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역사사건/역사사건 (청 초기)

청나라 황제들은 한어(漢語)를 썼을까, 만어(滿語)를 썼을까?

중은우시 2021. 11. 13. 23:43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청나라궁중드라마를 보면, 우리는 자주 황제가 조회이 나가고, 대신들이 아뢰는 등의 장면을 보게 된다. 통치자인 청나라 황제는 조회에 나가서 만주족, 한족이 모여있는 대신들과 교류할 때, 어떤 언어를 썼을까? 한어일까, 만주어일까?

 

모두 알다시피, 청나라의 정치체계는 주로 만한 두 민족으로 구성되었다. 서로 다른 민족은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다. 언어의 차이는 교류에서의 장애를 가져온다. 청나라가 산해관을 넘어 북경에 자리잡은 직후, 조정의 관리들은 기본적으로 만주족이다. 그래서 청나라초기에는 만주어가 조정의 언어였다. 소수의 조정에 들어온 한족신하는 반드시 만주어를 익혀야 했다. 그러나, 두 민족이 융합되는 과정에서 일방적인 학습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청나라의 황족들도 점점 한족문화를 익히기 시작한다.

 

어린 황제에게 '이중언어교육'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청나라황제는 어려서부터 만한의 두 가지 교육을 모두 받는다. 만주족스승도 두고, 한족스승도 둔다. 만주족스승은 주로 무공 말타기 활쏘기등을 가르치고, 한족스승은 문화를 가르쳤다. 언어에서도 만주어도 배우고, 한어도 배워야 했다. 그래서 황제는 만주어와 한어를 다 말할 줄 알았다.

 

순치제는 한족문화를 열렬히 사랑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족의 시사가부에 대하여도 연구를 깊이 했다. 당초 그가 공부할 때, 만주어를 배울지 한어를 배울지를 놓고 그의 숙부인 도르곤과 크게 충돌한 바 있다. 도르곤은 순치제가 한어를 배우는 것을 반대했고, 그의 한어교육에 폭력적으로 간섭했다. 그는 일관되게 만주족이 한화되는 것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순치제가 화가 나서 말한다: "내가 만일 한어를 배우지 않으면, 한족대신들에 나에게 하는 말을 나는 못알아듣는다. 그들이 뭐라고 말하는지를 모른다. 내가 알아듣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말할 수가 없고, 그들과 교류할 수가 없다. 그럼 내가 어떻게 황제를 하겠는가"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서 청나라의 통치자들의 한화정도가 심화되고, 황제는 조회에 나가서 서로 다른 민족의 대신을 만나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즉, 황제는 사람에 따라 언어를 선택한 것이다. 만주어를 사용해야할 때는 만주어를 쓰고, 만주어를 모르는 한족대신에게 말할 때는 한어를 썼다. 다만, 청나라중기에 이르자 한어가 주요지위를 차지한다. 그리고 한화정도가 계속 심화되면서, 만주어는 점차 한어로 대체된다. 만주족들은 한족을 장기간 통치하기를 원했고, 황제부터 보통민중까지 한어를 보급하고, 한족문화를 학습하는 것이 필수적이 된다.

 

청나라가 북경에 자리잡은 후, 2,3대의 황제의 노력으로 만주족은 이미 모두 한어를 말할 줄 알게 된다. 옹정제에 이르러서는 황제가 욕할 때만 만주어를 썼다고 한다. 이는 마치 서로 다른 지역의 사람들끼리 갈등이 생기거나, 화가 나면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게 자기 동네의 사투리로 욕하는 것이나 같다.

 

결론적으로 만주어가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범위는 점점 축소되었다. 다만 공식적인 경우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쓸모없지 않았다. 일상적인 접견때, 황제가 말하는 언어는 대신의 신분과 아뢰는 내용에 따라서 달라졌다. 한어를 사용할 때도 있고, 만주어를 사용할 때도 있었다. 이런 속담이 있다: "사람을 만나면 사람말을 하고, 귀신을 만나면 귀신말을 한다" 청나라황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만주족을 만나면 만주어를 하고, 한족을 만나면 한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