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기점역사(起點歷史)
<마르코폴로여행기>에는 원나라때의 북경성벽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명확히 써놓았다: 성벽은 흰색으로 칠해져 있다고.
원나라 대도(大都)의 성벽은 동서로 7400미터, 남북으로 6650미터, 둘레는 28.6킬로미터, 높이는 약 10 내지 12미터였고, 완전히 항토(夯土)로 쌓았다. 바깥을 벽돌로 덮지 않았다. 채용한 방식은 송나라때의 축성법이다. 즉 성벽안에 먼저 영정목(永定木)을 설치하고 그후에 가로방향으로 임목(絍木)을 더하고 그 후에 흙을 넣어서 다진다.
북경은 여름에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흙으로 만든 성벽은 쉽게 빗물에 침식될 수 있었고, 무너질 수 있었다. 그러므로 성벽을 만든 초기에는 벽돌로 덮자는 건의도 있었다. 그러나 재력이 부족해서 포기한다. 나중에 원나라조정은 군대를 동원해서, 갈대를 벤 다음 위석(葦席)을 짜고, 매년 여름이 되면 위석으로 성벽을 덮었다. 이를 "위성(葦城)"이라고 불렀다. 민간에서는 "사의피성(蓑衣披城)"(도롱이를 성에 입혔다)이라고 하였다. 나중에 반란을 일으키는 백성이 갈대자리에 불을 지를까 겁이나서 '위성'을 만들기를 중지한다. 그리고 매번 성벽이 약해질 때면 임시로 백성을 동원하여 보수했다.
원나라성벽은 세워진후 지금까지 이미 700여년이 되었다. 오랫동안 빗물에 침식되어 남은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서쪽성벽과 북쪽유적이 남아 있는데, 합쳐서 12킬로미터이고, 높이는 겨우 2.7미터 내지 7미터이다.
이를 보면 이런 흙으로 만든 성벽을 흰색으로 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가 오면 바로 씻겨나갈 것이다. 그리고 중원은 역대이래로 성벽을 흰색으로 칠하는 습관이 없었다. 중국에서 흰색은 장례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북경에서 유일하게 색을 칠한 성벽은 자금성이다. 거기는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설마 마르코폴로가 잘못 봤단 말인가?
기실, 마르코 폴로의 그 유명한 여행기에는 유사한 잘못이 아주 많다. 예를 들어, 그는 "전체 도시는 사방형(四方形)으로 마치 바둑판같다"고 하였는데, 기실 원대도는 장방형(長方形)이다; 그는 "성벽은 바닥의 너비가 10보, 위로 갈수록 좁아져서 성벽위는 너비가 3보를 넘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확실히 부정확하다; 그는 황궁은 전사의 도형과 전쟁의 도화로 장식했다고 했는데, 역시 증거가 없다; 그는 심지어 궁정의 창문이 유리로 되어 있다고 했는데, 역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말이다.
가장 기이한 것은 마르코 폴로의 노구교(蘆溝橋)에 대한 묘사이다. 그는 24개의 공(拱)이 있다고 말했는데, 노구교는 11개의 공밖에 없다. 그는 교돈(橋墩)을 석사자로 장식했다고 했는데, 노구교를 가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교돈에는 석사자가 없고, 교주(橋柱)에 석사자를 조각해 놓았다. 마르크폴로는 다리에 꽃무니의 돌을 조각해서 깔아놓았다고 했는데, 역시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런 기이한 점들은 마르코 폴로가 정말 노구교에 와본 것인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일찌기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마르코폴로가 본 것은 다른 다리라고. 지금의 노구교가 아니라. 그러나 그의 여행기에 기록된 방위로 찾아보면, 새로운 다른 옛 다리유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를 보면, 그가 북경의 원나라 성벽을 흰색으로 칠했다고 하는 것도 역시 믿을 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마르코 폴로는 스스로 중국에서 17년간 생활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양주(揚州)를 3년간 '관리'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여행기에서 중국의 지명을 보면 많은 경우 돌궐어이다. 예를 들어 북경을 "칸발리크(汗八里)"이라고 했다. 만일 그가 정말 쿠빌라이에 의하여 관리로 임명되었다면, 왜 몽골어나 한어명칭을 쓰지 않았을까?
현재까지, 중문사료에서 마르코 폴로에 관한 여하한 증거도 찾아볼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 쓰여진 것들은 그가 직접 겪은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전해들은 것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말한다. 당연히 마르코폴로여행기의 원본은 이미 찾을 수 없고, 남아 있는 초본(抄本)이 140여종에 달한다. 서로 다른 사람이 옮겨쓰면서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또한 이 책에 기록된 내용이 만드시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인용할 때 주의해야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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