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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중앙경위국장(中央警衛局長) 교체의 비밀은...?

by 중은우시 2021. 7. 18.

글: 정효농(程曉農)

 

최근 '중남해 경호실장'이 교체되었다. 중앙경위국의 국장은 내부인에서 외부인으로 바뀌었고, 중국의 관영매체가 대거 보도하고 있다. 이런 보도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한다. 국장교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관영매체가 이런 소식을 전한다는 것은 이것이 중국에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관영매체는 교체에 대하여 여러가지 해석을 하며, 외부에서 다르게 추측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외부에서 여러 추측을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핵심은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옳으냐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중국고위층의 경호시스템의 운영부터 얘기해야 한다.

 

1. 시진핑은 야전부대장군에게 중남해 경호실장을 맡겼다.

 

7월 15일, 중국의 중추를 경호하는 중앙경위국의 국장이 교체되었다. 시진핑은 관례를 깨고, 내부인들 중에서 발탁하지 않고, '외부인'을 국장에 앉힌다. 관영매체인 DW News의 보도에 따르면, 그 핵심배경은 중공20대전의 정국을 평온하게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관영매체는 이렇게 말한다. 중앙경위국은 중공중앙판공청이 직접 지휘하며, 중앙당정기관의 중요장소를 호위한다. 그 핵심은 바로 중앙경위단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중국최고지도자의 개인안위는 이들에 달려 있다고.

 

DW News는 이렇게 언급한다. 2012년 중앙판공청 주임 링지화가 규정을 어기고 중앙경위단을 출동시켜, 아들 링구가 일으킨 차량사고건을 덮었다. 당시 중앙경위단이 중앙고위층의 권력투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우발적 사건에 개입한 것은 동시에 기존 매커니즘의 합리성에 대한 의문이 들게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중앙경위국은 '사인방'을 체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차오칭(曹淸) 본인도 거기에 직접 참여했다. 차오칭은 바로 전임 중앙경위국장인 왕샤오쥔(王少軍)의 전임이다.

 

왕샤오쥔은 오랫동안 중앙경위국에서 일했다. 2009년 부국장으로 승진한다. 2015년 전임국장 차오칭이 퇴임하자, 왕샤오쥔이 그의 뒤를 이어 중앙경위국 국장이 된다. 2018년 푸젠 장저우(漳州)의 육군제31집단군 91사 정위(政委) 천덩뤼(陳登鋁)가 돌연 중앙경위국 부국장 겸 중앙경위단 정위로 전보된다. 그후 왕샤오쥔은 2019년말 중앙경위국 국장의 직위에서 물러난다. 전체 2020년과 2021년 상반기에 중앙경위국의 국장은 비어 있었고, 부국장이 업무를 주재했다. 중앙경위국 국장의 자리가 1년반이나 비어 있다가 최근에 비로소 북부전구 육군 부참모장 저우홍쉬(周洪許)를 중앙경위국으로 불러들여, 왕샤오쥔 이후 1년반동안 비어 있던 국장자리에 앉힌다. 

 

이런 '중남해 경호실장'이 비어있는 현상은 그 자체로 아주 보기 드문 일이다. 중공이 정권을 장악한 후부터 2019년까지, 전혀 발생한 바 없다. 더욱 보기 드문 현상이라면, 시진핑이 중앙경위국이라는 상대적으로 폐쇄된 특수계통내에서 국장을 발탁한 것이 아니라, 야전부대에서 사람을 데려왔다는 것이다. 중국의 중앙경위국은 업무가 아주 특수하다. 그리고 최고기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통상적으로 중앙경위국 내부에서 경위업무를 잘 아는 사람에게 이 요직을 맡기는 것이다.

 

다만, 시진핑은 최근 2년동안 이 중요한 중앙경위국의 국장 자리를 1년반동안 비워두었다. 그리고 결국 더 이상 중앙경위국 내부의 후보를 기용하지 않고, 야전부대에서 직접 사람을 뽑아와서 이 책임을 맡긴다. 이 직무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인가? 이 직무의 특수성을 이해하려면 중국고위지조다의 경위시스템부터 이해해야 한다.

 

2. 중국최고지도자의 진실한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중남해의 경위시스템의 운용은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고위층의 경호안전기능만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중국최고지도자의 권력통제제도의 실현방식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중공은 집단지도체제라는 명목하에 있지만 최고지도자는 항상 1명이다. 이 진정으로 다른 고위층의 운명을 거머쥔 최고지도자의 개인권력은 그의 명목상의 당내 최고직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즉 누가 중국의 진정한 최고지도자인지는 그가 다른 고위지도층을 실제로 통제할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둘째, 최고지도자의 진정한 권력은 기실 그가 다른 고위층의 일상을 감시통제할 능력을 장악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보아야 한다. 이런 힘은 직접적으로 중앙경위국, 기요부서 및 보건부서를 장악함으로써 나온다. 최고지도자가 이 세 개의 부서를 장악하면, 다른 고위층의 개인안전은 완전히 최고지도자의 손아귀에 쥐어지게 되는 것이다. 

