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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삼국)

조위(曹魏)의 오자양장(五子良將)을 비교한다.

by 중은우시 2021. 5. 1.

글: 소천(小天)

 

조위의 오자양장은 삼국시기 조위세력의 5명의 명장을 가리킨다. 장료(張遼), 악진(樂進), 우금(于禁), 장합(張郃)과 서황(徐晃)이다. 이 다섯 명의 장수는 전투에 능했다. <삼국지>의 작자인 진수(陳壽)는 이 5명을 묶어허 하나의 전(傳)에 기록하며 이들을 높이 평가한다: "당시의 좋은 장수는 오자가 우선이다(時之良將, 五子爲先)"

 

그렇다면, 이 다섯 명 중에서 관직은 누가 가장 높고, 식읍은 누가 가장 많았을까?

 

우선 관직을 보자.

 

장료는 병사하기 전에 가장 높았던 관직이 전장군(前將軍)이다. 그 전에는 정동장군(征東將軍)이었다. 장료가 죽은 후에는 강후(剛侯)라는 시호를 받는다.

 

악진은 병사하기 전에 가장 높았던 관직이 우장군(右將軍)이다. 사후에 시호는 위후(威侯)이다. 악진은 다섯 명 중에서 가장 먼저 죽었다.

 

우금은 수치와 분노로 죽기 전에 가장 높았던 관직이 좌장군(左將軍)이다. "양번지전(襄樊之戰)"에서 연이은 가을비로 그가 이끄는 칠군이 물에 잠기고, 전패한 후 관우에 투항한다. 그후 우금은 손권에 의해 위나라로 되돌아가고, 조비(曹丕)는 그를 안원장군(安遠將軍)에 임명한다. 그러나, 우금의 최고관직은 좌장군이고, 가절월(假節鉞)이다. 사후에 여후(勵侯)에 봉해진다. 

 

장합은 전사하기 전에, 가장 높은 관직이 정서거기장군(征西車騎將軍)이고, 사후에 장후(壯侯)에 봉해진다. 장합은 다섯 명 중에서 가장 나중에 사망한다.

 

서황은 병사하기 전에, 가장 높은 관직이 우장군(右將軍)이었고, 죽은 후의 시호는 장후(壯侯)이다. 

 

관직으로 보면 최고관직은 정서거기장군 장합이다. 그후로 전장군 장료, 좌장군 우금, 우장군 악진, 우장군 서황의 순서이다.

 

거기장군은 지위가 가장 높다. 앞에 정서장군이 추가되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아주 높다.

 

권력이 가장 큰 사람은 마땅히 우금이다. 우금은 "가절월"의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가(假)'는 '대리'라는 의미이고, '절(節)'은 황제의 신분을 표시하며, '월(鉞)은 권력을 대표한다.

 

가절월은 급이 가장 높은 군왕의 수권방식이다. 군왕을 대표하여 대외전쟁을 하면서 보고를 하여 비준을 받을 필요가 없이, 군령을 위반한 장수들을 참살할 수 있다. 나머지 4명은 단지 '가절'이다. 이는 우금의 '가절월'보다는 확실히 낮다.

 

다음으로 식읍(食邑)을 보자.

 

장료의 식읍은 2,600호이다. <삼국지. 장료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문제는 진양후에 봉하고, 식읍 천호를 추가해주어, 앞에 받은 것과 합쳐서 이천육백호이다."

 

악진의 식읍은 1,200호이다. 나중에 다시 500호가 추가되어 1,700호가 된다. <삼국지.악진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태조가 돌아가고, 악진을 장료, 이전과 합비에 주둔하게 남겨두며, 식읍 오백을 추가해주었고, 이전과 합쳐 천이백호가 된. 악진은 여러번 공을 세워 오백호를 나눠받는다."

 

우금의 식읍은 1,200호이다. 나중에 역시 500호가 추가되어 1,700호가 된다. 

 

장합의 식읍은 4,300호이다. <삼국지.장합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적 제갈량이 파촉의 무리를 호랑이같은 군대로 만들었다. 장군이 굳건히 막아내며 가는 곳마다 이겼으니, 짐이 크게 칭찬한다. 식읍 천호를 추가하여, 앞의 것과 합쳐서 사천삼백호가 된다."

 

서황의 식읍은 3,100호이다. <삼국지.서황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명제가 즉위하고, 오나라장수 제갈근을 양양에서 막아낸다. 식읍 이백을 추가하여 앞의 것과 합쳐서 삼천일백호가 된다."

 

5명의 식읍을 보면, 장합이 가장 많고, 서황이 다음이고, 장료가 세번째, 우금과 악진이 나란히 네번째가 된다.

 

여기에서 가장 아쉬운 사람은 우금이다. 우금은 원래 같은 시기에 오자양장중에서 지위가 가장 높고, 권력도 가장 컸다. 그러나, "양번지전"에서 전패하여 관우에 투항하면서 절개를 지키지 못했고, 일생의 공적과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정말 유감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