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청풍명월소요객(淸風明月逍遙客)
만주팔기의 기주는 모두 애신각라씨(愛新覺羅氏)가 맡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바로 누르하치와 그의 동생인 슈르차히의 후예가 맡았다. 어떤 사람들은 팔기는 만주, 몽고, 한군(漢軍)으로 나뉘므로 합쳐서 24기가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몽고팔기와 한군팔기는 독립한 기주가 없다. 만주팔기의 기주가 지휘했던 것이다.
최초의 팔기제도는 나중처럼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그저 기주(旗主)와 좌령(佐領)의 두 계급만 있었다. 그리고 8개의 기가 아니라, 단지 1개의 기만 있었다.
누르하치가 거병한 후, 먼저 일기(一旗)의 부대를 만든다. 깃발 색깔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아마도 흑색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그는 인근의 부락들을 병합한 후 하나의 새로운 기를 만드는데, 이때의 깃발색깔도 알려지지 않았으나, 아마도 홍색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누르하치는 자신의 원래 흑기(黑旗)를 친동생인 슈르하치에게 넘겨주고, 그 자신이 새로 만든 홍기(紅旗)를 지휘한다. 나중에 홍기는 황기(黃旗)로 바꾼다.
만력29년(1601년), 누르하치는 해서여진(海西女眞) 4부중 하나인 하다부(哈達部)를 정복한다. 그는 하다부의 사람들로 1개의 기를 만든다. 그리고 자신의 장남인 추잉(褚英)과 하다부의 수령인 우르구다이(吳爾古代)(하다나라씨)로 하여금 공동으로 관리하게 한다. 이 하다부의 깃발은 백색이다. 이것이 바로 정백기(正白旗)의 유래이다.
얼마 후, 추잉이 우르구다이의 수령지위를 빼앗고, 그 자신이 혼자서 기주가 된다. 동시에 슈르하치의 정남기(正藍旗)도 확충된다. 남기에 새로 확충된 인원들은 모두 누르하치의 차남인 다이샨(代善)으로 하여금 관리하게 한다. 그래서 이 시기에 다이샨은 정남기 내의 '소기주(小旗主)'가 된다.
만력37년(1609년), 정남기의 기주인 슈르하치가 누르하치에게 연금된다. 정남기에서 원래 슈르하치에 속하던 좌령중 절반은 슈르하치의 차탐인 아민(阿敏)이 이어받는다.
나머지 원래 슈르하치에 속했지만, 아민에게 귀속되지 않은 좌령은 모조리 다이산의 휘하가 된다.
다이샨 이전의 정남기에 있던 원래의 인원에 새로 더해진 그의 인원을 합하여 함께 정남기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기가 된다. 깃발의 색깔은 홍색이다. 그래서 홍기가 된다. 나중에 20여년간 끄덕없는 정홍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만력42년(1614년), 누르하치는 자신의 장남이자 정남기의 기주인 추잉을 연금한다. 정백기의 대부분 좌령은 홍타이시(皇太極)에게 넘어간다. 그리고 남은 일부분 좌령은 추잉이 장남인 두두(杜度)가 계승한다. 그리하여 홍타이시는 정백기의 기주가 되고, 두두는 정백기의 '소기주'가 된다.
만력43년(1615년), 누르하치는 사기를 팔기로 확충한다. 그 자신의 황기를 정황기, 상황기로 나누고, 모두 그가 직접 지휘한다.
다이샨의 홍기는 정홍기와 상홍기로 나누어, 다이샨과 다이샨의 아들들이 지휘하게 한다(다이샨의 아들인 웨퉈(岳托)와 슈퉈(碩托)은 모두 상홍기의 '소기주'가 된다)
원래 남기의 기주 아민은 상황기의 기주가 되며, 귀속된 인원에도 변화가 없었다.
정남기의 기주는 누르하치의 다섯째 아들 망구얼타이(莽古爾泰)가 맡는다. 그 외에 망구얼타이의 친동생인 더거레이(德格類)가 '소기주'를 맡는다.
정백기의 기주는 변함이 없이 여전히 홍타이시가 맡는다.
상백기의 기주는 원래 정백기의 소기주였던 두두가 맡는다. 동시에 누라하치는 자신의 일곱째 아들인 아바타이(阿巴泰)도 상백기에 넣는다. 두두와 공동으로 상백기를 만든다(아바타이가 소기주이다)
여기에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당시 팔기의 깃발은 도안이 없었다. 즉 정기는 모두 색깔만 있는 깃발이고, 상황기는 가운데 용을 그렸다. 우리가 오늘날 보는 팔기의 깃발양식은 1622년이후에 정식으로 확정된다.
