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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후기)

중국은 어떻게 1.6조달러의 백년채무를 지게 되었는가?

by 중은우시 2020. 9. 1.

글: 이대야(二大爺)

 

얼마전 미국하원의원 Mark Green은 중국에 1.6조달러의 채무를 상환하도록 요구하는 안건을 발의한 바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을 것이다. 중국이 미국의 최대 채권자가 아니던가? 어떻게 중국이 미국에 채무를 지게 되었단 말인가? 그리고 왜 이렇게 큰 금액인가?

 

그 유래를 설명하자면 좀 길다. 이 채무는 사실 2개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역사와 관련되어 있다.

 

첫째는 "호광철로채권(湖廣鐵路債券)"이다. 청나라말기에 철로를 많이 지었는데, 재정이 궁핍하여 계속 건설할 수 없었다. 1911년 호광철로를 건설하기 위하여,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의 4개국은행에 채권을 발행한다. '호광철로채권'은 총액이 600만파운드이다. 연리는 5%이다. 매년 1회 이자를 지급한다. 40년만기로 원금을 상황해야 한다. 원리금상환의 최종기한은 1951년이다. 지금도 많은 당시 채권이 세상에 남아 있다. 매 채권마다 당시 우전부대신 성선회(盛宣懷)의 서명이 있다.

 

둘째는 북양정부가 발행한 '황금융자채권'이다. 민국정부가 성립된 후 청나라로부터 엉망진창인 나라를 넘겨받다보니 재정이 극도로 부족했다. 북양정부는 1913년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일본의 5개국은행으로부터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한다. 합계 2,500만파운드(약 황금 182.5톤)이다. 역사에서는 "선후대차관(善後大借款)"이라 불린다. 이 차입금의 연리는 5%이고, 매년 2회 이자를 지급하며 47년에 만기도래한다. 명목상 상환은 1960년까지이다. 이 채권도 세상에 많이 남아 있다. 해외의 거래사이트에서 여전히 살 수 있다.

 

이 두 건의 채무는 역대 민국정부로부터 승인되었고, '호광철로채권'은 1930년까지 이자가 지급되었고, "황금융자채권'은 1939년까지 상환되다가, 전쟁으로 인하여 상환할 능력이 되지 않아 잠정적으로 지급이 중단된다.

 

더욱 복잡한 것은 채권발행이 비록 외국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형태이지만, 돈을 내는 것은 반드시 은행이 아니었다. 위의 외국은행은 실제로 채권의 판매주간사였다. 그들은 중국정부의 채권을 런던, 파리, 모스크바, 브뤼셀, 도쿄등지의 증권시장에 공개적으로 각국의 투자기관과 개인에 판매했다. 그래서 진정한 채권자는 기실 이들 채권을 매입한 외국국민 혹은 관련기구이다.

 

당시의 사람이나 기구는 이들 채권을 매입한 후, 매년 이자를 지급받을 때면, 채권을 가지고 은행으로 가서 이자를 수취했다. 기간이 만료되면 원금을 돌려받는 것이다.  채권은 무기명이어서 거래가 가능했다. 채권을 가지고 있으면 이자와 원금을 받을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투자하는 주식, 채권과 마찬가지였다. 단지 오늘날은 거래시스템을 이용하지만, 에전에는 종이로 증빙을 만들었을 뿐이다.

 

특별히 설명해야할 점은 이 두 건의 채무는 모두 '중국정부'의 명의로 발행된 '국가주권채권'이라는 점이다. 즉, 국가의 신용과 당시 정부의 세수를 담보로 한 것이다. 국제법에 따르면, 정부가 교체된다고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청나라정부이건, 북양정부이건, 장개석정부이건 모두 이 채권을 승인했던 것이다. 비록 돈이 없이 이자지급을 중단하기는 했지만, 채무는 인정했다.

 

1949년 신중국이 들어서면서 모조리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 채권은 돌연 휴지조각이 되었다. 민국정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는 타이완의 재정부는 한번도 이 두 건의 채무를 부인한 적이 없다. 다만 혼자서 책임을 지려고 하지는 않았다. 1990년에 성명을 발표하여, "타이완은 일체의 구채무의 상환을 잠정중단한다. 대륙을 수복할 때까지."

