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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기업가

류중텐(劉忠田): 아시아알루미늄왕의 흥망성쇠....

by 중은우시 2021. 10. 21.

글: 진사민(陳思敏)

 

중왕집단(忠旺集團)은 10월 15일 홍콩연합거래소에 공시를 통해 산하 2개의 자회사에 엄중한 경영상의 곤란이 출현했으며, 많은 노력을 했지만, 이미 자신의 역량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이렇게 드러내놓고 '도움을 요청'한 중왕집단의 본사는 랴오닝성에 있다. 또한 세계2위, 아시아최대의 알루미늄제조업체이다. 실제지배인 류중텐은 그리하여 "아시아알루미늄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3년전인 2018년 9월 27일, 시진핑이 동북삼성을 시찰할 때 유일하게 방문한 민영기업으로서, 중왕집단은 마치 '정심환'을 먹고, '강심제'를 맞은 듯했다. 2019년 9월 9일 <인민일보>는 <랴오양: 국유기업과 민영기업이 손에 손을 잡고 새로운 길을 나서다>라는 글을 싣고 시진핑의 동북시찰 1주년을 맞이하여 관련기업에 발생한 거대한 변화를 되돌아보았다. 거기에 이런 내용이 쓰여져 있었다: 랴오닝 중왕집단은 총서기가 시찰한 민영기업 대표로서, 그후 자신감이 더욱 강해졌고, 힘도 더욱 내게 되었다. 회사의 여러 경영지표는 두 자리수의 성장을 이루었다...... 과거 1년동안 중왕은 총서기의 부탁을 기억하고, 다른 생각을 품지 않고 주업에 주력했다.....

 

<인민일보>의 이 글에서 중왕집단에 관한 내용은 완전히 엉터리로 날조한 것이다. 공시된 과거의 재무제표를 보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중왕의 실적은 계속 하락했다. 2020년의 영업수익은 겨우 204억위안으로, 2017년과 비슷하다. 순이윤은 겨우 18억위안으로 2012년만도 못했다.

 

다른 여러 보도에 따르면, 중왕집단은 일찌기 2011년을 전후하여 금융분야에 진출한다. 은행, 보험, 리스와 부동산프로젝트까지 관련된다. 2016년부터 중팡(中房)주식을 통해 우회상장하는데 성공한다. 2017년에는 쥔캉생명보험(君康人壽)를 지배하면서 캐시플로우가 충분한 보험업까지 진출한다. 금년3월, 중왕집단은 텐진신탁(天津信托)의 지배주식에 대한 입찰에 들어갔다. 현재까지, 중왕집단은 산하기업을 통하여 직간접으로 9개의 금융회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재신의 보도에 따르면, 2019년부터, 캐시플로우가 마이너스를 지속하는 중왕집단은 이미 여러가지 형식으로 쥔캉생명보험의 보험자금을 유용했는데 규모가 천억위안에 달했다. 이것은 중왕집단이 무너지게 되면, 단순한 자체적인 경영문제만이 아니라, 쥔캉생명보험까지 끌고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베이징에도 수개의 투융자기업이 무너질 것이고, 동북에도 은행이 문제될 것이다. 명천계에 비하여 전혀 그 파급력이 적지 않다.

 

시진핑이 중왕집단을 시찰할 때는 민영기업으로 본 것같지만, 여러가지 공개된 정보를 보면, 그 오너인 류중텐은 창업과정에서 항상 국가정책의 도움을 받아 무임승차했고, 정확하게 국가의 경제발전의 발걸음을 따라갔다. 중요한 점들만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중석유(中石油) 산하의 랴요양석화는 북방최대의 화섬생산기지이다. 그들이 생산하는 완제유, 에틸렌, 폴리에스터등은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쌍궤제였던 1980년대에 '돈버는' 보배였다. 석유화학사업은 류중텐이 돈을 버는 주요 지주였고, 장인(석유화학사업을 하는 오너임)의 도움을 받고, 또한 현지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다. 당시 랴오닝성의 성장은 리창춘(李長春)이다.

 

1990년대에 이르러, 부동산이 핫해졌다. 동시에 합자기업은 류중텐이 올라탄 또 하나의 수단이었다. 1993년, 류중텐은 홍콩의 한 회사와 랴오닝성에 중왕집단의 전신인 료양중왕알루미늄을 설립한다. 당시 정책에서 합자회사는 추가적인 세수, 은행대출, 토지등의 우대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1998년 국가과학기술발전계획에 따라, 중왕은 같은 해에 130인으로 구성된 연구개발기술센터를 설립한다.

 

1999년 중왕알루미늄은 건축용 알루미늄형재를 위주로 전국에 판매네트워크를 건립하고, '부동산황금10년'을 이용하여 중왕은 업계의 선두가 된다. 류중텐은 이렇게 동북최고부자의 길을 걷는다.