후금천명8년(1623년), 누르하치는 여진인의 '적장자(嫡長子)가 황위를 계승하고, 적유자(嫡幼子)가 재산을 계승한다"는 원칙에 따라, 자신의 3명의 적유자인, 18세의 아지거(阿濟格), 11살의 도르곤(多爾袞), 9살의 도도(多鐸)를 자신이 친히 지휘하는 양황기에 집어 넣는다. 그리고 양황기를 나누어서, 각각 그들에게 봉해준다. 그들은 소기주가 된다.
당시, 누르하치의 양황기에는 모두 60명의 좌령이 있었는데, 그는 정황기의 15명 좌령을 아지거에게 주고, 나머지 15명 좌령은 도르곤에게 준다. 다시 상황기에서 15명의 좌령을 도도에게 준다. 나머지 15명의 상황기 좌령은 자신이 직접 지휘한다.
그 후에 누르하치는 유언을 남긴다. 그가 사망한 후에, 그 자신이 지휘하는 15명의 상황기 좌령을 모두 도도가 승계하도록. 즉, 아지거는 정황기의 기주이고, 도도는 상황기의 기주이다. 도르곤은 지위가 없다. 그리하여 누르하치는 상백기의 기주인 두두를 상홍기로 보내고, 도르곤으로 하여금 상백기를 계승하게 한다.
그런데, 이 조정을 완성하기도 전에 누르하치는 사망하고 만다. 홍타이시는 그 기회를 노려, 신속히 아들 하오거(豪格)로 하여금 기주가 없는 상백기를 장악하게 한다. 이렇게 되자, 홍타이시 부자가 양백기를 장악하게 된다.
여이에서 또 한가지 이야기를 추가하자면, 이번 분봉후, 정황기를 아지거와 도르곤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상황기는 누르하치가 유일하게 친히 지휘하는 기가 된다. 그리하여 상황기가 팔기의 으뜸 기가 된다. 여러 사람들이 자주 묻는데, 팔기의 우두머리가 누구인지를. 여기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상황기이다.
누르하치가 죽은 후, 홍타이시가 즉위한다. 이 신임 칸은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들을 탄압하기 위하여, 팔기에 대하여 3차에 걸친 조정을 진행한다.
제1차조정 - 양백기와 양황기의 상호교환
이번 조정은 아주 간단하다. 홍타이시의 정백기, 하오거의 상백기와 아지거, 도르곤, 도도의 양황기를 바꾸는 것이다. 왜냐하면 홍타이시가 후금의 칸이므로, 그는 황기는 칸이 사용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칸의 지위를 이어받은 홍카이시가 도르곤 삼형제를 압박하여 자신과 깃발색깔을 바꾸게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정통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여기서 설명해야 할 것은, 이번 조정은 단순히 깃발색을 바꾸는 것이지만, 즉 양백기를 양황기로 바꾸고, 양황기를 양백기로 바꾸었지만, 그저 색깔만 바꾸었을 뿐, 소속인원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제2차 조정 - 상남기의 기주교체
영평전투후, 아민(슈르하치의 차남)은 관외로 도망친다. 홍타이시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아민을 숙청한다. 그는 여러 대신과 패륵을 소집한 후, 아민에게 16개의 대죄를 묻는다. 최종처리결과는 이러하다: 아민의 기주 지위를 박탈하고, 그를 집안에 연금한다. 그의 상남기는 홍타이시를 지지하는 당제(堂弟) 지르하랑(濟爾哈朗)이 기주를 맡도록 한다.
지르하랑도 슈르하치의 아들이므로, 이번에 기주는 바꾸었지만, 상남기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었다.
제3차 - 양황기와 정남기의 혼편(混編)
후금 천총6년(1632년), 정남기의 기주인 망구얼타이가 병사한다. 정남기의 기주는 원래 정남기의 소기주인 더거레이가 계승하고, 망구얼타이의 좌령은 멍구얼타이의 아들이 계승한다(소기주).
후금 천총9년(1635년), 정남기의 기주인 더거레이가 병사하고, 같은 해 누군가 망구얼타이, 더거레이가 모반을 꾀했다고 고발한다. 홍타이시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망구얼타이와 더거레이 일분의 기주 권한을 박탈한다. 그리고 정남기를 몰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 그리하여 정남기는 홍타이시에게 먹히게 된다.
