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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영화

홍콩제일미녀 니나리(利智)의 선택: 카지노왕 or 이연걸?

by 중은우시 2021. 1. 7.

글: 섭공자(葉公子)

1. 시안아가씨

 

1960년대 중반, 한 어린 여자아이가 이혼한 부친을 따라 시안으로 와서 정착한다.

그녀는 아주 예뻤고, 여러 남학생들이 좋아하는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여자아이는 하루 종일 우울해 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엄마가 없어서라고 말했다.

1960년대중반 이혼은 아주 큰 사건이었고, 사람들마다 꺼려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되곤 했다.

이 놀림받넌 어린 여자아이가 바로 니나리(Nina Li Chi, 利智)이다.

니나리의 부친인 리용시(利永錫)는 음악선생이었다. 광동사람으로, 나중에 상하이로 이사간 후 니나리의 모친과 결혼했다. 그러나 성격이 맞지 않아 이혼하고, 딸을 데리고 시안으로 옮겨갔던 것이다.

 

니나리의 자료를 살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녀가 미스홍콩에 나가기 전의 자료는 거의 비어있다는 것을. 그녀는 마치 과거가 없는 사람같다.

왜 이렇게 자신의 과거를 숨기려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때가 행복하지 않았고, 그녀가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니나리는 일찌기 시안시건축자제학교에서 공부했다. 현재의 시안시86중학이다. 이 학교에서는 유명인을 배출했는데, 바로 영화배우 장자이(張嘉譯)이다. 니나리는 장자이보다 9살이 많다. 두 사람은 동문선후배라 할 수 있다.

아마도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타격이 그녀에게는 너무나 컸던가보다. 어렸을 때의 니나리는 '반역아'였다. 7,8세때 그녀는 철도선을 따라 가출을 하기도 했었다. 시안에서 광저우까지 다시 광저우에서 장쑤까지, 그리고 다시 장쑤에서 칭다오가지.

유명해진 후,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그 당시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어린아이였지않느냐. 말만 예쁘게 하면,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은 모두 문제되지 않았다."

이 일을 보면 우리는 알 수 있다. 니나리는 어려서부터 이미 스스로를 보살필 수 있는 강한 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니나리는 중고등학교때 이미 미녀였다. 특히 피부는 현지의 많은 다른 아이들보다 희면서도 붉은 기운이 있어, 사람들이 좋아했다.

그때, 많은 남학생들이 그녀를 쫓아다녔다. 특히 수업이 끝나면 남학생들이 떼로 지어 그녀를 막거나,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곤 했다. 혹은 돌맹이를 그녀에게 던져서 주의를 끌려고 하기도 했다.

그녀를 좋아하니까 그녀를 괴롭히는 것이다.

니나리의 부친 리용시는 시안에 간 후에 다시 계모를 만난다. 그러나, 이 계모는 성격이 각박하여, 니나리에게 잘 대해주지 못했다.

그때의 니나리는 청춘기였고, 외부환경에 아주 민감했다. 이런 가정환경은 니나리의 성격과 처세에 영향을 준다.

소녀시대의 니나리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주변의 학생들과도 관계가 좋지 못했다. 단지 여학생 한명만이 그녀와 관계가 좋았는데, 그녀가 자주 니나리를 보호해주곤 했다. 그녀를 대신하여 그녀를 괴롭히는 남학생들에게 욕을 해주기도 했다.

1970년대중반, 니나리의 부친은 흘러흘러 홍콩까지 간다. 거기서 무대극을 연출하기 시작한다. 이때 니나리는 상하이에 있는 할머니에게 보내어지고, 할머니와 같이 산다.

리용시가 처음 홍콩에 왔을 때는 생활이 힘들었다. 겨우겨우 자신의 입에 풀칠이나 하는 정도였고, 니나리까지 홍콩으로 데려올 힘은 없었다.

