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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관료

왕샤오홍(王小洪)과 "황가일호(皇家一號)"사건

by 중은우시 2021. 10. 19.

글: 장걸(張傑)

왕샤오홍은 현임 공안부 상무부부장이다. 그는 2011년 9월 샤먼시 부시장 겸 공안국장을 지내고, 2014년 12월 허난성 부성장 겸 공안청장이 되며, 2015년 3월 베이징시 부시장 겸 공안국장이 되고, 2016년 5월에는 공안부 부부장 겸 베이징 부시장 및 공안국장이 된다. 2017년에는 중앙국안위(中央國安委) 판공실 상무부주임이 되었으며, 2018년 3월에는 공안부 상무부부장(정부장급)으로 승진한다.

 

이상의 이력을 보면, 왕샤오홍은 승진이 매우 빨랐음을 알 수 있다. 4년동안 5번이나 승진을 거듭했다.

 

왕샤오홍을 얘기하자면, 부득이 큰 사건 하나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황가일호'사건이다. "황가일호"는 황가일호국제오락클럽하우스 혹은 정저우황가일호클럽하우스의 약칭으로 허난성 정저우시 정동신구의 고급오락장소였고, 정저우 및 중원일대 최대의 오락장소였다.

 

"황가일호"는 2012년 8월에 영업을 개시하고, 2013년 11월 1일 경찰에 의해 매춘활동으로 영업폐쇄를 당한다. 2015년 5월, "황가일호"사건의 관련자 133명이 기소되고, 그중 87명이 형을 받는다. 그 외에 정저우시 공안국 부국장 저우팅신(周廷欣)등 8명의 민경과 전 허난성 공안청장, 허난성 인대상위회 부주임 친위하이(秦玉海) 역시 황가일호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았다.

 

이 사건은 당시 허난성 공안청장이던 왕샤오홍이 직접 책임지고 처리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2013년 5월 허난에서 전개한 '무성폭풍'의 소황타도(掃黃打賭, 매춘도박단속)활동의 일환이었다.

 

2017년 5월 27일, 필자는 황가일호사건에 대하여 컬럼비아대학 정치학박사인 왕쥔타오(王軍濤)와 영상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다. 그리고 영상에서 왕쥔타오 박사가 한 내용을 정리하여 원고로 만들어, 독자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고자 한다(내용중 일부는 삭제했음)

 

1. 왜 "황가일호"사건을 주목하는가?

 

2016년 필자가 "황가일호"사건에 주목할 때, 왕샤오홍이 지금처럼 아주 잘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한 중국변호사가 이 사건을 대리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들을 발견하게 된다. 본인은 컬럼비아대학의 정치학박사이므로 중국정치를 계속 연구하여 왔다. 그는 내가 중국사건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사건에 대하여 검토를 해봐달라고 요청하게 된 것이다.

 

나는 먼저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았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황가일호"는 20억위안을 투자하고, 4천여명의 아가씨들이 매춘을 하고, 아가씨들의 월수입은 10만위안이상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당시 이런 사건을 뒤집는 것은 매우 어렵겠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보도가 신화사의 것이고, 매춘아가씨들이 체포되는 난잡한 장면을 직은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사자들과 얘기를 해봐도 좋다. 그리하여 당사자들에게 상황을 물어보게 되었다. 당사자가 나에게 해준 이야기는 중국관영매체의 보도와 전혀 달랐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신화사에서 발표한 모든 뉴스는 가짜이다. 그래서 나는 흥미를 느끼게 된다. 이어서 나는 왕샤오홍이 이 사건을 처리한 후에 급속히 승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2013년 푸젠의 샤먼공안국에서 허난성공안청장 겸 성장조리로 옮겨오고, 곧이어 부성장으로 승진한다. 내가 느끼기로 왕샤오홍은 시진핑의 눈에 든 것같고, 앞으로 중국의 국가안전업무를 전체적으로 주관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내 생각이 이 사건을 분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사건은 중국의 정치생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많은 정력을 들여 이 사건을 연구했다.

 

2. "황가일호"사건에 대한 분석방법

 

먼저, 당사자들의 진술을 들었다. 그러나 나도 알고 있다. '당사자진술'을 유일한 증거로 삼을 수는 없다는 것을.

