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호청천(鼎湖聽泉)
각종 광서제의 사망에 대한 전설중에서, 주류는 3가지이다. 이연영살해설, 원세개살해설, 서태후살해설. 어쨌든 그의 죽음은 너무나 기이하고 수수께끼였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먼저 전설중 신뢰도가 가장 낮은 이연영살해설을 살펴보기로 하자.
전문적으로 소개할 필요도 없이, 청나라궁중드라마를 보았던 사람이라면, 모두 이연영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청나라의 스타태감이다. 그는 서태후 곁에서 잘나갔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오른팔 왼팔이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 서태후를 미워했던 광서제는 죽기 전에 그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이다. 어쨌든 곁에서 행세하는 주구나 방흉이 더욱 미운 법이다. 그래서 자신의 흉험한 처지를 알게 된 이연영이 그 정보를 서태후에게 알리고, 직접 나서서 처리했다는 것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지는 않다.
왜나하면 이런 역할설정으로 여주인이 어린주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4살때 서태후가 궁으로 안고 들어와 허수아비황제로 앉힌 광서제는 정치적 상징으로서의 특수한 의미가 있는 외에, 이 몸도 약하고 병도 많은 외조카에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깊은 감정같은 것은 없었고, 오히려 그에게 아주 각박하게 대한다. 광서제에게는 입을 옷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을 뿐아니라, 심지어 먹을 것까지도 곰팡이가 피고 변질된 것을 주게 된다. 광서제는 금덩어리를 안고 굶주리는 거지와 같았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엄격하게 통제받는 정치적 죄수나 다름이 없었다.
이런 비참한 처지로 인하여, 대청에서 가장 명이 좋지 않은 광서제가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았다면 그건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 이 권력에 미친 여마두에 대하여 깊은 원한을 품었을 것이다. 무슨 "수언촌초심(誰言寸草心), 보득삼춘휘(報得三春暉)"같이 길러준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하물며 약간의 정치적 포부를 품었던 광서제로서는 청일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나라와 집안을 망친' 서태후의 상권욕국을 보면서, 일찌감치 큰 뜻을 품게 된다. "덕종(광서제)가 친정을 시작할 때 나이도 한창때이고 큰 뜻을 품고 있어서, 나라의 힘을 키워 이전의 국치를 씻고자 했다."(<청사고>). 팔국연합군이 진격해올 때 서태후와 맞섰을 뿐아니라, 심지어 이전에 일으킨 백일유신때는 서태후를 '제거'할 생각까지 했었다.
이 모든 것은 서태후가 가장 신뢰하던 환관 이연영에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그는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이연영은 여러븐 광서제를 중상하고 우롱했다. 그래서 황제와는 원한이 있었다. 천자와 원한을 맺은 이연영은 당연히 편안하게 지낼 수가 없다. 나이가 많은 여주인의 몸상태가 계속 나빠져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만일 여주인의 비호가 사라지게 되면 자신은 어떻게 혼자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하여 머리를 굴린 이연영은 광서제에게 보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즉시 먼저 광서제를 제거하는 독계를 세우게 된다. 그리하여 광서제를 독살함으로써 자신을 지키고자 한 것이다. 이에 관한 사료로는, 서태후의 어전여관 덕령의 <영대읍혈기>가 있다. 그녀의 회고에 따를 때, 광서제가 죽기 하루 전, 난감한 얼굴색을 한 이연영이 광서제의 병이 위중하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여주인 서태후에게 가서 병세를 살펴보고, 그를 병세가 호전되기를 기도하겠다고 청한다. 누가 알았으랴. 이연영이 이 말을 한 다음 날 광서제가 죽는다. 마치 그의 죽음을 미리 예언한 것처럼. 그 안의 내막을 다른 사람들이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하여 이연영은 악명을 뒤집어 쓰게 되고, 살인범의 혐의를 받게 된다. 아마도 황하에 뛰어들더라도 씻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당연히 이연영살해설은 어쨌든 덕령의 주관적인 억측이다. 실질적인 증거는 없다. 심지어 세부적인 사항들은 검증을 통과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왜냐하면 일처리할 때 항상 조용하고 조심스러웠던 이연영이 갑자기 악독해져서 직접 황제를 살해했다니. 아마 그의 담량이 아무리 커도 그렇게는 못했을 것이다. 동기도 부족하고, 그렇게 악랄한 수법을 쓸 수도 없다. 하물며 양면파인 이연영을 누구에게도 밉보이지 않았다. 일찌기 정치적 곤경에 처해 있는 광서제를 실질적으로 도와준 적도 있다. 예를 들어, 서태후가 광서제를 데리고 서쪽으로 도망칠 때, 이연영은 광서제에게 재물을 주어 생활의 편의를 도모해 주었다. 그리고 설사 서태후의 아래에서 잘나간다고 하더라도, 이연영은 교횡발호하지 않았다. 광서제와 그의 부친인 순친왕에 대하여도 항상 공손했다. 광서제의 사후 광서제의 미망인 융유태후에게도 자신이 돈을 내서 도와준다. 만일 그가 위장을 아주 잘 한 것이 아니라면 닭잡을 힘조차 없었던 인자한 이연영과 황제를 시해하는 인물과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그래서 이 설은 의문이 남는다.