그는 겨우 열몇살된 딸을 혼자서 살라고 남겨두고 혼자서 홍콩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부친이 떠난 후, 니나리는 생활이 즐겁지 못했다. 사랑도 받지 못하고, 안전감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성격이 냉담해진다.

유일한 낙이라면 17,8세때 니나리는 도서관에서 한 남자아이를 만나도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다.

 

2. 홍콩에 처음 도착하다

 

1981년, 리용시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어 니나리를 홍콩으로 데려온다.

이 해에 니나리는 19살이었다.

홍콩으로 가기 전에, 니나리는 홍콩을 천국이라고 생각하여, 죽기살기로 홍콩에 가고싶어했다. 그러나 정말 홍콩에 도착해보니, 그녀가 생각지도 못하게 홍콩은 인간지옥이었다. 어디를 가든 '대륙매(大陸妹)'에 대한 차별이 충만했다.

홍콩은 1970년대의 사람들의 눈에 확실히 국제적인 대도시이고, 양기(洋氣)를 느낄 수 있었다.

홍콩의 선남선녀들은 일짜김치 나팔바지, 데콜테(어깨가 파진)등을 입었고, 길거리는 모던한 패션이 넘쳐났다.

내지에서 막 건너온 니나리는 비록 비교적 괜찮은 용모와 몸매를 지녔지만, 그녀가 입은 것은 모두 촌스러웠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그녀가 '대륙매'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무수한 고독과 차별의 밤을 보내면서, 황포강의 애인이 보내온 편지만이 그녀에게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러나, 그 사랑도 오래가지 못한다.

멀리 상하이에 있던 애인의 성은 양(楊)이었다. 그의 부친은 동해함대 작전처의 고급참모였다. 양이 홍콩으로 자주 편지를 부치게 되니, 보위기관의 주목을 끌게 되어, 양의 부친이 보위부에 불려가는 일이 벌어진다.

1970년대말, 중국의 사상은 아직 '운동'의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내지와 홍콩의 왕래는 아주 민감했다. 부친을 위하여 양은 니나리와 헤어지기로 한다. 이렇게 두 사람의 사랑은 철저히 끝이 난다.

 

그후에 황포강에서 오는 애인의 편지만을 위안으로 삼아 살아가던 니나리가 그 기나긴 나날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부모가 이혼하고, 혼자 고향에 여러 해동안 남겨지고, 남자친구에게 버림받고, 이는 아마도 니나리의 성격과 나중에 이연걸과 "10년재가의 약속"을 한 것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 것이다.

처음 홍콩에 왔을 때 니나리는 여러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대부분 거절당하고, 겨우 할 수 있는 일이 판매원이었다.

자부심이 강한 사람에게 있어서 이런 일자리가 그녀를 만족시켜줄 수는 없었다. 그녀의 안목은 계속하여 더욱 좋은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부친이 무대극을 연출하고, 생모도 무대극의 배우였다. 니나리의 몸에는 천성적으로 예술세포가 있었다. 그리고 공연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1980년대초, 황바이밍(黃百鳴, 홍콩영화배우, 제작자), 맥가(麥嘉, 홍콩영화배우, 감독, 제작자), 쩡즈웨이(曾志偉, 홍콩영화배우, 감독, 제작자)등이 속속 시네마시티(新藝城)에 가입하고, 대거 배우를 모집했다. 니나리는 그 소식을 듣고 찾아가서 오디션을 본다. 그러나 시네마시티영화회사는 그녀를 버린다. 이유는 그녀가 너무 촌스러워 카메라로 찍었을 때 보기 좋지않다는 것이었다.

이번 오디션실패는 니나리로 하여금 '치욕'이라고 느끼게 만들었다.

시안과 상하이에 있을 때, 니나리의 곁에는 계속하여 그녀의 미모를 칭찬하는 남자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런데, 홍콩이라는 대도시로 오자 그녀는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우물안개구리였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후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서 부친 리용시에게 유학을 가겠다고 말한다. 외국으로 나가서 자신을 채워오겠다는 것이다. 리용시는 이때 이미 재혼해 있었고, 한편으로 딸인 니나리와 재혼한 처와의 관계를 잘 처리할 자신이 업섰고, 다른 한편으로 딸을 대륙에 버려두고 왔었다는 미안한 마음도 있어서, 니나리의 요청을 응락한다.