 

다음으로, 매체에 공개된 정보를 분석한다. 나는 이들 정보중 많은 것이 상호모순된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그럴 때는 당사자들의 진술을 참고했다. 예를 들어, 당사자는 신화사에서 발표한 "황가일호"의 매춘관련장면사진은 모두 가짜라고 하였으며, 이들 사진은 광둥, 선전, 혹은 다른 지방에서 일어난 사건이 것인데 '이화접목(移花接木)'으로 이 사건에 관련된 것으로 썼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사건의 판결문을 살펴보았다. 황가일호사건은 두 가지 유형의 사건을 포함한다. 첫째유형은 매춘관련이다. 둘째 유형은 정부 및 공안계통인들중 뇌물을 수수하고 이들을 보호해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황가일호"의 판결문을 자세히 보았다. 기본적으로 매체에서 보도한 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나는 8명의 기소경찰과 3명의 부청장급이상의 간부 그리고 친위하이의 판결문을 구해왔다. 그리고 이들 사건은 모두 '황가일호'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을 체포할 때는 모두 '황가일호'사건을 명목으로 체포하였다.

 

네번째로, 일부 핵심증인들에 대한 증인신문은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이는 왕샤오홍이 직접 처리한 사건이므로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매체가 감히 폭로할 수 없다. 국내의 증인도 더더구나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 나는 기밀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들에게서 그들이 서로 다른 경우에 서로 다른 필요에 의해 쓴 증인진술서를 보여주었다. 이들 증인진술서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당사자들과 판결문에서 말하는 것들이었다.

 

다섯째로, "황가일호"의 주요 내부제도를 알아 보았다. 회사의 정관을 살펴본 후에 나는 "황가일호"의 소위 매춘사건은 기본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 황가일호의 투자와 경영모델

 

"황가일호"사건 자체는 아주 간단하다. "황가일호" 클럽하우스는 허난성의 몇몇 오락사업을 하는 민영기업가가 투자한 것이다. 그들은 정저우의 정동신구에 클럽하우스를 열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금이 부족했고, 그리하여 허난롄푸집단(臉譜集團)을 찾아가 투자를 해달라고 요청한다. 허난롄푸집단의 오너는 가오싱우(高興武)이고, 그는 정저우시 정협위원이기도 했다.

 

2012년에, 실제로 가오싱우는 이미 사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가족계획문제에 대하여 정협위원을 맡고 있던 기간동안 여러번 의견을 제시했으나 상급에서는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사직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는 이미 미국으로 투자이민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들이 그를 찾아온 것은 그의 사업파트너였던 장쥔(張軍)이 소개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 두 사람은 각각 일부의 돈을 투자하기로 했고, 전체 투자금은 6000만위안이었다.

 

그들은 미리 고찰을 하고, 유럽식 호화클럽하우스를 만들기로 한다. 중국인들이 부유해진 후에 상인들이 사업상담을 하려면 고급 클럽하우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품격이 아주 높게 만들고 싶었고, 문화적인 분위기도 농후하길 원했다. 그들은 클럽하우스를 만들게 되면 '매춘'의 리스크가 있다는 것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건축배치에서도 조치를 취해서 156개의 룸을 모두 개방식으로 만들었고, 방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깥에서 모두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동시에 그들은 엄격한 제도를 정한다. 예를 들어, 내부제도에는 어떤 종업원도 손님과는 30센티미터 이상의 거리를 반드시 유지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이를 어기면 벌금을 내도록 되어 있으며, 매춘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보장하려 했다.

 

이 클럽하우스는 2012년 8월 16일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개략 2개월가량만에 정상궤도에 오른다. 즉 매일 모든 룸에서 영업수입이 나오게 되었다.

 

관방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이 클럽하우스는 4,500명의 아가씨를 고용하여 매춘을 했다고 한다. 다만 실제로 그들과 관계가 없었다. 그들은 아가씨들에게 한푼도 받지 않았고, 이들 아가씨들에게 한푼의 급여도 지급하지 않았다. 즉, 그들은 이런 류의 수입은 얻지 않았던 것이다. "황가일호"판결서에서 검찰관도 이렇게 말한다. "황가일호"의 수입은 매춘이나 매춘관련수입이 아니다.

 

황가일호는 개업부터 11월 1일 수사받기까지 440일간 영업했다. 클럽하우스의 1일 수입은 50만위안가량이었고, 4명의 주주가 이익을 분배했다. 나머지 투자자들은 차입관계였다. 예를 들어 가오싱우는 이미 이민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 사업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저 돈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다만 돈을 다 갚기도 전에 '황가일호'사건이 터진 것이다.

