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국과 경제/중국의 기업가

쑨광신(孫廣信): 미국에 14만헥타르토지를 구매한 신장 최고부자의 비극

by 중은우시 2021. 10. 12.

글: 차안간천(遮眼看天)

 

금년 4월, 미국 텍사스주에는 <론스타기초설비보호법>이라는 법안을 내놓았다. 중국을 포함한 일부국가의 회사는 텍사스주의 특정산업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전력망, 물공급시스템과 네트워크안전등 기초설비들이 포함되어 있다.

 

법안 기초자중 한명인 주상원의원 Donna Campbell은 전혀 감추지 않고 매체에 말했다. 법안의 원래 생각은 "중국부호 쑨광신(孫廣信)이 멕시코국경부근의 Val Verde County에 토지를 매입했기 때문에 나왔다"

 

원래 2016년이래 쑨광신 산하의 회사는 미국 텍사스주에서 연이어 14만헥타르의 토지를 구매했고, 이곳에 풍력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이었다. 계획에 따르면, 이 발전소는 130대의 고도가 200미터인 대형풍력발전기를 설치하고, 건설한 후에는 이 지역최대의 풍력발전소가 될 예정이다.

 

아쉽게도 이 거대한 계획은 최근 들어 현지 환경보호부서와 군대측에 의해 저지되기 시작한다. 원래 이 공지의 부근은 텍사스주의 생태보호지역이다. 환경보호인사들은 "생태균형을 파괴한다"는 이유를 들어 여러번 항의했다. 그리고 8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곳에는 미군공군기지가 있다. 일부 군대인사는 대량의 풍력발전기가 레이다신호를 방해하고 공군의 훈련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초 투자하여 토지를 매입할 때 미국인들은 나서서 막질 않았다. 돈이 들어오고 땅도 판 후에 나서서 저지한다. 미국인들이 '음험'한 것인가.

 

쑨광신은 이번에 당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14만헥타르의 토지를 매입하여, 풍력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는 쑨광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쑨광신은 누구일까?

 

쑨광신은 20년간 신장최고부자인 사람이다.

 

1962년, 우루무치에서 출생했고, 부친은 산동 칭다오에서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신발장수이다. 집안에 형제자매 5명이 있고, 그들 형제자매중 학력이 가장 높은 사람은 고등학교 졸업이다.

 

대학에 낙방한 후, 그는 군대에 들어가는 것을 선택했고, 군사학교에 들어갔다. 그는 공병반장의 신분으로 월남과의 전쟁에 참가한다. 노산전선에서 9개월간 머물렀고, 총탄 속에서 적지 않은 공을 세운다. 그리하여 몇단계 승진하여, 얼마 후, 부영장(副營長, 부연대장)이 된다. 

 

그러나 평민자제인 그가 여기까지 올라간 것은 이미 끝까지 올라간 것이다. 나중에 그는연속 몇번 승진기회가 막혀 버린다. 자신의 "30세 사단장"의 꿈이 깨진 것을 보자, 그는 공상국으로 보내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스스로 살길을 찾기로 한다.

 

1989년 27세의 쑨광신은 3000위안의 복원비를 가지고 몇몇 전우와 함께 광후이(廣匯)공무회사를 창업한다. 회사가 무엇을 할 것인지는 아직 생각지 않았고, 퇴역군인들의 굳건한 의지와 불패의 정신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굴삭기를 파는 것은 쑨광신이 돈을 벌기 시작한 첫 사업이었다. 당시 그는 굴삭기공장이 신장에서 하는 광고를 보았다. 그리하여 공장을 찾아가서 그들과 협상했다. 1대를 팔 때마다 1%의 커미션을 받겠다고 제안한다. 이는 급여를 주지 않는 판매사원을 고용하는 셈이어서, 아무런 리스크가 없다. 그래서 공장에서도 동의한다.

