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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경제/중국의 영화

클로이 자오(趙婷)의 오스카상 수상과 중국반응

by 중은우시 2021. 4. 27.

글: 왕혁(王赫)

 

미국 동부시간 4월 26일, 미국의 중국계 감독 클로이 자오(趙婷, 자오팅)은 자신이 감독한 영화 <Nomadland(중국명칭 無依之地)>로 제93회 오스카 최우수감독상을 받았다. 그녀는 이 영예를 얻은 3번째 아시아감독이 되었으며, 중국계여성감독으로서는 최초이다. 그외에 이 영화는 최우수작품상, 최우수여자주연상등까지 차지한다. 이 일은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는 중국인들에 있어서 마땅히 기뻐해야할 일이다. 그런데, 홍콩전시광파유한공사(TVB)는 52년만에 최초로 이번 오스카상 시상식을 중계하지 않았고, 대륙의 매체도 집단적으로 이 소식을 봉쇄했다. 어떤 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클로이 자오가 오스카를 정복했지만, 중공치하의 중국은 그녀를 '축출'했다고. 왜 그랬을까?

 

<Namadland>에서 얘기하는 것은 한 여자가 자신의 작은 마을을 떠나 미국 중서부지구로 가서 겪은 이야기이다. 중국과는 관련이 없다. 중국에서 출생한 사람으로서 시상식 현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상은 신념과 용기를 견지한 선량한 마음에 주는 것이다. 그리고 어찌 되었건 어려울 때도 이런 선량한 마음을 견지해온 모든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클로이 자오는 왜 "내심의 선량함을 견지해왔다"는 것을 강조했을까? 그녀는 이것에 대하여 "내가 어렸을 때를 되돌아볼 때 배운 것"이라고 했다. "내가 중국에서 자랄 때, 나의 부친은 일지기 나와 이런 게임을 했다. 우리는 중국의 고시사를 외웠고, 우리는 외워서 한 사람씩 낭송했다. 한 사람이 한 구절을 말하면, 다른 사람이 받아서 이어지는 구절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삼자경>이라는 책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 첫번째 문구는 "인지초(人之初), 성본선(性本善)"이다. 이 여섯 글자는 내가 어렸을 때 큰 영향을 주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여전히 진심으로 그것을 믿고 있다." "설사 어떤 때는 현실이 상반되지만, 내가 가본 세계의 그 어느 곳에서도 항상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서 선량함을 찾을 수 있었다."

 

클로이 자오의 말 중에서 우리는 정말 유구하고 휘황한 중국전통문화에 감사해야 한다. 거기에 포함된 것은 보편적 진리이다. 1980년, 1990년대에 상당한 반역아였던 여자아이인 자오팅에게 진심으로 사람의 마음 사람의 본성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었다. 이는 그녀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10여세때 거의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하에서, 집안환경이 좋았던 클로이 자오는 부모에 의해 영국기숙학교로 보내어져서 공부를 한다. 이국의 환경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그녀는 반성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는 정치학을 공부한다. 이에 대하여 2013년 <Filmmaker>잡지와의 인터뷰때 클로이 자오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렸을 때 받은 많은 정보는 부정확했다. 나는 자신의 가족과 배경에 대하여 아주 반역적이 되었다. 그리하여 돌연 영국으로 갔고, 다시 나의 역사를 공부했다. 문리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것은 내가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일종의 방식이었고, 정보로 자신을 무장하고, 그후에 그것에 도전하려는 것이었다."

 

만일 이 정도만 말했다면 클로이 자오는 아마도 오늘날처럼 "축출"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중국정부에 의해 "중국의 자랑"이라고 떠벌여졌을 것이다. 그러나, 클로이 자오는 이런 말까지 한다: "내가 십대 때의 중국을 얘기하자면, 그곳은 거짓말로 가득한 곳이었다(It goes back to when I was a teenager in China, being in a place where there are lies everywhere.)". 중국정부가 용인할 수 없는 말이다.

 

필자는 클로이 자오가 중국에 대하여 '거짓말로 충만한 곳'이라는 말을 한 것이 무슨 정치적 목적을 크게 가졌다고 보지 않는다. 그저 그녀의 솔직한 말이었을 뿐이다. 비록 그녀가 정치학을 배웠지만, 그녀의 인생목표는 영화인이 되는 것이었고, 예술가가 되는 것이었으며 그녀가 추구하는 것은 창작의 자유였다. 예술로 자신의 인생에서의 깨달음과 당금 세계에 대한 이해를 표현하려는 것이었다. 이는 정상적인 사회에서라면 더 이상 자연스러울 수 없는 일이다.

 

불행하게도, 중국은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중공치하의 중국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그래서, 클로이 자오의 이런 말은 원래 정보의 바다 속에 묻힐 것이었지만, 누군가 특별히 끄집어 내어 대륙의 인터넷에 큰 파란을 일으켰고, 클로이 자오에 대한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금년 3월초, 클로이 자오는 중국 관영매체에서 여전히 '중국의 자랑'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역사적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중국에서 엄격한 검열에 걸려 완전히 봉쇄된 것이다. BBC의 보도에 따르면 웨이보에서 '자오팅(趙婷)', '무의지지(無依之地)'와 '오스카(奧斯卡)'등은 민감단어가 되어, 관련 단어가 포함된 글이 대거 삭제되고 있다고 한다.

