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초기)

청초(淸初)의 체발역복(剃髮易服)과 메이지(明治)의 산발탈도(散髮脫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중은우시 2020. 7. 13. 22:35

글: 범인모사(凡人摸史)

 

어떤 친구가 인터넷에 이런 의문을 올린 바 있다:

"왜 청나라초기의 체발역복 얘기를 꺼내면 네티즌들은 의분강개하면서, 현재 서방사회의 헤어스타일은 왜 아무 말없이 받아들이는가?"

 

이것을 설명하자면 우선 두 마디 말이 필요하다:

 

새조차도 푸른 하늘을 그리워하고, 새장에 갇혀 있기를 원치 않는다.

자유는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야기의 결론을 이끌어내자면 우리는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말은 이것이다: "유두불유발(留頭不留髮), 유발불유두(留髮不留頭)" 머리를 남기면 머리카락을 없애야 하고, 머리카락을 남기려면 머리가 잘려야 한다.

 

실제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다. 현재 청나라 궁정드라마에 나오는 머리모양은 오래 동안 발전 변화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청나라사람들이 명나라사람들에게 받아들이라고 한 것은 "금전서미(金錢鼠尾)"였다.

 

즉, 거의 전체 머리를 싹 다 밀어버리고, 단지 머리꼭대기와 뒤에 동전크기만큼만 남겨두고, 그 머리카락을 변발로 꼬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심미안이 있다. 이렇게 보기싫게 하면 어떻게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을까?

 

이민족이 중원을 차지한 것은 예로부터 있어왔다. 서주를 멸망시킨 것도 견융의 군대이다.

 

한나라에 이르러, 공주가 화친가는 일이 있었고, 후세에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당시는 실로 부득이해서 한 일이다. 흉노의 세력이 강했다는 표현이다.

 

남북조시대를 얘기하자면 각 민족의 강자들이 여기저기서 들고 일어났다. 그래서 도처가 혼란스러웄다.

 

주원장이 원나라를 북벌하면서 격문에 이렇게 썼다: "송나라가 남으로 옮긴 후에 원나라는 북적(北狄)으로 중원을 차지하고, 사해 이내가 모두 복속했다. 이것이 어찌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있는 일인가. 하늘이 내린 것이다.

 

하늘이 내린 것이다. 그렇다. 주원장도 이렇게 말했다.

 

그 뜻은 왕조의 교체는 자연현상이라는 말이다.

 

그저 계속하여 공자의 책을 읽을 수 있고, 원래대로의 옷을 입을 수 있고, 조상의 머리모양만 지킬 수 있다면 조정에 누가 있던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청나라는 이 모든 것을 바꿔 놓는다.

 

옷도 바꿔입어야 했고, 머리모양도 바꿔야 했다.

 

이것은 인내의 한계를 넘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반항이 일어난다.

 

그래서 숭정제를 죽게 만들었던 대순군(大順軍, 이자성)과 대서군(大西軍, 장헌충)이 명나라의 잔여세력과 힘을 합친다. 이 둘은 원래 불공대천의 원수가 아닌가. 청나라의 군사 및 문화공세앞에서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치게 된다.

 

청나라를 얘기했으니, 일본도 얘기해보자.

 

우리가 아는 것은 막부시대에는 무사가 힘을 썼고, 그들의 머리모양은 사키야키(月代)머리였다.

 

중국인의 눈으로 보기에 가운데를 비우고 양쪽을 남기는 것은 바로 오랑캐의 모양이다. 이것은 서서히 일본인의 보편적인 머리모양으로 된다.

 

메이지유신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발탈도령이 떨어진다.

 

실제로 머리키락을 남기라는 것이다. 상투를 풀고 머리카락은 밀지 말고, 서방에서 통상적인 머리모양인 단발로 하라는 것이다.

 

무사의 칼 두자루도 집안에 놓아두라는 것이다. 차고 다니지 말고.

 

그러나, 이는 제창하는 것이다.

 

산발탈도는 문명개화의 중요한 일환이다. 그리고 그 외재적인 표현이다.

 

청나라초기처럼 강제로 밀어부치지 않았고, 자유롭게 선택하게 한다.

 

메이지때의 중신인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가 구미에 사신으로 갈 때, 그를 따라간 이토 히로부키(伊藤博文)등은 모두 양복에 단발이었는데, 오직 그 혼자서 화복(和服)을 입고 원래 머리모양을 했다.

 

미국에 도착하니, 일본유학생이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이것이 야만의 상징이라는 것을 압니까. 국가의 체면을 깍는 일입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바로 보스턴에서 머리를 풀어 단발로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고 한다.

 

비록 제창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집행과정에서 강제력이 동원되지 않았을까?

 

산발하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떤 정신적 압박이 가해졌을까?

 

영화 <마지막 사무라이>를 보면 이에 대하여 잘 묘사하고 있다. 흥미있는 사람은 한번 볼 만하다.

 

청나라초기의 체발역복과 비교하자면 일본 메이지시대의 체발역복은 반감이 훨씬 적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바로 내가 앞에서 결론내린 것과 같다. 너는 따르지 않을 자유가 있다.

 

만일 남들이 이상하게 보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는다면 네 맘대로 해도 된다.

 

그러므로, 칼을 목에 들이대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