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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문혁후)

전 재정부장 진런칭(金人慶) 사망의 수수께끼

by 중은우시 2021. 9. 1.

글: 양녕(楊寧)

 

대륙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8월 27일 심야에 중국의 전 재정부장 진런칭의 집 베란다에 불이 나서 소방관들이 28일 새벽 진화했다고 한다. 공식통보에 따르면, 발화지점은 베란다에 쌓아놓은 서적이며, 불에 탄 면적은 2평방미터이고, 진런칭은 베란다에서 화상으로 중상을 입었으며,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목숨을 구하지 못해 사망했다고 한다. 향년 77세이다. 또 다른 항간의 소문에 따르면, 진런칭의 처가 10일전에 사망했고, 그날 깊은 밤에 진런칭은 종이돈을 태워서 처를 추모하다가 부주의하여 화재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 본인은 행동이 불편하여 휠체어에 앉아 있어, 불이 났을 때 스스로를 구하지 못하고 불에타서 중상을 입고 사망했다고 한다.

 

중국고관인 진런칭의 죽은 방식은 독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한밤중12시, 1층의 베란다, 서적화재, 2평방미터, 사망한 처를 추모, 휠체어에 앉아있었다는 등 모든 것이 궤이한 사정들"이다. 그리하여 네티즌들은 여러가지 추측을 한다. 그리고 몇가지 의문점을 제기한다: 왜 불에 탄 면적이 2평방미터에 불과했을까?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는가? 사망한 처를 위하여 종이돈을 태운다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지 않았을까? 중국의 성장/부장급이상의 은퇴대우에 따르면, 전용기사와 경호인원, 전용업무인원을 배치하게 되어 있고, 몸이 좋지 않으면(75세이상) 의료인원도 배치한다. 당시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리고 종이돈을 불태우는데 왜 7일째나 3.7일째도 아니었을까?

 

이상의 의문점에 대하여 만일 진런칭이 일부러 죽으려 했다는 전제 하에서라면 설명이 가능하다. 그것은 바로 위험을 스스로 인식하고 진런칭은 자살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핑계를 대서 신변인물들을 모두 물러나게 했을 것이다. 이는 시진핑이 당내에 숙청의 신호를 내보냈고, 심지어 '20년전의 일까지 추적조사하겠다'고 말하는 상황하에서, 진런칭은 이전의 행위로 인하여 아마 문제가 터지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얼마전, 중앙기율검사위 주재정부 기검감찰조의 행동과 전 재정부 부부장 장샤오춘(張少春)이 형을 받은 것도 진런칭의 목숨을 재촉하지 않았을까?

 

중국 중앙기율검사위 감찰사이트가 8월 25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8월 19일, 중앙기율검사위 주재정부 기검감찰조는 베이징에서 특별회의를 소집하여, 중국재정잡지, 중국재정보등 5개의 재정부 산하의 기관이나 관리를 받는 국가융자담보기금유한책임회사, 중앙정기합작투자기금주식유한책임공사등 7개의 기금회사의 1인자들과 기율검사위 서기가 단체로 면담을 진행했다.

 

주목할 점이라면, 5월에 막 부임한 재정부 기검감찰조의 조장인 양궈중(楊國中)이 면담때 이렇게 지적했다: "지시요청보고제도를 제대로 실행해야 한다. 중대사항은 적시에 주재정부 기검감찰조에 보고해야 한다. 중요회의는 적시에 주재정부 기검감찰조가 배석할 수 있게 요청해야 한다. 중요문서는 적시에 주재정부 기검감찰조에 사본을 송부해야 한다." 이는 마치 재정부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런 중대문제는 소급조사해야할 사항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만일 소급조사라면 진런칭도 연루되지 않았을까?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진런칭은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중국의 재정부 부부장, 당조 부서기를 지내고, 1995년 12월 베이징시 부시장에 취임한다. 1998년에는 세무총국 국장이 되었으며, 그의 재임기간동안 중국의 세수는 1999년에 1조위안을 돌파한다. 2003년에는 배로 늘어나서 인민폐 2조위안이 된다. 그는 아마도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2003년 재정부장이 된다. 2007년 개인사유로 국무원발전연구센터 부주임(부장급)으로 옮겨간다. 그때 대륙매체에 따르면, 개인사유는 진런청이 성추문에 휘말렸다는 것이고, 여러 고관들과 정부를 공유한 일이 드러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직해야 했고, 심지어 감시통제를 받았다고 한다. 2009년 면직후에 은퇴한다. 

 

중국관료사회에서 수십년간 지냈던 진런칭에게 문제가 터진다면 주로 부정부패나 정치문제일 것이다. 아마도 양자 모두일 수도 있다. 먼저 그가 얼마나 많은 부정부패를 저질렀을지 살펴보자. 진런칭이 이미 사망했으므로, 중국당국은 그 문제를 공표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그의 부정부패 내막을 알 수가 없다. 다만 2018년 낙마한 재정부의 전 당조부서기, 부부장 장샤오춘의 부정부패규모를 참고할 수는 있다.