 

모택동시애에 중국의 중앙판공청은 3대업무가 있었다. 첫째부분은 비서, 기요업무이다. 여기에는 비서국, 기요통신국, 기요교통국, 당안국이 포함된다. 사람 수도 많고 업무도 많았다. 문서처리, 기요기밀, 자료관리, 회의조직, 내방등의 업무를 관장한다. 둘째부분은 고위지도자의 생활을 서비스하는 것이다. 셋째부분은 고위지도자의 안전경호이다. 중앙판공청의 비서업무, 당안업무는 비록 업무량이 많고, 인원도 많지만, 최고지도자의 실제권력으로 보자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진정 최고지도자의 개인권력을 보여주는 것은 중앙경위국, 기요부문과 보건국이다. 

 

기요교통국은 기요문건의 전송을 책임진다. 기요통신국은 고위층의 두개의 전화계통을 책임진다. 하나는 기밀전화시스템이다. 홍색외각의 전화를 사용하여, 홍기전화(紅機電話)라 부른다. 주로 부장(장관)이상의 사무실에 설치되며 단독의 4자리수의 전화번호를 가진다. 또 다른 전화시스템은 1980년대부터 "39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7자리 전화번호의 앞의 두 자리는 모두 39이기 때문이다. 주로 중남해, 인민대회당, 조어대빈관과 옥천관초대소등 몇몇 곳에 설치되었다. 39국의 전화는 비록 표면적으로는 민용전화이지만, 기실 단독으로 중앙판공청의 기요통신국이 관장하고 있다. 이 국은 모든 홍기전화와 39국전화를 감청하고 있다.

 

보건국은 최고위층 소수인의 의료보건을 책임진다. 거기에는 건강검사, 일상약물복용과 질병시의 치료방안을 포함한다. 보건국은 직접 최고지도자 개인에게 책임지고, 많은 상황은 오로지 최고지도자 본인이 장악한다. 예를 들어, 현재 공개된 소식에 따르면, 주은래가 말년에 암을 앓았는데, 그 병세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오로지 모택동에게만 보고했다. 수술을 해야 한다면 역시 모택동이 결정했다. 주은래의 암이 초기에 발견된 후, 치료와 수술을 모택동은 지연시켰다. 그리하여 암은 말기로 되고, 수술을 허가받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던 것이다.

 

경위국은 가장 먼저 최고지도자의 개인경호와 안전을 책임진다. 동시에 다른 고위층 구성원들에게 파견되어 신변경호를 책임진다. 즉 경위비서(警衛秘書)가 된다. 그외에 모택동시대의 중앙경위국은 고위층의 주요활동장소인 중남해, 인민대회당, 조어대빈관과 옥천산초대소등의 경호도 담당했으며, 고위층의 차량경호도 담당한다.

 

최고지도자는 직접 중앙경위국, 기요부문과 보건국을 장악함으로써 다른 고위층을 감시통제한다. 이를 통해 그의 개인권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감시통제제도하에서, 일거일동이 모두 통제되는 다른 고위층이 다른 마음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권력을 장악하는 모택동식 수단이고, 소련공산당의 스탈린이후의 상황과 다른 점이다.

 

3. 중앙판공청은 가허가실(可虛可實)하다.

 

많은 사람들은 이상의 3개부문을 중앙판공청이 관장하고, 중공총서기가 이 몇개 부문을 장악하고 있다고 여긴다. 기실 항상 그렇지는 않다. 호요방과 조자양이 총서리를 맡고 있을 때, 위의 3개부분은 그들 두 총서기가 관장하지 못했다. 등소평이 관장했다.