 

그리하여, 쑨광신은 10개월의 프로모션을 시작한다. 그는 음식, 간장, 절인채소를 가지고 길을 떠난다. 완강한 의지와 부대에서 배운 사람을 대하는 기술로 신발을 여러개 망가뜨리면서 수만리의 길을 걸어 103대의 굴삭기를 판매할 수 있었다.

 

공장에서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판매의 기재를 만난 것이다. 그들은 이전에 1년에 10대가량을 팔았는데, 쑨광신은 10개월만에 그들의 연간판매수량의 10배를 해냈다.

 

그리하여 쑨광신은 즉시 신장지역의 총대리상이 된다. 그리고 적지 않은 보수도 받았다. 이 돈으로 그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 우루무치에서 도산에 직면한 광둥요리식당을 인수한다.

 

그러나 광둥요리식당의 사업은 좋아지지 않았다. 신장인들에게 광동요리를 먹게 하는 습관을 들이게 만들기는 어려웠다. 쑨광신은 적지 않은 손해를 보았다. 다만 손해를 보는 과정에서 약간의 수확도 얻는다. 이 식당을 통해 적지 않은 친구를 사귄 것이다.

 

한번은 누군가 손님을 접대하는데 5천위안을 쓴다는 말을 듣는다. 그는 호기심에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본다. 그리고는 바로 그가 석유계통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당시 타림분지에서 큰 유전이 발견되었고, "황제가 새 궁궐을 지으려면, 장인들이 바쁘기 시작한다." 각종 석유계통에 선을 대어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신장에 운집했다. 그리고 온갖 방법으로 석유계통의 사람들에게 줄을 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쑨광신도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보았고, 자주 이런 사람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았다. 결국 그들과 가까운 친구가 된다. 친구의 소개로 그는 석유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첫째 주문은 석유유정의 부품이었는데, 한번의 거래로 23만위안을 번다. 단맛을 본 후, 그는 다시 신장석유와 계약을 체결한다. 그리고 다시 베이징에서 수출입권한을 가진 무역파트너를 구한다. 이때부터 석유무역사업을 진행한다.

 

1992년, 쑨광신은 30살이 된다. '사단장의 꿈'은 실현하지 못했지만, 천만부호가 되었다. 그해에 석유무역회사의 거래액은 8700만달러였고, 신장수출액의 6분의 1을 차지했다.

 

1993년, 분양주택이 신장에 처음 나타난다. 쑨광신은 투자하고 싶었으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남방으로 가서 몰래 배운다. 두 부동산기업에서 행정인원을 모집했고, 두 기업에서 각각 7일씩 일을 했다. 주요 업무는 각종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것이었고, 부동산업계의 운영방식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거기서 배우고 돌아온 쑨광신은 자신의 직원들에게 호언장담했다. 5년내에 신장최대의 부동산회사로 만들겠다고. 금방 그의 호언장담은 현실이 된다. 부동산이 고속발전하던 시기에 쑨광신은 빠르게 성장한다. 신장시장을 휩쓸었다. 그의 광후이부동산은 신장최대이 부동산기업이 되고, 현지부동산시장의 6할을 장악한다.

 

신장의 부동산시장에서 1인자가 된 후, 쑨광신은 다시 자본운영을 통해 회사를 부동산, 자동차, 물류, 금융, 에너지사업을 모두 수행하는 광후이집단으로 키운다. 그리고 농구클럽인 신장광후이에도 투자한다.

 

2002년 쑨광신은 중국부호랭킹에서 3위를 차지하며, 이후 신장최고부자에 20년간 안정적으로 자리한다.

 

성공한 후, 많은 사람들이 쑨광신을 인터뷰했다. 그에게 무슨 비결이 있는지 물어보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새벽3시전에 잠을 자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 이렇게 반문한다; "새벽3시의 우루무치를 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보다 우수한 사람이 당신보다 더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해동안 그에게 박수를 보내는 외에 그에 대한 의문도 계속 따라다녔다.

