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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보시라이(薄熙來) 비서실장의 낙마는 20대 내부투쟁의 시작인가?

by 중은우시 2021. 7. 16.

글: 진사민(陳思敏)

 

7월 13일, 전 국가양식국 부국장 쉬밍(徐鳴)이 조사를 받는다고 알려졌다. 관영매체의 보도는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쉬밍은 일찌기 상무부와 충칭에서 일했으며, 일찌기 보시라이의 '비서실장'이었다고.

 

쉬밍은 2013년 3월 국가양식국 부국장이 된다. 당시는 보시라이사건이 발생한지 1년이 지난 후였다. 황치판(黃奇帆)을 제외하고 보시라이의 당시 심복수하들은 모조리 제거되었었다. 중공 18대이래 호랑이를 잡는 방식은 먼저 호랑이의 비서실장부터 낙마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쉬밍은 보시라이의 충칭에서의 비서실장이었고, 충칭에서의 '창홍(唱紅)'의 중요군사였는데, 단지 국가양식국으로 전보되었을 뿐, 부부장급(차관급)의 대우는 그대로 유지했다. 당시의 여론에 따르면 쉬밍의 연착륙은 분명 '귀인'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기실 그의 이력을 보면, 쉬밍의 승진에 '귀인'의 도움이 있었다. 시간적인 라인을 따라 살펴보자면 쉬밍은 보시라이의 충칭인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보시라이는 쉬밍의 관료생애에서의 귀인이 아니다. 쉬밍은 군대에서 간부로 전환한 인물로 1992년부터 2003년까지 국무원 생산판공실 비서국, 국무원 경제무역판공실, 국가경제무역위원회등의 중요직위를 거쳤다. 당시 그의 상사였던 왕중위(王忠禹)와의 관계가 더욱 긴밀하다.

 

왕중위는 1998년 뤄간(羅幹)의 뒤를 이어 국무위원 겸 국무원비서장이 된다. 그리고 중앙국가기관공위서기, 국가행정학원원장을 맡는다. 2003년에 이르러 중국정협 부주석으로 물러난다. 왕중위는 그러나 여전히 실권을 가진다. 중국기업연합회, 중국기업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것이다.

 

공식사이트등 공개된 정보를 보면, 중국기업연합회(China Enterprise Confederation 영문약칭은 CEC)는 중국기련(中國企聯)으로 약칭된다. 회원은 근 40개의 대산업을 포함하고, 전국 31개성시구의 약 260개 공업도시(지구)에 분포되어 있으며 직속기업회원이 근 3천개에 이른다. 연계회원깅버은 43.6만개이고, 이미 전국에 조직네트워크체계가 형성되어 있다.

 

즉, 회장 왕중위의 아래에 수많은 국유중앙기업의 1인자, 대형민영기업책임자들이 각각 부회장, 상무이사, 이사를 맡고 있다. 여기에 많은 직계, 방계조직기구가 있다. 그래서 충분히 이해가 된다. 중국기련 및 그 기업가협회를 각각 제2의 국자위, 제2의 외교부라고 부르는 것도.

 

왕중위는 고령으로 2선에 물러나 있지만, 그는 매체에 자주 등장한다. 금년 6월의 뉴스를 보면, 왕중위 일행은 상하이의약을 조사연구했다.

 

다시 사람들이 주목하는 우연의 일치도 있다. 쉬밍이 낙마한 7월 13일, 인민망에 따르면, 그날 왕중위 일행은 창춘으로 갔고, 지린성위서기 징쥔하이(景俊海), 성정협주석 장쩌린(江澤林)과 회견을 가졌다.

 

그리고, 금년 1월, 공개된 SNS상의 왕중위에 대한 경력을 보면, 그는 중국의 중요한 공업기지이며 양식기지인 지린성 출신이다. 그리고, 전 국무원부총리인 후이량위(回良玉)도 이곳 출신이다.

 

관련이력을 보면, 왕중위와 후이량위는 1990년대 지린성 관료사회에서 10년간 서로 알고 지냈다. 나중에 2003년 왕중위, 후이량위 두 사람은 다시 국무원에서 만난다. 쉬밍은 당시 국무원경제무역위 부사장으로 있었다. 그외에 후이량위는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중앙농촌공작영도소조의 조장을 지내면서 전국의 양식계통을 관리했다. 이 계통은 2006년 국가양식탁시정책을 실시하면서, 2008년 매체에서 여러 곳의 양식시스템에서 부패가 있었음이 집중적으로 보도된다. 문제의 심각성은 원자바오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가지 주목할 점은 2013년 양회때, 이미 퇴임한 후이량위가 여전히 '삼농'의 최고지도자의 모습으로 <구시>에 10년간의 '삼농'정책을 결산하는 글을 실었다. 후이량위의 글이 발표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쉬밍은 국가양식국에 들어간다. 이것도 이들 사이를 보면서 발견한 우연의 일치중 하나이다.

 

그러나, 쉬밍은 충칭을 떠난 후 10년간 평안무사하게 지냈다. 그러나 낙마는 하룻밤만에 발생한다. 쉬밍이 조사를 받은 후, 보시라이, 왕리쥔사건이 다시 불거진다. 그 사건의 핵심내용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중공의 전당수 장쩌민의 파룬공박해의 죄악과 18대정변음모로 보시라이가 시진핑을 대체하게 하려는등의 중공내부의 내부투쟁이다.

 

국내외소식에 따르면, 2017년 19대 전에 왕중위도 끌려가 조사받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외에 2020년 미국대통령선거때, 왕중위가 회장을 맡고 있는 중국기업연합회, 중국기업가협회 산하의 기업은 헌터 바이든의 스캔들에 관련된다. 왕중위가 처음부터 실권을 장악했던 중국기련계통은 1999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고, 지금까지도 이 조직의 정관 제3조에는 '등소평이론과 삼개대표의 중요사상을 지도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협회의 지도층은 장쩌민계의 색채가 농후하다.

 

결론적으로 쉬밍이 이번에 조사를 받는 것에 대하여 사람들은 보시라이사건의 여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쉬밍은 왕중위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왕중위도 연루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혹시 이것이 20대의 내부투쟁이 이미 시작된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