 

"황가일호'의 투자액은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2억위안이 아니라, 실제로는 6천만위안이다. 거기에는 인테리어, 초기임차금등의 비용이 포함된다.

 

4. 황가일호사건은 가짜사건이다.

 

분석을 통해 나는 이 사건이 너무 황당하다고 느껴졌다. 예를 들어, 11월 1일 "황가일호"가 돌연 폐쇄되었을 떄, 왕샤오홍은 신향에서 천명이상의 경찰을 동원하여, 10여대의 대형버스에 사람을 가득 실었는데, 당시의 종업원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태웠다. 거기에는 그들이 말하는 매춘녀까지 모조리 버스에 태운 것이다. 그리고 신향까지 데려간다. 그리고 신향에서 48시간 차량안에 갇혀 있었다.

 

11월 허난의 날시는 아주 춥다. 클럽하우스에서 끌려간 사람들은 모두 실내에서 입는 얇은 옷만 입고 있었다. 갇혀 있는 곳에는 먹고 마시는 것이나 난방시설은 전혀 없었다. 중간에 누군가는 얻어맞기도 했다. 2명은 병원에 입원한다. 이틀 후, 이 10대의 대형버스에서는 단 1명의 매춘남도 찾아내지 못하고, 단 1명의 매춘녀도 찾아내지 못한다. 그리고 기습과정에서도 매춘관련도구도 전혀 찾아내지 못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왕샤오홍은 한때 포기하고 사건을 정저우에 이송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을 바꾼다.

 

시진핑은 그를 배양할 의사가 있었서 그를 허난으로 보내어 단련시키려는 것이었다.

 

48시간내에 소득이 없자, 왕샤오홍은 새롭게 수사를 진행한다. 여기서 한 마디 덧붙일 것은 기실 '황가일호'가 11월 1일 폐쇄될 때까지의 영업기간동안 허난성에서는 이미 3번의 '엄중단속'활동이 있었다. 이 세번의 활동에서 많은 사람들이 잡혀가고 많은 매춘업소들이 문을 닫았다. 그러나, '황가일호'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매춘과는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황가일호"는 기록이 완비되어 있다. 누가 회원이고, 누가 소비하였는지에 대하여 모두 기록이 남아 있었다. 왕샤오홍은 기록을 다 살펴본 후, 매춘녀나 매춘남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황가일호"의 판결문에는 매춘증거가 하나도 없는 것이고, 매춘녀에 대한 증거도 하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중국의 공안기관이 사건처리과정에서 몇 가지 유형의 증거가 있다는 것을 그중 하나의 유형은 피해자 혹은 사건관련자의 증거이다. 그리고 매춘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매춘남과 매춘녀의 증거는 빠질 수가 없다. 다만, "황가일호"사건에는 이런 유형의 증거가 없다. 내가 "황가일호"는 매춘과 관련이 없다는 것은 클럽하우스의 룸의 설계가 개방적이라는 것, 그리고 매체에서 보도한 자료를 분석해서 나온 것이다. 내가 근거로 한 웹사이트와 매체는 주로 몇 가지 유형이다. 하나는 공안부의 웹사이트, 둘은 허난성정부의 다허(大河)웹사이트, 그리고 중국신문망과 신화망이다. 중국정부의 입으로서 역할을 하는 사이트에서 증거를 수집한 것이다.

 

"황가일호"에 4,500명의 아가씨가 있었고, 그중 2,900명은 녹패(綠牌)아가씨이고, 나머지는 홍패(紅牌)아가씨였다. 홍패아가씨는 '황가일호'내에서만 서비스했고, 녹패아가씨는 고객과 함께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다. 왕샤오홍은 모든 녹패아가씨를 매춘녀로 취급했다. 판결문을 보면, 실제로 이들 아가씨들은 외출할 수 있다는 것뿐이고, 외출한 후에 매춘을 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나중에 그중 한 투자자가 이렇게 하는 것은 좋지 않겠다고 말한다. 녹패, 홍패로 구분하면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하여, 녹패는 이미 수사가 시작되기 전에 취소되어 있었다.

 

한 보도의 내용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황가일호"의 아가씨는 반드시 매춘해야 하며, 최소한의 월수익이 10만위안이라고 한 내용이다. "황가일호"는 모두 440일간 영업했다. 그런데, 440일의 영업에서 매체에서 공표하고, 법정에서 조사된 바로는 겨우 1,620회의 외출기록이 있다고 한다. 즉, 아가씨 두명중 1명이 440일의 기간동안 1번 외출한 것이다. 그렇다면 아가씨 1명은 880일에 1번 매춘행위를 했다는 말이다. 그녀들이 외출할 때마다 매춘했다고 가정하더라도(조사결과 알아내지 못한 일이다), 880일에 1번 섹스를 한다면 이는 부부보다 훨씬 깨끗한 관계라고 해야할 것이다.

