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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바둑계의 '사대천왕' '육초' '칠소룡'....

중은우시 2021. 11. 2. 00:01

글: 약백007(若白007)

 

1980년대초중반 일본의 6명의 초일류기사는 세계에서 인정받았다. 이들을 약칭하여 "육초(六超)"라고 불렸다. 린하이펑(林海峰), 오다케 히데오(大竹英雄), 가토 마사오(加藤正夫),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과 조치훈(趙治勳)이다. 육초가 세계바둑계를 지배하던 시기는 "육초시대"라 부를 수 있다. 다만 그 기간이 길지는 않았다.

 

1985년 녜웨이핑(聶衛平)이 제1회중일대항전에서 가토 마사오와 고바야시 고이치를 연이어 격파하며 '육초'의 벽을 넘어섰고, 그후 다시 제2회중일대항전에서는 다케미야 마사키와 오다케 히데오를 격파했다. 1989년에는 조훈현(曺薰鉉)이 연속으로 고바야시 고이치, 린하이펑, 녜웨이핑을 꺽고 제1회 응씨배우승을 차지한다. 이 때부터 세계바둑계는 한중일의 8명의 초일류고수들이 쟁패하는 시기가 된다. 그러나 바둑계와 매체에서 '팔초'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1992년에 이르러, 돌부처(石佛) 이창호(李昌鎬)가 돌연 등장하여, 제3회 동양증권배 결승에 올라 린하이펑을 꺽고 세계바둑계의 가장 젊은 세계대회우승자가 된다. 1993년에는 한국의 고수들이 대폭발하여, 이창호는 동양증권배를 다시 차지하고, 야전사령관 서봉수가 예상을 꺠고 조치훈과 오다케 히데오를 연이어 꺽고 제2회 응씨배에서 우승한다. 유창혁은 조훈현을 잡으며 후지쯔배를 거머쥔다. 그때의 세계바둑계는 세계대회우승자가 아주 적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한꺼번에 3명이나 등장하며 모두 합쳐서 4명이 되고 세계의 주목을 끈다. 그리하여, 어떤 매체에서는 한국 "사대천왕(四大天王)"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이들 네명의 세계대회우승자에게 붙여준다. 그리고 바둑계의 공인을 받는다. 한국의 제1대 "사대천왕"이다.

 

2002년에 이르러, 서봉수는 이미 옛날의 날카로움이 보이지 않았지만, 한국의 바둑계에는 후계자가 나타난다. 1983년에 태어난 이세돌은 교룡출수(蛟龍出水)처럼 후지쯔배 결승전에서 유창혁을 넘어 세계대회우승을 거머쥔다. 그리고 조훈현은 이미 반백의 나이에 이르렀음에도 보도는 녹슬지 않아 2002년과 2003년의 삼성화재배 우승을 차지한다. 이미 천하제일공격수라는 별명을 얻은 유창혁도 여전히 건재했고, 2002년 LG배를 거머쥔다. 이창호의 세계1인자의 지위는 아무도 흔들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 네명은 다시 한국의 신사대천왕이 되어 수퍼호화로운 진용을 구성하게 되어 제2대 사대천왕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비교적 짧았다. 먼저 유창혁이 2004년 처의 돌연한 사망으로 가정적인 문제가 생겨 그후 힘을 내지 못한다. 조훈현도 점점 노쇠함을 보였고, 이전의 강력함이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이창호는 2006년 삼성화재배결승에서 신저(神猪) 뤄시허(羅洗河)에게 패배한 후, 더 이상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다. 사대천왕중 남은 이세돌만이 여전히 위풍당당했고, 구리(古力), 콩제(孔杰), 천야오예(陳耀燁), 탕웨이싱(唐韋星), 커제(柯潔)등 중국의 절정고수들과 고하를 겨루었다.

 

