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치/중국의 관료

2000년이후 사형판결받은 7명의 차관급 고위관료

중은우시 2021. 1. 7. 11:51

글: 왕우군(王友軍)

 

1. 라이샤오민(賴小民)

 

2021년 1월 5일, '중국금융부패제일사건'의 주인공이라 불리는 중국화룽(華融)자산관리회사 전 당위서기, 동사장 라이샤오민에게 수뢰죄, 탐오죄, 중혼죄로 사형판결이 내려졌다. 라이샤오민이 낙마한 후, CCTV는 2020년 1월에 방송한 다큐멘터리에서 여러 구체적인 내용들을 폭로했다. 거기에는 라이샤오민이 돈을 숨겨둔 한 방에 금고가 있는데, 그 안에 2억여위안의 현금이 들어있었다.

 

라이샤오민의 수뢰액은 17.88억위안이다. 그중 3건의 수뢰금액은 각각 2억위안, 4억위안, 6억위안이상이다.

 

쑤저우중학의 전교사인 판루는 17.88억위안에 대하여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했다: "만일 우리가 이 돈을 1백위안짜리 현찰로 바꾸면 무게가 20톤에 이른다. 10톤짜리 트럭 2대를 가득 채우고, 5톤짜리트럭은 4대를 꽉 채울 수 있다. 만일 집에 이 돈을 놔둔다면, 100평방미터(30평)짜리 집은 부족하고, 호화빌라를 사서 두어야 할 것이다."

 

재신망은 이렇게 보도한 바 있다. 라이샤오민은 "3개의 일백"이 있다: 일백채이상의 주택, 100명이상의 관계인, 100명이상의 정부.

 

2. 자오리핑(趙黎平)

 

2017년 5월 26일, 전 내몽골자치구정협부주석, 성공안청장 자오리핑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자오리핑은 고의살인죄, 수뢰죄, 불법총기탄약소지죄, 불법폭발물보관죄로 기소되었다. 자오리핑은 중공18대이후 사형이 집행된 최초의 장차관급 고위관리이다.

 

2015년 3월 20일, 자오리핑은 차를 몰고 츠펑시(赤峰市)로 가서 그의 정부를 추적살해한다. 살인을 저지른 후, 시신을 아우디차량의 트렁크에 넣어서 츠펑을 떠나고, 도중에 시신을 꺼내서 휘발류를 부어 시신을 태워버린다; 차를 몰고 도망치는 도중에 경찰에 체포되었다.

 

경찰츤 자오리핑이 물건을 버린 현장에서 리볼버권총1정, 64식 권총 1정, 49발의 총탄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오리핑의 내옴공공안청경찰체육센터2층 사무실의 금고에서 91매의 뇌관도 압수한다.

 

사건의 1심, 2심에서 사형확인단계까지 자오리핑은 끝까지 죄를 부인했다.

 

3. 왕화이중(王懷忠)

 

2004년 2월 12일, 전 안후이성 부성장 왕화이중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다.

 

왕화이중은 517.1만위안의 뇌물요구, 수뢰 및 480.58만위안의 내력불명재산으로 기소된다.

 

왕화이중은 스스로 '택중교룡(澤中蛟龍)'이라고 자부했고, 언젠가 "큰 바다에 들어가 파도를 일으킬 것"이라고 하였다. 왕화이중의 부패문제는 그가 낙마하기 전에도 계속 누군가 고발을 했었다. 그러나 상급기관이 여러번 조사를 했지만, 흐지부지되고 말았었다. 그는 일찌기 한 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기율검사위원회에 감사한다. 나를 한번 조사하면 내가 한번 승진하고, 나를 열여덟번 조사해서, 내가 열여덟번 승진했다!"

 

왕화이중은 끝까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죄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그의 사건은 '공화국 역사상 최대의 억울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보도에 따르면, 왕화이중이 죄를 인정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러했다. 그는 관직을 사기 위하여, 당시 중공당수인 장쩌민의 당매(堂妹)로 안후이에서 일하고 있던 장쩌후이(江澤慧)에게 450만위안을 뇌물로 주었다. 그런데 장쩌후이에게 뇌물을 가져다 준 사람이 그 혼자만도 아니고, 장쩌후이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죄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왕화이중이 사형된 후, 안후이성에서 6명의 부성장들이 조사를 받고 처벌받는다: 허민쉬(사형집행유예), 왕샤오야오(사형집행유예), 니파커(징역17년), 양쩐차오(무기징역), 천슈룽(무기징역), 저우춘위(징역20년).

 

그중 천슈룽의 경우, 뇌물금액은 2.75억위안이고, 직권남용으로 인해 끼친 손실이 29.16억위안이며, 내부거래를 통해 1.37억위안의 이익도 엇었고, 내부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여 3,031.17만위안의 이익을 얻게 했다.

 

4. 후창칭(胡長淸)

 

2000년 3월 8일, 장시성 부성장 후창칭의 사형이 집행된다.

 

후창칭은 544만위안 뇌물요구, 8만위안의 수뢰, 161만위안의 내력불명재산죄로 처벌받았다.

