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하당월색(荷塘月色)
사람들은 항상 말한다. 믿으면 있고, 믿지 않으면 없다. 어떤 사람은 신을 믿고, 어떤 사람은 귀신을 믿고, 어떤 사람은 또 다른 것을 믿는다...기괴한 것은, 수문제 양견은 옛 한자의 뜻을 미신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수(隨)"자의 뜻을 가장 꺼려했다. 이것은 또 어떻게 된 일인가?
양견은 홍농 화음 사람이다(섬서성 화음현). 그는 상류사회 출신이다. 북주무제(北周武帝)때 주국대장군(柱國大將軍), 수국공(隨國公) 양충(楊忠)의 아들이다. 큰 나무 아래는 시원한 법이다. 양견은 14살때 관료의 길로 들어서며, 16살때는 표기대장군으로 승진한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그렇게 높은 관직에 오르다니, 임표가 사단장이 된 나이보다 더 어리지 않은가? 기실 이것은 그가 '고관자제'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주로 양견이 어려서부터 그의 총명과 재지 그리고 군계일학의 정치적 지혜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래도 납득하지 못하겠으면, 그가 어떻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는지를 보라. 양견은 생각했다. 그의 부친은 일생동안 "공"에 머물렀다. 수국공. 위에 아직은 "왕"이나 "황"자를 덧붙이지 못했다. 그는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북주정권을 탈취하지 위하여, 그는 먼저 자신의 정치적인 길을 닦는다. 그는 태자가 비를 선택하는 기회를 붙잡아, 정치적 정략결혼을 꾀한다. 그의 큰 딸인 양려화(楊麗華)를 천하에서 가장 높은 문턱, 즉 황궁을 넘게 하여 태자의 정실부인이 되게 한다. 이렇게 하여 양견은 당당하게 미래 최고지도자의 장인이 된 것이다.
주무왕이 죽자, 양견의 사위는 즉시 그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다. 그가 바로 주선제(周宣帝)이다. 양려화는 바로 황후가 된다. 양견은 즉시 최고군사령관(상주국)이 된다. 마지막에 점차 발전하여 조정내의 일상업무에 대하여 전권을 가지고 처리한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양견의 정치적 수완은 보통이 아니었다.
양견의 지혜는 또한 겸손한데 있었다. 그는 드러내고 자랑하지 않았다.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움직이는 스타일이었다. 황제의 자리에 하루빨리 다가가기 위하여, 그는 전혀 소리소문없이 하나하나 진행했고, 계속 자본을 쌓아갔고, 자신의 세력을 키워갔고, 세력범위를 넓혀갔다. 먼저, 그는 계책을 써서 5명의 친왕을 제거한다. 이렇게 하여 근본적으로 핵심역량의 위협응 없앤다. 지방무장세력에 대하여는 그는 회유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자기편으로 만든다. 정말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수 없는 경우에는 아예 제거해버렸다. 그는 반년만에, 철저히 북주의 정권을 자신의 수중에 확실하게 장악한다.
다시 그가 어떻게 용상에 올랐는지를 보자. 주선제는 원래 무슨 성취욕도 없는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자였다. 그는 태상황이 되어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일지감치 어린 후계자를 황제로 앉힌다. 주정제(周靜帝). 궁중의 대소사는 양견이 처리했다. 얼마후 주선제는 죽어버린다. 양견은 기회가 왔다고 보고, 사람을 찾아서 어린 황제를 대신하여 선양조서를 쓰게 한다. 다시 조정의 대신들이 공손하게 그의 집으로 바치러 오게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거짓으로 사양한다. 그 모습은 마치 진짜같았다고 한다. 어쩔 수가 없었다. 주정제는 세력도 없고 외로웠다. 할 수 없이 다시 문서를 내린다. 그제서야 양견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양견이 황제에 오른 후, 이 자리에 앉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느낀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에게 엄격했다. 스스로 근검절약하고, 일련의 개혁조치를 취한다. 그중에는 그가 가장 꺼려하는 "수(隨)"의 뜻도 들어 있다.
원래 양견은 부친의 작위를 이어받아 '수국공(隨國公)'이었다. 나중에 그는 수왕(隨王)에 봉해졌다. 부친대와 아들대는 달랐다. 부친은 '공'이었지만, 아들은 '왕'이다. 모두 '황'보다는 뒤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수(隨)'자의 뜻이 좋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이 글자를 계속하여 꺼려왔고 신경써왔다.
그게 뭐 신경쓸 일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아예 바꿔버리면 될텐데. 하하 그건 아니다. 그가 이렇게 신경쓰는 것은 "수"자의 왼쪽에는 '귀'가 있고, 오른 쪽에는 '유(有)'가 있어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다. "유","귀"는 바로 "머리(頭)"가 아닌가. 누가 '우두머리'가 되는 것을 싫어한단 말인가. 하물며 "수"는 일찌기 그에게 좋은 운을 가져다 주었고, 그것은 부친이 그에게 물려준 작위이다. 이것은 등불을 들고 찾아다녀도 찾을 수 없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중간에 "주지(走之)"자가 있는 것이 불길하다고 여겼다. 이제 겨우 '황제'의 자리에 앉았는데, 어떻게 다시 '떠난단' 말인가. 이제 본인이 나라의 주인이 되었고, 자손들도 계속하여 황제의 자리에 앉을 것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는 고심을 거쳐 결국 결정을 내린다. "수(隨)"자의 본뜻이 좋지 않으므로 아예 "주지(走之)"는 빼버릴 것이다. 그러면 만사대길이다. 그래서 "수(隨)"는 "수(隋)"로 바뀌는 것이다.
만일 한 글자의 뜻으로 정말 사람이 바뀐다면 내지 한 가족의 운명이 바뀐다면, 수나라는 수양제 양광의 손에 망쳐지지 않았을 것이다. 관건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있다. 바른 길인지, 아닌 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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