최근 한 매체에서 한국의 최신판 사대천왕을 언급했다: 신진서(申眞諝), 박정환(朴廷桓), 신민준(申旻俊), 변상일(卞相壹). 이 네명은 한국바둑랭킹에서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전적도 뛰어나다. 다만 변상일이 아직 세계대회우승경력이 없어, 다른 매체로부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아직은 형성단계이고, 정식으로 세상에 내밀 것인지는 앞으로 추가적인 전적으로 입증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바둑계에도 "육초"외에 네명의 천왕이라고 불리는 기사들이 있다. "헤이세이사천왕(平成四天王)"으로 불리는 기사들이다. 일본 헤이세이시대에 두각을 나타낸 야마시타 게이고(山下敬吾), 하네 나오키(羽根直樹), 다카오 신지(高尾紳路), 장쉬(張栩)의 네 기사이다. 일본국내에서는 거의 7대기전을 독식하였기 때문에 일본매체에서는 '헤이세이사천왕'이라는 칭호를 붙여준 것이다. 그러나 세계대회에서 네명중 유일하게 장쉬가 2006년에 LG배를 한번 취득했을 뿐이다(일본은 그후 세계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다). 그래서 소위 헤이세이사천왕은 그저 일본국내에서 통용되는 것일 뿐이고, 중국과 한국에서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중국바둑계에도 이러한 "용호표(龍虎豹)"의 집단이 있다.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1970년대생으로 1990년대에 이름을 떨친 "칠소룡(七小龍)"이 있다. 멤버는 창하오(常昊), 뤄시허(羅洗河), 샤오웨이강(邵煒剛), 저우허양(周鶴洋), 왕레이(王磊), 류징(劉菁)과 딩웨이(丁偉)이다. 그중 샤오웨이강과 뤄시허는 나중에 마샤오춘(馬曉春)의 제자가 되고, 나머지는 딩웨이를 제외하고 모두 녜웨이핑의 문하에 들어간다. 창하오는 이들 7명중 선두주자이고, 나중에 세계대회 3관왕에 오른다. 뤄시허는 2006년 삼성화재배에서 세계1인자 이창호를 꺽어 이름을 크게 날렸다. 저우허양과 왕레이도 세계대회 결승까지는 올랐지만 모두 패배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신비한 "용비호(龍飛虎)"라는 아이디로 인터넷바둑계에 나타났던 딩웨이도 유명했다.

 

1980년대에 출생한 구리(古力), 콩제(孔杰), 후야오위(胡耀宇)는 2000년대초에 국내외대회에서 힘을 발휘하고 용맹정진하여 적지 않은 성적을 거둔다. 그리하여 "삼소호(三小虎)"라고 불리게 된다. 구리는 중국에서 최초로 팔관왕에 올랐으니 말그대로 선두주자였다. 그는 세계바둑계에서 이세돌과 함께 이창호시대의 뒤를 잇는 구리(古李)시대를 열었다. 콩제도 세계대회 3관왕에 올랐는데, 후야오위만이 기회를 놓쳤다. 2007년초의 LG배 결승에서 타이완기사인 저우쥔신(周俊勛)에게 패배당해 안타깝게 세계챔피언에 오르지 못하고 만다.

 

"표일대(豹一代)"는 1990년대생 고수에 대한 존칭이다. 최초에는 천야오예, 스웨(時越), 저우루이양(周睿羊), 장웨이제(江維傑), 퉈자시(柁嘉熹)등 여러명이 있다. 그중 천야오예는 1989년 12월 26일생이어서 준90년대생이고, 그래서 함께 포함시킨다. 천야오예의 전적은 휘황하다. 일찌기 2006년 LG배 결승에 올랐지만 구리에게 3:2로 석패했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17살이었다. 그후 그는 바둑계에서 드물게 3관왕이 된다. 그래서 그는 "표자두(豹子頭)"와 "맞아죽지않는 소강(小强)"이라는 두 가지 명예로운 별명을 얻게 된다. 그후 중국의 90년대생 '표일대' 세계챔피언은 우후죽순처럼 나타난다. 앞의 몇 사람외에 탕웨이싱, 탄샤오(檀嘯), 당이페이(唐毅飛), 판팅위(范廷鈺), 미위팅(羋昱廷), 커제, 양딩신(楊鼎新), 셰얼하오(謝爾豪), 구쯔하오(辜梓豪)등이 앞다투어 등장했다.

 

이상에서 말한 칭호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바둑계는 일본의 육초가 지배하던 시기가 있었고, 그후 금방 한국의 신노 사대천왕이 휩쓸었던 시절과 이창호시대가 있었으며, 그후 구리시대를 거쳐 중국90년대생의 휘황한 시기로 진입했다. 그러나 늑대가 나타났다. 최신의 세계대전은 한국의 99년생과 2000년생인 신진서와 신민준이 차례로 챔피언에 올랐고, 중국은 98년생 삼걸인 셰얼하오, 구쯔하오, 양딩신 이후 더 이상 젊은 기사들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한국기사들이 다시 한번 세계바둑계를 휩쓸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어떤 젊은 인재가 나타날 것인지 눈을 씻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