 

모택동이 살아 있을 때, 심복인 왕동흥으로 하여금 중앙판공청 주임을 맡게 했고, 모택동을 대신하여 중앙판공청의 경위국, 기요부문과 보건국이라는 3개의 중곡최고권력통제의 핵심구성부문을 장악했다. 등소평이 대권을 장악한 후, 개략 1981년경, 원래 중앙판공청에 속한 경위국, 기요국과 보건국을 그 자신이 장악하고 있던 중앙군사위원회로 귀속시켜 버린다. 경위국장은 등소평이 신임하던 주은래의 심복이자 중앙경위국을 주관하던 사람중 하나인 양덕중(楊德中)에게 맡긴다. 양덕중은 중앙판공청 부주임도 겸임한다. 이를 통해 중앙판공청의 동태도 장악했다. 이런 수단을 통해, 진운(陳雲), 호요방, 조자양, 이선념과 같은 고위층의 개인안전은 완전히 등소평의 손에 장악된다.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그 어느 고위층도 감히 등소평에게 도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최고지도자의 권력장악통제제도하에서, 고위층은 사적으로 만나는 것도 힘들다. 왜냐하면 그들의 경위비서는 이들 고위층의 활동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지도자 외의 다른 고위층은 기밀전화를 통해 서로 사적인 얘기를 나눌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전화는 감청되기 때문에 내용이 완전히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이다. 핸드폰이 나온 후, 고위층은 개인적으로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런 경위체제는 최고지도자의 권력통제의 일부분이다. 경위들은 그들이 경호하는 고위층의 관할에 속하지 않고, 상급 중앙경위국의 명령을 듣는다.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이들 경위는 경호인원이면서 감시인원이다.

 

등소평의 사후, 군사위원회주석과 총서기가 다시 한 사람에게 귀속된다. 장쩌민은 이 3개부문을 다시 중앙판공청이 관할하도록 돌렸고, 그후에는 다시 바뀌지 않는다. 이를 보면 이 3개부문을 누가 장악하느냐는 중국의 최고권력이 사실상 누구의 손에 있느냐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중앙판공청이 실권을 가졌는지 허권을 가졌는지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 3개부문을 중앙판공청이 관장하지 못하면 중앙판공청은 허권을 가졌고, 총서기도 최고지도자의 지위를 갖지 못한 것이다. 이 3개부문을 중앙판공청이 관장하면, 그것은 다시 중앙판공청이 실권을 가졌다는 말이 된다.

 

4. 중앙경위국 국장의 교체

 

중국역사상, 중앙경위국은 대부분의 기간동안 중앙판공청의 산하부서이다. 다만 십여년간(등소평시대)은 중앙판공청을 벗어났었다. 각 최고지도자의 경우에 중앙경위국 국장의 임명은 직접적으로 그가 다른 고위층을 통제할 수 있는지와 관련이 있다. 전임 경위국장은 '전최고지도자'의 심복이다. '전최고지도자'를 위해 많은 기밀인 개인정보를 장악하고 있다. 또한 통상적으로 '전최고지도자'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신최고지도자'가 완전히 신임하기는 어렵다. 그리하여, 새로 취임한 최고지도자는 왕왕 중앙경위국 국장을 교체한다.

 

다만, 신임최고지도자는 통상적으로 부임하자마자 중앙경위국장을 교체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두 가지를 고려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전임이 비록 물러났지만, 만일 즉시 중앙경위국장을 교체한다면 그것은 공개적으로 전임,후임간에 상호불신이 있다는 것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고, 이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마찰이 생길 수 있다. 두루째, 전임경위국장을 교체하려고 하더라도, 신임최고지도자는 반드시 신임후보를 살펴보아야 하고, 자신이 신임할 수 있는 사람을 정해야 한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등소평은 1989년 6.4사태이후 이렇게 선언한다. 자신이 더 이상 군사위원회 주석을 맡지 않겠다고. 다만, 중앙경위국은 여전히 중앙군사위의 관할하에 두고, 등소평이 심복인 양덕중이 계속 장악했다. 1992년 등소평은 장쩌민에게 "누구든지 개혁하지 않으면 물러나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때 명목상으로는 일개평민인 등소평이 양상곤을 통해 군대를 장악하고 있었고, 다시 양덕중을 통해 경위, 기요와 보건의 3개 최고권력의 핵심부문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민인 등소평은 실제로 명목상 총서기와 군사위원회주석을 차지한 장쩌민의 운명을 쥐고 있었던 것이다. 장쩌민은 그저 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쩌민이 비록 1989년에 취임했지만, 그가 진정으로 권력을 얻기 전까지는 여전히 평민 등소평의 '아황제(兒皇帝)'였다. 1992년 등소평의 남순이후, 장쩌민은 쩡칭홍의 도움을 받고, 진운, 박일파등 원로의 지지를 받아 등소평을 설득해서 양상곤의 군권을 빼앗는다. 그후, 등소평의 병세가 심하여 일을 볼 수 없게 된 1994년에 이르러 비로소 장쩌민은 자신의 심복인 희귀(喜貴)로 양덕중을 교체한다. 이때부터 진정 최고지도자의 권력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후진타오가 2002년 취임한 후에도 상황은 아주 비슷했다. 후진타오의 전5년의 최고지도자 지위는 아주 취약했다. 경위, 기요 및 보건의 3개핵심부문을 장악한 것은 여전히 장쩌민의 심복인 희귀였기 때문이다. 후진타오는 먼저 2006년 중앙경위국의 내부에서 차오칭을 발탁하여 그를 중앙경위국 상무부국장으로 임명한다. 2007년에 이르러, 후진타오는 비로소 희귀를 물러나게 하고, 차오칭에게 국장을 맡긴다.