 

아가씨들의 매월수입이 10만위안이라는 것은 법정기록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는 매체에서 보도한 내용일 뿐이고, 소식통에 따르면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사람들에게 이곳이 아주 지저분한 곳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함으로 보인다.

 

다만 실제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판결서에 그런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법관들도 재판할 때 아주 황당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외출하여 매춘했다는 기록이 하나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강제로 매춘을 해야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판결문에서는 모든 당사자들이 고문을 당하고 강압을 당했다고 말했다. 확실히 판결문에도 그들이 그런 주장을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 하나의 황당한 일은 왕샤오홍이 모든 수집한 증거를 샤먼공안국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허난성 공안청의 사건인데, 왕샤오홍은 자료를 샤먼공안국으로 보냈다. 다만 공안부에는 다른 지역공안국에서 이 사건을 처리한다는 공문이 없다. 그가 임의로 샤먼공안국에 증거자료를 보관하게 한 것이다. 법정판결문에 나오는 모든 증거는 샤먼공안국에서 내놓은 것이다. 샤먼공안국은 그가 허난성으로 오기 전에 공안국장으로 근무했던 곳이다.

 

이 사건에 대한 여론조작은 더더욱 황당하다. 예를 들어, 중국신문사가 내보낸 한 장의 사진은 황가일호사건의 여성피고인이 법정에서 나오는데, 짧은 하의만을 입고 있다. 너무 짧아서 상의에 하의가 실종되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알고 있다. 여성피고인이 이런 복장으로 법정에 출석할 리 없다는 것을. 왕샤오홍이 이런 저급한 기량을 선보인 것은 그도 일부 독자의 저속한 심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사진을 날조해낸 것이다.

 

"황가일호"사건을 큰 성과로 얘기하고, 독자들의 흥취를 돋구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올바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왕샤오홍은 아주 비열한 짓도 벌인다. 허난성의 일련의 매춘단속사건을 모조리 '황가일호'사건으로 포장한 것이다.

 

예를 들어, 2016년 2월말, 공안부의 사이트 인민경찰망에 다음과 같은 소식이 실린다(나중에 허난성정부의 다허사이트에도 전재된다). 황가일호사건은 모두 155명의 민경이 조사를 받았다고. 다만, 실제로는 2명의 민경만이 '황가일호'사건과 관련있다. 그리고 1명의 민경에 대한 기소는 무죄로 된다. 법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명은 누군가 그에게 5만위안의 돈을 건내서 그로 하여금 황가일호의 투자자 한 명에게 전해주라고 하였는데, 그 투자자는 나중에 외국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럼에도 공안국은 이것을 뇌물로 인정하도록 압박했다. 다만 법관은 그런 기소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이런 일은 보도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황가일호사건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또 한명은 민경은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황가일호에서 매춘이 일어난다고 하여 현장에 가보았지만, 찾아낼 수 없었고, 그래서 그냥 떠났다고.

 

내가 금방 얘기한 것처럼, 설사 공개된 보도와 판결서에 따르더라도, "황가일호"현장은 매춘과 관련이 없었다. 모두 녹패아가씨는 고객을 따라 바깥으로 나가 매춘한다고 하지만, 누구도 "황가일호" 안에서 그런 상황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황가일호의 건축구조는 매춘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격한 규정도 있었다. 그래서 민경이 매춘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 민경은 나중에 형을 받는다.

 

앞에서 말한 '황가일호'에서 일찌기 8명의 민경, 3명의 부청장급간부, 그리고 1명의 성급간부 친위하이가 관련되어 있다고 했고 ,그들은 모두 법정에서 죄를 인정했다. 그리하여 형을 감경받는다. 다만 이들의 범죄내용은 황가일호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 155명의 경찰들 중에서, 152명은 공안게통이고, 3명은 검찰계통이다. 앞에서 말한 2명의 경관을 제외하고 나머지 153명은 황가일호와 관련이 없다.

 

그래서, 필자의 생각에 왕샤오홍은 너무 비열하다. 사람들에게 나쁜 인상을 주고, 자신의 정치적 업적을 쌓기 위하여, 155명의 경찰관을 조사하고, 모조리 '황가일호'사건에 얽어넣은 것이다.