 

이렇게 하여 이 채권은 불량채권이 된다. 불량채권도 채권은 채권이다. 흰 종이에 검은 글자로 채권은 분명히 남아 있다. 빚이 있으면 갚아야 한다는 것이 천고의 이치이다. 정권의 변경으로 국제적인 조약이나 채무를 부인해버린다면, 국가신용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만일 한편으로 다른 나라나 사람들에게 자신이 국가의 합법적인 대표자격을 승계했다고 인정해달라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국제법이 규정한 국가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런 분쟁은 쉽게 국제관계의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각 채권국의 상황도 서로 다르다. 독일, 일본은 패전으로 국체가 이미 변경되었고, 그들 자체가 배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즉 채권상환요구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러시아는 10월혁명이후 제정러시아와의 관계를 단절하기 위하여, 채권회수의 열정이 높지 않았다. 프랑스는 채권수량이 적어서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영국, 미국만이 대변고가 발생하지 않았고, 채권금액도 비교적 많다. 자연히 민중과 은행의 채권회수압력으로 포기하고자 하지 않는다. 

 

1987년 중국과 영국간에 합의를 달성한 후, 관계는 밀월기에 접어들었다. 영국수상 대처는 그 기회를 빌어 호광철로채권과 황금융자채권으로 인한 영국인의 자산손실에 대한 상환을 요구했다. 그리고 만일 상환을 거절하면 중국은 영국금융시장에 진입할 권리를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협상을 거쳐 쌍방은 모두 이성적으로 양보했고, 최종적으로 중국정부와 영국정부는 2,350만파운드로 합의를 체결한다.

 

미국은 계속되었다. 1979년 미중수교후, 미국의 300여개 채권보유자는 앨러배머주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 중국정부에 원리금 2.2억달러를 상환하라는 것이다. 1982년 9월, 법원은 원고승소를 판결한다. 중국정부에 원리금 4,131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당시 미중관계는 역사상 가장 좋은 밀월기였다. 미국 대통령 레이건은 이 채무로 미중관계에 영향을 끼치길 원치 않았다. 그리하여 1986년 미국법무부는 중국정부에 이 채무에 대한 '국제면제권'을 부여했다. 그후 중국정부가 상소하여 승소했고, 미중관계는 완화되었다.

 

확실시, 당시 중영, 미중관계는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다. 지금 다시 옛채권을 끄집어내는 것은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다만 미국의원이 말한 1.6조달러라는 거액의 숫자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통계에 따르면, 미국은행과 개인은 당시 개략 1/4의 채권을 인수한 외에 나중에 유럽의 두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금융지원과정에서 일부 영국, 프랑스, 독일이 보유한 채권을 매수했다. 그래서 현재 미국정부, 민간기구와 개인은 이 2건의 채권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게 되었다. 이 두 건의 채권을 회수하기 위하여, 미국민간채권자들은 전문적으로 "미국채권보유자기금(American Bondholders Foundation)"을 설립한다. 약칭 ABF이다. 이 조직은 일찌기 2004년 새로 뉴욕법원에 제기한다. 최근 100년의 이자누적, 통화팽창, 그리고 배상비용을 고려하여 미국이 현재 가지고 있는 이 두건의 중국채권의 합계액은 1.83조달러라고 하였다.

 

그래서 미국하원의원이 말한 1.6조달러라는 것은 아마도 ABF당시의 보고서에 근거한 것일 것이다. 약간의 과장된 부분을 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여전히 놀랄만한 숫자이다.

 

확실히 미중관계는 전면탈동조화의 위기에 처해 있다. 옛일까지 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절대로 기삿거리를 추가하기 위함만은 아니다. 8월 23일, 트럼프는 경선에서 새로운 집정공약을 밝혔다. 그중에는 중국과 관련된 공약이 5개 있다. 마지막 하나는 바로 했던 말을 다시 꺼낸 것이지만 의미심장하다. 바이러스로 인한 책임을 중국에 추궁하겠다는 것이다.

 

이 말을 기실 트럼프가 여러번 했었다. 절대로 농담이 아니다. 어떻게 추궁할 것인가? '주권면제'의 명목하에 어떻게 실시할 것인가? 수단은 아마도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민간소송방식이 있다. 그렇게 되면 명목이 설 것이다. 1982년 앨러배머주의 판결은 완전히 새로 시작될 수 있다.

 

백년채무는 서로 다른 시대에 항상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