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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수문제)

수문제(隋文帝) 양견(楊堅)의 딸들....

by 중은우시 2021. 5. 1.

글: 장계합(張繼合)

저명한 수문제 양견은 모두 5명의 아들이 있다. 수양제 양광을 포함해서. 정사에 이들 아들들의 최후에 대하여는 모두 아주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딸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큰딸과 다섯째딸이다. 수양제가 즉위한 후, 이들 자매는 모두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다. 특히 다섯째딸인 난릉공주(蘭陵公主)는 오빠인 수양제 양광에게 핍박을 받았다.

먼저, 수양제의 장녀를 얘기해보자. 양려화(楊麗華, 561-609), 그녀는 수문제의 장녀이고 573년 당시의 북주(北周)의 태자 우문윤(宇文贇)에게 시집가서 태자비가 된다. 당시 나이 13살이었다. 578년, 우문윤이 즉위하면서 그녀는 황후에 오른다. 580년, 우문윤의 병이 위중해져서 양견이 유명을 받아 보정(輔政)이 되고, 우문윤은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그후에 즉위한 주정제(周靜帝) 우문천(宇文闡)은 나이가 어려서, 양견이 조정을 좌지우지한다.

양려화는 부친이 정권을 장악한 것이 원래 기뻤다. 그러나, 그후 양견이 주정제를 핍박하여 '선위(禪位)'하도록 하여, 북주를 대체할 정치적 의도를 드러내게 된다. 그러자 양려화는 분노했지만 힘이 없어서 방법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참는 수밖에. 그녀는 부친이 정권을 빼앗아 가는 것을 두 눈 멀거니 뜨고 지켜본다. 수나라가 건립된 후, 양견은 마음 속으로 이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586년 딸을 "낙평공주(樂平公主)"로 봉한다. 그후 다시 양려화에게 개가하도록 명하나, 양려화는 죽어도 따르지 않겠다고 한다. 그녀의 심지가 굳은 것을 보고 양견은 더 이상 고집하지 않는다. 609년, 양려화는 수양제와 함께 장액(張掖)으로 갔다가 하서(河西)에서 사망하니, 향년 49세이다.

다음으로 양견의 다섯째 딸 난릉공주(蘭陵公主, 573-604)를 보도록 하자. 그녀는 수나라의 '금지옥엽'이다. 먼저 왕봉효(王奉孝)에게 시집갔다가 왕봉효가 죽은 후 다시 유술(柳述)에게 개가한다.

공주는 용모가 예뻤고, 단정했다. 생격은 부드럽고 온화했으며, 독서를 좋아했다. 그래서 수문자는 자신의 여러 딸들 중에서 그녀를 가장 총애한다. 처음에 의동(儀同) 왕봉효에게 시집보냈는데, 왕봉효가 일찍 죽어버린다. 그때 공주의 나이 겨우 18살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하동(河東) 유술에게 시집보낸다. 당시 다른 공주들은 시집간 후, 자신의 신분이 고귀함을 내세우며 오만했다. 오직 난릉공주만이 아내의 도리를 다하면서 시부모들을 잘 모셨다. 시부모가 병이 들면 공주는 직접 탕약을 끓였다. 수문제는 그 말을 듣고 아주 기뻐한다. 유술은 이로 인하여 수문제로부터 총애를 받고 관직이 올라간다.

처음에 난릉공주가 과부가 되었을때, 당시 진왕(晋王)이었던 양광은 공주를 소비(蕭妃)의 남동생인 소창(蕭玚)에게 시집보내려 한다. 그러나 수문제가 듣지 않고, 나중에 유술에게 시집보낸다. 양관은 이로 인하여 기분이 좋지 않게 된다. 유술이 수문제에게 기용되자 양광은 더욱 그를 싫어하게 된다. 나중에 수문제가 죽은 후 양광은 즉시 유술을 용천(龍川)으로 유배보낸다. 그리고 공주에게 그와 이혼하고, 개가할 것을 명한다. 그러나 공주는 죽어도 따르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다시는 수양제를 보지 않겠으며, 공주의 봉호도 박탈해달라고 하면서, 유술과 함께 유배가겠다고 한다.

양광은 분노하여 질책한다: "천하에 남자가 없단 말인가? 왜 유술과 함께 유배가려 한단 말인가?" 공주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선황이 신첩을 유씨집안에 시집보냈고, 지금 유씨집안이 죄인이 되었으니, 신첩도 당연히 따라야 합니다. 폐하께서 법을 어기면서 신첩에 은혜를 베풀지 마시옵소서."

공주는 결국 우울하게 세상을 떠난다. 나이 겨우 32살이었다. 죽기 전에 상소를 올려 죽어도 유씨집안에 묻히겠다고 말한다. 양광은 이를 읽고 더욱 화를 내며 공주의 죽음에 전혀 슬퍼하지도 않고, 공주를 홍독천(洪瀆川)에 그냥 묻으라고 말한다. 조야에서는 모두 공주를 가슴아파했다.

난릉공주의 남편 유술은 용천에 유배간지 몇년만에 다시 영월(寧越)로 유배간다. 도중에 장독에 걸려 죽으니, 향년 겨우 39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