 

실제로 왕샤오홍은 48시간내에 바로 이 사건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습했음에도 단 1건의 매춘증거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사건이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잘못을 고집했고, 자신의 정치적 업적으로 삼고자 했다.

 

2014년 3월 17일, 시진핑이 허난으로 시찰을 온다. 이는 "황가일호"사건의 진정한 전환점이다. 

 

시진핑이 란카오(蘭考)로 가서 무엇을 했을까? 그는 군중들에게 밀접하게 연결되는 활동을 벌인다. 그는 공산당이 비교적 소박했던 시기로 되돌아가고 싶어했다. 공산당은 한번도 소박한 적이 없었지만, 시진핑은 공산당이 소박했던 적이 있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는 모든 상위와 위원들을 1개의 현과 연결시켰다. 그는 허난성 란카오현으로 간다. 원래 자오위루(焦裕祿)가 일했던 곳을 자신이 차지한 것이다. 그는 이전에도 한번 갔었는데, 이때 또 한번 간다. 그가 3월 17일에 갈 때, 란카오현에서 당원간부군중을 맞이한 외에, 두 사람만 만난다. 한 명은 허난성위서기이고, 다른 한명은 왕샤오홍이다.

 

어떤 사람은 시진핑과 왕샤오홍이 30분간 얘기를 나누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달도 되지 않아 중공중앙의 순시소조가 허난으로 온다. 순시소조가 간 후에는 일을 요란하게 벌인다. 순시소조의 직책은 원래 부성장급 이상의 간부를 조사하는 것이다. 다만 당시에 어느 간부가 있었는데, 예를 들어, 자오줘(焦作)의 서기가 '황가일호'의 투자자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리고 8명의 경찰이 체포된다. '황가일호'를 비호하는데 가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저우팅신과 황바오웨이(黃保衛)라는 부청장급간부를 체포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친위하이를 체포한다. 친위하이는 원래 허난성의 공안국장이었다. 임기내에 허난성은 100%의 사건해결률을 나타냈다. 공안부 웹사이트를 보면 알 수가 있다.

 

친위하이게 조사받을 때 그의 직책은 허난성의 인대부주임, 당조서기였다.

 

"황가일호"사건에서 왕샤오홍이 자신의 뜻대로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시진핑이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도대체 '황가일호'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나의 각도에서 보자면 3가지 가능성이 있는 것같다.

 

첫째 가능성: 시진핑이 왕샤오홍을 허난으로 보낸 것은 다른 사람이 그에게 이런 단련기회를 주자고 추천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잘하면 올라가고, 그렇지 않으면 내려가야 한다. 왕샤오홍은 '황가일호'사건으로 공을 세우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 사건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다만 이 사건을 계속하려면 더욱 큰 정치적인 지지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그는 시진핑이 란카오를 시찰하는 틈을 타서 만나보고, 만난 후에 시진핑은 그의 생각을 지지해준다. 이 사건은 누가 최종 책임자이든 끝까지 조사하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순시소조를 보내어 왕샤오홍을 도운다.

 

둘째 가능성: 시진핑이 왕샤오홍을 허난으로 보낸 것은 일반적인 고찰이다. 만일 그가 큰 일을 만들어내면 기용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만이다. 어쨌든 그는 지금 사람이 필요하다. 허난에서, 푸젠에서, 저장에서 사람을 데려온다. 다만 이 과정에서 그는 허난으로 갔고, 시찰할 때 왕샤오홍이 이 사건을 보고했다. 그는 돌연 허난성도 그가 진입해야할 영역이라고 여기게 되었고, 이 사건을 기화로 허난의 관료사회를 혼동에 몰아넣으려 했다.

 

이런 상황하에서, 황가일호사건이 나온 것이고, 왕샤오홍에게는 정치적 실적이 된 것이다. 시진핑은 확실히 그의 정치적 보호산이 되어 주었다. 혹은 그를 뒤에서 받쳐주었다. 그래서 왕샤오홍은 사건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시진핑은 왕샤오홍이 제공한 단서를 가지고, 허난의 관료사회를 숙청한다. 다만 시진핑이 이런 일을 벌일 때,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확실히 '황가일호'는 무슨 정치적 배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왕샤오홍이 보고한 것처럼. 예를 들어, 매체는 누구누구가 관련되어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모두 왕샤오홍이 중앙에 보고한 내용이다. 중앙은 매체에 그 소식을 흘렸다. 최종적으로 판결문에서도 마지막 보도에서도 그런 내용은 나와 있지 않다. 즉 시진핑은 그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다만 확실히 왕샤오홍은 승진했다.