 

성공적으로 출국하기 위하여 니나리는 다시 상하이로 돌아가서, 영어선생을 구한다. 그리고 3달동안 영어를 공부한다. 그리고 다시 홍콩으로 돌아와 토플시험을 친다.

기지가 있고 강한 사람은 항상 가장 적합한 시기를 찾아 자신의 운명을 바꾸고자 한다. 니나리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7,8세때 혼자서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기도 했고, 10여세때 어떻게 같은반 여학생의 우의와 남학생의 사모를 이용하는지도 알았다. 부친에게는 어떻게 그의 미안한 마음을 이용해야하는지도 알았다.

이런 것에서 니나리에게 악한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명확하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어떻게 적절히 바뀌어야 하는지를 잘 알았다.

이연걸의 사랑을 받아줄 때도, 그녀는 여러번 시험해본 다음에 비로소 안심하고 마음을 열었었다.

그후, 니나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으로 가서 상업경제학을 공부한다. 그때부터 3년간의 유학생활이 시작된다.

유학기간동안, 그녀는 수업을 열심히 듣는 외에, 화장하는 법도 배우고, 그녀 자신이 외국의 패션세계를 접하면서, 탈태환골한다.

 

3. 다시 홍콩으로 돌아오다

 

1986년 홍콩으로 돌아올 때, 니나리는 원래 촌스러운 '대륙매'에서 철저하게 유학에서 돌아온 미국물을 먹은 아가씨로 변신해 있었다.

이때 니나리는 이미 25살이었다. 엔터테인먼트계의 대다수 여자스타들과 비교하면 '명성을 날릴' 나이는 일찌감치 지나버렸다. 그러나, 니나리의 연예생애는 이제 막 시작이었다.

이 해에 유학에서 돌아온 니나리는 미스아시아미인선발대회에 참가한다. 그녀는 2천여명의 참가자들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1위를 차지했을 뿐아니라, '미스 피스', '미스 포토제닉' '베스트의상상'까지 3개의 대상을 모두 휩쓸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

그후 니나리는 미인대회1위라는 명성을 가지고 오락계에 들어간다. 몇년만에 그녀는 30여편의 영화를 찍었고, 섹시스타로 유명해진다.

이 시기에 그녀는 종초홍(鍾楚紅), 쩡즈웨이, 장만옥(張曼玉), 왕조현(王祖賢), 성룡(成龍)등등과 친밀하게 협력한다. 성룡이 그녀를 쫓아다닌다는 소문도 난다. 그리고 다른 여배우들이 그녀를 눈엣가시로 여긴다는 말도 있었다.

 

영화를 찍는 외에 니나리는 비지니스에도 뛰어든다. 처음에 그녀는 부친 리용시와 함께 방직품사업을 한다. 내지에서 저가로 매입하여, 외국과의 관계를 통해 국제시장에 팔아서 중간차익을 얻었고, 제법 많은 돈을 번다.

나중에, 그녀는 다시 돈을 부동산에 투자한다. 상하이, 하이난, 지린등지에 여러 부동산을 매입한다. 그리고 되팔아서 큰 돈을 번다.

그때, 니나리는 영화를 찍는 것은 드러내놓고 했지만, 사업을 하는 것은 조용하게 진행했다. 그래서 그녀가 사업을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 기간동안 니나리는 카니노왕 스탠리호(何鴻燊) 및 쿵푸스타 이연걸(李蓮傑)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카지노왕 스탠리호는 일찌기 풍류로 유명했다. 게다가 본인도 아주 잘생겼다. 그리하여 많은 여자들의 호감을 산다. 스탠리호는 아주 골치아파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녀들을 아무리 떼어내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아주 골치아프다." 이것을 보면 카지노왕이 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카지노왕과 니나리는 한 칵테일파티에서 만난다. 아름다운 니나리는 춤을 추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탠리호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후, 스탠리호는 니나리를 쫓아다닌다. 두 사람은 빈번하게 왕래했고, 아주 대단했다. 사람들은 둘이 파티에서 춤추는 장면을 자주 목격했다. 