 

4월 26일 오후의 중국 외교부 기자회견에서 어떤 기자가 클로이 자오 및 그의 영화가 검열을 받았는지 질문하자, 외교부 대변인 왕원빈은 "당신이 제기한 것은 외교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확실히 중국에 있어서 이것은 '외교문제'가 아니다. 그저 '내정문제'이다. 중국의 통치는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클로이 자오가 중국인인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어디에서던 중공이 좋아하지 않을 말을 하면 '풍파와 댓가'를 치르게 된다(후시진의 말). 보지 못했는가. 중공은 외국인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이다. 2019년 10월 4일, NBA의 휴스턴 로켓츠팀의 매니저인 달레이 모레이가 트위터에 "자유를 위한 투쟁, 홍콩과 같은 진영에"라는 영문표어를 올린데 대하여 중공은 대노하여, 일련의 불매운동, 정치적 줄세우기, 외교사건을 만들었다. CCTV의 스포츠채널, 푸동발전은행신용카드, 리닝회사, 텐센트스포츠등이 연이어 공식 성명을 내고, 휴스턴 로켓츠와 관련한 협력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소위 '조국의 존엄이 모든 것보다 높고, 조국의 주권은 도전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추악한 소동이 썩은 냄새를 풍겼다.

 

그런데, 금년 2021년은 중공 '건당100주년'이다. 정치적 분위기가 더욱 농후하고, 변태적인 일도 더욱 많아지고 있다. 클로이 자오가 중국에서 '축출'당한 것도 그 안에 포함된다.

 

비록 <Nomadland>가 언제 중국에서 방영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원래 2021년 4월에 중국에서 상영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현재 더우반에서는 영화의 중국상영시간 및 중국판 포스터를 삭제했고, 웨이보에서도 관련 이슈는 삭제되었다), 중국은 여전히 중국영화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예를 들어, 문화관광부는 특별히 <중국공산당성립100주년기경축무대예술정품창작공정>을 시작했고, 3월 29일 300편의 우수 무대예술작품을 내놓을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에는 '백년백부'창작계획, '백년백부'전통정품재제작계획, '백년백부'소형작품창작계획이 포함된다. 그중에는 <백모녀>, <홍색낭자군>, <당의 딸>등 '홍색 경전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당사이야기를 새로 만들어, 백년간의 풍화를 찾아본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이들 중공이 문예정책에 의해 만들어지는 소위 '무대예술정품'은 어느 것 하나 국제 주류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일찌기 1942년, 중공 연안정풍운동때, 모택동은 <연안문예좌담회상의 강화>를 발표한다. 이를 통해 문예는 당을 위해 봉사하고, 정치를 내걸어야 한다고 했다. 이후 이는 중공 문예정책의 핵심이 된다(모택동의 이 말에 그다지 찬동하지 않던 호풍과 그 지지자들은 모택동에 의해 '호풍반혁명집단'으로 매도된다. 호풍은 1988년에서야 비로소 명예회복된다. 이때는 모택동이 죽은지 10년이 지난 때였고, 호풍은 1985년에 이미 사망했다). 72년이 지난 2014년 10월 15일, 시진핑은 다시 한번 베이징에서 문예공작좌담회를 개최하여 7명의 문예계인사의 발언을 들은 후, 약 2시간에 걸친 <문예공작좌담회사으이 강화>를 발표한다. 여전히 '당의 문예공작에 대한 영도를 강화하고 개선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강조했다.

 

모택동시대에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무대예술정품'은 8개의 양판희(樣板戱)이다; 현재 정상인이 보면 모두 구토가 나올 정도이다. 이는 정치의 도구이고, 선전하는 것은 모두 정치공포주의이다. 조그만치의 예술이나 심미는 없다. 모택동시대이후, 비록 약간 완화되었지만, 예술에 대한 정치통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시진핑의 '신시대'에 중국은 다시 좌회전했고, 예술자유, 창작자유는 여전히 공문(空文)이다.

 

모택동시대부터 지금까지, 중국은 문화사막에 빠졌다. 심미를 맛볼 수 있는 예술창작과 공연은 너무나 적다. 진정 사람들이 호기심을 느끼게 만드는 무대예술은 모두 정치적으로 금지당했다. 예를 들어, 모택동시대에 상영금지된 최초의 영화인 <무훈전(武訓傳)>, 등소평에 의해 상영금지된 <고련(苦戀)>, 강택민에 의해 금지된 다큐멘터리 <위화(僞火)>등등

 

현재, 중공은 '백년당경(百年黨慶)'을 위해 '3개의 일백'무대예술작품을 내놓았는데, 정치적 선전과 백성의 돈을 낭비하는 외에 무엇이 남겠는가.

 

왜 클로이 자오가 단지 솔직하게 한 그 한 마디 때문에 '중국을 욕보였다'는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오스카에서 상을 받은 영화 <Nomadland>를 왜 중국관중은 볼 수 없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