 

셋째 가능성: 시진핑과 허난성의 전성위서기 루잔공(盧展工)간에는 개인적인 은원이 있다. 시진핑이 푸젠에서 관리로 있을 때, 루잔공은 시진핑을 좋게 평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또 다른 한가지 주장이 있는데 아주 기이하다. 루잔공은 시진핑의 승진을 막기 위하여 허난에서 평분(平墳)활동을 벌여서, 시진핑의 조상묘를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루잔공을 제거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런 주장은 좀 터무니가 없는 것같다.

 

왕샤오홍이 황가일호사건을 만들어낸 것은 실제로 시진핑이 뒤에서 받쳐주었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착안(錯案), 원안(寃案)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이 중국정치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첫째, 만일 시진핑이 이런 식으로 부패척결활동을 벌이는 자를 발탁한다면, 그것은 중국에 큰 재난이 될 것이다.

 

내 생각에 시진핑은 지식청년인 적도 있었고, 한급 한급 올라간 사람이다. 다만 실제로 그에게는 공자가(公子哥, 도련님)기질이 아주 강하다. 민간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다. 그가 그렇게 많은 탐관오리를 잡아냈고, 그들 탐관오리들은 많은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아갔지만, 시진핑은 피해자들에게 이를 돌려주지 않았다. 그는 탐관을 잡는데만 만족한다. 인민은 박수를 쳐준다. 그는 피해자들이 마땅히 받아야할 보상에 대하여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 사건에서, 그의 공자가 기질의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바로 사람을 기용할 때 완전히 자신이 느낀 인상이나 의리를 따진다는 것이다. 전문적인 경로를 따르지 않고, 전문적인 규칙도 믿지 않는다.

 

"황가일호"사건은 조금만 전문적으로 분석해보면, 이 사건이 엉터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2,900명의 아가씨가 강제로 매춘을 하는데, 440일동안 겨우 1,620회밖에 하지 않았단 말인가? 이는 마치 옛날에 가오위바오(高玉寶)가 한밤중에 닭이 울게 한다는 말과 같다. 수백만의 중국인민해방군의 군인들은 모두 농민이다. 그런데도 어찌 이런 엉터리같은 말을 믿었을까? 닭이 한 대머리가 닭이 우는 소리를 흉내내어 울면, 닭들이 따라 운다는 말은...닭은 시간이 되지 않으면 울지 않는다. 아무리 가서 두드려도 울지 않는다. 이건 그 동물의 특성이다. 그런데도 수백만의 농민자제병들은 가오뷔바오의 거짓말을 믿어버렸다.

 

시진핑은 중국당정군의 제1인자이다. 만일 그가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후환이 무궁할 것이다.

 

왕샤오홍이 새로 맡은 직위가 국안위 판공실 상무부주임이다. 국안위는 시진핑이 직접 주임을 맡고 있다. 국안위는 전체 공안, 검찰, 법원, 사법게통을 조정할 뿐아니라, 무경도 포함하고, 총참2부 3부등도 그 관할하에 들어가 있다. 여기에 외교부도 포함된다. 이렇게 큰 직권을 이런 원안, 착안을 만들어내며, 누추하기 그지없는 자의 손에 들어갔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마지막으로 할 말은 이것이다. 미래에 '황가일호'사건에는 더 많은 증거와 자료가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이 정도 증거와 자료만으로도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어쨌든 수십명이 이미 형을 받았고, 두 기업가도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그리고 일부 가정은 가족이 흩어지고 집안이 망하고, 사람이 죽었다. 이것은 모두 왕샤오홍이 개인의 승진을 위해서 만들어낸 재난이다.

 

만일 장래 그가 국안회를 장악하게 되면, 장래 더욱 중요한 직위로 올라가지는 않을까? 만일 그렇게 된다면, 중국에는 얼마나 많은 착안, 원안이 발생하게 될 것인가. 중국의 법치는 얼마나 짓밟힐 것인가?

 

그외에 우리는 국안은 많은 정도로 외국과 관련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왕샤오홍이 중국의 외교업무에 얼마나 큰 손실을 가져가 주게 될 것이고, 중국의 국가안전에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적을 만들어낼 것이고, 얼마나 많은 골치거리를 만들어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