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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민국 후기)

역사상 진실한 길홍창(吉鴻昌): 항일한 적없다.

by 중은우시 2020. 9. 14.

글: 임휘(林輝)

 

어렸을 때, 영화 <길홍창>을 보았다. 인상이 가장 깊은 장면은 그가 국민당에 처형되는 그 일막이다. 길홍창은 의자에 앉아, 소리높여 구호를 위치며 죽었다. 당시, 마음 속으로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일어났다. 그러나, 어른이 된 후, 이 '영웅'은 중공이 날조한 거짓말 중 하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들어낸 '항일영웅'

 

중공의 선전에서 길홍창은 극단적인 애국자로 항일을 하다가 죽은 '영웅'이다. 그는 일찌기 풍옥상(馮玉祥)의 부대에 들어갔고, 북벌전쟁에 참가한다. 1930년 '장풍염(蔣馮閻, 장개석 풍옥상, 염석산)대전'에 참가한 후, 국민당에 흡수재편된다. 그후 명을 받아 중공의 악예환근거지를 토벌하는데, 태도가 소극적이었다. 1931년 병을 핑계로 상해로 가서 중공과 접촉한다. 그후 황천(潢川)에서 소속부대를 조직하여 기의(起義)한 후 홍군에 참가하려 하나 실패한다. 그후 장개석에 의해 면직되고, 출국하여 고찰한다.

 

귀국후 길홍창은 다시 중공을 찾고, 중공에 가입한다. 1934년 11월, 국민당에 체포된 후 총살당한다. 죽기 전에 그는 "한불항일사(恨不抗日死), 유작금일수(留作今日羞)"(항일을 하다가 죽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그리하여 오늘의 수치를 남기게 되었다). 이 싯구는 바로 그의 죽음이 항일과 관련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외에 중공의 묘사에서 길홍창의 소위 '애국'은 바로 '애중공'이다. 그리고 그는 일본과 싸운 기술이 없다. 소위 '항일영웅'은 확실히 명실상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실의 진상은 무엇인가?

 

국민당 특무 진공주(陳恭澍)가 쓴 회고록 <영웅무명>에 따르면, 당시 국민당 특무가 길홍창을 체포한 이유는 길홍창이 '국가정권전복활동'에 종사했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여러 자료로 증명된다.

 

길홍창의 생전 전우였던 부이우(傅二虞)가 쓴 회고글 <길홍창이 걸었던 곡절있는 길>이라는 글에 따르면, 길홍창은 장개석의 돈을 받았고, 원래 장개석에 투신하려 한다. 그러나 나중에 마음을 바꾸었다; 국민당에 흡수재편된 후, 장개석은 길홍창에게 공산당을 토벌하도록 명령내린다. 그러나 길홍창은 지휘를 따르지 않았을 뿐아니라, 오히려 중공홍군을 사칭하며 거꾸로 국군을 공격했다. 나중에 길홍창이 체포된 후 군사법정에서 재판을 받는데, 국민당정부의 법관은 이렇게 질문하였다: "너는 천진의 조계로 가서, 소련대리조직 지하당의 공작을 하였는데, 우리는 이미 너의 문건과 충분한 증거를 장악하고 있다. 그러니 사실대로 진술하라." 길홍창은 사실 그대로 진술했다.

 

길홍창의 또 다른 전우인 능면지(凌勉之)는 그의 회고글 <길홍창출국과 혁명참가의 경과>라는 글에 따르면, 길홍창은 일찌기 단(團)의 병마를 이끌고 반장개석 의거를 하였고, 중공 소비에트구로 들어갔다. 소비에트구로 들어간 후, 길홍창의 중공의 혁명이론의 세례를 받는다.

 

그리고 왕숭인(王崇仁)이라는 전우가 쓴 <길홍창장군을 회고한다>는 글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즉 1932년 8월초, 길홍창은 정식으로 중공에 가입한다. 중공의 비준을 받고, 1932년 8월중순, 길홍창은 후베이 북동부 송부(宋阜)에서 반장개석폭동을 일으킨다; 폭동후 길홍창은 악예환(鄂豫皖)소비에트구로 들어간다; 그후 천진으로 가서 중공의 지시를 받아,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며 병마를 모은다. 1934년 3월, 길홍창은 중공의 인물인 선협보(宣俠父)등과 '중원폭동계획'을 모이한다. 같은 해 11월, 길홍창은 국민정부에 체포된 후 총살당한다.

 

이상의 자료는 충분히 설명한다. 진정한 길홍창은 항일은 하지 않았고, 오히려 중공에 투신 가입했다. 이를 통해 중화민국정부를 배신한다. 이런 인물이 사랑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중공이다. 중국이 아니다.

 

중공당사에서 길홍창이 국민당을 배반하고 중공에 가입한 것은 감추지 않는다. 그러면서 길홍창의 항일공적을 과장한다. 그 목적은 중공의 자랑으로 삼기 위해서이다. 사실상 길홍창이 남긴 싯구, 그가 받은 교육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확실히 중국이 외국의 압박에서 벗어나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생각지 모하게, 그는 동시대의 적지 않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중공에 속아, 소위 '혁명'이론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국민정부를 배신하는 길을 걷는다. 그리하여 스스로 불귀의 길을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