 

시진핑이 취임했을 때, 중앙경위국장은 여전히 후진타오시대에 발탁된 차오칭이었다. 시진핑도 차오칭을 바꾸고 싶었다. 그러나 후진타오에 대한 존중을 표시하기 위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시진핑은 그가 취임한지 2년이 지난 이후에 비로소 중앙경위국이 그의 전용기를 이용하여 아프리카에서 상아밀수를 했다는 소식을 뉴욕타임즈와 BBC를 통해 보도하게 한다. 그후 차오칭은 교체된다. 중앙경위국 국장이라는 요직은 전 중앙경위국 부국장인 왕샤오쥔이 맡았다. 다만, 시진핑은 왕샤오쥔에게 중앙판공청 부주임의 직을 겸임하도록 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시진핑이 왕샤오쥔을 완전히 신임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여 자신의 심복이자 중앙판공청 주임인 리잔슈를 통해 왕샤오쥔을 견제한 것이다.

 

5. 시진핑은 중앙경위국을 신임하는가?

 

중공역사상 중앙경위국 국장은 항상 최고지도자가 가장 신임하는 인물로 중남해의 안전을 주관했다. 그리고 신임 중앙경위국장도 내부에서 승진했다. 매번 국장은 바뀌어도, "장수는 바꾸지만 병사는 바뀌지 않는다"는 식이었다. 그래서 경위국계통의 내부는 국장교체로 인해 큰 변동이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금년에 시진핑은 관례를 깨고, 외부인으로 하여금 중앙경위국계통을 장악하게 했다. 이는 두 가지 문제를 불러온다. 첫째, 그는 경위국계통 내부인의 승진길을 막았다. 자연히 그들의 불만이 쌓이게 될 것이다. 둘째, 그의 이런 조치는 명확한 신호이다. 그것은 외부에서 국장, 부국장을 데려왔다는 것은 앞으로 "장수도 바꾸고 병사도 바꾼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저 일부가 끼어드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중앙경위국계통 내부의 인심은 흔들릴 것이다. 의문의 여지없이 "외부인을 믿을지언정 집안노비는 믿지 않는다"는 방식은 분명 최고지도자의 실제권력통제에 중요한 중앙경위국계통에 큰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이런 문제는 시진핑에게 있어서 상당히 큰 리스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시진핑은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더 이상 경위국내부에서 발탁하지 않았을까? DW News에서는 솔직하게 말한다: "장기간 중남해 내부에서 고위층의 갈등투쟁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 이 말은 시진핑이 이런 조치를 취한 핵심이유를 말해준다. 여기에서는 두 가지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

 

첫째, 중앙경위국계통내의 주요간부는 중공고위층의 권력투쟁에 개입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최소한 고위층권력투쟁이 현재 다시 활발해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중앙경위국계통내의 주요간부의 시진핑에 대한 개인충성도는 상당히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확실히 중공20대전에, 고위층에는 시진핑시대를 끝내야 한다는 일부 세력이 존재한다. 시진핑에 있어서, 이 세력이 효과적으로 결집하여 세를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는 중앙경위국이라는 감시통제조직이 얼마나 잘 운용되느냐게 달려 있다. 그리하여, 야전군에서 사람을 데려와서 중앙경위국을 장악하는 식으로 고위층에 대한 감시통제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이는 시진핑의 고위층 권력투쟁에 대응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둘째, 비록 시진핑이 경위업무에 익숙한 중앙경위국 내부계통의 간부등 중에서 중앙경위국의 '책임자'를 뽑지 않았고, 야전군에서 데려온 간부는 고위층경호업무에 전혀 익숙하지 않을테지만, 시진핑은 이들 야전군간부를 신임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 그들은 북경고위층의 사람과 일을 잘 모른다. 그래서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 감히 휘말리지 않을 것이다. DW News는 이렇게 말한다. "야전부대에서 입경시킨 것은 당연히 중남해의 복잡한 고위층이해충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만일 관리지휘매커니즘에서 바뀌지 않는다면 아마도 고위층의 원래의도는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이 말의 뜻은 신임 중앙경위국의 국장, 부국장이 중앙경위국 내의 '뺀질이'들을 제대로 지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중공20대는 아직 1년여 남았다. 중앙경위국 국장교체를 분석해보는 것에서 소위 '중남해동향'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