 

2000년 중국의 유색금속공업의 관리체제에 중대한 조정과 변혁이 일어난다. 당시 중공당수인 장쩌민은 특별히 지시하고, 당시 부총리였던 우방궈가 직접 영도하에, 등소평의 사위인 우젠창(吳建常)은 중국유색금속업계에서 물러나고, 궈셩쿤이 주도권을 장악한다.

 

2002년 중국대륙의 알루미늄시장은 아직 공백이었다. 공업, 교통등 분야에서 쓰이는 특대형알루미늄합금형재는 모조리 해외에서 수입했다. 그때 모든 사람들은 관망상태였다. 류중텐은 인기있던 건축용알루미늄형재업종에서 국내에서 막 일어나기 시작한 공업형알루미늄시장으로 뛰어든다. 이번에 이런 사업변경은 류중텐이 확실히 업계고위층의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2003년 중왕은 중국유색금속가공공업협회(전신은 국가유색금속공업국)으로부터 "중국알루미늄형재기업 10강"에 선정된다.

 

2004년말 철도부는 중왕을 기차차량용 알루미늄재의 공급업체중 하나로 지정한다. 즉 철도부장 류즈쥔(劉志軍)시기에 중왕은 승자중 하나였다.

 

2005년 중왕의 공업용알루미늄재제품은 철도부에 공급하는 외에 동시에 선박제조업분야에도 진입한다. 그리고, 미국, 독일과 호주에 수출한다. 류중텐과 중왕은 휘황한 '알루미늄왕국'을 만들게 된 것이다.

 

2008년 4조위안경기부흥계획으로 인프라건설과 철로건설이 시작되면서 수요가 커져서 중왕은 일거에 수도공항확장공사, 베이징올림픽경기장건설, 상하이엑스포 및 광저우아시안게임등 10여개의 국가급중대공사에서 합계 73억위안의 주문을 받아낸다. 이 일련의 국가급투자프로젝트는 중왕집단이 홍콩상장의 꿈을 완성하게 해준다.

 

2006년에 발표된 <외국투자자의 경내기업인수합볍에 관한 잠행규정>에서 자산의 국외이전을 막기 위하여, 국내자산을 경외회사를 통해 인수한 후 해외에 우회상장하려면, 모조리 상무부의 심사비준을 받아야 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당시 심사통과율은 거의 제로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류중텐은 이것을 다 해결했다. 당시의 상무부장은 류중텐의 중왕이 성장할 때 랴오닝성장을 맡았던 보시라이이다.

 

2009년 중왕은 중국유색금속공업협회에 의해 "11.5국가과기지탱계획선진알루미늄가공기술연구개발프로젝트"에 들어간다. 즉 이해에 중왕은 최고전성기를 맞이하고, 홍콩연합거래소에 성공적으로 상장한다. 류중텐은 260억홍콩달러의 재산으로 왕젠린을 추월하여 일약 동북의 최고부자에 오른다. 그리고 연속 여러해동안 동북최고부자의 자리를 유지한다.

 

여기서 한 사람을 주목해야 하는데, 바로 중왕집단의 사외이사인 원셴쥔(文獻軍)이다. 그는 동시에 중국유색금속공업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리고 원셴쥔은 우젠창, 궈셩쿤 두 유색금속의 대부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알루미늄은 중국에서 고정적으로 "십종유색금속"이라 칭해진다. 중국국내의 알루미늄시장은 군사공업에서 시작되었고, 나중에 민용건축업등으로 진출한다. 

 

중국유색금속분야는 원래 등소평의 사위인 우젠탕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가 물러난 후에는 궈셩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궈셩쿤은 2004년이전까지 야금과 유색금속분야에서 오랫동안 국가요직을 맡아왔다. 2004년 광시에 내려가기는 하지만, 광시도 유색금속을 포함한 희토류의 매장지역이다. 여러 해동안 지도자의 신분으로 유색금속협회회원대표대회의 주석단에 앉았었다.

 

기실, 이는 중국관료사회의 공개된 비밀이다. 장쩌민파의 거물 쩡칭홍가족은 인척인 궈셩쿤을 통하여 국가의 유색금속자원을 장악했다. 중왕의 오너인 류중텐은 권력귀족의 '얼굴마담(白手套)'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현재 이들 알루미늄업계의 거물들은 모두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모두 명천계, 하이항, 헝다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느낌이다. 자산을 빼돌린 후에 남은 부채는 결국 국가에서 부담하게 될 것이다. 이는 현임 시진핑당국에 있어서 중국경제를 교란시키고, 금융위기를 만드는 것에 다름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