 

2003년 <신재경>잡지는 "중국3위부자 쑨광신의 재산진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싣고 쑨광신이 가장 많이 듣는 논쟁거리를 언급한다. 예를 들어 대량의 국유기업을 매입한 것은 기실 저가로 토지를 얻기 위함이다. 비록 우루무치의 60-70%의 부동산시장을 장악했지만, 개발과정에서 많은 실수가 나타났고, 개발된 분양주택은 현지 주민의 실제소비능력을 벗어나 많은 건물이 팔리지 않았으며, 또한 주택의 품질문제도 빈발한다. 그리하여 현재 부동산관리국에 자주 진정이 들어온다. 

 

이들 문제는 어쨌든 쑨광신이 '해결할 수 있었다' 다만, 여러 해동안 고속성장하면서 누적된 채무는 그렇게 쉽게 해결하기 어려웠다.

 

최고부자의 배후에는 채무가 산처럼 쌓여 있다.

 

혁혁한 최고부자라는 레테르뒤에는 거액의 채무가 누르고 있다.

 

최근 고속발전과 대거확장으로 광후이집단은 대량의 현금유동성을 소모하고, 거액의 채무를 진다.

 

일찌기 2011, 광후이집단은 이미 여러번 회사채를 발행하고, 자금이 부족해진다.

 

2014이후 쑨광신은 더더욱 자본운영을 잘 했다. 3개의 회사를 A주에 상장시킨 것은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더 많이 조달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채무문제를 완화시켰다.

 

자금조달을 위하여, 쑨광신은 심지어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500폭의 서화를 500억위안으로 평가하여, 광후이집단에 투입하여 자신의 지분을 늘이고, 계속 차입한다.

 

다행히 중요한 순간에 쑨광신은 광후이에 재신야(財臣爺)를 모셔온다. 당시 중천에 뜬 해와 같았던 헝다의 오너 쉬자인(許家印)이다.

 

2018년 9월, 쉬자인은 145억위안을 광후이집단에 투자한다. 거래완성후 헝다집단은 광후이집단의 제2대주주가 되고, 40.964%의 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 재신야는 그다지 오래 버티지 못한다. 헝다는 금방 재무위기에 빠진다.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2020년 11월 헝다집단은 148.5억위안의 가격으로 그가 보유하고 있던 광후이집단의 모든 주식을 팔아버린다.

 

그동안 전형을 위하여 쑨광신은 많은 노력을 한다. 예를 들어, 전문적인 투자회사를 등록하고, 해외에서 각종 프로젝트에 투자한다.

 

미국에서 산 그 14만헥타르의 토지는 모두 2억달러를 투입했다. 이 자본운영의 거물은 이를 교훈으로 생각할 것이고, 그다지 큰 손실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상인들이 잘 나갈 때는 모두 어떻게 맨손으로 성공을 거두었는지 얘기하고, 어떻게 매일 '새벽3시의 우루무치르 보았는지"를 얘기했다. 그러나 어려울 때, 각종 흑자료, 유언비어, 웃음거리의 부정적인 뉴스가 나오게 된다. 마치 한 사람의 이미지가 완전히 긍정적이거나, 혹은 전혀 건질 것이 없거나 둘 중의 하나인 것처럼.

 

기실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이는 단지 수십년동안 중국경제계의 모습일 뿐이다.

 

중국의 상인들이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또한 간악한 짓은 다하는 간상도 아니다. 그들은 그저 돈벌 기회를 잡은 것일 뿐이고, 시대의 흐름을 잘 밟은 보통사람일 뿐이다. 그들은 거액의 부를 창조했고, 사회에 복을 가져다 주었다. 각종수단을 통하여 사회의 자산을 획득하고 대중의 이익을 희생시키기도 했다. 그들은 부호랭킹에서 순서를 따질 때 항상 부채가 앞장섰다.

 

경제의 발전에 이런 상인이 없을 수 없다. 단지 거대한 이익 앞에서만 인류는 경제번영을 창조할 동력이 있다고 여긴다.

 

중국상인들은 요 몇십년동안 부를 쌓은 속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모두가 절벽에서 외줄타기를 하며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