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사회/중국의 심리

왜 우물이 고향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중은우시 2020. 6. 30. 16:45

장생전(張生全)

 

"배정리향(背井離鄕)"이라는 성어가 있다. 어떤 사람은 "배(背)"를 1성으로 읽어서, 이 성어의 의미는 바로 "우물을 등에 짊어지고 고향을 떠난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렇게 보면 의문이 생긴다. 우물을 어떻게 등에 짊어진단 말인가?

 

당연히 이건 오해이다. 정확한 해석은 여기의 '배(背)'를 4성으로 읽어야 하고, "등을 돌리고 떠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그 의미는 자신의 고향집에 있는 우물을 등지고 고향을 떠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우물'은 고향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고향에는 사물이 많다. 이치대로라면 집, 토지야말로 고향을 대표하기에 가장 적절한 사물이라 할 수 있다. 왜 토지, 집과 같은 물건이 고향의 대명사가 되지 않고, 우물이 고향의 대명사가 된 것일까?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실제로 고대인들이 일생동안 분투하면서 하려고 했던 것은 더 많은 토지를 얻는 것이고, 더 큰 집을 짓는 것이다. 이런 가치관은 고대에 이미 위로부터 아래까지 형성되어 있었다. 고대의 군왕은 일생동안 전쟁을 통하여 왕국을 건립한다. 그 목적은 바로 더 많은 토지를 얻는 것이다. 강산을 평정한 후, 통상 큰 궁궐을 짓는다. 진시황을 대표로 하는 인물들은 더 많은 토지를 얻으려 했을 뿐아니라, 만리장성같은 거대한 성벽을 쌓아서 자신이 얻은 토지를 둘러싸고 지킨다. 그외에 그는 아방궁과 같은 대형건축물을 짓는다. 그리고 그가 죽은 후에 들어갈 황릉도 짓는다.

 

황제도 그렇게 하는데, 아랫사람들도 따라하는 것이 당연하다.

 

우물은 중국고대에 이처럼 크게 중시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우물의 정란(井欄)을 "조란옥체(雕欄玉砌)" 즉 난간을 조각하고 좋은 섬돌로 둘러쌌을 뿐이다. 다만 아무도 방대하고 아름다운 시설물을 만들지는 않았다. 제왕가라 하더라도, 전문적인 수비인원을 시켜 그들의 우물을 지키게 했을 뿐이다. 누군가 독을 푸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다만 건축에서 무슨 특별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집, 토지가 고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데, 그들은 왜 '배옥리향(背屋離鄕)"이나 '배토리향(背土離鄕)"이라는 표현을 스지 않고, 일부러 "배정리향"이라는 성어를 만들어 냈을까? 우물은 왜 고향의 대명사로 되었을까?

 

필자의 생각에 우물이 고향의 대명사가 된 것은 아래의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본다.

 

첫째, 우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고인들은 인체해부학에 그다지 정통하지 못했다. 다만 그들이 인식한 것은 물의 인체에서의 작용이 거대하다는 것이다.  물은 인체로 들어가서 혈관 속을 다니는 혈액의 주요구성부분이 된다는 것이다.

 

도대체 혈액이 인체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작용을 하는지에 대하여 고인들도 잘 알지 못했다. 그들은 단지 혈액이 중요하다는 것만 알았다. 만일 인체에서 혈액이 빠져나가면, 사람은 죽기 때문이다. 혈액이 흐르려면 물에 의존해야 한다. 물이 없으면 혈액도 마른다. 물은 자연히 우물에서 퍼올린다. 우물이 없으면 물도 없다. 사람의 생명도 위협받게 된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우물을 생명의 표지로 보았다. 만일 한 사람이 고향을 떠난다면 그것은 생명활력의 근원이 겹핍되는 것이고 그의 생명과 인생도 곧 끝장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우물은 조상의 맥이다.

 

중국의 문화에서 조상은 숭고한 지위를 지닌다. 그들은 한 사람의 일생에서 창조된 가치, 얻은 재물, 내지 생명의 길이는 모두 조상이 준 것이다. 조상은 도덕적으로 공업적으로 취득한 '성적'이 후대인의 몸에서 나타난 것이다.

 

우물은 마침 조상의 복음(福蔭)과 후세생활을 이어주는 중요한 통로이다. 왜 우물이 이런 통로라고 말하는가?

 

우물 속의 물은 지하에서 솟아난다. 조상은 '지하에서 생활한다' 이런 우연한 일치로 고대인들은 당연히 이렇게 생각이 미치게 된다. 우물은 조상이 우리 후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하나의 통로가 아닐까? 우물 속에서 솟아나는 물은 조상이 우리 후손들에게 주는 일종의 복음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우물은 단지 한 사람의 생명의 근원일 뿐아니라, 한 사람이 얻는 각종 생활자원의 근원이기도 하다.

 

우리가 고향을 떠나서 다른 지방으로 가 생활할 때, 우리는 아마도 다시 토지도 얻을 수 있고, 다시 우리가 거처할 집도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우물은 타향으로 옮겨갈 수가 없다. 혹은 아마 우리는 새로 우물을 팔 수는 있다. 다만 고향의 우물과 통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조상과 연결될 수 없고, 조상의 복음과 연결될 수 없다. 타향의 우물을 통하여 우리에게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인생을 우리는 '배정리향'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우물이 고향의 대명사로 된 것은 고대인들이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숭상하는 사상이 일맥상전한 것이다. 만일 '배정리향'이라는 성어의 '배'를 1성으로 읽는다면, 우물은 등에 짊어지고 갈 수가 있고, 고대인들에게는 행복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