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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기업가

중국의 가장 신비한 부호클럽 "태산회(泰山會)" 해산의 내막.

by 중은우시 2022. 1. 5.

글: 세태관상(世態觀象)

 

2013년 11월 16일, 류촨즈(柳傳志, Lenovo 회장)가 16명의 남자로 구성된 신비한 여행단을 이끌고 조용히 타이페이에 도착한다. 그들이 투숙한 타이페이리젠트호텔은 환영플랭카드를 내걸었다가, 곧 질책을 받고 걷어냈다. 그들은 매우 조용하게 움직였지만, 그래도 현지 매체의 주목을 끌었다.

 

타이완매체는 취재를 하고나서 깜짝 놀란다. 대륙에서 온 16명의 수퍼부호는 2조위안이상의 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폐로 바꾸면 지구를 세바퀴는 돌 수가 있는 돈이다. 일행 16명은 바로 "태산회"의 주요 멤버였다. 그들이 이번에 타이완에 온 것은 주로 "태산회"성립 20주년을 기념하면서, 중국경제의 미래동향에 대헤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타이완의 맛있는 요리도 맛보고, 타이완의 풍토와 인정도 느껴보기 위함이었다.

 

류촨즈는 "태산회"의 회장이다. 회원중에는 쓰통(四通)의 돤용지(段永基), 판하이(泛海)의 루즈창(盧志强), 완퉁(萬通)의 펑룬(馮侖), 푸싱(復星)의 궈광창(郭廣昌), 쥐런(巨人)의 스위주(史玉柱), 화이브라더스의 왕중쥔(王中軍)등 합계 16명이다.

 

나중에 쑨홍빈(孫宏斌. 룽촹 회장)과 왕젠린(王健林, 완다 회장)은 비록 정식으로 태산회의 멤버가 되지는 않았지만, 태산회와 가까웠다.

 

태산회의 문턱은 아주 높았다. 회비는 100만위안이라고 하며, 매년 2 차례의 정식 활동이 있다고 한다. 불참하면 벌금을 내야 하는데, 1차는 1만위안, 2차는 20만위안이라고 한다.

 

마윈(馬雲)도 한때 태산회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자주 활동에 불참해서 적지 않은 벌금을 냈다고 한다. 나중에는 탈퇴하고, 2006년 강남회(江南會)를 만든다. 이는 저장상인들의 부호클럽이다.

 

태산회의 활동형식은 아주 신비하다. 그리고 엄격한 규칙이 있다. 회의과정은 녹음도 할 수 없고, 기록도 할 수 없고, 정부관리도 초청하지 않으며, 매체를 부르지도 않는다. 멤버들은 주로 중국경제의 대세를 논할 뿐, 정치는 논하지 않는다.

 

태산회가 장악한 부는 거대하고, 능력도 아주 크다. 중국경제발전과정에서 중대한 사건에는 모두 태산회의 그림자가 끼어 있다. 태산회의 멤버들 간에는 혹은 공개적으로, 혹은 사적으로 사업기회를 찾고, 공동투자하여 리스크를 분담했다.

 

그럼 태산회의 절대기밀인 옛날 일을 한번 까발려보기로 하자.

 

1993년 10월 돤용지가 제안하여 기업자산이 1억위안이 넘는 기업가들이 교류하고, 민영기업의 생존환경을 개척하는 플랫폼을 만들게 된다.

 

태산회의 최초 회원은15개 기업의 오너였다. 구성원의 변동은 크지 않았고, 여러 해동안 회원수는 20명이내로 유지했다. 회원들간의 관계는 아주 긴밀했다.

 

공개된 자료를 보면, 태산회가 해산되기 전에 16명의 회원이 있었다. 각각 롄샹(레노보)의 류촨즈, 쓰통의 돤용지, 판하이의 루즈창, 푸싱의 곽광창, 위안다(遠大)의 장웨(張躍), 신위안지주(信遠控股)의 린룽창(林榮强), 쥐런의 스위주, 바이두(百度)의 리얜홍(李彦宏), 부부까오(步步高)의 돤용핑(段永平), 커하이(科海)의 천칭쩐(陳慶振), 커뤼(科瑞)의 정웨원(鄭躍文), 쓰다(思達)의 왕위안쓰(汪遠思), 헝덴집단(橫店集團)의 쉬원룽(徐文榮), 허광상무(和光商務)의 우리(吳力), 화이브라더스의 왕중쥔이다.

외부에서는 태산회의 입회방식에 대하여 여러 추측이 있다. 주된 견해는 이러하다. 태산회는 매년 1명의 회원만 받아들인다.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태산회의 입회는 매년 오직 1명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지만, 가입문턱은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태산회의 성립초기 회원기업이 공동으로 25만위안을 출자하여, 업무경비로 썼다; 그외에 각 회원기업은 매년 3만위안의 회비를 내야 했다. 그리고 윤번제로 태산회의 연간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신회원이 가입하려면 두 명의 태산회 회원이 추천해야 하고, 전체회원이 만장일치로 동의해야 비로소 태산회의 예비회원이 될 수 있고, 1년후에 정식회원으로 전환된다.

 

몇 되지 않는 매체와의 인터뷰때, 태산회 회원은 대외적으로 이 조직은 오락을 위주로 한다고 얘기했다. 회원들은 시간이 나면 함께 골프도 치고, 차도 마시고, 얘기도 나눈다는 것이다. 완퉁집단의 펑룬은 인터뷰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바로 한 무리의 나이든 남자들이다. 사적조직이다."