 

장샤오춘은 진런칭과 몇년간 같이 일한 적이 있다. 장샤오춘은 2003년 9월부터 2006년 11월까지 재정부 부장조리를 지냈다. 이 기간동안 진런칭이 바로 재정부장이었다. 진런칭이 2007년 이임하기 전에, 장샤오춘은 재정부 부부장, 당조성원으로 발탁된다. 2013년에는 당조부서기를 맡았고, 2018년에 이르러 낙마한다. 그러므로, 중국의 관료사회에서 진런칭은 장샤오칭에게는 발탁해준 은혜가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당연히 보통이 아닐 것이다.

 

그가 낙마하기 전에, 장샤오춘은 재정부 부부장 중에서 서열 1위였고, 부장을 보좌하여 업무를 전반적으로 책임졌고, 세수사, 예산사, 국방사를 관장했다. 재정부의 '원로'이다. 뇌물을 받을 기회는 아주 많았다. 2019년 5월 장샤오춘은 재정부 판공청 부주임, 부장조리, 당조부서기, 부부장으로 있을 때, "관련단위 및 개인을 위하여 기업경영, 직무조정, 자녀입학등에서 도움을 제공했고" 인민폐로 환산하여 6,698.0081만위안의 뇌물을 받아 15년 유기징역형을 받는다. 그가 뇌물을 받은 기간중 일부는 진런칭이 재정부장으로 있던 기간이다. 진런칭이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외에, 장샤오춘은 정말 겨우 6천여만위안만 받았을까? 2018년 7월 중국의 관영매체 인민망의 강국논단에 발표된 <재정부 장샤오춘: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을까?>에서 이렇게 썼다. 그의 집안에서 수색할 때 9,000만달러, 8,475만유로, 5,230만파운드, 7,800만호주달러등 엄청난 돈이 발견되었다. 그외에 각종 은행카드가 1,000여장에 달했고, 총금액은 100억여위안에 이르렀다. 그의 지하차고에는 호화차량 십여대가 있었는데, 대당 가격은 모두 500만위안 이상이었다.

 

글에 따르면, 장샤오춘은 집안의 지하창고에서 보석과 악세사리가 산더미처럼 나왔다. 명품술과 담배, 명화는 가치가 수십억위안이고, 국내외의 부동산이 130여채이다. 이미 발견된 정부만 148명에 달한다. 아들, 며느리, 조카등의 명의로 전국각지에 가진 부동산이 70여채로 총가치가 50억여위안이다. 이뿐 아니다. 그는 복권을 주는 방식으로 11명의 정부에게 10여억의 현금을 주었다.

 

장샤오춘을 참고해보면, 진런칭의 부정부패금액은 기본적으로 100억단위로 시작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가 관련기관 및 기업경영, 직무조정을 통해 얼마나 많은 돈을 받았을까? 단지 그가 죽음으로써, 그의 재산, 자손의 재산은 이제 수수께끼로 되었다.

 

다시 진런칭의 정치문제를 살펴보자. 아마도 고위층의 권력투쟁에 개입했을 수 있다. 2007년, 중국공산당을 배경으로 하는 해외매체에서는 이런 글이 실렸다: 장쩌민이 16대를 개최하기 전날 퇴로를 준비하기 위하여, 20여억위안을 스위스로 옮겼다. 그리고 진런칭은 "규정을 위반하여 국고에서 돈을 꺼내 비행기에 싣고 장쩌민가족의 호주머니로 보내준 핵심인물"이라는 것이다. 중국 고위층은 여전히 격렬하게 싸우고 있으니, 시진핑이 진런칭을 그냥 봐줄 리가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에포크타임즈의 작가인 장제(張杰)은 2007년 이렇게 토로했다. 진런칭이 재정부장의 직무를 사임한 것은 장쩌민의 파룬공 박해와 관련이 있다. 장쩌민은 1997년 7월 파룬공진압의 막을 열었고, 대량의 자금을 투입하여 파룬공을 진압했다. 장쩌민은 직접 당시 세무총국장으로 있는 진런칭에게서 자금을 가져갔다. 이는 당시 총리였던 주룽지조차도 알지 못했다. 주룽지의 결재와 서명을 아예 받지 않았다. 후진타오가 취임할 때 이미 국고에서 큰 구멍이 났다는 것을 발견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장쩌민은 파룬공진압에 국가의 힘을 모두 동원했으며, 이는 중국GDP의 1/4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므로,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진런칭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모든 낙마고관들의 길을 따라 걸었을 것이다. 조사를 받고, 쌍규를 당하고, 사법기관에 이송되고, 형을 받는다. 이 기간동안 정신과 육체는 이중의 고통을 겪을텐데, 아마도 그가 견디기 힘들 것이다. 아마도 그가 보기에, 그가 죽는다면, 적어도 자손은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 일이 그가 생각한대로 진행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