정남기를 가진 후, 홍타이시는 원래의 정남기의 8명 좌령을 아들 하오거에게 넘겨준다. 긜고 3명은 상황기의 소기주인 아바타이에게 준다. 이렇게 하여 원래의 상황기의 실력을 강화한다. 동시에 정남기의 응집력을 약화시킨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홍타이시는 정황기의 절반과 정남기의 절반을 섞어 버린다. 그렇게 하여 새로운 정황기를 구성한다. 정황기와 정남기의 남은 절반을 합쳐서 새로운 상황기를 구성한다. 그리고 모두 홍타이시가 직접 지휘한다.
상황기가 홍타이시에게 귀속된 후, 원래 상황기의 기주인 하오거는 자신의 좌령을 이끌고 정남기로 이름을 고친다. 그리하여 정남기의 기주가 된다. 원래 상황기의 소기주인 아바타이는 마찬가지로 새로운 정남기의 소기주가 된다.
이번 조정이후의 팔기 기주는 다음과 같다:
정황기: 홍타이시
상황기: 하오거, 아바타이(소기주)
상남기: 지르하랑
이상의 4기는 홍타이시의 적계이다.
정홍기: 다이샨
상홍기: 웨퉈, 슈퉈(소기주)
양홍기는 다이샨의 지휘하에 있고 중립을 지켰다.
정백기: 도도
상백기: 아지거, 도르곤
양백기는 암중으로 홍타이시와 힘겨루기를 했다.
홍타이시가 죽은 후, 도르곤이 권력을 장악한다. 그도 홍타이시와 같은 길을 걷는다. 권력을 장악한 후, 다른 기를 대거 집어삼킨다. 구체적으로는 2차에 걸친 조정이 있었다.
제1차조정: 양백기 혼편
대청 숭덕8년(1643년) 팔월, 홍타이시가 돌연 사망한다. 그가 사망한 후 2개월동안 도르곤은 자신의 권세를 이용하여, 친동생 도도의 정백기 15명 좌령을 몰수한다.
도르곤에게는 원래 15명의 좌령이 있었고, 도도에게서 몰수한 15명의 좌령까지 합하여 도르곤은 30명의 좌령을 갖게 된다. 즉 1개 온전한 기의 실력을 갖게 되었다.
그 후에 도르곤은 자신이 지휘하는 상백기와 도도가 지휘하는 정백기를 바꾼다. 자신이 정백기의 기주가 되고, 원래 정백기였던 도도는 상백기로 바꾸게 된다.
원래 상백기에 속했던 아지거는 이번 교환에 참여하지 않는다. 도도는 상백기로 바꾼 후, 그가 기주가 되고, 아지거는 상백기의 소기주가 된다.
제2차조정: 양백기와 정남기의 혼편
후계자다툼이후, 도르곤과 하오거는 서로 원한을 갖는다. 하오거를 죽여버리기 위해 도르곤은 고심을 한다. 대청 순치5년(1648년) 이월, 도르곤은 하오거를 감옥에 가두고, 그의 정남기를 몰수한다.(그리고 하오거의 첩도 빼앗았다)
하오거의 정남기가 몰수된 후, 도르곤은 순치제에게 바치지 않고, "나중에 친정을 하게 되면 황제에 귀속시킨다"는 명목으로 자신이 가져버린다.
순치6년(1649년), 상백기의 기주인 도도가 병사한다. 도르곤은 양백기와 정남기를 함께 혼편한다. 원래 하오거에 속했던 정남기의 좌령과 원래 도도, 아지거에 속했던 상백기의 좌령을 바꾼다.
이렇게 교환한 후, 새로운 상백기는 기주가 없게 된다. 도르곤은 당연히 자신이 상백기의 기주를 차지한다. 이렇게 하여, 정백기까지 합하여 그는 양백기의 기주가 된다.
새로운 정남기는 원래 상백기에 속했던 아지거, 도도의 차남 도니(多尼), 아바타이의 셋째아들 보거(博格), 아바타이의 넷째아들 웨동(岳東)의 4명이 공동으로 관리하게 한다. 이 4명 중에서, 도니에 속한 좌령의 수량이 가장 많았다. 그래서 그가 기주가 되고, 나머지 3명은 소기주가 된다.
그외에 정홍기의 기주인 다이샨도 같은 해에 병사한다. 그의 아들인 상홍기의 기주 슈퉈는 3년전에 처형되었다(웨퉈의 사후에 슈퉈가 물려받았었다). 그리하여 양홍기의 기주도 사람이 바뀐다. 정홍기의 기주는 만다하이(滿達海, 다이샨의 아들)가 되고, 상홍기의 기주는 뤄커도(羅科鐸, 웨퉈의 손자)가 된다.
