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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중국 이데올로기총관 왕후닝(王滬寧)은 어디로 갔을까?

by 중은우시 2021. 9. 16.

글: 왕우군(王友群)

 

중공정치국상위, 이데올로기총관, 선전기구총관인 왕후닝이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지 이미 14일이 지났다. 혹시 이것이 8월 29일 왕후닝의 지시로 수십개의 당매체에서 '모좌' 리광만(李光滿)의 글 <모든 사람은 느끼고 있다. 하나의 심각한 변혁이 진행중이다!>를 전재한 것과 관련이 있는지 외부에서는 주목하고 있다.

 

최근 들어, 중공당수 시진핑이 가장 많이 강조한 것은 시중앙과 고도로 일치하라는 것이다. 특히 중공당매체는.

 

다만, 중국의 가장 중요한 당매체들이 집단적으로 리광만의 글을 전재한 후, <환구시보>의 총편집 후시진(胡錫進)은 공공연히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9월 2일, 후시진을 글을 써서 리광만이 중국에서 현재 심각한 변혁이 진행중이라고 말한 것은 '엄중한 오판과 오도이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후시진은 이렇게 말했다: "무릇 국가관리감독조치에 대한 극단적인 해석은 여러분들이 모두 믿을 필요가 없다"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본인은 체제내에서 업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과 접촉을 하고 있으며, 본인은 회의에서건 사적인 장소에서건 한번도 중국에서 위 글에서 묘사한 정치동향이 출현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모두 알고 있다시피 후시진은 당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다. 8월 29일 그가 주관하는 <환구시보>에서도 지시를 받아 리광만의 글을 전재했다. 다만, 하룻밤만에, 후시진은 돌연 태도를 바꾼 것이다. 그가 당의 말을 듣지 않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가 아무리 담이 크더라도, 그가 감히 당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후시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중남해에 있는 것이다. 리광만의 글 배후에는 두 개의 '당중앙'이 있다. 하나는 왕후닝을 대표로 하는 당중앙이고, 다른 하나는 배후에서 후시진을 지지하는 당중앙이다.

 

후시진은 리광만의 글을 전재한 것이 중남해 고위층의 지시하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공개적으로 나서서 반대했다. 분명히 이것도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서 하는 일이다. 그럼 누구의 명을 받았을까? 아마도 시중앙의 명을 받았을 것이다.

 

중국의 각 대형당매체가 돌연 리광만의 글을 전재한 것은 아마도 중공정치국상위 왕후닝이 결정한 것일 것이고, 시진핑이 결정한 것이 아닐 것이다.

 

우선, 리광만은 그저 은퇴한 극좌 개인미디어운영자이다. 항상 '모좌' 사이트인 '오유지향(烏有之鄕)'에 글을 발표했고, 일찌기 <화중전력보> 총편집을 지낸 바 있다. 그러나 이 신문은 2012년에 정간된다. 중공당내에 어용문인은 아주 많다. 중앙정책연구실부터 중앙당교, 중국사회과학원까지. 시진핑이 만일 누군가를 찾아서 글을 쓰게 해서, 그의 생각을 천명하게 하려면 리광만에게까지 순서가 돌아가지도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리광만의 글은 일부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문혁대자보'로 불렸다. 그리하여 많은 부정적인 효과를 나타냈는데,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제2차문혁이 도래할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진핑은 부득이 그의 심복이자 국무원 부총리인 류허가 나서서 '불을 끄게' 해야만 했다. 9월 6일 류허는 중국국제디지탈경제박람회의 치사를 통해 '민영경제발전을 지지한다는 정책은 변함이 없다. 지금도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셋째, 리광만의 글은 연예계를 공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한바퀴를 돌아 다시 연예계를 공격한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현재 오락계, 연예계, 영화드라마계의 정리정돈의 강도는 아주 부족하다. 일체의 수단을 동원하여 사회에 존재하는 각종 팬클럽. 팬덤문화를 타격해야 하고, 사회에서 낭파오(娘炮, 여성스러운 남자)와 샤오셴러우(小鮮肉, 예쁘장한 젊은 남자를 가리킴)현상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마디도 '관료사회의 부패"를 언급하지 않았고, 단 한마디도 '관료부패'를 언급하지 않았다. 더더구나 시진핑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정법대숙청이나, 대숙청가운데 낙마한 탐관오리 및 그 배후의 보스의 악행을 언급하지 않았다. 