 

후창칭사건은 1999년 8월 7일 발생했다. 그 전날, 그는 쿤밍의 세계박람회에서 장시관의 개관식을 주재했다. 다음 날, 그는 쿤밍공항에서 장시성정부 비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선전을 가겠다고 말한다. 얼마 후, 중앙조직부에서 세계박람회 장시대표단에 전화를 걸어, 후창칭과 얘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장시성의 관리는 즉시 후창칭에게 연락한다. 후창칭은 자신이 선전에 있다고 말하면서 몇 마디 하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장시성의 관리는 선전에 전화를 걸었지만, 선전에서는 후창칭의 행적을 모른다고 말한다. 어쩔 수 없이, 관련부서는 통신 및 항공부서를 통해 후창칭의 종적을 추적한다. 그의 핸드폰을 추적하자, 후창칭은 선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광저우에 있었다. 그리고 8월 7일자 쿤밍공항에서 출발한 명단을 조사하니 후창칭이라는 이름이 없었다. 최종적으로 관련부서는 광저우의 중국대주점에서 천펑치(陳風齊)라는 가명으로 투숙한 후창칭을 찾아낸다. 원래 후창칭은 공무출장도중 광저우로 가서 정부와 밀회를 즐기는 중이었던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법정에서 후창칭의 태도는 공손했다. 매번 발언하기 전에 혹은 발언을 마치면, "재판장에게 감사한다" "검찰관에게 감사한다" "변호사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했다. 중앙기율검사위의 조사와 최고검찰원 반탐총국의 수사에서 후창칭은 여러번 조사관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했었다.

 

전 중공중앙총서기 자오쯔양의 말에 따르면, 후창칭이 사형판결을 받고 집행된 것은 그가 당시 중공중앙총서기 장쩌민에 대하여 불만을 여러번 얘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5. 돤이허(段義和)

 

2007년 9월 5일, 전 산둥성지난시인대상위회주임 돤이허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다.

 

돤이허의 가장 중요한 범죄사실은 그가 사람을 시켜 폭발물을 이용하여 그의 정부 류하이핑(柳海平)을 죽인 것이다. 돤이허가 류하이핑을 만났을 때 그는 48살이고, 류하이핑은 18살이었다. 돤이허는 어린 정부를 가진 후, 그녀를 도와 농촌호구를 도시호구로 바꾸어주고, 좋은 일자리도 마련해주고, 집도 사주고, 자가용도 사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들이 도시에서 일자리를 잡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그후, 류하이핑은 돤이허와 결혼을 요구하나, 돤이허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러자 류하이핑은 관계기관이 돤이허를 고발하고, 100만위안의 보상비를 요구한다. 돤이허는 자신의 조카사위인 천즈(陳志)와 천즈의 친구인 천창빙(陳常兵)을 시켜 류하이핑의 자가용에 폭발물을 설치하고, 리모콘으로 폭발시켜, 1명이 죽고 2명이 부상을 입게 만든다. 차량은 두 동강이 났다. 천즈는 사형을 받고, 천창빙은 무기징역을 받았다.

 

그외에 돤이허는 169만원의 뇌물요구와 수뢰죄, 그리고 133만여위안의 내력불명재산죄도 있었다.

 

돤이허는 여색을 탐하고 재물을 탐하다가, 3명이 목숨을 잃고 4개의 가정이 파탄나게 만들었다.

 

6. 정샤오위(鄭筱萸)

 

2007년 7월 10일, 전 국가식품약품감독관리국 국장 정샤오위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정샤오위는 649만위안의 뇌물을 받고, 직무유기죄를 저질렀다. 정샤오위는 심사허가기준을 임의로 낮추어 허가를 내주어 엄중한 결과를 초래했다. 샘플조사결과 일부 약품생산기업은 허위의 자료로 신고하여 약품생산허가번호를 받았는데, 그중 6개는 가짜약이었다. 2006년 치치하얼제2제약회사의 Armillarisin A주사약사건과 안후이화위안생물제약회사의 신푸(欣弗)주사약사건에서 10명이 사망하고, 여러 환자들은 신장기능저하가 발생했다.

 

사형이 집행되기 전날, 정샤오위는 유서에서 이렇게 썼다: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말을 하자면, 내가 혹시 매일 꿈을 꾸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런 최후가 올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직무유기되로 사형을 받은 고위관리로서 나는 건국이래 최초의 인물이다...내일 나는 '길을 떠난다' 또 다른 세계로 간다. 내가 지금 가장 무서운 것은 나로 인해 죽은 원혼들을 어떻게 마주할 것이냐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나를 이해하고 용서해주기 바랄 뿐이다."

 

7. 청커제(成克傑)

 

2000년 9월 14일, 전인대 부위원장 청커제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청커제는 광시장족자치구정부주석으로 있을 때 정부인 리핑(李平)과 함께, 혹은 단독으로 인민폐4,109만위안의 뇌물을 받았다. 다만 법정에서 청커제는 진술을 완전히 번복하고 모두 부인한다.

 

소식통에 따르면, 청커제가 사형을 받은 진짜 이유는 바로 장쩌민에게 밉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청커제는 일찌기 장쩌민의 정부이자 전인대대표, 가수인 송주잉(宋祖英)에게 너무 '관심'을 보여, 장쩌민의 질투심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목숨도 잃었다고 한다.

 

청커체는 신중국건국 71년이래 사형집행된 최고위급 관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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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은 최고의 형벌이다. 고대에는 '극형'이라고 불렀다. 다만, 중공부패의 암세포는 이미 온몸에 퍼져 있다. 사형도 좋고, 사형집행유에도 좋고, 모두 중공의 전면적이고 철저한 부패를 막을 수 없었다. 중공의 부패는 제도적 부패이기 때문이다. 부패하지 않은 것은 우연이고, 부패하는 것은 필연이다. 한 부패분자가 무너지더라도, 천만의 부패분자들이 바로 복제되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