 못하고, 집법부서도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 그들 사이에서는 국사(國事)를 논하는 것이 가사(家事)를 논하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이고, 가사도 국사를 벗어나지 못한다. 홍얼다이는 사위가 된 가짜홍얼다이와 홍산다이(紅三代)를 포함하여, 태자당(太子黨)이라고도 한다. 그들이 보기에, 천하는 그들의 것이고, 강산에 대하여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시진핑이 말한 당내의 집단은 바로 그들이 아니면 누구이겠는가?
예전 정치노인이 시진핑을 선택한 것은 주로 두 가지를 좋게 보았기 때문이다: 첫째, 홍색유전자로 강산의 색이 변하지 않게 지켜낼 수 있다. 둘째, 그는 부친 시중쉰처럼 온화하고 극좌로 향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시진핑이 집권했을 떄 홍얼다이는 환호작약했고, 대거 지지했다. 류야저우(劉亞洲)는 글을 실어 시진핑에 대하여 "중국몽을 비추는 횃불(照耀中國夢的火炬)"라고 칭하며, "대수필(大手筆), 대담당(大擔當), 대정회(大情懷), 대목표(大目標), 대운주(大運籌), 대철학(大哲學), 대시대(大時代), 대실천(大實踐), 대작위(大作爲)"라고 말했다. 이 정도로 아부를 하는 것은 시진핑 수하의 그 멍청이들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이다. 시진핑이 취임한 후 부패와 탐관오리를 척결하는 것을 주요 시정수단으로 삼는다. 이 수법은 민심을 얻을 수 있었고, 백관을 고개숙이게 할 수 있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시진핑과 홍얼다이의 모순은 갈수록 커지게 된다. 주로 3가지 원인이다
첫째, 조직상으로 홍얼다이를 배척하고, 홍얼다이를 도적을 방비하는 것처럼 막는다.
시진핑은 홍얼다이에 대하여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 왕치산같은 가짜 홍얼다이를 이용하여 탐관오리를 척결하는 외에, 나머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기용하지 않았다. 특히 부친대의 관직이 자신의 부친보다 높았던 사람의 홍얼다이들은 절대로 쓰지 않았다. 홍얼다이들은 학교에 다닐 때 부친의 관직을 가지고 서로 비교하곤 했었다. 부친의 관직이 높으면 천성적으로 우월감을 가지고, 부친의 관직이 낮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게 된다. 만일 시진핑이 다른 홍얼다이중에서 자신의 부친보다 관직이 높은 사람과 같이 있게 되면 그는 마음이 편할 수 없을 것이다. 설사 부친과 관직이 비슷하면서, 동시에 정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들이 비교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시진핑의 영명함과 위대함을 두드러지게 할 수가 없다. 한 나라에 두 임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용상의 옆에 손님의자를 놓아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류위안(劉源), 류야저우는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서 조용히 죽기를 기다려야 하는 운명이 된 것이다. 그들이 시진핑에 충성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시진핑을 겁내지 않기 때문이다.
한번은 국경절 파티에서 시진핑이 술잔을 들고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과 한사람 한사람 술잔을 부딛쳤다. 그런데 마오신위(毛新宇, 모택동의 손자)의 앞에 이르자 그냥 지나친다. 마치 그런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마오신위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나중이 그는 심지어 당대회 대표자격마저 박탈당한다. 시진핑은 누군가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홍얼다이는 은퇴하고나서도 엄밀하게 감시받는다. 그들이 착실하게 지내면서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당매체에서 계속하여 소위 '철모자왕'을 언급하는 것은 암중으로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모두가 말은 안해도 알고 있는 것이다.
2. 경제상으로 홍얼다이를 선택적으로 타격하고, 각자의 돈줄인 독립왕국을 와해시킨다.