니나리와 만나기 위해 스탠리호는 넷째부인 안젤라 렁(Leong, On Kei Angela, 梁安琪)를 멀리하면서까지 니나리의 곁에서 떠나려 하지 않았다.

나중에 스탠리호는 니나리를 다섯째부인으로 들이려고까지 한다. 그러나 둘째부인 루시나 람(Lucina Azul Laam Jean Ying, 藍瓊瑛)과 넷째부인 안젤라 렁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친다. 심지어 그녀들은 니나리를 쫓아가 죽여버리겠다고까지 말한다.

재벌의 집에 부인이 하나 더 들어온다는 것은 재산을 나눠줘야하는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아이까지 낳으면 그것은 재산을 일부 나눠주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갈등이 극에 달하자, 가정의 화목도 문제가 되고, 심지어 니나리에게까지 해를 끼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스탠리호는 점점 니나리에게서 멀러진다.

니나리는 다시 한번 남자의 매정함을 보게 된다. 무슨 사랑, 무슨 애정, 그저 지나가는 연기일 뿐이다. 버리겠다고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버려버리는 것이다.

니나리는 감정의 상처를 다시 받는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일생동안 걸어온 길, 겪은 일은 기실 모두 하늘이 가장 잘 안배한 것이다.

기실 니나리에 있어서, 스탠리호를 잃은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만일 이번에 그를 잃지 않았다면 나중에 어찌 이연걸을 만났겠는가?

 

4. 이연걸을 만나다.

 

1989년, <용재천애(龍在天涯)>를 찍으면서 니나리는 이연걸을 만난다.

옛시에 이런 말이 있다: "금풍옥로일상봉(金風玉露一相逢), 변승각인간무수(便勝却人間無數)" 이것은 이연걸이 니나리를 처음 만났을 때의 심경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일 것이다.

이연걸은 니나리를 사랑하게 되고 거기에서 빠져나오질 못한다.

그러나, 이때 이연걸은 이미 자신의 사저(師姐)이자 배우인 황츄얜(黃秋燕)과 이미 결혼한 상태여서, 니나리를 책임질 수가 없었다.

광명정대하게 니나리와 사귀기 위해, 그녀는 이미 임신해 있던 처 황츄얜과 이혼을 결심한다.

황츄얜은 이연걸의 사저이고,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함께 자랐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이연걸에게 잘 대해 주었고, 조금 자라서는 자연스럽게 부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 혼인관계는 이연걸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황츄얜을 설득하여 이혼하게 된다. 그는 재산을 모두 황츄얜에게 주고 자신은 몸만 빠져 나온다.

 

여러해가 지난 후, 이연걸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젊었을 때, 한 여자가 나를 좋아했다. 나는 나도 그녀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니나리를 보고난 후,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나로 하여금 그녀를 위해서라면 명성과 돈도 다 버릴 수 있고, 그녀를 위해 죽을 수도 있었다. 나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나의 모든 미래를 포기할 수도 있다. 하루하루 피가 끓는다. 나는 할 수 없이 원래의 처에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나의 잘못이다. 나는 이제야 막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았다." 

기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을 추구한다. 그러나 평생 사랑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지난다.

운이 좋았다면, 황추얜은 이연걸을 이해해 주었다는 것이다. 비록 상심과 고통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를 놓아준다.

1991년, 이연걸은 황츄얜과 이혼절차를 마무리한다.

지금까지 그들은 여전히 한 가족처럼 내왕한다. 서로 상대방의 가족과 부모의 안부를 묻는다. 관계가 아주 괜찮다.

