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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화/중국의 무술

북소림(北少林)은 하남(河南)에 한곳이 있는데, 남소림(南少林)은 두 곳에 있다.

by 중은우시 2021. 5. 27.

글: 거려행(去驢行)

 

중국에서 소림사에 관하여는 남북소림(南北少林)이라는 말이 있다. 북소림에 대하여는 모두 아무런 의문없이 하남 숭산(嵩山)을 떠올린다. 그러나, 남소림에 대하여 복건(福建)이외에 구체적으로 어느 장소에 있는지에 대하여는 '논쟁'이 있다. 왜냐하면 복건의 천주(泉州)와 보전(莆田) 그리고 복청(福淸)에 모두 "소림사(少林寺)"가 있다는 전설이 있다. 그중 천주와 보전간의 다툼이 가장 크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곳이 가장 정통있는 남소림일까?

천주소림사

천주의 소림사는 청원산(淸源山) 동쪽 산록에 위치하고 있으며 또 다른 이름은 진국동선사(鎭國東禪寺)인데, 항간에서는 속칭 "남소림"이고, 남방소림무술의 발상지이다.

 

전설에 따르면, 천주소림사는 일찌기 당왕(唐王)을 구한 십삼곤승(十三棍僧)중 하나인 지공(智空)이 건립했고, 양송시기에 전성기에 이른다.

 

역사의 긴 강물 속에서 천주소림사는 여러번의 흥망성쇠를 겪는다. 다행스러운 점은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천주소림사는 1992년에 회복되어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다. 전국각지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그중에는 무협소설가 김용이 포함된다. 김용소설 속의 남소림은 바로 천주소림사를 가리키는 것이다.

 

지금 모두 천주소림사에서 보는 광경은 비록 역사적인 옛 부지 위에 건설된 것이지만 최초의 흔적과 비교하면 변화가 아주 크다.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상대적으로 완전해졌다. 패방(牌坊), 정산문(正山門), 대웅보전(大雄寶殿), 방장루(方丈樓), 관음각(觀音閣), 장경각(藏經閣), 오관당(五觀堂)등의 방고건축(仿古建築)이 있다.

 

다만, 건축한 시간이 길지 않아서인지, 역사적인 창상감은 없었다. 그러나, 소림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건축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이곳의 역사 그리고 널리 알려진 무술이야말로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크게 끄는 것이다.

보전소림사

보전소림사는 보전남소림사라고도 불린다. 남조 영정연간에 건설되었고, "임천사(林泉寺)"라고도 불린다. 절의 면적은 아주 넓다. 천왕전(天王殿), 방생지(放生池) 및 대웅보전등이 있다. 천주소림사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모두 겉으로 보기에 새로 지은 방고건축물이다. 그 안에 줄줄이 늘어서 있는 석비에는 많은 사묘에 관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중 어떤 석비는 역사에 살아남은 고적(古迹)이고, 어떤 것은 새로 만든 것이다. 진열되어 있는 목장(木桩)은 무술분위기를 보여준다.

 

보전소림사가 정통의 남소림사로 인정되는 가장 큰 원인은 발견된 옛부지의 문자기록때문이다. 그리고 사묘가 위치한 지형이 남소림의 무술분위기와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외에 많은 보전소림사에 관한 역사기록자료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곳이 남방소림사의 옛부지라고 믿게 만든다.

 

만일 억지로 구분하자면 개인적인 느낌으로 보전소림사는 무술의 문화분위기가 강하고, 천주소림사는 천고고찰의 분위기가 있다. 천주라는 오래된 도시의 역사인문분위기에 부합된다.

 

그외에 우리는 일부 자료를 보았는데, 천주소림사이건, 보전소림사이건 모두 반청복명의 천지회와 관련이 있다. 그리하여 모두 훼멸적인 타격을 당한다. 이 두 곳의 천년고찰은 모두 난형난제로 나중에 모두 계속 보수되면서 재건되었다.

 

그래서, 도대체 어느 곳이 정통의 남소림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마도 모두 정통이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소재한 위치가 다를 뿐이다. 천년동안 현지의 영향을 받아 차이가 발생했고, 겉으로 보기에 서로 다르게 보일 뿐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들은 모두 소림사문화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모두 그 문화를 전승해 내려가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두 소림사를 모두 가보고 그 차이와 같은 점을 한번 느껴보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