이번 변동이후 팔기의 기주는 다음과 같다:
양황기: 순치제
양백기: 도르곤
정홍기: 만다하이, 러커더훈(勒克德渾, 소기주)
상홍기: 뤄커도, 니칸(尼堪), 슈사이(碩塞)(소기주)
정남기: 도니, 아지거등(소기주)
상남기: 지르하랑
누르하치, 홍타이시, 도르곤의 20여년에 걸친 조정으로, 이때의 팔기는 이미 이전과 면목이 전혀 달라졌다. 최초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예를 들어, 정백기의 기주는 원래 추잉이었다. 그 결과 추잉이 누르하치에게 죽임을 당하고, 정백기의 인마는 홍타이시와 추잉의 아들 두두가 계승한다. 팔기가 건립될 때, 두두는 상백기로 하고, 추잉의 당시 인마는 상백기가 된다. 나중에 누르하치는 도르곤에게 주기 위하여, 두두를 상홍기로 옮긴다. 추잉 계열의 인마는 다시 상홍기로 옮겨갔다. 이렇게 바뀌고 또 바뀌다보니 팔기는 일찌감치 원래의 팔기가 아니게 되었다.
도르곤이 죽은 후, 순치제는 추후산장(秋後算賬)으로 다시 팔기에 대해 대조정을 가한다.
제1보, 그는 먼저 도르곤의 양백기를 몰수한다. 정백기는 순치제가 가져간다. 이렇게 하여, 순치제가 직접 지휘하는 양황기에 정백기를 합하여 "상삼기(上三旗)"가 된다.
제2보, 상백기 즉 원래 정남기 하오거에 속했던 좌령들을 자신의 조카이자 하오거의 아들인 푸셔우(富綬)에게 넘겨준다.
제3보, 순치제는 도르곤에 대한 화를 그의 형제에게 푼다. 친형이 아지거의 작위를 박탈하고, 그에게 소속된 좌령을 각각 정백, 상백, 정남의 3기에 나누어 배치한다.
이때부터 상삼기와 하오기라는 말이 나타난다. 그중 상삼기는 황제가 직접 지휘하고, 하오기는 하오거, 지르하랑, 다이샨, 아바타이, 도도, 추잉등의 후손이 지휘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정황기, 상황기, 정백기: 황제가 직접 지휘
정홍기: 다이샨의 후손이 지휘, 다이샨은 누르하치의 차남.
상홍기: 웨퉈, 슈사이, 추잉의 후손이 지휘. 웨퉈는 다이샨의 아들이자, 누르하치의 손자; 슈사이는 홍타이시의 아들, 누르하치의 손자; 추잉은 누라하치의 장남. 다이샨과 홍타이시의 큰형.
정남기: 아바타이, 도도의 후손이 지휘. 아바타이는 누르하치의 일곱째 아들, 홍타이시의 형, 도도는 우르하치의 적유자. 홍타이시의 동생
상남기: 지르하랑의 후손이 지휘. 지르하랑은 슈르하치의 여섯째 아들. 누르하치의 조카. 홍타이시의 당제.
강희제가 즉위한 후, 추가로 여러 왕의 하오기에 대한 장악력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그는 홍타이시시기에 만든 도통(都統)제도를 극력 추진한다. 도통이 기주를 대체하게 하는 것이다. 도통은 조정이 파견한 관리이고, 세습권리가 아니다. 그리하여 원래 각 기의 기주에 속해있던 기권이 강희제때는 기본적으로 도통에게 빼앗겨 버린다.(도통은 비종실의 사람이 담당할 수 있고, 종일품이다)
그 후에, 강희제는 황자를 하오기에 분봉한다. 하오기의 소기주가 되게 하여 계속 하오기를 분화시킨다. 예를 들어, 옹정은 상백기의 소기주를 맡은 바 있다. 옹정이 즉위한 후, 그의 아들 홍주(洪晝)는 정남기의 대기주가 된 적이 있다. 이 정책은 도광제때까지 이어진다. 이제 팔기는 완전히황제의 수중에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다.
청나라초기에 기주는 본기에 대한 영향력이 아주 컸다. 황권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홍타이시때부터, 청나라황제는 기주들의 기권을 약화시킨다. 건륭제의 중말기에 이르러 기주는 이미 명존실망(名存實亡) 즉 이름만 남았고, 도광제에 이르러는 이미 기주라는 것이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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