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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후기)

청나라때 외국인은 어떻게 중국국적을 취득하였을까?

by 중은우시 2021. 1. 8.

글: 심서분(沈西汾)

 

청나라때, 많은 외국인들이 중국으로 와서 관직을 얻거나, 국적을 취득하는 일이 있었다.

 

청나라초기에 독일인 탕약망(湯若望, 아담 샬), 벨기에인 남회인(南懷仁, 페르디난트 페르비스트), 프랑스인 백진(白晋, 조아킴 부베), 포르투갈인 서일승(徐日昇, 토마스 페레이라), 이탈리아인 낭세녕(郞世寧, 주세페 카스틸리오네)등이 모두 청정부에서 관직을 얻었고, 청나라관복을 입었으며, 중국예의를 행했고, 심지어 중국의 생활방식에 따라 생활했다.

 

탕약망은 30살때 중국복장으로 바꾸어 입었으며, 중문이름을 취하고, 전후로 청정부로부터 태복시경(太僕寺卿), 태상시경(太常寺卿), 통정사(通政使)등의 관직을 받는다. 옹정제는 그를 '광록대부(光祿大夫)'에 추봉했고, 관직을 1품에 이르렀다.

 

청정부는 탕약망에 대한 제문(祭文)에서 이렇게 평가한다: 흠천감의 업무를 관장한 고 탕약망의 영앞에 고한다: 그의 국궁진췌(鞠窮盡瘁)는 신하의 방종(芳踪)이고, 휼사보근(恤死報勤)은 국가의 성전(盛典)이다." 이를 보면 본국신하를 대하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강희제의 과학스승인 벨기에인 남회인은 관직이 정2품인 공부시랑(工部侍郞)에 오른다. 북경에서 사망할 대 본국의 대신과 마찬가지로 시호를 받는데, '근민(勤敏)'이었다. 확실히 청나라정부는 관계가 친밀한 '객경(客卿)'들을 본국 신민으로 여겼던 것이다.

 

다만, 청정부는 '객경'에게 일정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영국인 혁덕(赫德, 로버트 하트)은 1864년 10월 18일의 일기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청정부는 그가 태평군을 진압한 뛰어난 업적을 표창하기 위하여, 그에게 3품 '얼대함(臬臺銜)'을 상으로 내래기로 결정했으며, 그에게 '복장과 복색을 바꾸고 결혼한 후 중국에 정착할 것등을 권했다고 하였다.

 

혁덕은 일기에서 이런 말도 적었다. 청정부는 그에게 중국여자를 한명 보여주었으며, 그가 '안심'하고 중국에서 일할 수 있게 하려 했다. 청정부는 일잘하는 이 영국젊은이를 중국에 동화시키고, 귀화시켜 중국인으로 만들려 하였던 것이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혁덕은 영국여자를 부인으로 취했고, 평생 영국국민으로 남는다. 고관후록과 미녀까지도 그를 중국인으로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유체지(劉體智)는 <이사록(異辭錄)>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이리(伊犁)의 전쟁을 평정한 후, 고든(戈登)은 영국국적을 포기하고, 청군에 가입하여 중국의 고위군관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청정부를 도와 태평군을 진압한 고든은 영국활실공병부대의 군관인데, 영국정부를 위해 일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중국국적을 취득하고 싶다고 한 경우도 있었다. 17세기의 아리스토텔레스로 불리며 서방2진법을 발명한 독일의 수학자, 철학자인 라이프니츠는 중국에 파견나가있는 전도사가 그에게 보내준 태극팔괘도를 본 후에 숭배하는 마음을 품고 강희제에게 서신을 써서, 중국국적을 취득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베이징에 과학원을 건립할 것을 제안한다. 

 

<왕양경필기(汪穰卿筆記)>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청정부가 외국인의 국적취득에 관한 법규를 만들기 전에, 우전부에 고용된 엔지니어고문인 프랑스인 사해앙(沙海昻, 조셉 샤리농)은 중국국적을 취득하고 싶다고 청한다. 처음에 사람들은 모두 고민에 빠졌지만 나중에 점점 알게 된다; 원래 그는 서직문외 경장철도 곁에 넓은 토지를 구매했다. 그러나, 그는 그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경한철로 곁에 있는 큰 토지도 구매하고 싶었던 것이다.

 

중국국적이 없으면, 중국에서 대량의 토지를 구매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중국국적을 취득하려 한 것이다. 다만, 그는 여전히 프랑스국적도 포기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들은 이미 100여년 전에 중국의 부동산이 폭등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같다.

 

고대 중국에는 정식의 국적법이 없었다. 선통원년(1909) 중국역사상 최초의 <국적조례>이 제정된다. 이 조례는 명확히 규정한다: "무릇 외국인으로 중국국적을 취득하기를 원하는 자는 그의 신청에 의해 허가받을 수 있다." 그러나 5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중국에 거주한지 10년이상인 자; 나이 20세이상이며, 본국의 법률상 행위능력이 있는 자; 품행이 단정한 자; 상당한 재산과 예능이 있어, 자립할 수 있는 자; 본국의 법률에 따라, 중국국적을 취득한 후 즉시 본국국적을 말소하는 자."

 

이들 조건에 따르면, 탕약망, 남회인은 모두 중국국적을 취득할 조건을 갖추었다. 다만 이들 5가지요건을 모두 만족시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특례가 있었다: "무륵 외국인 혹은 무국적자로 중국에 특별한 공헌을 한 자는 그중 1-4의 조건을 구비하지 못하더라도 외무부, 민정부가 주청을 올려 특별히 국적취득을 허가받을 수 있다." 즉 중국에 특별한 공헌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외에 아래의 3가지 경우에도 중국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첫째, 외국부녀자 혹은 무국적부녀자가 중국인에게 시집와서 처가 된 경우; 둘째, 중국인을 계부이고, 중국인과 같이 거주하는 경우; 셋째, 중국인과 외국인의 사생아는 직접 중국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다만, 중국인에게 시집온 외국부녀자는 반드시 '정식결혼을 등록한 경우에 한한다"

 

조례는 중국국적을 취득한 사람에 대한 제한도 걸어 놓았다; 첫째, 군기처, 내무부의 각 관직 및 4품이상의 문관은 될 수 없다. 둘째, 각종 무관 내지 군인은 될 수 없다; 셋째, 상하의원 및 각성 자의국의원은 될 수가 없다.

 

"무릇 국적취득신청을 한 자는 반드시 국적취득후 중국법률을 준수하겠다고 성명해야 하고, 본국의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 신청인은 보증서를 쓰고, 중국거주지의 명망있는 2명의 신사로부터 담보를 받아야 하고, 상황을 지방관리에게 보고해야 하며, 민정부에 신청하여 허가받아야 하며, 최종적으로 '집조를 부여하는 것으로 증빙을 삼는다.'

 

외국에서 중국국적취득을 신청한 경우에는 중국의 주현지영사에게 보고하고, 다시 출사대신에게 보고하거나, 혹은 직접 출사대신(出使大臣)에게 보고한다. 그후 민정부로 송부하여 보관한다. 이들 절차를 완비한 후, 청정부는 그를 중국인으로 승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