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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영화

중국을 난감하게 만든 중국계 수상자들...

by 중은우시 2021. 4. 28.

글: 황천진(黃天辰)

 

4월 25일, 베이징 출생의 중국계 여자영화감독 클로이 자오(趙婷)의 영화 <Nomadland(無依之地)>가 2021년 오스카상을 3개 받았다: 최우수감독상, 최우수작품상 및 최우수여자주연상. 그녀는 타이완의 리안(李安), 한국의 봉준호(奉俊昊)의 뒤를 이어 세번째로 이 영광을 얻은 아시아 감독이 되었고, 중국계 여성으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이치대로라면, 클로이 자오가 상을 받은 것에 중국은 흥분해 환호작약해야 한다. 그녀가 작년 9월 같은 영화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최고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받았을 때처럼. 그때 중공의 입인 <환구시보>는 그녀를 '중국의 자랑'이라고 했었다. 

 

누가 알았으랴. 사실은 정반대였다. 클로이 자오가 오스카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중국대륙에서 전면적으로 봉쇄된다. 미국의 소리 보도에 따르면, 중공 중선부는 관영매체에 이번 오스카상시상식에 관련된 내용을 보도하지 말도록 요구했고, 라이브중계도 취소시켰다. 그 원인을 알아보면, 클로이 자오가 2013년 <Filmmaker>잡지와의 인터뷰때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거짓말로 충만한 나라이다" 그리하여 '중국을 욕보였다'는 비난을 받는다.

 

클로이 자오 외에 아나스타샤 린(林耶凡)이 있다. 2015년 미스월드 캐나다 우승자인데, 처음에 대륙매체는 환호작약했는데, 돌연 조용해 졌다. 원래 아나스타샤 린은 파룬공 신자였고, 중국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후 중공은 아나스타샤 린이 산야에서 개최되는 미스월드 결선에 참석하는 것을 막는다.

 

중공당문화의 해독아래 스포츠 종목 외이 중국인들이 과학과 예술 분야에서 국제적인 상을 수상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중 중국이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적다.

 

중국이 자랑못하는 노벨상 수상자들

 

중국은 노벨상에 욕심을 내왔고, 중공의 총애를 받는 양전닝(楊振寧, Chen-Ning Franklin Yang)과 어용문인 모옌(莫言)을 제외하고 다른 중국과 관련한 수상자들은 중공이 자랑하지 못하고 있다.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리정다오(李政道, Tsung-Dao Lee)는 1946년 미국으로 유학간 후 계속 미국에 머물렀다. 197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딩자오중(丁肇中, Samuel C. C. Ting)은 1949년 일가족이 대륙에서 타이완으로 넘어가서 중공을 벗어난다. 1986년, 타이완 사람 리위안저(李遠哲, Yuan-Tseh Lee)이 노벨 화학상을 받는다. 1997년 스티븐 추(朱棣文, Steven Chu)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다. 그는 1948년 미국에서 출생했는데, 부모는 대륙에서 왔으며 모두 MIT의 공학박사이다. 가오쿤(高錕, Charles Kuen Kao)은 200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다. 그는 1933년 상하이에서 출생했고, 1949년 홍콩으로 옮겨갔으며, 영국, 미국의 국적과 홍콩영주권을 가지고 있다.

 

추이치(崔琦, Daniel Chee Tsui): 차라리 문맹이었다면 부모가 굶어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1998년, 추이치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1939년 허난(河南)에서 태어난 그는 집안의 외동아들이다. 1951년 추이치는 홀로 홍콩으로 유학을 가면서 부모와 영원히 헤어진다.

 

왜 추이치는 홍콩으로 유학을 갔을까? 그가 어떻게 홍콩으로 갔을까? 집안의 외동아들인 그가 그렇게 어린 나이인데, 부모는 어떻게 그를 홍콩으로 혼자 보냈을까. 만일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홍콩에 유학을 갔다면, 그것은 부모가 그다지 가난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어떻게 둘 다 대기근때 굶어죽어야 했을까. 여기에는 분명히 곡절이 있었을 것이다.

 

19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개략 250만의 대륙인이 홍콩으로 도망친다. 어떤 사람은 바닷 속에 빠져 죽거나 도중에 죽었고, 어떤 사람은 홍콩에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역사에서 <대도항(大逃港)>이라 부른다. 인터넷에서는 추이치가 그 중의 한 명인지 아닌지 찾을 수가 없다. 그저 찾을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소식이다:

 

한 CCTV기자가 추이치에게 질문한다: "만일 그때 모친이 당신을 공부하도록 보내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기자는 그가 교육이 운명을 바꾸었고 모친에 감사한다는 류의 말을 할 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추이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차라리 허난을 떠나지 않고, 모친이 나를 보내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집안에 아들이 하나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기 대문이다. 만일 내가 농촌에 남았다면, 아마도 일자무식일지는 몰라도, 부모님이 굶어죽도록 놔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추이치는 중공의 통치를 경험하지 못해서 생각이 너무나 천진난만한 것같다. 만일 그가 대륙에 남았다면, 부모를 구하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자신의 목숨도 부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첸용젠(錢永健, Roger Yonchien Tsien): 나는 미국과학자이다.