 

이들 거물들이 단지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기' 위해서 모였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태산회의 작용은 주로 당시 민영기업에 교류채널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회원간에 자신의 자원을 이용하여 서로 돕는 것이었다. 어쨌든 단결하는 것이 곤란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니까.

 

이것은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태산회가 성립된 십여년간, 회원들중에 곤란에 처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회원들이 손을 뻗어 도와주는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났다.

 

태산회가 해산했다는 소식이 나오자, 많은 사람들은 태산회에 관한 이야기를 공개했다.

 

이 신비한 태산회의 배후에는 어떤 신비한 이야기들이 있을까?

 

예를 들어 함께 추세를 따라가기도 했다.

 

1995년, 주택상품화의 대세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 태산회의 몇몇 회원인 루즈창, 류촨즈, 돤용지등 몇명은 "광차이(光彩)사업투자치리유한공사"를 설립하여, 루즈창이 주재하여 난여우물업(南油物業)을 인수하여 그후 몇년만에 이들 기업들은 풍성한 수익을 거둔다.

 

예를 들어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2011년, 루즈창, 류촨즈를 포함한 태산회의 회원들은 왕젠린과 함께 장백산국제관광리조트구개발유한공사를 투자설립한다. 

 

태산회의 도움으로 왕젠린은 이 2억위안짜리 스키장프로젝트를 운영하여 가치를 100배나 늘인다.

 

바로 이때문에 나중에 완다가 홍콩에 성공적으로 상장한 후, 왕젠린은 치사에서 특별히 루즈창에 대한 감사인사를 잊지 않았다.

 

다시 예를 들어, 곤경에 처하면 도와주었다.

 

2005년, 루즈창은 토지를 너무 많이 확보하여 스스로 다 소화하지 못하고, 자금줄에 문제가 생겼다. 그때 류촨즈가 나서서 도와주어 루즈창은 난관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여러가지 원인으로, 2009년 류촨즈가 주식개조를 통해 롄샹을 민영기업으로 전환하고자 할 때, 루즈창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즉시 27.55억위안의 가격으로 궈커지주의 손에서 롄샹의 29%지분을 인수하여 롄샹의 3대주주가 된다. 이로 인하여 류촨즈는 롄샹의 실제지배인이 될 수 있었다.

 

시대가 진보하면서, 중국의 상업발전에도 아주 큰 변화가 나타난다. 많은 기업가들의 성공의 배후에 점점 태산회같은 기업가조직의 영향력이 감소하게 된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태산회를 탈퇴하고, 어떤 사람은 국외로 이민가고, 어떤 사람은 이미 후계자에게 물려줄 나이가 되었다.

 

예를 들어 태산회를 탈퇴한 마윈이 있다. 그는 저장상인들의 모임인 강남회를 조직했고, 호반대학(湖畔大學)도 설립한다.

 

호반대학의 발기인에 마윈은 류촨즈, 펑룬, 궈광창, 스위주, 션궈쥔, 첸잉이, 차이홍빈, 샤오샤오펑등을 참여시킨다. 이 9명의 발기인 중에서 절반이상이 태산회 회원이다.

 

그리고 돤용핑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백억이나 되는 자산은 가까운 친구들에게 맡긴다.

 

2001년, 돤용핑은 회사사업을 셋으로 나누어, 3명의 창업때부터 그와 함께한 가까운 친구들에게 맡긴다. 세 기업에서 돤용핑은 각각 10%의 지분을 가진다.

 

그 친구들은 돤용핑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OPPO, VIVO, 부부까오는 전국에서 계속 판매량랭킹에서 앞자리를 유지했다. 손을 놓을 때를 알고, 장기적인 안목이 있어서, 급류용퇴한 돤용핑은 지금 이미 재산이 천억위안을 넘어섰다.

 

그리고 류촨즈는 현재 후계자에게 넘겨줄 시기가 되었고, 자신의 무대를 점점 자녀에게 이양하고 있다.

 

중국의 상인조직은 아주 많다. 다만 그 중에서 첫손에 꼽을 수 있고, 자본실력이 웅후하고, 대중들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마도 '태산회'일 것이다.

 

태산회는 1993년말에 발기하여, 1994년 여름에 정식으로 성립된다. 최종적으로 2021년초에 해산한다.

 

해산의 원인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해산되었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그럼 이런 민간조직은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 졌을까? 아주 간단하다. 두 가지를 보면 된다. 이 조직의 참여자가 누구인가? 이 조직의 공동목표는 무엇인가?

 

회원들을 살펴보면 모두 중국자본시장의 거물들이다. 태산회는 중국에서 최초로 자본운영을 통해 돈을 번 부호들의 집결지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자본운영이다. 제조생산도 아니고, 과학연구혁신도 아니다.

 

그래서 런정페이(任正非, 화웨이 오너), 동밍주(董明珠, 거리의 동사장), 레이쥔(雷軍, 샤오미의 오너), 차오더왕(曹德旺, 푸야오집단 동사장)같은 사람은 아마도 태산회의 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으로 자본이익집단의 고급부호모임이다. 자본가의 낙원이다. 중국민간자본역량의 진정한 대표들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접촉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확실히 이런 자본집단은 현재의 중국경제환경과 사회구조에 맞지 않는다. 내부모순이라고 하기 보다는 조직이익과 방향이 이미 큰 환경 큰 추세에서 용납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중국은 위대한 사회주의국가이고 자본주의가 주도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 자본이 새장에 갇히고 체인을 두르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추세이다.

 

이렇게 전망하고 예상할 수 있다: 자본의 역량과 세력은 중국경제환경하에서 전환점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