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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오대십국)

역사상 가장 잔혹한 황제: 하루에 8명의 형제를 죽이고, 조카딸을 모두 후궁으로 삼다.

by 중은우시 2019. 5. 21.

글: 역사변연(歷史邊緣)



중국역사상 가장 잔혹했던 황제로 일컬어지는 인물이 적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얘기하려는 유성(劉晟)과 같은 인물은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유성의 본명은 유홍희(劉弘熙)이고, 오대십국(五代十國)시기의 남한(南漢) 황제이다. 그는 남한의 건립자인 고조 유엄(劉龑)의 넷째아들이다. 만일 일반적인 황제계승원칙에 따르자면, "적자가 있으면 적자, 적자가 없으면 장자'이므로, 유성은 넷째의 신분으로 황제가 될 수 없었다. 사실도 그러했다. 유엄이 죽은 후, 황위를 계승한 것은 셋째인 유분(劉玢)이었다. 그러나, 이 유분은 황제의 재목이 아니었다. 즉위후, 유분은 정무를 돌보지 않고 향락을 즐겼다. 그리하여 남한의 국정은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유성은 보고 있었다. 그도 자신이 계속하여 유분의 의심을 받아왔고 그래서 위험한 처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유성은 정변을 일으킬 생각을 갖게 된다. 광천2년(943년)의 어느 날, 유성은 유분이 연회에 참석한 틈을 타서, 역사(力士) 수인을 연회에 숨어들게 한 후, 연회가 끝나고 유분이 전혀 대비하지 않고 있을 때, 유분을 죽여버린다.


유분이 좋은 황제는 아니었으므로, 그래서 유성이 형을 시해하고 즉위한 과정이 떳떳하지는 못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유분이 좋은 황제는 아니었지만, 형제들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유성은 달랐다. 유성도 좋은 사람은 아니고, 황제에 오르지 못했을 때도 음탕하고 포악한 인물이었다. 황제가 되고나서도 그것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그는 엄격하고 잔혹한 형법으로 신하와 백성을 통치한다. 옛신하들을 탄압하고, 환관을 발탁하며, 궁녀들이 정치에 참여하게 한다. 그는 업그레이드버전의 유분인 셈이었다. 남한은 유성의 집권하에 날로 쇠락한다.


아마도 자신이 형을 시해하고 즉위한 것때문인지, 유성은 마음 속으로 항상 불안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의 형제들이 자신을 모방하여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죽이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심병이 든 유성은 자신의 형제들을 도살한다. 심지어 그들의 처와 자식들도 가만 놔두지 않았다. 조카딸들은 후궁으로 들인다. 유성은 모두 18명의 형제가 있었는데, 그중 그의 큰형인 유요추(劉耀樞), 둘째형인 유귀도(劉龜圖)는 모두 요절했다. 아홉째동생 유홍조(劉洪操)는 전사한다. 유성의 황위는 셋째 유분을 죽이고 얻은 것이다. 이렇게 계산해보면 남은 형제는 모두 14명이다.


황위를 찬탈하는 과정에서 유성의 다섯째동생 유홍창(劉洪昌) 그리고 열째동생 유홍고(劉洪杲)는 그를 도왔다. 그리고 성공후에 각각 병마대원수, 부원수에 봉해진다. 유홍고는 유성에게 가장 먼저 피살된다. 그가 죽은 후에는 유홍창이었다. 유홍창은 고주 유엄의 아들 중 가장 현명하고 능력있는 인물이었다. 거의 태자에 오를 뻔했고, 명망이 가장 높았다. 그래서 유성이 꺼렸던 인물이다. 유성의 기획으로 강도에 의해 피살된다. 그리고 같은 해(건화2년), 여덟째 동생 유홍택(劉洪澤)도 피살당한다. 그가 죽임을 당한 이유는 그가 지방을 다스리는데 업적이 많았고, 그가 다스린 지역에 '봉황'이 나타나는 상서(祥瑞)가 있었기 때문이다.


건화3년(945년)에 유성은 다시 손을 쓴다. 이번에 그는 일곱째 동생 유홍아(劉洪雅)를 죽인다. 2년후인 건화5년(947년) 유성은 형제들을 대청소한다. 하룻만에 8명의 형제를 죽여버린 것이다. 여섯째 유홍필(劉洪弼), 열한째 유홍위(劉洪暐), 열셋째 유홍간(劉洪簡), 열넷째 유홍건(劉洪建), 열다섯째 유홍제(劉洪濟), 열여섯째 유홍도(劉洪道), 열일곱째 유홍소(劉洪昭), 열아홉째 유홍익(劉洪益). 대청소이후, 유성의 형제는 단지 2명만 남는다. 유성은 마침내 안심한다. 그러다가 건화12년에 다시 손을 써서, 열두째 유홍막(劉洪邈)을 죽이고, 다음 해에는 열여덟째 유홍정(劉洪政)을 죽인다.


이들 수족을 죽인 것은 당연히 유성의 의심병 때문이다. 다만 12년만에 형제를 모조리 죽이고, 조카딸을 모조리 후궁으로 들인 황제는 아마 역사상 유일무이할 것이다. 이처럼 황권을 위해 가족의 정을 도외시하고 형을 죽이고 부친을 시해하는 장면은 사람들을 전율시킨다. 당나라때 이세민이 형제, 조카를 죽이고 황제로 등극할 때, 부친 이연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네가 나의 자손을 죽였는데, 언젠가 너의 자손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황권투쟁은 역대이래로 이렇게 잔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