 

1월 22일, 시진핑은 19기 중기위제5차회의에서 부패는 여전히 중국의 최대위협이라고 말했다. 1월 29일, 시진핑당국은 보기 드물게 빠른 속도로 전 화룽집단 동사장 라이샤오민(賴小民)의 사형을 집행했다. 2월-8월, 정법대숙청은 현, 시급에서 전개되었다. 8-11월 중앙, 성급에서 전개된다. 이번 반부패의 명의로 진행하는 대숙청은 실제로 내년 20대의 너죽고나살기식의 권력투쟁과 관련이 있다.

 

투쟁의 쌍방은 한편이 시진핑이고, 다른 한편이 장쩌민, 쩡칭홍을 우두머리로 하는 반시진핑세력이다. 시진핑이 진행하는 정법대숙청은 까놓고 말해서 장기간 장쩌민, 쩡칭홍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던 정법대권을 시진핑의 수중으로 장악하기 위한 것이다. 11월중순에 이르면 쌍방투쟁의 기본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다.

 

즉, 8월중순에서 11월중순까지 3개월은 시진핑과 장쩌민, 쩡칭홍의 권력투쟁에서 또 한번의 긴장되고 격렬한 시기이다. 장쩌민, 쩡칭홍은 중공당정군 최고위층부정부패의 총뒷배경이다. 시진핑의 반부패도 좋고, 정법대숙청도 좋다. 기실 모두 장쩌민, 쩡칭홍을 겨냥한 것이다.

 

8월 29일, 당매체가 돌연 집단으로 리광만의 글을 전재한 것은 모순을 이전시키고, 촛점을 이전시키고, 시선을 이전시키는 정치조작이다. 즉 진정한 '대악'은 놔두고, 연예계의 '소악'에 포커싱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민들로 하여금 연예계스타들이 비난받는 낭패한 모습과 각종 스캔들에 주목하게 만드는 것이다.

 

중국의 크고 작은 당매체는 자오웨이(趙薇)를 대역죄인으로 20여일간 시끄럽게 비난한 후, 9월 14일 자오웨이가 안후이 우후에 편안하게 잘 지내고, 현지의 차이나모바일 서비스로비에가서 일처리를 하고, 근무자들과 함꼐 기념사진도 찍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자오웨이는 구속되거나, 체포되거나, 조사받거나, 벌븜을 받지 않았을 뿐아니라, 자유롭게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리광만같은 자가 자오웨이등을 비난하는 글을 써서 여론이 자오웨이등 연예계스타들에게 집중되도록 하는 것은 시진핑의 의도가 아니다. 아마도 왕후닝의 의도일 것이다. 왜냐하면 왕후닝은 장쩌민, 쩡칭홍이 시진핑의 곁에 심어놓은 가장 중요한 대리인이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현재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떻게 하면 중공20대이전에 고위층의 너죽고나살기식의 권력투쟁에서 승리를 거두느냐는 것이다.

 

9월 1일, 시진핑은 중앙당교에서의 연설때 중청년간부들이 원칙을 견지하고, 투쟁을 과감하게 하자고 하였다. "원칙문제에서는 절대로 모호해서는 안되고, 절대로 양보해서도 안된다."

 

9월 5일, 9월 13일 <인민일보>는 연이어 같은 제목의 평론을 싣는다: <원칙을 견지하고 투쟁을 과감하게 하자> 9월 6일 중앙기율검사위 사이트 <해방군보>에도 같은 제목의 평론이 실린다. 어떤 평론에서는 이것이 시진핑이 준비한 그의 정적에 대한 대규모 도살의 전주곡이라는 것이다.

