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위득승(魏得勝)
이오(李敖)는 김용과 삼모는 모두 위선적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이는 그 자신이 "진소인(眞小人)"이라는 것에 상대적인 말일 것이다. 이오는 "공공깡패"(엉망인 관료)를 상대할 때는 자주 '흑흘흑(黑吃黑)'의 수단을 사용했는데, 이를 "진소인"이라고 불렀다. 이오는 정신적으로 "진소인"의 도덕적 품격은 "위군자(僞君子)"보다 훨씬 높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김용과 삼모의 위선을 좋지 않게 보았던 것이다.
김용은 어떻게 위선적인가? 한해는 김용이 대만으로 와서 국민당을 치켜세웠다. 비는 시간에 이오의 집에 들러서 잠시 함께 있었다. 이오는 마음 속에 품은 말을 삭이는 스타일의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김용에게 말했다: "호적지가 말하기를 무협소설을 '하류'라고 하였다. 나도 동감이다. 나는 무협을 보지 않는다. 내가 받은 이지훈련, 인지훈련, 문학훈련, 사학훈련으로 나는 그런 황당한 내용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비록 나는 당신이 이 분야에서 사상유례없는 성취를 거두었고, 큰 돈을 번 줄은 알고 있지만."
당시, 김용은 군자의 풍모를 드러냈다. 그는 먼저 평상시와 같은 미소를 짓는 것으로 이오의 날카로운 비판에 응대했다. 나중에 아주 겸허하게 이오에게 그의 생각을 피력한다. 자신의 아들이 사망한 후, 그는 불학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이미 아주 경건한 불교도가 되었다. 이오는 그래도 말에는 '덕'이 없었다. 그는 김용에게 말한다: "불경에서 말하는 것은 재산을 보시하라는 것이 요건이다. 소위 '일체를 버림으로써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구하는 것을 베푸는 것에 인색해서는 안된다'. 당신은 그렇게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 당신이 경건한 불교도라고 할 수 있는가. 당신의 재산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김용은 비록 난감하였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의 앞에서 군자의 풍모를 잃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용은 홍콩으로 돌아오자마자, 자신이 운영하는 신문에 이오를 대거 비방한다. 이렇게 "앞에서는 웃고, 뒤로는 칼을 들이대는" 권법은 협객의 도리에 어긋나는 것같다.
그렇다면, 삼모는 또 어떻게 위선적인가? 한번은 식사를 하는데, 이오와 삼모가 같이 앉게 되었다. 삼모는 이오에게 말한다: "나는 아프리카 사막에 가지 않으면 안되겠다. 거기에는 많은 황사가운데 흑인들이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말을 가리는 법이 없는 이오는 그 자리에서 삼모의 위선을 들춰낸다. "당신은 당신이 황사모래속의 흑인을 도와야 한다고 하는데, 당신은 왜 암흑속에 있는 황인은 구하지 않는 거냐." 많은 사람들의 앞에서, 삼모는 난감하여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는 김용과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자신이 운영하는 신문사도 없다. 난감해도 난감한 것으로 지나가고 나중에 이오를 폄훼하지는 않았다. 다만 삼모의 위선은 이오가 이렇게 말함으로써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비읍(悲泣)의 애신(愛神)" 삼모의 창의하에 사하라사막은 일찌기 무수한 젊은 남녀들의 마음을 빼앗았다. 그러나 그녀는 위선적이었다. 위선에 마음이 기울어진 사람, 혹은 위선 속에서 자란 사람이 나중에 어떻게 될 것인가?
말을 다하지 못한 것은 이 위선이 김용, 삼모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빙동삼척(氷凍三尺), 비일일지한(非一日之寒)". 얼음이 세 자 두께로 언 것은 하루아침 추웠다고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인의 도덕관으로 말하자면, 뿌리에서부터 위선의 기초위에서 건립되었다. 복상(服喪)을 예로 들어보자. 공자와 맹자는 삼년상을 극력 주장했다. 동한시기에는 웃기지도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부모상 3년만 해도 이미 황당한 일이고, 인성의 각도에서 보자면 착실하게 이행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동한시대의 사람은 원래의 기초위에서 다시 배를 더하여 6년상을 치렀다. 어떤 사람은 어려서 부친을 잃으면, 이미 3년상을 지냈는데도, 어른이 되어서 관리가 되고 싶으면, 억지로 다시 3년상을 추가로 지내야 한다. 당연히 아예 20년상을 지낸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은 바로 조선(趙宣)이다. 유가의 법도에 따르면, 복상기간인 사람은 절대로 처와 동침할 수 없다. 그러나 20년상을 치른 조선은 20년동안 5명의 아이를 낳았다.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이것은 웃기는 일이다.
고대인들 중에 이같은 예는 너무나 많다. 맹자의 "군자는 도살장과 주방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君子遠庖廚)"(아마도 그래야 고기를 먹는데 죄책감이 없어서일 것이다)는 말이나, 한나라때의 대신 공손홍(公孫弘)이나(그는 베옷에 낡은 이불을 덮는 유형의 무뢰배이다. 겉으로는 청렴한 이미지를 주지만 속으로는 사치하고 부패한 생활을 보냈다)이 있고, 청렴한 것으로 유명한 범단(范丹)은 병이 든 누나를 보러 갔을 때도 누나가 그에게 밥을 먹고 가라고 하여 밥을 먹게 되자, 굳이 밥값을 내놓고 갔다는 등등. 이는 모두 위선의 사례들이다. 김용과 삼모의 위선은 공손홍, 조선과 같은 자들 앞에서는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여기서 그리스 격언 하나가 생각난다: "거짓 군자는 총주교의 얼굴을 하고 태어나지만 물레방앗간주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 서방의 격언으로 중국식 위선을 해석한다면, 부지불식간에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실로 교묘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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