그후, 이연걸은 니나리를 쫓아다닌다. 그러나 니나리는 이성적이다. 일찌기 그녀는 부모의 이혼을 보았고, 사람들의 차가움도 보았다. 그리고 연애의 쓰라림도 겪었다. 그녀 자신은 사람에 대하여 회의와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가볍게 이연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이연걸과 이렇게 약속한다: 만일 10년후에도, 네가 여전히 이렇게 나를 사랑하면 우리는 함께 하자.

 

1992년, 니나리는 영화계를 떠나 비지니스에 투신한다.

그후 니나리는 얜타이(煙臺)의 하이윈반도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부동산개발을 한다. 이 별장의 이름은 하이윈화원이었고, 총투자금은 1,000만달러였다. 만일 순조로웠다면, 아마도 1억이상의 돈을 벌었을 것이고, 그녀의 후반생은 돈걱정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부동산거품이 순식간에 붕괴된다. 니나리의 부동산도 신기루처럼 물거품이 되고 만다.

투자실패후, 니나리가 이전에 모아놓았던 재산은 물거품이 된다. 그리고 수천만의 거액채무도 지게되어, 생활이 힘들어진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그녀의 곁에 이연걸이 있다는 것이다.

 

5. 환난견진정(患難見眞情)

 

이연걸은 니나리가 투자에 실패하여 거액의 채무를 졌다는 말을 듣고, 두말도 하지 않고 상화강(Charles Heung, 尙華强)의 부인 천란(陳嵐, 영화제작투자자)를 찾아가서 3년간 6부의 영화를 찍기로 계약하고 7,200만의 출연료를 받4는다.

그리고 그 돈을 바로 니나리에게 주고, 그녀가 마음대로 쓰게 한다. 이는 니나리의 마음을 확실하게 움직인다.

이전까지는 니나리가 관망하는 것이었고, 주변의 남자들을 관망하고, 이연걸이 그녀에게 진심인지 관망하는 것이었다면, 이번에 그녀의 우려는 말끔히 해소된다.

그녀는 알았다. 이 이연걸이라는 남자는 스탠리호보다 그녀에게 훨씬 맞다는 것을 그는 그녀에게 한마음이고, 진지하며,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을.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그후 니나리는 진정으로 이연걸을 마음에 두게 된다.

1996년, 이연걸은 청샤오동(程小東)의 부탁으로 미녀 관지림(關之琳)과 함께 영화 <모험왕>을 찍는다. 영화속에서 관지림은 그의 애인으로 나오고, 두 사람의 친밀한 장면이 많았다. 서로 눈짓을 주고 받고, 끌어안으며, 완전히 사랑에 빠진 한쌍같았다.

얼마후 이연걸과 관지림이 친밀하다는 소식이 니나리의 귀에도 들어온다. 니나리는 한편으로 울면서 한편으로 이연걸에게 전화를 건다. "난 떠나겠다. 고향으로 가겠다. 다시는 홍콩으로 돌아오지 않겠다."

이연걸은 그녀의 말을 듣고 어쩔 줄을 모른다. 즉시 공항으로 니나리를 붙잡으러 간다. 공항에서 그녀에게 애걸복걸하고, 다시는 애정신을 찍지 않고, 모든 것을 그녀의 말대로 하겠다고 한다. 그제서야 니나리는 이연걸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그후, 이연걸은 자신의 재산을 모조리 니나리에게 맡겼을 뿐아니라, 무슨 영화를 찍을지에 대하여도 니나리의 의견을 붇고,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아하면 그는 모두 거절했다.

1999년, 두 사람의 10년약속이 마침내 끝났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한다. 그후 두 딸을 낳았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두 사람은 결혼후 매우 조용히 지낸다. 이연걸은 돈을 벌고, 니나리는 아이를 돌보면서 사업도 했다. 어디를 가든 둘은 손을 잡고 서로를 보살폈다.

여러해가 지난 후 기자의 질문에 니나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에게 시집같으니, 이번 생애는 헛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