 

9월 13일 <해방군보>는 1페이지를 모두 할애하여 '기율을 엄명히 하자'는 주제의 글을 싣는다. 전문은 4,300자이다. '기율'이라는 말이 75회나 출현한다. 글에서는 항일전쟁시기 중공관리 샤오위비(肖玉璧)가 부정부패로 사형을 받은 사례를 언급했다. 전문에서 모택동의 말을 9번 인용하고, 등소평의 말은 1회 인용되었으며, 시진핑의 말은 12회 인용된다. 장쩌민의 말은 한마디도 인용되지 않았다. 어떤 평론가는 이는 '기율'을 가지고 시진핑의 적수들에게 사형을 내릴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왕후닝은 1995년 장쩌민이 중공당수가 되고, 쩡칭홍이 중앙판공청주임이 되었을 때, 장쩌민, 쩡칭홍에 의해 상하이푸단대학에서 발탁되어 중앙정책연구실로 왔다. 지금까지 왕후닝은 중남해에서 26년간 일했다. 그중 1995년부터 2002년까지 7년간 왕후닝은 장쩌민, 쩡칭홍을 위해 일했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는 후진타오가 중공당수였지만 그는 허수아비였으며 실권은 여전히 장쩌민, 쩡칭홍이 잡고 있었다. 이 10년동안 왕후닝은 실제로 장쩌민, 쩡칭홍을 위해 일했다. 장쩌민, 쩡칭홍의 최고두뇌로서 이 17년간 장쩌민, 쩡칭홍이 했던 많은 나쁜 짓에 왕후닝도 모두 일부 책임이 있다.

 

2002년부터 2017년까지, 시진핑이 중공당수를 맡은 5년간, 그가 했던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반부패 호랑이잡기이다. 장쩌민, 쩡칭홍으로부터 최고권력을 빼앗아 오는 것이었다. 왕후닝은 꼬리를 말고 일하는 사람이다. 시진핑을 도와 '시진핑사상'을 포장하여 시진핑에게 신임을 얻는다. 중공19대때 왕후닝은 중공정치국상위가 되고, 이데올로기, 선전기구의 총관이 된다. 

 

중국의 권력중심에 들어간 후 왕후닝의 장쩌민, 쩡칭홍계파의 색채는 점점 더 농후해졌다. 계속하여 시진핑에게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미혼탕을 먹이면서, 계속하여 '고급흑' '저급홍'으로 시진핑을 하늘끝까지 치켜세웠다가 땅바닥에 내팽개친다. 그리고 다시 중대한 내정, 외교문제에서 계속 시진핑에게 함정을 판다. 겨우 4년여의 시간동안 시진핑의 '원래 좋았던 카드를 모조리 엉망인 카드로 만들어 버렸다.'

 

필자는 과거에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현재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왕후닝은 중남해 최대의 간신이다"

 

8월 29일 왕후닝은 리광만의 글을 전재하도록 지시한다. 시진핑에 있어서, 이는 모순을 이전시키는 정치조작이면서, 또 한번 시진핑에 대한 '고급흑'이다. 국내외에서 다시 한번 시진핑에 집중하며, 시진핑이 제2차문혁을 꾀한다고 비난하게 만든 것이다.

 

왕후닝은 지금 14일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아마도 그가 리광만의 글을 전재하도록 지시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진정 당대중국역사를 이해하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다: 장쩌민, 쩡칭홍은 중국의 최대 암흑세력의 총대표이다. 왕후닝은 뼛속부터 장쩌민, 쩡칭홍과 같은 일당이다. 장쩌민, 쩡칭홍이 19기 중국정치국상위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카드이다. 

 

예전에 어떤 사람은 왕후닝의 최후를 이렇게 예측한 바 있다. 아마도 모택동의 비서 진백달(陳伯達)의 뒤를 밟을 것이다. 진백달은 모택동을 위해 31년간 비서를 지냈으나 마지막에 모택동에 의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비판받고, 진성감옥에 갇히게 된다.

 

현재 왕후닝이 진성감옥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의 최후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