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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중국의 정치

중공20대: 딩쉐샹(丁薛祥)의 거취는...?

by 중은우시 2021. 7. 1.

글: 호연삭(呼延朔)

 

중공중앙 정치국위원중 오직 3명밖에 없는 "60후"중 한명인 중앙판공청주임 딩쉐샹은 모든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 중에서 두번째로 나이가 젊다. 그는 오직 1963년생인 국무원 부총리 후춘화(胡春華)보다 1살이 어릴 뿐이다. 

 

정치국위원중 또 다른 "60후"는 충칭시위서기 천민얼(陳敏爾)이다(1960년생). 후춘화 및 딩쉐샹과 함께 이들은 모두 중요한 역할을 맡을 기회가 있다고 여겨진다.

 

2022년의 중공20대때 딩쉐샹은 만60세가 된다. 외부에서는 그가 계속 중앙판공청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직위를 맡을 것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딩쉐샹은 상하이에서 성장한 관리이다. 사실상 1999년에 정식으로 관계에 들어왔다. 이전에 그는 상하이재료연구소에서 근무했고, 14년간 보통연구원에서 연구소소장까지 승진한다. 1999년 딩쉐샹은 연구소소장에서 상하이시과학위원회 부주임으로 옮겨가고, 그후에 계속 승진한다. 자베이구(閘北區), 상하이시위조직부, 시기구편제위원회판공실, 시위당교등에서 근무한다. 

 

2007년 딩쉐샹은 상하이시위 비서장으로 승진하고, 시위상위가 된다. 이것이 아마 그의 정치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발탁일 것이다. 바로 이 해에 시진핑이 저장에서 상하이시위서기로 옮겨온다. 두 사람은 이때 잠시 같이 일한다. 그후 딩쉐샹은 상하이시위에서 5년을 보내고, 비서장에서 정법위서기까지 지낸다.

 

중공18대이후, 딩쉐샹의 승진은 "질적인 비약"을 거친다. 상하이시위상위에서 중앙판공청부주임 겸 국가주석판공실주임, 총서기판공실주임으로 옮겨간다. 19대이후, 리잔슈(栗戰書)가 전인대위원장으로 옮겨가면서 딩쉐샹이 부주임에서 주임으로 승진한다. 그리고 여기에 새로운 직위도 추가하는데, 중앙직속기관공위서기(工委書記)를 맡는다. 

 

시진핑의 '대관가(大管家)'로서 딩쉐샹은 중공핵심의 신임을 받고 있다. 이것이 바로 외부에서 그에게 기대하는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중공건국후의 역대 중앙판공청주임을 보면, 그들의 이후 발전에 무슨 특별한 규칙이 있는 것같지는 않다. 그중 제1대 중앙판공실주임인 양상곤(楊尙昆)과 그의 후임자인 왕동흥(汪東興)은 이 직위에 10년이상 있었다. 그래서 그다지 참고할 가치가 없다. 후치리(胡啓立), 차오스(喬石), 왕자오궈(王兆國)등은 재직기간이 아주 짧다. 모두 1,2년사이이다.

 

만일 30년간의 안정기를 보면 장쩌민부터 중공의 권력교체에 모델이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지금까지 모두 원자바오(溫家寶), 쩡칭홍(曾慶紅), 왕강(王剛), 링지화(令計劃), 리잔슈, 딩쉐샹의 6명이 중앙판공청주임을 맡았다.

 

그중 원자바오는 지질광산부에서 중앙판공실 부주임으로 옮겨왔고, 그후에 주임이 된다. 왕강은 중앙당안관 관장, 국가당안국국장에서 부주임으로 왔고, 다시 주임이 되었다. 링지화는 중앙판공실 내에서 승진해서 판공청조사연구실주임에서 부주임으로 승진하고, 그후 2007년에 주임이 되었다. 리잔슈는 꾸이저우성위서기에서 승진하여 취임했다. 6명주에서 쩡칭홍과 딩쉐샹은 모두 상하이에서 왔다. 전자는 상하이시위부서기에서 입경한 것이고, 후자는 상하이시위정법위서기에서 입경한 것이다.

 

6명이 중앙판공실을 떠난 후의 모습은 각자 서로 다르다. 낙마한 링지화를 제외하면, 원자바오는 나중에 국무원 부총리, 총리를 지낸다. 쩡칭홍은 중앙조직부 부장으로 갔다가 나중에 정치국상위, 중앙당교교장, 국가부주석이 된다. 왕강은 전국정협부주석이 된다. 리잔슈는 잠시 국안위판공실주임을 맡았다가 나중에 전인대상위회위원장이 된다.

 

만일 전임자들의 이후 발전을 보면 딩쉐샹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아주 풍부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위에서 언급한 직위에 있는 관리들은 대다수 이미 연령제한에 도달했거나 초과했다. 그중 중앙조직부 부장 천시(陳希), 국가부주석 왕치산(王岐山), 국무원총리 리커창(李克强), 부총리 한정(韓正), 쑨춘란(孫春蘭), 류허(劉鶴), 전인대위원장 리잔슈는 모두 20대이후 은퇴할 것이다.

 

이렇게 여러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딩쉐샹이 어디로 갈지도 계속 관심을 가져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