태자당의 돈줄은 직접적인 돈줄과 간접적인 돈줄 두 가지가 있다. 직접적인 돈줄은 바로 각급 직위에서의 이익통로와 복잡다단한 관계네트워크이다. 예를 들어 쩡칭홍(曾慶紅)의 석유방, 리펑(李鵬)의 전력방, 장쩌민(江澤民)의 전신방, 덩샤오핑(鄧小平)의 부동산 및 금융서비스방, 왕진(王震)의 군수산업방등등. 간접적인 돈줄은 상장회사의 주식, 동사회 성원등등이다. 홍콩과 마카오는 일찌감치 태자당의 직접적인 활동처이며 자금거래의 통로였다. 국가안보법의 실시와 시진핑 인마의 임명으로 이 통로가 위기에 빠진다. 근년들어, 시진핑은 이비지니스, 금융서비스, 교육훈련과 부동산등 업종에 대하여 '공동부유'를 명목으로 타격의 강도를 강화하고 있다.
이들 업종의 배후에 있는 홍얼다이의 이익도 축소되었다. 이런 타격도 선택적이다. 중점 타격대상은 등소평, 장쩌민, 쩡칭홍의 가족이다. 친시진핑파는 아주 안전하다. 예를 들어, 그의 누나인 치차오차오(齊橋橋), 여동생 치안안(齊安安)은 홍콩, 캐나다와 호주에 부동산을 가지고 있고, 희토류, 전신과 부동산에 대량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들 원천이 불투명한 자금은 진성감옥에 갇혀 있는 호랑이들의 재산합계를 훨씬 넘어선다. 더욱 심한 것은, 시진핑의 권력에 대한 탐욕은 재물에 대한 탐욕보다 훨씬 무섭다. 탐관오리 한명이 수억위안의 재산을 부정부패했더라도 그것은 재산의 보관장소를 옮긴 것뿐이고, 다 쓸 수도 없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탐욕은 다르다. 권력이 있으면 전체 중국이 그의 것이 된다. 머리가 잠깐 잘못되면 의사결정을 잘못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조성되는 손실은 직접적인 부정부패보다 만배는 크게 되는 것이다.
셋째, 정치적인 이견이 조화될 수 없을 정도이다.
시진핑과 홍얼다이의 근본적인 이견은 누가 중국을 통치하느냐이다. 일인통치냐 집단통치냐이다. 비록 양자는 모두 공산당의 통치를 유지보호하는 것이지만, 시진핑이 원하는 것은 그의 일인통치이다. 홍얼다이가 원하는 것은 집단통치이다. 제2차, 제3차 역사결의를 비교해보면 이런 근본적인 의견차이를 엿볼 수 있다. 제2차역사결의의 가장 중요한 정치유산은 집단영도를 견지하고, 영도직위종신제를 폐지했다는 것이다. 이는 겁후여생(劫後餘生, 문혁의 겁난에도 살아남은)의 홍얼다이들간의 컨센서스였다. 제3차역사결의는 시진핑의 개인적인 산물이다. 건당백주년을 기념한다는 명목으로 시진핑의 종신집권을 위한 길을 닦으려 했다. 시진핑은 독재를 견지했고, 그 객관적인 효과는 홍N다이정치이익집단을 끝장내는 것이다. 반대로 만일 홍색집단이 시진핑을 끌어내리면, 그는 신패명렬(身敗名裂)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양자는 이미 서로 조화될 여지가 없어졌다. 통치집단의 내부다툼은 통상적으로 독재정권이 멸망하는 징조이다. 어느 측이 승리하든, 모두 공산극권통치를 멸망으로 가는 발걸음을 가속화하게 될 것이다.
일인통치는 단기적으로 보면 통치역량을 강화할 수 잇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멸망을 가속화하게 된다. 역사는 시진핑의 손을 빌어 정치적으로 전체 홍얼다이를 질식시키고 소멸시키게 한다. 이는 여하한 '적대세력'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일인통치는 언젠가 끝이 난다. 그 결말은 필연적으로 기름이 마르면 등불이 꺼진다는 것이다. 떠받들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것이다. 시진핑이 뒤뚱거리면서 근심에 가득찬 표정으로 동계올림픽개막식에 참석하는 것을 보면 그 날이 그다지 멀지는 않은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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