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공고봉(孔誥烽)
홍콩의 민간과 정부는 찬바람이 부는 한겨울을 맞이했고, 확실히 살아가기 힘들다. 금년이 "6.4"나 "7.1"도 아마 조용히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각도를 바꾸어 베이징의 시각에서 홍콩을 보면, 그들이 홍콩에 무엇을 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베이징은 지금 홍콩수렁에 빠져버렸다. 옛날 미국이 월남전의 수렁에 빠진 것이나, 소련이 아프간 수렁에 빠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옛날 월남전과 아프간전쟁에서 수퍼대국이 사용하는 무기를 계속하여 강화했고, 전국민에 대하여 무차별공격을 가했지만, 어쩧게 해도 적을 모조리 소탕할 수 없었고, 점점 모든 사람이 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은 포위당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초조함에 광란에 빠지고, 결국 스스로가 모든 사람이 적이라고 생각했던 환각이 사실로 바뀌어 버린다. 결국 철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베이징에서 보면 항독(港獨, 홍콩독립분자), 본토파(本土派), 범민(泛民, 범민주파)는 당연히 적이다. 다만 베이징이 현재 홍콩을 대하는 수법을 보면, 베이징의 마음 속에 홍콩의 적은 이들 뿐만이 아닌 듯하다.
중국이 추진하는 홍콩선거개혁은 후보자에 대한 정치심사를 강화했을 뿐아니라, 입법회의 공능조(功能組) 의석비율을 줄이고, 선위회(選委會)의 의석을 늘였다. 개혁후, 선위회의 의석은 40석, 공능조는 단지 30석, 직선이 20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선위회는 중련판(中聯辦)이 통제하는 신생 동향조직들이 다수 가입하였다. 정부가 임명한 각종 지구위원회, 인대, 정협와 중국전국조직의 홍콩회원등. 이후의 선위회는 적지 않은 의석을 모두 중공이 직접 임명하게 된다. 이전에 선위회를 주도하던 홍콩현지재벌과 전문단체의 영향력은 크게 감소되었다.
이번 개편은 중공이 범민을 소멸시키려는 것뿐아니라, 홍콩현지재벌과 엘리트들의 영향력도 크게 축소시켰다. 입법회이 직선의석비율은 절반에서 2/9로 줄여버렸다. 이는 직선에서 의석을 차지해야하는 책임을 졌던 건제파(建制派, 친중파) 정당들도 주변으로 밀려나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9년 항쟁이 불꽃처럼 번질 때, 베이징은 가두항쟁을 보았을 뿐아니라, 적지 않은 부호들도 드러나게 혹은 드러나지 않게 '송중조례'를 반대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 조셉 라우(劉鑾雄, Joseph Lau Luen-hung)는 사법재심의 방식으로 송중조례를 파기시키고자 시도했고, 전국정협위원인 찰스 호(何柱國, Charles Ho Tsu-kwok)도 여러번 공개적으로 송중조례에 반대를 표시한다. 베이징이 각 부호들을 동원하여 항쟁을 비난하도록 했을 때, 어떤 부호는 신문에 광고를 내서, 양쪽을 모두 잘못했다고 말하면서, 애매모호하게 폭력에 반대했다. 적지 않은 명사들과 건제파의 외곽인원들은 놀랍게도 독립조사위원회의 성립을 지지했다. 항쟁자들이 입법회로 쳐들어가고, 입법회의 전임과 현임 주석의 화상에 흑칠을 할 때, 건제파의 거물 제스퍼 창(曾鈺成, Jasper Tsang Yok-sing)의 화상은 멀쩡했다. 이는 의심을 더욱 키웠고, 홍콩사회의 정치맥락을 장악하는데 여전히 자신이 없었던 당중앙에서는 부호와 건제파들이 겉으로는 중공을 따르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고, 암중으로 '홍콩민중'을 지지하는 증거라고 여긴 것이다.
나중에 부호들과 관계가 좋고, 왕왕 부호들의 풍향계로 여겨지는 여론지도자들이 전면적으로 항쟁을 지지한다. 홍콩공산당과 관계가 밀접했던 젊은 학생들도 베니 타이(戴耀廷, Benny Tai Yiu-Ting)이 제안한 "35+" 선거계획에 동조한다. 제스퍼 창, 제임스 티엔(田北俊, James Tien Pei-Chun), 존 창(曾俊華, John Tsang Chun-wah)은 한동안 자주 함께 공개장소에 모습을 드러내어, 거래투쟁현장에서 마스크를 나눠주고, 노래를 부르며 자금모집하고, 월병을 빚는 등의 활동을 했다. 베이징의 눈에 이것은 지방당, 현지부호가 범민주파 및 외국세력과 결탁하여 권력을 찬탈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현재 베이징은 반대파를 타격할 뿐아니라, 부호와 지방당도 타격한다. 다만 그들을 제거한 후, 신홍콩인들이 그들을 대체할 것인데, 중공이 어찌 안심할 수 있겠는가? 마윈이 보유한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019년 항쟁때, 대량의 항쟁자를 동정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평론과 보도를 내보냈다. 베이징이 이것을 보지 못했을 리 없다. 현재 마윈은 숙청당했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 해방군 배경을 지닌 유창러(劉長樂)이 보유한 봉황위성TV도 팔리게 될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아마도 중국의 중앙기업급 문화기업에 매각될 것이라고 한다. 이는 다시 증명한다. 베이징은 홍콩의 신홍콩인에 대하여도 의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베이징은 홍콩에서는 모두가 적이라고 여기고 아무도 믿지 못한다. 이런 인식하에서 히스테리를 부릴 수 있다. 2019년 항쟁은 베이징을 발광하게 만들었고, 베이징이 잠재협력자를 쫓아내거나, 반대편에 서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베이징은 전세계가 모두 적이라는 환각이 사실로 바뀌게 만들었다. 힘에만 의지하여 독재하는 것은 아주 무섭다. 그러나 그것이 대단하다고 자신하고,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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