 

2008년, 첸쉐선(錢學森)의 조카이자, 미국국적의 중국계 첸용젠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다. 일본 아사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첸용젠은 기자회견에서 여러 중국기자들로부터 "당신은 중국인입니까?", "중국말을 할 줄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영어로 대답한다. "못합니다." 중국기자가 다시 묻는다. "당신의 성취가 중국과학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첸용젠은 다시 영어로 대답한다: "나는 미국과학자이다. 이점은 분명하다. 나는 중국과학자가 아니다. 혈통이 한 사람의 신분을 결정할 수 없다. 성공한 과학자는 반드시 개방된 사회에서 나온다. 자유로운 환경은 과학자를 배양하는 필수요건이다."

 

가오싱젠(高行健), 달라이라마: 대륙에서 잘 모르는 노벨상 수상자들

 

1989년, 중국이 학생운동을 진압하자, 그해의 노벨평화상은 달라이라마에게 주어진다. 이는 중국을 더욱 난감하게 만들었다. 대륙의 자료를 뒤져보면, 어떤 경우에 1989년 노벨평화상수상자를 "땐진갸쵸(丹增嘉措, Tenzin Gyatso)"라고 적어 놓았다. 그가 바로 달라이라마라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중공은 노벨상을 받고 싶어했다. 북미기자 베이밍(北明)의 인터뷰기사에 따르면, 노벨 문학상 심사위원인 고란 말름크비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뇌물이 엄청나게 많다. 너는 모를 것이다. 내가 매달 편지를 몇 통이나 받는지. 중국작가는 나에게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상금은 필요없다. 상금은 당신에게 주겠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노벨 문학상을 받게 도와달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전체 상금을 나에게 주겠다고 한다. 그들은 상을 받았다는 명목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정말 누군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때, 중국은 감히 보도하지도 못했다. 2000년, 가오싱젠이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중문작가이다.

 

가오신젠은 "6.4사태"때 해외로 망명하고, 1997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그가 "6.4"후 공개적으로 중국의 학생운동진압에 반대했기 때문에, 중국정부에서는 그를 '반대파인사'로 보고 있다.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중국의 관영매체는 보도하지 않았다. 현재까지도 중국인들 중에는 가오싱젠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2000년, 류샤오보(劉曉波)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비록 중공의 압력으로 이전에 노벨평화상의 강력한 후보자인 후자(胡佳)가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류샤오보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소식을 중국은 자랑할 수 없었다.

 

투유유(屠呦呦): 삼무교수(三無敎授), 장내개화장외향(牆內開花牆外香)

 

2015년 84세의 투유유는 노벨 의학상을 수상한다. 그녀는 의학상을 수상한 13번째 여성이다. 1971년 190번의 실패를 겪은 후, 그녀는 과학연구팀을 이끌고 개똥쑥을 이용한 말라리아 치료성분인 아르테미시닌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무수한 생명을 구한다. 그중 대부분은 전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에 사는 아동들이다.

 

이치대로라면 투유유는 계속 국내에있었고, 해외거주하는 중국인과학자도 아니다. 중공은 당연히 크게 선전하고 자랑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투유유는 장내개화장외향의 대표적인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투유유가 수상한 후, 중공매체는 '집단영예'를 강조했다. 투유유는 국내에서 '삼무교수'에 속한다. 박사학위도 없고, 해외유학배경도 없다. 이 두 가지가 없기 대문에 그녀는 시종 중국의 양원 원사가 되지 못했다. 중공은 그녀의 연구발명에 대하여 40여년간 중시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비판한다. 투유유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중국 원사제도의 실패이다. 중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 원사가 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7,8명의 마르크스레닌 어용전문가들을 비판했다.

 

중국바이러스(우한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세계에 해를 끼쳐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만이 크다. 중국의 전랑외교는 전세계에서 커다란 도전을 맞고 있다. 새로운 광환으로 스스로에게 흥분제를 놓아야할 필요가 있다. 누가 알았으랴. 클로이 자오의 오스카상 수상이라는 이런 좋은 기회를 중공은 그저 보기만 하고 먹지를 못하고 있다.

 

첸용젠의 말이 맞다. "자유로운 환경은 과학자를 배양하는 필수조건이다" 2021년 글로벌 신문자유지수에서 중국은 177위를 차지하여 끝에서 4위였다. 이렇게 계속하다가는 중국이 절실히 자랑할만한 일이 몇개 남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