다음으로, 위장에 능했던 악독한 정치인 원세개의 황제살해설을 보자.
원세개는 겨우 83일간 복벽하여 황제에 있었다. 일설에는 보약을 너무 많이 먹다가 '급사'했다는 그의 양면삼도의 인품으로 보야 폭발하면 황제도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원세개는 일찌기 개혁파의 기대를 받고 있었던 총과 포를 가진 '살인신기'였다. 그는 이해관계를 따져본 후에 광서제를 우두머리로 하는 개혁파를 배신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위원겁후(圍園劫后, 이화원을 포위하여 서태후를 겁박한다)"의 계획은 파탄나게 된다. 죽음의 위기를 넘긴 서태후는 즉시 인마를 모아 잔혹하게 보복한다. '무술육군자'는 목숨을 잃고, 광서제는 갇혀버리고, 유신운동은 실패로 끝이 난다. 이런 역사적인 이유로 인하여 광서제는 양면삼도의 주군을 팔아 자신의 영화를 구한 원세개를 뼛속까지 미워하는 것이 당연하다. 자신이 다시 권력을 잡게 되면 이 정치소인배 원세개에 대하여 보복하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원세개에게는 광서제를 죽일 동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온화했던 환관 이연영보다는 훨씬 더 결심을 하기 좋았을 것이라고 한다.
이에 기하여, 사람들은 광서제가 악독한 원세개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의심한다. 그리고 이유도 충분하다. 어쨌든 원세개가 등뒤에서 칼을 찔러 상처를 입은 셈인 광서제이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는 이를 갈고 있었다. 개인적인 일기에서마저도 이를 잊지 않고 원세개를 죽이겠다고 적었다. 간교한 원세개로서는 이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반격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먼저 손을 써서 상대를 죽인 것이라고 본다.
당연히, 원세개가 천자의 고귀한 자리에 있는 광서제를 죽인다는 것은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권력중추에 있는 대군벌이고, 총도 가지고 포도 가지고 있지만, 구중궁궐내에 있는 황제를 암살한다는 것은 호랑이가 하늘을 삼키고 싶어도 삼킬 수 없는 것과 같다. 성공할 확률은 권력중심에 있고 닭잡을 힘조차 없는 이연영보다도 낮다. 어쨌든 이연영은 아무도 모르게 광서제가 먹는 음식에 독을 풀 수가 있다. 원세개는 어선방의 검사를 층층이 통과해야 비로소 독탕을 광서제에 바칠 수 있다. 심지어 소문에는 큰 돈을 주고 광서제의 어의를 매수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하기도 한다. 어의는 차라리 자신이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갈 지언정 그런 하늘이 무너질 일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원세개는 그렇다고 광명정대하게 군대를 이끌고 궁중으로 쳐들어갈 수도 없다. 그렇게 했다가는 무술육군자처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원세개살해설에도 의문이 많다. 성공확률이 너무 낮다. 원세개가 아무리 교활하더라도 절대 손해보는 장사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일찌감치 병력을 동원해서 서태후를 작살냈을 것이다. 왜 하필 고민고민하다가 서태후에게 밀고하는 것을 택했겠는가.
그렇다면, 결국 남은 것은 세번째 가능성이다. 서태후가 살해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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